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 2000년도 하계 방중 세미나
제 3 부 신자유주의의 팽창
2000. 8. 1(火)
5장 제 3세계에서 신자유주의의 팽창
1.팽창의 동학
1)위기 확산의 이유
개별국가의 경제상태는 그 나라만의 독자적인 메커니즘이 작동하여 조성된 것이 아니라 전세계 경제 사이클의 경향 아래에서 그 경향을 많이 보여주거나 그렇지 않거나 할 뿐이다. 이렇듯 구조적 위기가 모든 나라에서 동시에 일어나지 않는 것은 각 나라들의 자본주의 발전 정도가 균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 발생한 위기는 다음의 과정을 거쳐서 제 3국에 퍼지게 된다. 우선, 장기불황이 선진국에서 시작되는 이유는 기존의 축적몯렐이 가장 활성화되어 있고, 이에 따라 그 모순이 제일먼저 나타나기 때문이다.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 선진국들은 온갖 방법을 통해 위기의 부담을 자국노동자와 제 3세계 민중에게 전가시킨다. 제 3세계가 부담전가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선진국에 종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70년대 이후 중남미, 아프리카, 동아시아 모두가 구조조정의 압력을 받지만, 어느 곳이 위기의 부담을 떠안을 제 3세계로 선택될 것인가는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즉, 그 받아들이는 양상은 각 지역이 세계질서에서 차지하는 위치, 각 나라 내부 계급관계의 상황 등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2)헤게모니 다툼
영국과 미국이 신자유주의를 도입한 것은 약화된 헤게모니를 탈환하기 위해서였다. 신자유주의는 중남미, 아프리카를 비롯해서 유럽과 동아시아로 계속해서 퍼져나간다. 중남미 같은 나라들은 외채를 빌미로 신자유주의를 강요당했고 동아시아는 80년대부터 은근하게 신자유주의적 경향이 국가정책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서유럽 역시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는 과정은 곧 미국헤게모니가 약화되었음을 반영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 이유는 첫째, 신자유주의는 확실히 불황을 극복하지 못했고, 둘째 노동자계급을 체제 내로 통합시키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3)외채위기
외채위기는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가 전세계화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 80년대 외채위기가 발생한 과정-중남미의 사례
석유파동으로 떼돈을 벌은 중동국가들은 미국의 금융기관에 돈을 맡겼고 이 돈은 제3세계로 흘러 들어간다. 그 당시 중남미의 경제상황은 상당히 좋은 편이었기 때문에, 각국에서 집권한 민중주의 정권은 외국 민간은행의 돈을 빌려다가 경제개발에 쏟아부었다. 이렇게 해서 중남미 각국의 외채규모는 급격히 늘어났다.
외채가 엄청나게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중남미 정부와 서방의 민간은행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고 외채규모는 갈수록 늘어나기만 했다. 이렇게 된 것은 이윤추구라는 금융자본의 속성과 제3세계의 어려운 경제적 처지가 결합한 데 주요 원인이 있기도 했지만, 혁명세력들을 잠재우기 위해 미국과 세계은행이 과다대출을 용인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첫째, 미국이 신자유주의 정책에 입각하여 금리를 대폭 인상함에 따라 금리는 15% 수준을 상회하게 되었고, 둘째, 서방의 민간은행들이 채무만기연장을 거부하였으며, 셋째로 중남미에 대한 신규대출이 완전 중단되었다. 결국 1982년에 멕시코를 시발로 아르헨티나, 브라질, 볼리비아 등 이 지역 많은 국가들이 모라토리엄(지급연기)을 선언하기에 이르른다.
4)IMF의 역할
채권은행과 서방정부는 중남미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결국은 추가로 대출을 해줬다. 그러나 채권자들은 어떤 '조건'을 내걸었는데, 그것은 바로 IMF의 구제금융조건이었다. 즉 IMF가 채권자들의 대리인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IMF가 중남미국가에 제시한 대책은 단기적으로는 철저한 긴축정책을 통해 국제수지를 개선하라는 것이었고 중장기적으로는 공기업 민영화, 규제완화 등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실시하라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빚 갚으려면 돈 적게 쓰고 물건 많이 팔아서 돈 마련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하면 당장의 외채를 갚을 수 있게 IMF와 채권은행단이 추가대출을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IMF의 대책은 유일한 진리인 양 받아들여졌다. 즉, 중남미에서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졌고 이후 제 3세계에 대한 IMF의 개입은 80년대 내내 계속된다. 10년 동ㅇ나 약 70여개의 국가들이 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받아들였다. 이제 '경제안정화', '구조조정' 따위의 말들은 제3세계 국가에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전개는 미국과 큰 관계가 있는데, 그 이유는 미국은 처음부터 IMF의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해왔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80년대에도 IMF에 대한 미국의 지배는 여전했고 이 때문에 IMF는 신자유주의를 자신의 정책기조로 채택하게 되었다. 그 내용의 핵심은 "채무국이 외국에 진 빚을 갚기 위해 세계은행이나 IMF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레이거노믹스의 경제정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5)워싱턴 컨센서스
90년대 초에 만들어진 '위싱턴 컨센서스'는 제3세계에서 신자유주의가 보다 원활하게 관철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구상된 일정의 정치전략 같은 것으로서 제3세계 국가들이 어떤 내용의 구조조정을 시행해야 하는가를 몇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그런데 워싱턴 컨센서스에서 특징적인 것은 구조조정을 개별 국가에서 관철시키기 위해서 어떤 전술을 사용해야 하는 가를 정리한 부분이다.
첫째, 대상국가의 선거를 잘 이용할 것
둘째, 중도성향을 가진 2개의 정당이 연합하여 정권을 잡는 것이 유리
셋째,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할 것
2.중남미
1)신자유주의 도입의 배경
동아시아나 다른 제3세계가 아닌 중남미가 세계경제불황의 여파를 가장 처음으로 맡게 된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중남미 자체의 경제성장 모델(수입대체전략)이 야기한 모순이 세계 경제위기로부터 발생한 요인과 특수한 형태로 결합했기 때문이었다.
첫째로, 70년대 불황이 닥치자, 각종 원자재에 대한 수요가 갑자기 줄어들었다. 둘째로, 외채는 국내 산업을 발전시키려는 과정에서도 늘어났다. 셋째로, 정부는 공공부문을 유지하기 위해서 막대한 재정적자를 감수하였다. 이 과정에서 국가는 막대한 규모의 재정을 지출하고 그 대신에 해외차입을 늘렸다. 결국 80년대가 지나면서, 중남미의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는 각각 전세계 채무국 순위 1, 2, 3등을 차지하기에 이른다.
2)신자유주의의 도입
IMF는 중남미 국가들에게 무엇보다도 수입대체산업화를 포기하라고 강요했다. 이에 따라 중남미 각국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전면적으로 수용했고, 멕시코를 선두로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페루, 브라질 등이 그 뒤를 이었다. (1982년 8월 멕시코 모라토리엄 선언, 1983년 3월 베네수엘라 모라토리엄 선언, 1984년 아르헨티나 모라토리엄 선언, 1987년 2월 브라질 모라토리엄 선언)
* 중남미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내용과 특징
첫째, IMF가 권고한 긴축정책 수용(사회복지 관련 지출 감소)
둘째, 평가절하 조치 단행(--->물가상승, 수출증가--->수출가격경쟁--->수출감소)
셋째, 무역과 금융시장에 대한 자유화 정책 실시(기업도산, 금융 불안정성 심화)
넷째, 광범위한 민영화 진행(중남미 지역 경제에서 외국인 비율 증가, 각종 비용 상승, 서비스의 질 저하)
3)결과(실업률, 실질임금, 소득분배의 양상)
① 10여년 동안 실업률은 크게 늘어 약 10% 정도의 실업률 기록
② 실질임금 감소(10년 전에 비해 멕시코는 40%감소, 아르헨티나는 15%감소, 우루과이는 27% 감소, 페루는 57% 감소)
③ 최저임금 감소(구조조정 이전에 비해 절반 이상 하락)
④ 총외채의 증가
3. 아프리카
대부분의 아프리카 나라들은 60년대 들어서 독립을 하지만, 그것은 정치적인 독립에 불과할 뿐, 경제적으로는 원료를 수출하고 공산품을 수입하는 식민지적 경제체제를 그대로 이어받게 된다. 그리고 이 체제는 아프리카를 구제한다는 명목하에 진행된 세계은행의 정책으로 인해 더욱 강화되며 이는 곧 아프리카 빈곤의 궁극적 원인이 된다.
세계은행의 주임무는 빈곤한 나라에 원조를 해주는 일로서, 세계은행이 아프리카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벌인 사업은 '환금작물의 단일재배'였다. 환금작물의 단일재배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세계시장에서 잘 팔리면 괜찮지만 만약 그렇지 않게 되면, 원주민들은 먹지도 않는 환금작물(코코아, 담배, 땅콩, 커피 등)은 그냥 버려지게 되고 원주민들은 굶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 국가들이 똑같이 키운 환금작물들을 세계시장에 내놓는 바람에 국제시세가 떨어졌고, 이러한 경향은 70년대 들어서도 여전했다. 이에 따라 아프리카 경제는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2) 구조조정의 도입
자주적인 경제 메커니즘을 구축해보려는 의지에서 시작된 '라고스 행동계획(1980년 4월)'은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 하였고, 결국엔 IMF와 세계은행이 주장했던 "농업에 기반을 둔 수출지향전략"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더불어 IMF와 세계은행이 제3세계에 대한 구조조정을 지원하게 되면서 아프리카에 제공되는 자금 역시 구조조정의 지원기금의 형태를 띠게 된다.
* 아프리카 구조조정의 핵심정책들이 보였던 특징들
첫째, 무역자유화 조치는 선진국들의 아프리카에 대한 공산품 수출을 좀더 확대하기 위한 것(아프리카 산업기반의 와해, 세계은행식 '경제발전 전략' 강화)
둘째, IMF와 세계은행은 각국에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라고 강요
셋째, 재정적자를 위한 공공부문 축소, 모조금 삭감 등은 상황을 악화시킴(실업, 콜레라, AIDS, 자퇴)
3)구조조정의 결과
결과적으로 아프리카에 대한 구조조정은 실패하였다. 구조조정기간 동안 대부분의 나라에서 경제성장률은 오르지 못했고, 1인당 국민소득은 마이너스 경제성장률보다도 더 가파른 속도로 떨어졌는데, 이것은 성장률은 낮은데 인구는 계속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나마 벌어들였던 돈은 모두 외채를 갚는데 쓰였고, 늘어나는 이자 때문에 외채 총액은 오히려 늘었다.
4. 아시아 신흥공업국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의 도입
1)신자유주의 이전
한국정부의 경제정책에서 신자유주의적 요소가 도입된 것은 80년대 초반의 일이다. 60년대부터 국가주도의 축적방식을 채택한 한국은 한동안 고도성장을 실현하는가 싶더니, 70년대 중반에 성장모델 자체의 모순(인플레이션, 집중투자로 인한 산업간 불균형 심화, 노동자 및 민중의 저항)이 확연히 드러나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등장한 것이 79년 4월에 발표된 "경제안정화 종합시책"이다. 경제안정화 시책의 의의는 성장위주의 경제정책을 '안정위주'로 전환한 데 있다. 이제는 무조건적인 성장이 아니라, 경쟁력을 강화시키고 자본축적을 위한 사회적 조건을 보다 안정화시키는 정책으로의 선회가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기조는 개방화를 중심으로 하여 진행되는 '민간주도 경제의 활성화'라는 방향으로 이어진다.
2)미국의 압력
80년대 들어서 미국은 신흥공업국에 대한 기존의 정책을 특혜에서 압박으로 바꾼다. 미국의 이러한 태도 변화는 한국이 시장을 개방하는 등의 신자유주의적 조치들을 취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교재 152~153쪽에 나와 있는 한국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신자유주의가 제3세계에 퍼지는 것은 세계경제의 불황이 근본적인 요인이지만, 그 과정 안에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동이 많은 부분 반영되어 있었다.
3)자국 자본의 이해
한국이 80년대 점차 개방경제로 이행하기 시작한 것은 국내독점 자본들의 이해와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 개방화는 국내 재벌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되거나, 최소한 '무관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국내자본의 해외진출에 따라 해외 직접투자나 동남아 진출 등이 활발하였다.
4)신자유주의적 정책의 도입
80년대 한국정부가 채택한 신자유주의적 성격의 정책들의 흐름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민간주도경제론'과 '개방경제론'이 바로 그것이다. 전자는 정부의 개입을 축소해달라고 요구했고, 후자는 수입자유화(수입품과의 경쟁을 통해 우리 상품의 '체질개선')와 자본시장 자유화(증권시장 개방)의 두 가지를 주장하였다.
5.사회주의의 몰락과 신자유주의의 도입
1)배경
1989년에 폴란드를 시작으로 소련, 헝가리, 체코 등 동유럽 전체가 붕괴되었다. 사실, 동유럽에는 데땅뜨 국면에 접어든 70년대부터 자본주의적 요소가 도입되었는데, 이 점이 동유럽의 몰락을 가속화시킨 한 원인이 된다. 당시 70년대 중반부터 불어닥친 세계경제의 불황과 더불어서 내부적으로 경제위기(외채위기)에 맞닥뜨린 동유럽은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경제교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소련을 비롯하여 동유럽 전역에 '대개혁'을 의미하는 페레스트로이카 열풍이 휩쓸었다.
2)신자유주의의 도입
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등의 동유럽에 도입된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구체적으로 가격자유화, 국가의 각종 보조금 축소, 민영화, 무역자유화, 자본시장의 구축 등이었다. 그런데 동유럽에서 무엇보다도 특징적이었던 것은 민영화 정책이었다. 동유럽에서는 모든 기업이 공기업이었기 때문에, 동유럽에서 민영화를 한다는 것은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기업의 성격을 한꺼번에 다 바꿔버린다는 의미이다. 즉, 경제체제를 완전히 바꿔버린다는 뜻이다. 따라서 동유럽의 민영화 정책은 사유재산을 허용하고, 공기업 매각을 위한 기업가치 결정과정에서 각종 자본주의적 기법을 도입하며, 민간자본을 육성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3)결과와 의의
① 생활수준 악화, 불평등의 심화
② 인플레이션--->각종 정부 보조금 감소(생필품 요금 및 공공요금 인상)--->임금동결
③ 10%를 상회하는 높은 실업률 발생
④ 경제성장률 하락(노동자 민중의 극심한 생활고)--->경기회복(노동자 민중에겐 무혜택)
6.제3세계에서 종속적 신자유주의 체제의 형성
1)유일한 목적은 외채상환
선진국, 즉 제1세계 민중들이 일해서 낸 세금은 자국 정부와 IMF를 거쳐 초국적 금융자본을 형성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로 인해 계속된 채무관계는 제3세계 민중들이 일해서 창출한 가치의 대부분을 이자의 형태로 또 다시 초국적 금융자본에게 흘러가도록 만들었다. 요컨대 제1세계 민중들의 노동의 결과가 제3세계 민중들을 착취하는 데 사용된 것이다.
2)종속적 신자유주의 체제
경제적인 측면에서 말하는 "종속"이란, 한 나라가 자체적으로 경제 운용을 할 수 없고, 받드시 남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상황을 말한다. 한국을 위시하여 동아시아 신흥공업국과 중남미 국가들이 채택하였던 수출주도산업화는 경제적 종속을 불러올 수 있다. 왜냐하면 수출을 통해서만이 생존이 가능한 경제란 곧 외부적 상황(타국의 시장상황과 경제정책)에 종속되어 있는 경제를 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제적 종속은 금융적 차원에서도 존재하는데, 현재 제3세계는 외채로 인하여 채권국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다.
현재 제3세계 국가들 대부분은 종속적 신자유주의 체제로 나아가고 있다. 중남미는 해외자본, 주로는 미국자본에 의해 철저히 종속되어 있고, 아프리카는 1차 산품을 수출하는 경제구조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여전히 세계시장의 변동에 죽거나 살거나 한다. 동아시아는 일본의 하청계열화 구조에 종속되어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통해 중간 수준의 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는 데 만족한다. 동유럽은 사회주의 붕괴이후 서유럽의 주변지역으로 전락하고 있다. 또한 이들 지역은 모두 아무런 준비 없이 금융시장을 개방해 놓아 핫머니 등 초국적 투기자본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6장 일본 및 유럽모델의 변화
1.헤게모니 다툼의 심화
일본은 80년대 세계불황의 와중에서도 엄청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더할 수 없는 호황을 구가했다. 일본의 호황은 80년대 내내 계속되었고, 이런 연유로 일본의 구조조정은 90년대 이후, 그리고 보다 본격적으로는 97년 동아시아 위기 이후로 진행되었다. 서유럽에서는 전통적으로 사민주의가 강했다. 하지만, 90년대를 지나면서 유럽각국은 다투어 신자유주의를 채택한다. 그리고 그러한 경향은 EU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더욱 심화되었다.
이렇게 선진국에서 신자유주의가 도입된 이유는 불황 때문에 자본간 경쟁이 극심해진 것과 관련이 있다. 미국이 헤게모니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던 때와는 달라서, 장기불황의 시기에는 헤게모니를 둘러싼 투쟁이 강화되었고, 80년대부터 본격화된 헤게모니 투쟁은 삼극간의 경쟁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서유럽과 일본이 헤게모니 다툼을 벌이면서 결과적으로는 신자유주의를 도입한다는 사실은 서유럽과 일본, 그리고 미국간의 경쟁이 기본적으로는 미국의 힘이 우월한 상태에서 진행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 일본이 고집했던 국가주도 성장모델과 서유럽이 주도했던 사민주의 모델은 모두 신자유주의 모델로 대체되었다. 이것은 미국의 힘은 예전에 비하면 줄었지만, 여전히 세계 최강임이 입증된 것이다.
2.헤게모니 재구축을 위한 미국의 시도들
미국은 실추된 헤게모니를 다시 회복하기 위하여 80년대와 90년대에 여러 가지 시도를 하였다. 첫째, 경제적으로는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여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성사시키고, 지역내 블록인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를 건설한다. 그리고 국제무역에 관한 새로운 질서들을 구축한다. 둘째, 국제정치적 차원에서 주도권을 확고히 하기 위해 군비를 확충(전쟁이라는 수요가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군산복합체의 요구 때문)하고 전쟁을 도발(1991년 1월 걸프전쟁, 93년 6월과 98년 12월 이라크 공습, 99년 코소보 세르비아계에 대한 공습)한다. 이것은 몰락한 사회주의를 대신해서 미국만이 유일 강국이라는 점을 전세계에 확인시켜 줄, '싸워 물리쳐야 할 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cf. 일본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교재를 참조하세요.
3.유럽의 대응
1)신자유주의와 EU
앞에서도 서술한 바와 같이, 유럽은 전통적으로 사회민주주의적 성향이 강한 나라들이었다. 그러나 80년대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적 경향은 90년대 들어서 더욱 강화되기에 이른다. 이것은 유럽의 EU건설과 깊은 관련이 있다.
경제란 일반적으로 한 국가의 단위 안에서 작동하는 것인데, EU와 같은 지역통합정책은 국민경제의 해체를 전제로 한다. 국경을 허물다시피 해서 유럽 공용 화폐를 만들고, 각 국가간의 인적, 물적 교류를 자유롭게 허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사민주의는 기본적으로 '경쟁력 있는 국민경제'를 바탕으로 해서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국내에서 자본과 노동이 연합해야 할 필요에 의해 유지되었는데, EU의 건설로 인하여 국가의 거시정책이 효과를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거나, 일국 단위의 집중화된 노조가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노동자와 자본가의 타협도 무너지게 된다. EU의 등장은 바로 이런 상황을 초래하였다. 이로써 신자유주의는 유럽 전역에 퍼지게 된다.
2)좌파정부의 재등장과 신자유주의의 온존
교재를 보면, 서유럽 각 국가의 집권당을 놓고 좌파와 우파가 치열한 경쟁을 하며 엎치락 뒤치락하는 모습이 설명되어 있다. 그런 것들은 교재를 통해서 읽었으리란 전제 하에서 최근 유럽의 정세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98년 9월 독일 선거가 슈뢰더의 승리로 끝남으로써 스페인과 아일랜드를 제외한 서유럽 모든 나라에서 좌파가 정권을 장악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의 본산지인 영국에서 집권한 노동당의 블레어 총리는 '제 3의 길'이란 것을 추진한다. '제 3의 길'은 신자유주의의 '시장'과 사민주의의 '평등주의'가 가지는 긍정성을 종합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제 3의 길'이 담고 있는 10대 강령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모두 기존에는 좌익과 우익이 각각 주장하던 내용을 적당하게 '결합'한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요컨대, 제 3의 길은 유럽자본주의를 살리기 위한 신자유주의적 대응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고 한다. 영국의 블레어와 독일의 슈뢰더가 99년 6월 런던에서 채택한 '유럽: 제3의 길, 새로운 중도'라는 공동선언문에서도 그러한 내용을 엿볼 수 있는데, 이에 관해서는 많은 의견이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본 세미나에서는 유럽좌파와 '제 3의길'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논해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