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또는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성향이 강한 국힘에서
이에 대한 옹호와 지지가 분분한 때에
노무현과 우리당에 비판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글입니다.
제목
비판적지지 옹홍론
쓴사람 우시
정치가에 대한 지지자의 궁극적인 임무는 기존의 비판에 대한 비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보다 올바른 방향의 비판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의사소통과 함께 적절한 거리와 긴장이 있어야 서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사회의 새로운 주류가 형성되는 시점에서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의 수준은 그 성패를 좌우합니다. 그러한 비판의식하에서 우리가 지지하는 정치가나 정치집단도 비판대상에서 예외일 순 없습니다.
우리 국힘도 이런 비판의식에 기초해 2000년 낙천낙선운동을 넘어 지지후원운동을 통해 정치개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힘은 공식적으로 합의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을 의식적으로 선택했거나 그런 선택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선택한 것입니다. 즉 정치개혁과 언론개혁을 위한 사회운동의 차원에서 현재 시점에서 가장 적극적인 방법으로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지지의 방식입니다. 물론 대통령이나 열린우리당에 대한 부당한 무책임한 비판에 대해서는 반대해야 합니다. 특히 항상 권력은 자신들의 것임을 당연시해왔던 세력이 완강히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 권위주의시대와 같은 정부비판은 거부되어야 합니다. 오히려 대통령과 관료의 권한은 경계를 분명히하고 그 한계내에서는 주도적으로 발휘되어야 합니다. 세계화시대에 필요한 정부는 약한 정부가 아닙니다. 특히 지식인사회로부터 경원시되는 노무현정부의 청와대는 강화되어야 합니다.(그런데 이것도 노무현정부에 대한 비판일 수 있습니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비판을 우리가 적극적으로 하듯이 노무현정부나 노무현대통령에 대한 비판의식도 열려있어야 합니다. 물론 열린우리당과 노무현대통령이 같지않습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열린우리당대로 노무현대통령은 노무현대통령 대로 비판과 지지를 견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지와 옹호 그 자체로 머문다면, 그것은 현상유지에 도움이 될 지는 몰라도 앞으로 나타날 문제에 대한 대비는 못됩니다. 즉 그것은 우리가 선택한 지지자에 대한 적극적 지지가 아닌 소극적 지지인 셈입니다.
또한 실제로 그냥 지지나 그냥 옹호는 선택의 결과 나타나는 것이지 그 과정에 결합할 때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만 이해되지않는 일이 있더라도 지지하는 정치가의 선택에 대한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할 뿐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는 개별 사안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을 계속 거론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선택 속에 있는 의미를 계속 따져왔습니다. 북핵문제, 노동문제, 환경문제 구체적 대안을 거론하지 않은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 대안이 현실적이든 아니든 그것이 노무현정부의 선택을 지지하든 반대하든 우리는 대안을 추구해왔습니다. 그러한 주장 속에 구체적으로 노무현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있든 없든 일정 부분 그의 책임은 전제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강금원씨도 노무현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하더군요. 대통령의 민주당탈당 이유를 나름대로 설명하면서 답답하게 당하기만 했다고. 그의 주장이 맞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런 지적은 그의 입장에서 당연하고 경청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국힘이 노무현대통령에 대한 지지열정의 순서로 줄서는 단체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현 시점에서 볼 때 지지열정과 사회개혁에 대한 열정이 비례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을 인정해야하지만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어느 곳이든 자기비판이 없다면 썩습니다. 그러므로 자체내에 적절한 대립구도를 유지하는 것이 건강한 내부구조입니다. 물론 일부러 만들 필요는 없겠지요. 대립구도가 건강해야지 그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자기비판은 어디든지 항상 부족하기 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