[한국인의 성씨] 대선후보들의 가계
전주 이씨 vs 광주 노씨 vs 하동 정씨
대권 3龍 “종씨 표를 잡아라”종친회 활동 총력
가계(家系)와 족보를 중시하는 우리나라 풍토에서 역대 대통령 선거
때마다 후보들이 어떤 씨족에 속하는지는 항상 주목의 대상이 되어왔다. 같은 씨족이라는 이유로 종친회 차원에서 특정 후보를 미는 일도
잦았다.
씨족의 힘이 대선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는 정확히 알
길이 없지만 우연찮게도 역대 대통령은 모두 만만치 않은 씨족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예컨대 이승만(李承晩) 전 대통령은 조선 왕가인 전주 이씨,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후손인 밀양 박씨,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은 신라 왕가인 경주 김씨를 본류로
하는 김녕 김씨다. 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경우는 금관가야 김수로왕의 후예인 김해 김씨다. 직접 투표로 선출된 대통령 가운데 왕족의 후예가 아닌 사람은 교하 노씨인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이 유일하고 노 전 대통령은 역대 대선에서 가장 적은 표를 얻었다.
이번 대선에서도 대선 후보가 어느 씨족에 속하는지는 여전히 주목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의 대선 정국에서 3각(角) 구도를
이루고 있는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후보, 노무현(盧武鉉) 민주당 후보, 정몽준(鄭夢準) 의원의 가계를 훑어본다. < 편집자 주>
◆ 이회창
전주 이씨 주부공파(主簿公派), 이 후보 부친 대(代)에 중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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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회창후보가 지난97년10월
전주에서 열린 전주 이씨중양절(음력9월9일)대제에 초헌관으로
참석하고 있다. |
이회창 후보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명문가(名門家) 출신이다. ‘친일파 시비’를 겪고 있는 부친 이홍규(李弘圭·96ㆍ전 검사장)옹을 비롯해 세계적인 화학자인 중부(仲父) 이태규(李泰圭) 박사 등 집안에 유명인이 즐비하다. 이 후보의 조부(이용균ㆍ李容均)는 500석꾼으로 동네에서 이름있는 한학자였다.
이 후보의 본관은 이승만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전주다. 조선 500년을
이끌어온 전주 이씨는 현재 100여파를 두고 있는데 이 후보는 이 중
주부공파(主簿公派)에 속한다. 파조(派祖)인 이영습(李英襲)은 23대조로 고려조 때 숙위시(宿尉寺) 주부(主簿)를 지냈다. 이영습은 조선조를
개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고조부인 이안사(李安社)의 4형제 가운데 한 사람. 이안사는 전주 호족으로 새로 부임한 관리와 맞서다 화(禍)를 피해 원나라로 건너가 다루가치 벼슬을 지냈다. 이안사의 증손자로 고려에 공을 세워 사복경(司僕卿)에 오른 이자춘(李子春)이 바로
이성계의 부친이다.
전주 이씨의 시조(始祖)는 신라 문성왕 때 사공(司空) 벼슬을 지낸 문장가 이한(李翰)이다.
이 후보의 고향인 충남 예산에 이 후보의 조상들이 옮겨온 것은 16대조인 이소생(李紹生) 때인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단종 때 현재의 감사원격인 사헌부 집의(執義)를 지낸 이소생은 세조가 왕위를 찬탈한 계유정란이 일어나자 충남 예산으로 은거했다고 한다. 소생은 후에 그의 덕을 기린 성종이 여러 차례 벼슬을 주려고 불렀으나 사양하고 후진 양성에 힘을 쓰며 여생을 마친 것으로 전해진다. 전주 이씨 중 고관대작이 즐비한 파(派)가 적지 않지만 이 후보가 속한 주부공파는 이러한 내력 때문인지 대사헌을 지낸 이운(李芸)과 충청수사를 지낸 이만(李萬)을 빼고는 관직에 오른 이가 드물며 대개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때문에 이 후보 집안의 중흥은 이 후보 부친 대(代)에서 이뤄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중부인 이태규씨는 경성고보(경기고)를 수석 졸업한 뒤 교토제국대학에서 1931년 한국인 최초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아 당시 일본에서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씨의 부친 홍규옹은
경성고보, 경성법전(서울대 법대)을 나와 일제 시대 황해도 서흥, 전라도 광주 등지에서 검찰 서기를 했고 광복 후 법관 특별임용시험에 합격, 서울지검 검사로 임용됐다. 이후 서울고검 검사, 광주지검장, 법무부 교정국장을 역임하다 지난 6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전주 이씨는 해외교포를 포함해 500만명의 종원(宗員)을 거느리고 있는 거대 씨족. 종친회의 정식 명칭은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으로 한나라당 부총재를 지낸 이환의(李桓儀)씨가 이사장으로 있다.
대권 재수(再修)에 나선 이 후보 입장에서는 유권자만 170만~180만명에 이르는 전주 이씨 씨족이 중요한 표밭인 게 사실. 이 후보는 지난
97년 대선 때부터 씨족의 표밭을 다졌고 주요 종친 행사에 꾸준히 참석했다. 종묘대제 사직대제 등 문화재급 종친 행사가 많은 것도 이 후보에게는 유리한 점이다. 이 후보는 생일인 지난 6월 2일 열린 종묘대제 행사에도 빠지지 않았다.
이 후보는 2000년 8월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충남지부 수련회’에
참석 도중 한 발언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민주당은 이
후보가 “전주 이씨가 다시 한번 나라를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며
비판을 가했고 이 후보측은 이에 대해 “전주 이씨가 국가 사회발전에 크게 이바지해야 한다”고 말한 것 뿐인데 ‘터무니없는 음해’를
가한다고 반박했다. 현재 이 후보는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고문’으로 있다.
◆ 노무현
광주 노씨 매죽와공파(梅竹窩公派), 노 전대통령과 먼 친척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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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후보가 지난 5월 고향인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을
방문해 동네 사람들의 환영을받고
있다. |
노무현 후보의 가계(家系)는 수재(秀才)들이 가득한 이회창 후보나 재벌가인 정몽준 후보와 달리 보통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 그야말로 ‘서민 집안’이다. 노 후보는 지난 8월 30일 아들 건호씨의 연세대 졸업식에 참석해서 자신을 비롯해 “부모와 아내 형 등 직계사촌을 따져봐도 대학 나온 사람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1946년 9월 1일(음력 8월 6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 마을에서 아버지 노판석(盧判石ㆍ76년 작고)씨와 어머니 이순례(李順禮ㆍ98년 작고)씨의 3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난 노 후보는 본관(本貫)이 광주(光州)로 광주 노씨 매죽와공파(梅竹窩公派) 30세(世)다. 노태우 대통령은 교하 노씨로 족보상 노 후보의 먼 친척뻘이다.
노씨의 시조는 당나라 한림학사를 지낸 노수(盧穗). 그는 ‘안록산의
난’을 피해 아들 아홉을 데리고 뱃길로 신라에 왔다고 전해지는데
아들 9형제가 모두 신라에서 벼슬을 하며 노씨의 9관(貫)을 이룬 것으로 돼있다. 광주 노씨는 이들 9형제 중 맏아들로 신라에서 광산백(光山伯)에 봉해진 노해(盧垓)를 득관조(得貫祖)로 하고 있다.
하지만 광주 노씨는 노해 이후 세계(世系)가 전해지지 않아 고려조에
정승을 지내고 광주군(光州君)에 봉해진 만(蔓)을 일세조(一世祖)로 하는 계통과 대호군(大護君) 서(恕)를 일세조로 하는 두 계통으로 갈리었지만 현재 일조지손(一祖之孫ㆍ한 할아버지의 자손)을 자처하고 있다. 노 후보는 만을 일세조로 하는 계통에 속한다고 한다.
광주 노씨는 노씨 9관 중 가장 번성하여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는 평을 듣고 있다. 예컨대 대호군 서의 증손 숭(崇)은 이성계를 도운 조선의 창업 공신으로 태종 때 우의정에 올랐다. 또 중종과 선조대에 걸쳐
명신으로 유명했던 수신(守愼)은 임금과 나라를 근심하는 시(詩)를 많이 남겼다.
본관이 전라도 광주인 노 후보의 조상이 경남 지역으로 옮겨온 것은
10대조인 해은(海隱) 공 시절로 알려져 있다. 해은공은 벼슬을 하다
임금의 노여움을 사 경남 지역에 와 은신하였다고 한다. 노 후보의 9대조는 경남 고성에 살았고 8대조부터 노 후보의 고향인 김해에 정착했다. 노 후보의 8대조의 부인(전주 최씨)은 어사 박문수가 임금에게
열녀로 추천한 인물로 지금도 마을에 열녀비가 서 있다고 한다.
현재 노씨 종친회는 9개 본관 씨족이 합친 ‘노씨중앙종친회’(회장
노성대)로 운영되고 있다. 노 후보는 지난 98년 종로보궐선거를 앞두고 종친회 상임부회장으로 영입됐으며 지난 5월 노성대 신임 종친 회장이 취임하기 전 회장 권한대행을 1년간 맡기도 했다. 종친회측은 전국의 노씨를 약 3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노씨 종친회는 지난 87년 대선 때 민정당 노태우 후보 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지난 95년 비자금 사건 이후 종친회로부터 “명예를 더럽혔다”며 지탄의 대상이 됐던 노 전 대통령은 현재 종친회 고문직에 있다.
-- 이어서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