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삼 선생의 “덕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1. 배 선생은 춘추전국시대라는 폭력의 시대에 공자와 맹자는 폭력만이 아니라 덕을 또 하나의 힘으로 인식하였으며, 노장 사상의 신봉자처럼 현실에서 도피하지 않고 인민의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공자는 덕을 비유를 들어 설명하였는데 북극성과 바람의 비유를 통해 덕은 폭력이 아니라 저절로 상대를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배 선생은 또한 비유로 진공청소기와 태풍처럼 자신을 낮추고 비움으로써 주변을 끌어당기는 힘이 생긴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덕은 ‘남의 말을 들어주는 귀와 상대방을 이해해주는 마음씨, 그리고 아픔을 품어주는 배려’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덕의 이야기는 먼 옛날 일만은 아니며 냉혹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도 덕의 힘은 기업경영의 원리로 작동하고 있다고 하며, 탁월한 기업가들은 훌륭한 덕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브라질의 룰라는 정치가가 덕의 힘을 보여주는 예로 들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예술의 세계에서도 덕의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 공자의 말은 한마디로 말하면 어진 군주론입니다. 선비의 임무는 벼슬아치가 되어 군주로 하여금 어진 정치(德治)를 하도록 보필하는 것입니다. 배 선생은 이 글에서 어진 기업가론까지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이런 담론에는 그 배후에 있는 권력관계에 대한 논의는 빠져 있습니다. 인민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군주와 인민의 관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는 것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로 바꿀 것인가에 관심 갖기보다는 덕을 닦은 군주가 인민에게 선정을 베풀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인민은 시혜의 대상일 뿐이죠. 소유권으로 노동자의 생계를 좌지우지하는 기업가와 노동자의 관계를 어떻게 바꾸어낼 것인가 보다 노동자를 가족처럼 챙기는 어진 기업가를 기대해야 할까요? 기업가를 어진 기업가로 만들기 위해 애써야 할까요?
선정(善政), 말은 아름답지만 현실에서는 참으로 실현되기 어려운 일입니다. 역사에서 수없이 보았듯이 춘추전국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민주주의 시대라는 오늘날에도 어진 군주를 쉽게 찾아볼 수 있던가요? 공자가 왜 천하를 주유했겠습니까? 인민의 열망을 받아 대통령이 된 자가 인민을 배반한 역사가 어디 한 둘이던가요? 현실에 드문 사례(그 사례의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를 들어 어진 기업가론을 말하는 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입니다.
개인이 덕을 닦아 이웃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에 대해 아무도 잘못이라고 시비하지 않습니다. 아무런 지배나 종속의 권력관계가 없기 때문이죠. 정말 아름다운 일이죠. 그렇지만 지배와 종속의 권력관계가 배후에 깔려 있는 데 어진 군주론, 어진 기업가론을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어진 기업가를 기대하기 보다는 자본의 권력을 제한하는 것이 우리 삶을 위해 더 현실적으로 보입니다.
폭력이 난무하는 봉건시대에 덕치를 주장하는 것은 진보적입니다. 얼마나 설득력이 있었는지를 떠나서 말입니다. 1%도 안 되는 소유로 여러 기업을 제멋대로 주무르는 자본가, 노조 탈퇴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매타작을 하고 맷값으로 몇 백 만원을 던져주는 자본가들이 있는 세상에서 어진 기업가는 나쁜 기업가의 모습을 더 부각시키는 효과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어진 기업가론은 우리가 지배와 종속의 관계를 끊고 삶의 진정한 주체로 거듭나 자유와 평등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3. 공자의 가문에서는 노장의 제자들은 은둔자로 현실을 도피한 자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제 한 몸을 깨끗이 하고자 하여 문명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라고까지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거 사실일까요? 자연으로 돌아갔다는 말로 현실을 왜곡하는 것은 아닐까요? 역사적 사실은 저도 잘 모르지만 자연으로 돌아갔다는 것이 산속 깊이 외따로 떨어져 홀로 사는 것을 말하는 건가요? 먼저 그 때가 아무리 농업사회라고는 하지만 아무런 교류 없이 홀로 살 수 있었을까 의문입니다. 또한 자연으로 돌아갔다는 것은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을 뿐이지 인민들 속에서 인민들과 더불어 살았다는 뜻은 아닐까요? 공자도 인정하듯이 손님을 접대하고 자식들을 손님에게 소개하는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결코 외따로 홀로 산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들이 인민 속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오로지 벼슬길만이 진흙탕을 뒹구는 정치적 행위라고 말할 순 없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정치계에 나서지 않는 사람은 정치에 무관심하고 “제 한 몸의 이익을 위해 공동체를 어지럽히는 데 일조하고” 있는 건가요?
공자의 가문은 오로지 벼슬길에만 매달렸지 인민들의 생활로 들어가진 않았습니다. 당연히 “팔다리를 놀리지도 않고 콩과 팥을 구분하지도 못하는 자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관심이 군주와 인민의 관계를 변혁하기보다는 군주의 마음을 바꾸어 인민에게 착한 정치를 하도록 하는 것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치계에서 활동하는 것 중요하죠. 그렇지만 일상의 관계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빈껍데기일 수도 있습니다. 집에서는 가부장의 권위와 독단에 짓눌리고 학교에서는 교육청과 교장의 권력에 숨 막히고 회사에서는 기업가의 전횡에 숨죽이는 상황이라면 정치가의 ‘화려한’ 활동은 공염불일 뿐입니다.
첫댓글 글 잘 읽었습니다. 배병삼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미묘하게 불편한 지점들이 있었는데 무소의 뿔 님의 글을 보니 왜 그랬는지 알것 같습니다. 덕은 덕치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결국 다스리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스리는 자들이 정치를 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덕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