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하구둑과 을숙도를 지나 부산 강서구의 송정공원까지 이어지는 구간으로 낙동강 하구의 독특한 생태환경을 둘러볼 수 있는 구간이다.
낙동강하구둑 전망대와 을숙도대교 전망대를 통해 낙동강 하구의 매력을 조망할 수 있으며, 녹산국가산업단지를 지나 부산신항만의 위용을 확인하며 걸을 수 있는 구간.
청도 새마을 휴게소(부산방면)
휴일이라 그런지 차도 사람도 많았다.
부산 사하구 낙동강 수문.
부산 광역시 사하구.
차로 이동중.
사하구 을숙도.
명지 톨게이트.
명지 을숙대로.
@빵 한 조각의 기적(奇蹟)~♡
독일 뮌헨 외곽의 작은 마을.
겨울이면 하얀 눈이 지붕 위에 소복이 쌓이고, 새벽이면 빵 굽는 냄새가 마을 전체를 감싸는 곳이었습니다.
그 마을에 한스라는 청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한스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어머니는 세탁 일을 하며 아들을 키웠지만 생활은 늘 빠듯했습니다.
어린 한스는 종종 배고픔을 참으며 잠들어야 했습니다.
어느 날 밤, 어머니는 식탁 위에 마지막 빵 한 조각을 올려놓았습니다.
"엄마는 괜찮으니 네가 먹어라."
하지만 한스는 알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도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것을.
그날 밤 그는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내가 어른이 되면 굶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겠다."
세월이 흘러 스무 살이 된 한스는 작은 빵집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새벽 4시면 일어나 반죽을 하고, 오븐에 불을 지피고, 하루 종일 밀가루 먼지를 뒤집어쓰며 일했습니다.
월급은 많지 않았지만 그는 감사했습니다.
적어도 배고프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눈보라가 몰아치던 어느 날.
한스는 가게 문 앞에서 떨고 있는 어린 소녀를 발견했습니다.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였습니다.
얇은 외투는 헤어져 있었고 신발은 다 젖어 있었습니다.
아이는 빵 진열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들어오지는 못했습니다.
한스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무슨 일이니?"
소녀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러나 아이의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습니다.
한스는 따뜻한 빵 두 개와 우유 한 잔을 건넸습니다.
아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돈이 없어요."
"괜찮아."
"정말요?"
"그래. 오늘은 내가 사는 거야."
그 순간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아이는 며칠째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공장에서 해고되었고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막을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날 이후 소녀는 매일 같은 시간에 빵집 앞을 지나갔습니다.
한스는 아무 말 없이 빵을 챙겨주었습니다.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겨울 내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빵집 주인이 그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주인은 화가 난 얼굴로 한스를 불렀습니다.
"너 지금 뭐 하는 거냐?"
한스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죄송합니다."
"가게 빵을 마음대로 가져다주면 어떻게 하냐?"
한스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월급에서 빼십시오."
주인은 잠시 침묵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하냐?"
그 순간 한스의 눈이 붉어졌습니다.
"저도 때 굶어봤습니다."
"......"
"배고픈 아이가 빵을 바라보는 눈빛을 저는 압니다."
주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주인 역시 전쟁 직후 굶주림을 겪으며 자란 사람이었다.
그날 밤 주인은 집에 돌아가 오래전 기억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주인은 한스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오늘부터 그 아이 몫의 빵은 내가 내겠다."
한스는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세월은 빠르게 흘렀습니다.
소녀는 점점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학교도 다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 가족도 조금씩 안정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한스는 여전히 작은 빵집 직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빵집 주인이 심장병으로 쓰러졌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주인은 한스를 불렀습니다.
"한스."
"예."
"내가 평생 장사를 하며 깨달은 것이 있다."
"무엇입니까?"
"빵은 밀가루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한스는 의아했습니다.
주인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으로 만드는 것이다."
며칠 뒤 주인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유언장이 공개된 것입니다.
주인은 평생 운영하던 빵집을 가족이 아닌 한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변호사가 이유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가장 착한 사람에게 가게를 맡긴다."
한스는 한참 동안 울었습니다.
그날 밤 빈 빵집에 혼자 남아 오래도록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합니까?"
그는 결심했습니다.
매일 남는 빵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로. 그리고 가게 한쪽에 작은 상자를 두었습니다.
상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돈이 없으면 그냥 가져가세요."
처음에는 사람들이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실이었습니다.
노숙자도. 실직자도.
배고픈 학생도.
누구나 빵을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소문은 독일 전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신문이 취재를 왔습니다.
방송국도 찾아왔습니다..
사람들은 감동했습니다.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이 빵집에서 빵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선한 마음을 사는 것입니다."
10년 뒤.
작은 빵집은 독일 전역에 수백 개 매장을 가진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한스는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새벽이면 가장 먼저 매장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을 위한 무료 빵 코너를 없애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한 중년 여성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곁에는 어린 딸이 있었습니다. 여인은 한스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를 기억하시나요?"
한스는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여인이 말했습니다.
"눈 내리던 겨울날, 빵 두 개와 우유를 주셨던 아이입니다."
바로 그 소녀였습니다.
그녀 역시 훌륭한 의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습니다.
"그때 그 빵이 없었다면 저는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
"저는 선생님처럼 살고 싶어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무료 진료소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한스의 눈에도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나는 빵 몇 개를 준 것뿐인데..."
여인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닙니다."
"선생님은 빵이 아니라 희망을 주셨습니다."
그날 두 사람은 오래도록 울었습니다.
그리고 한스는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빵 한 조각.따뜻한 말 한마디.작은 친절 하나.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고, 그 인생이 다시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
오늘도 그의 빵집 입구에는 같은 문장이 적혀 있습니다.
"배고픈 사람은 그냥 지나가지 마세요."
그리고 그 문장 아래에는 이런 글이 함께 적혀 있습니다.
"선한 마음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옮겨온 글.
너무나도 많이 달라진 명지 근교 모습이다.
녹산 산업대로.
진해에서 군 생활을 했기에 옛날의 모습을 찾아보려 했지만 흔적이 없다.
세상천지 모두가 다 바뀌었다.
이렇게도 몰라보게 달라졌는데 어찌 정치하는사람들 思考方式은 변함이 없을까?
남파랑길을 역으로 걷다가 갈맷길로 들기도 했다
집사랄 건강이 많이 좋아지긴 했어도 아직은......,
갈맷길은 부산의 매력인 바다와 강, 산과 온천을 모두 담고 있는 경치뿐만 아니라, 걷다보면 부산의 역사와 문화, 축제까지 만나게 되는 기분 좋은 길이다. 부산의 지형에 맞게 크게 해안길, 숲길, 강변길, 도심길로 구분된 총 9개의 코스를 내딛다보면 부산의 속살 구석구석을 만날 수 있다.
노동자 동산.
강서구 송정동.
갈맷길을 따르다 배가 고파 식당을 찾는데 만나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나도 그쪽으로 간다며 자기차로 태워다 주는 호의를 받았다.
이번일도 꼭 누구엔가 갚아줄 생각이다. 이렇게 살기좋은 우리나라 대한민국이다. 정치하는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아 이런 사람들 처럼 좀 베풀줄 알아라!
험 담 ( 險 談 )
※ 한 스님이 젊은과부 집을 자주 드나들자
이를 본 마을 사람들은 좋지 않은 소문을 퍼뜨리며
스님을 비난 하였습니다.
※ 그런데 얼마 후 그 과부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제서야 마을사람들은 스님이 암에 걸린 젊은 과부를 위해
기도하고 돌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 그동안 가장 혹독하게 비난했던 두 여인이
어느 날 스님을 찾아와 사과하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그들에게 보리겨 한 줌씩 나누어주며..
들판에 가서 그것을 바람에 날리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 그리고 얼마 후 보리겨를 날리고 온 여인들에게
스님은 다시 그 보리겨를 주워오라고 하였습니다.
여인들은 바람에 날려 가버린 보리겨를 무슨 수로 줍겠느냐며
울상을 지었습니다.
※ 스님은 여인들의 얼굴을 바라보고 말했습니다.
용서해 주는 것은 문제가 없으나 한번 내뱉은 말은
다시 담지는 못합니다.
※ 험담을 하는 것은 살인보다도 위험한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살인은 한사람만 상하게 하지만
※ 험담은 한꺼번에 세 사람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 첫째는 험담을 하는 자신이요.
* 둘째는 그것을 반대하지 않고 듣고 있는 사람들이며...
* 셋째는 그 험담에 화제가 되고 있는 사람입니다.
※ 남의 험담을 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고 마는
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 식사 후 적극적으로 밥값을 계산 하는 이는 돈이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돈보다 관계를 더 중히 생각하기 때문" 이고,
※ 일할 때 주도적으로 하는 이는 바보스러워서 그런 게 아니라
"책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고,
※ 다툰 후 먼저 사과하는 이는 잘못해서 그러는게 아니라,
⚘️"당신을 아끼기 때문" 입니다.
※ 늘 나를 도와주려는 이는 빚진 게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진정한 친구로 생각하기 때문"이며,
※늘 카톡이나 밴드에서 안부를 보내주는 이는 한가하고 할 일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마음 속에 늘 당신을 두고 있기 때문" 입니다!
💐 잊지 마세요 소중한 인연을 아끼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진정 행복한 "삶"이란 것을...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십시요 ~
공단지역이라 근처 식당이 없어 식당찾아 삼만리 걷는중.
갈맷길따라 뚝방길을 걷기도....,
공단지역이라 그런지 컨테이너도 수없이 많다.
식당 안내에 차로 태워다 주기까지 하는 뜻밖의 호의에 감사함을 전할수없어 나도 누구엔가 갚아줄 생각이다.
송정공원에서 오늘 구간 종주를 마감합니다.
첫댓글 강산님 두분 정말 반가웠습니다.
문자언니 몸도 불편으신데 왕복 9시간 이상 버스이동 하시면서
혹여 몸살 이라고 나지 않으셨는지요?
그리고 종점에서 쉬시겠다고 하시더니 두분 많이 걸으셨네요?
백두대간 정기 효력발생 하시고 계신중인 것 아닐까요?
암튼 환자 보필 하시면서 청마까지 와 주심에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또한 찬조금 (100.000원) 까지 주셨으니 어찌 송구스럽지 않겠습니까?
염치없지만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남파랑길 진행 하는동안 보탬이 되겠습니다.
두분 늘 건강하시길 기원드립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익히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무궁무진한 체력과 끈질긴 인내심은 보고 만날때마다 감동하고 있습니다.
아나운서 뺨칠정도의 멋진 멘트 또한 감동적이라 절로 총무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가난한 살림 꾸려가려니 여러가지로 어려움 많겠습니다만 용기내어 잘 진행되어지길 응원하겠습니다.
남파랑길 완주 성공을 빌면서 글로서 표현 못하는 고마움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언제나 과하지 않게 건강 잘 지키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덕분에 용기 내겠습니다.
할 수 있는날 까지만 이라도 최선을 다 하려 노력중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화이팅 합시다.
우리나라 대단한 나랍니다.
우린 그 국민이구요.
두 분의 환한 얼굴을 뵈니 참 반가웠습니다.
내내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그럭저럭 어쩌다 고생좀 하다보니 진짜 오랜만에 청마를 찾게 되었는데도 다들 반갑게 맞아주셔 정말 감사했습니다.
가능한 자주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