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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8.23 03:30
금서(禁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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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진나라에서 벌어진 ‘분서갱유’를 묘사한 작자 미상의 그림. /위키피디아
최근 미국 도서관에서 '금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금서(禁書)'는 국가나 특정 종교 등이 출판이나 판매를 금지한 책을 말해요. 보수 성향 공화당이 집권한 주(州)에서 동성애와 흑인 차별 실태 등을 다룬 책을 도서관에서 빼겠다고 하자 민주당과 진보 단체가 이에 반발하면서 분쟁이 격화하고 있대요. 최근 미국에서는 여러 영역에서 좌우 이념 대립이 심화하고 있는데, 도서관까지 갈등이 확산하고 있는 거죠. 우리는 역사적으로 어떤 책을 금지했는지를 통해 당시 시대상을 살필 수 있어요. 금서 목록을 통해 사회적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거죠.
중국 진나라의 분서갱유
잘 알려진 진시황제의 '분서갱유'부터 살펴볼까요? '분서(焚書)'는 책을 불사른다는 뜻이고, '갱유(坑儒)'는 학자를 구덩이에 산 채로 묻는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분서갱유'라는 말은 학문과 사상을 탄압한다는 뜻으로 많이 써요. 기원전 221년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나라 시황제는 민간에서 서적을 소장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법률 '협서율'을 만들었어요. 기원전 213년 만들어진 이 법은 약 20년 동안 유지된 것으로 추정돼요.
시황제는 관에서 주도하는 학문 이외의 사상은 세상을 어지럽힌다며 학문을 제한했어요. 이에 따라 지방관이 책을 거둬들여 모두 불태우게 했는데, 이에 따르지 않으면 얼굴이나 팔에 문신으로 죄명을 새기거나 성을 쌓는 일에 징발하는 형벌을 내렸어요. 특히 여럿이 모여 금서를 읽고 공부하다 적발되면 처형한 뒤 시신을 길거리에 버리는 무거운 형벌을 내렸어요.
그런데 모든 책을 다 불사르려 한 것은 아니에요. 의약과 종수(種樹), 복서(卜筮) 등 분야는 제외한다는 기준이 있었어요. '의약'은 의학과 약학 관련 분야, '종수'는 식물을 심고 가꾸는 분야로 농경과 관련된 학문이에요. 백성을 위해 꼭 필요한 분야의 책은 예외로 둔 거죠. '복서'는 앞날의 길흉을 알기 위해 점을 치는 일을 말하는데,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야였어요. 복서 역시 백성의 실생활과 밀접한 학문으로 분류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평범한 사람들의 분노가 포도알처럼 자랐다'
미국 대공황 당시 사회 모습을 잘 드러낸 소설로 존 스타인벡이 쓴 '분노의 포도'가 유명해요. 1930년대 오클라호마에 사는 평범한 농부 가족이 하루아침에 비참한 이주 노동자가 되는 과정을 담고 있어요. 이 소설은 출간 직후 43만권 이상 팔리면서 베스트셀러가 됐어요. 스타인벡은 기자 출신으로 당시 농민의 삶을 취재해 소설을 썼대요. 하지만 정부는 이 소설이 '계층 간 반감을 조장해 폭동을 유발할 수 있는 공산주의 소설'이라 낙인찍고 금서로 지정했어요.
1929년 무렵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다 쓰지 못할 정도로 많은 물건이 생산됐어요. 공장마다 재고가 쌓이면서 기업은 생산량을 줄이고 직원을 해고했어요.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늘어나며 경기가 침체하기 시작됐는데, 미국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퍼졌고 10년가량 지속했어요. 이를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이라 해요.
이 기간 미국에선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어요. 1929년 3% 수준이던 실업률이 1933년 농업 분야를 제외하고 37%까지 높아졌어요. 결국 수많은 사람이 빈곤과 굶주림에 시달리게 됐어요. 그 와중에 부의 양극화가 더욱 심해져 부유한 사람들은 더 부유해졌어요. 소설 내용으로 비유하자면 '고통당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분노가 포도 알갱이처럼 하나둘 생겨나고 자라나게' 됐죠. 당시 부유층은 이 소설을 견딜 수가 없었겠죠. 이들의 강력한 건의로 결국 '분노의 포도'는 금서로 지정됐습니다.
편협한 공산주의 사회 풍자한 '농담'
지난달 소설가 밀란 쿤데라가 94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어요. 1929년 체코에서 태어난 그는 체코슬로바키아가 공산화된 1948년쯤 공산당에 가입했지만, 스탈린에게 반감을 느껴 반대파로 돌아섰어요. 1967년에는 공산주의를 풍자한 첫 소설 '농담'을 발표했어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공산당 쿠데타가 일어난 시기 주인공 루드빅이 연애편지에 잘못 쓴 한 구절 때문에 무려 15년을 유배지에서 보내는 내용이에요. 공산주의 사회의 편협한 시야 속에서 한 청년의 인생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잘 보여주는 소설이죠. 쿤데라는 일련의 활동 때문에 공산당에 입당했다 쫓겨나는 일을 반복했어요.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었는데, 이를 '프라하의 봄'이라 불러요. 1968년 초 알렉산드르 둡체크가 집권하면서 체코슬로바키아에 개혁의 바람이 불었어요. 그는 정치와 경제를 부분적으로 이원화하는 정책을 추진해 시민 자유를 보장하려 했어요. 공산주의 사회가 통제하던 보도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이동 자유 제한을 폐지했어요. 쿤데라는 '프라하의 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는데, 이 경험을 바탕으로 그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썼어요.
그러나 1월 시작된 '프라하의 봄'은 8월 소련이 침공해 개혁을 중단하면서 끝나버렸어요. 체코는 다시 경직된 공산주의 사회로 돌아갔고, 쿤데라의 책은 금서로 지정됐어요. 1989년 벨벳 혁명으로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정부가 무너질 때까지 금서로 남았죠. 1975년 프랑스로 망명해 체코 국적을 박탈당한 쿤데라는 결국 프랑스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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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분노의 포도’ 작가 존 스타인벡.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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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의 포도’ 초판. /브리태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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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0년 개봉한 영화 ‘분노의 포도’ 한 장면. /브리태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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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8년 8월 21일 프라하에서 시위 중인 체코슬로바키아 사람들. /브리태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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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정 장기중 역사 교사 기획·구성=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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