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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一神誥(총366字)
제1장 허공(36자)
帝曰爾五加衆아 蒼蒼이 非天이며 玄玄이 非天이라 天은 無形質하며 無端倪하며
제왈이오가중 창창 비천 현현 비천 천 무형질 무단예
無上下四方하고 虛虛空空하야 無不在하며 無不容이니라.
무상하사방 허허공공 무부재 무불용
제 가로되,「너희들 오가의 무리들아. 파아란 것이 하늘이 아니며 까아만 것이라고 하늘인 것은 아니다. 하늘은 얼굴(形)과 바탕(質)이 없으며 첫끝(端)과 맞끝(倪)도 없으며, 위 아래와 사방도 없고 겉은 황하며 속은 텅하여 있지 않은 데가 없으며, 싸지 않은 것이 없나니라.
제2장 일신(51자)
神은 在無上一位하사 有大德大慧大力하사
신 재무상일위 유대덕대혜대력
生天하시며 主無數世界하시고 造兟兟物하시니
생천 주무수세계 조신신물
纖塵無漏하며 昭昭靈靈하야 不敢名量이라
섬진무루 소소영영 불감명량
聲氣願禱하면 絶親見이니 自性求子하라 降在爾腦시니라.
성기원도 절친견 자성구자 강재이뇌
신은 위 없는 첫 자리에 계시사 큰 덕과 큰 슬기와 큰 힘을 가지사 하늘을 내시며, 셈없는 세계를 차지하시고 많고 많은 물건을 만드셨나니 티끌만치도 빠진 것이 없으며, 밝고도 영하여 감히 이름하여 헤아릴 수가 없다. 소리, 김으로 원하여 빌어도 친히 보임을 끊나니 성품으로부터 씨를 찾으라. 너의 머리끝에 내려 계시나니라.
제3장 천궁(40자)
天은 神國이라 有天宮하야 階萬善하며 門萬德하니 一神攸居오
천 신국 유천궁 계만선 문만덕 일신유거
群靈諸哲이 護侍하니 大吉祥大光明處라. 惟性通功完자라야 朝하야 永得快樂이리라.
군령제철 호시 대길상대광명처 . 유성통공완 조 영득쾌락
천은 신국이라, 天宮이 있어서 온갖 착함으로 섬돌을 삼고 온갖 덕으로 문을 삼나니 일신께서 계시는 곳이요, 신장(群靈)과 선관(諸哲)들이 모셨나니 크게 좋으며 크게 빛난 곳이라. 오직 성품을 트고 공적을 이룬 이라야 널리 영원토록 쾌락을 얻을지니라.
제4장 세계(72자)
爾觀森列星辰하라 數無盡하고 大小明暗苦樂이 不同하니라.
이관삼열성신 수무진 대소명암고락 부동
一神이 造群世界하시고 神이 勅日世界使者하사 轄七百世界하시니 爾地自大나 一丸世界니라.
일신 조군세계 신 칙일세계사자 할칠백세계 이지자대 일환세계
中火震盪하야 海幻陸遷하야 乃成見象하니라.
중화진탕 해환육천 내성현상.
神이 呵氣包底하시고 煦日色熱하시니 行翥化游裁物이 繁殖하니라.
신 가기포저 후일색열 행저화유재물 번식
너희들 총총히 벌린 별들을 보라. 셈이 다함이 없고 크고 적음과 밝고 어두움과 괴로움과 즐거움이 서로 같지 않으니라. 일신께서 뭇 세계를 만드시고 또 日世界의 사자를 시켜 700세계를 거느리게 하시니, 너희 땅이 스스로 큰 듯 하나 한 둥그런 세계이니라. 땅속 불이 울리어서 바다가 변하여 육지가 되었고 이에 보이는 모양을 이루었느니라. 일신께서 김(氣)을 불어 싸시고 밑까지 해의 빛과 더움을 쪼이시니, 기고 날고 되고 심는 물건들이 번식하니라.
제5장 인물(167자)
人物이 同受三眞하니 曰性命精이라 人은 全之하고 物은 偏之니라.
인물 동수삼진 왈성명정 인 전지 물 편지
眞性은 無善惡하니 上哲이 通하고 眞命은 無淸濁하니 中哲이 知하고
진성 무선악 상철 통 진명 무청탁 중철 지
眞精은 無厚薄하니 下哲이 保하나니 返眞하야 一神이니라.
진정 무후박 하철 보 반진 일신
惟衆은 迷地에 三妄이 着根하니 曰心氣身이라 心은 依性하야 有善惡하니 善福惡禍하고
유중 미지 삼망 착근 왈심기신 심 의성 유선악 선복악화
氣는 依命하야 有淸濁하니 淸壽濁妖하고 身은 依精하야 有厚薄하니 厚貴薄賤이니라.
기 의명 유청탁 청수탁요 신 의정 유후박 후귀박천.
眞妄이 對作三途하니 曰感息觸이라 轉成十八境하니 感엔 喜懼哀怒貪厭이오
진망 대작삼도 왈감식촉 전성십팔경 감 희구애노탐염
息엔 芬蘭寒熱震濕이오 觸엔 聲色臭味淫抵니라.
식 분란한열진습 촉 성색취미음저
衆은 善惡淸濁厚薄을 相雜하야 從境途任走하야 墮生長消病歿의 苦하고
중 선악청탁후박 상잡 종경도임주 타생장소병몰 고
哲은 止感하며 調息하며 禁觸하야 一意化行하야 返妄卽眞하야 發大神機하나니 性通功完이시니라.
철 지감 조식 금촉 일의화행 반망즉진 발대신기 성통공완
사람과 만물이 한가지로 三眞을 받나니 생각하면 사람들은 땅에서 헤매어 三妄이 뿌리를 내렸고 眞과 妄이 서로 三途를 지었다.
가로되 성품(性)과 목숨(命)과 정기(精)라. 사람은 온전하고 만물은 치우치니라. 참 성품은 착함도 악함도 없으니 상철(上哲)이 통하고, 참 목숨은 맑음도 흐림도 없으니 중철인이 알고, 참 정기는 두터움도 엷음도 없어 하철인이 보전하니, 참으로 돌이키면 일신이 될지니라.
가로되 心과 氣와 身이라. 心이 性에 의지하녀 善惡을 이루나니 善은 福이 되고 惡은 禍가 된다. 氣가 命에 의지하여 淸濁을 이루나니 맑은 것은 오래가고 탁한 것은 쉬 사라진다. 心이 精에 의지하여 두텁고 엷음(厚薄)을 이루니라. 두터움(厚)은 貴하고 엷음(薄)은 賤하다.
가로되 느낌과 숨쉼과 부딪침이라. 굴러 열 여덟 지경을 이루나니 느낌에는 기쁨․두려움․슬픔․성냄․탐함․싫음이요, 숨쉼에는 향내․술내․추위․더위․번개․습기요, 부딪침에는 소리․빛․냄새 맛․음탕․다침이니라. 뭇 사람은 착하고 악함과 맑고 흐림과 두텁고 엷음을 서로 섞어서 가닥길(境途)을 따라 함부로 달아나다가, 낳고 성장하고 늙고 병들어 죽는 괴로움에 떨어지고, 철인은 느낌을 그치며 숨쉼을 고르며 부딪침을 금하여 한 뜻으로 되어가서, 가닥을 돌이켜 참함에 나아가서 큰 고동을 여나니, 성품을 트고 공적을 완수함이 이것이니라.
《神誌秘詞》는 단군 達門 때의 사람 神誌 發理가 지은 것이다. 본래 삼신께 올리는 옛 제사에서 서원의 글이다.
저 上古祭天의 참뜻은 백성을 위하여 복을 기원하고 신을 축복하여 나라를 일으킴에 있다. 지금 호사가는《神誌秘詞》를 가지고 圖讖 星占과 서로 혼돈시키고 數를 추리하여 부연해서 말하기를 그것은《震檀九變圖》라고 하며, 또 어떤 사람은 口訣로 예언하는 것의 본보기라고 하는데 잘못된 말이다.
말하기를「저울대는 扶蘇樑이다」라고 했으니 곧 진한의 옛 서울을 말한다. 역시 곧 단군 조선이 도읍한 곳으로서 아사달이 그곳이니, 즉 지금의 松花江의 하르빈이다. 또「저울의 추는 五德地라 함은 번한의 옛 서울을 말함이니 지금 開平府 동북 70리에 있는 湯池堡가 그곳이다. 또 고려사에 말하기를「저울 그릇은 백아강이라」고 했으니 이는 마한의 옛 도읍지를 말하며 지금의 大洞江이다. 곧 마한의 熊伯多가 하늘을 마한산에서 제사했다 함은 곧 이것이다. 삼가 삼한의 지세로써 여러 가지 衡石에 비유해 보면 부소량은 나라의 저울대와 같고, 오덕지는 나라의 추와 같고, 백아강은 나라의 저울그릇과 같으니, 세 가지 가운데 하나를 빼면 저울은 물건을 달 수 없고 나라는 백성을 보존치 못하리니, 三神古祭의 서원은 다만 삼한의 관경에 있는 백성을 기쁘게 하는데 뜻이 있다. 《신지비사》의 전하는 바도 역시 이에 벗어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즉 나라를 위하여 뜻을 하나로 하고 아울러 충성과 옳음을 함께 장려하고, 제사하여 신을 기쁘게 하여 복이 내리기를 빈다면, 신은 반드시 가득히 내리고 복은 반드시 나라를 행하게 할 것이다. 진실로써 행한다면 일을 함에 있어서, 실행하여 이루지 못하였다고 추궁할 수가 없을 것이니 이것이 바로 추궁함과 이루는 것이라, 어느 것을 공이라 할 것인가?
우리 나라의 문자는 옛부터 있었나니 지금 南海縣 浪河理의 암벽에 神市의 옛 조각이 있다. 夫餘 사람 王文이 쓴 바의 法類符擬篆과 자부선생의 內文과 태자 부루의 五行은 모두 환단시대에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殷學(갑골문자)과 한문은 아마도 왕문의 유범일진저!
《유기》에「神劃 일찍이 태백산의 푸른 바위의 벽에 있었거늘」이라는 글이 있다. 그 모양은 ㄱ과 같으니 세상에서는 신지선인이 전한 것이라고 말한다. 혹자는 말하기를「이를 글자를 만든 것의 시작」이라고 한다. 곧 그 획은 直一과 曲二라 하는 모양이다. 그 뜻은 管制의 모양도 있다. 그 형과 소리는 계획된 바가 없지 않은 듯하니 생각컨대 그럴듯하게 여겨진다. 고로 神人의 덕애로써 사람 세상을 고르게 하니 이에 참된 가르침이 행해지고 결국 세상의 일이 모두 바로 된다. 현능한 사람은 벼슬에 있고 老幼는 공개적으로 봉양 양육하며 장년은 義에 복종한다. 많은 사람이 감화되니 간사한 자는 소송을 그치고 창칼은 음모의 문을 닫는다. 이것 역시 理化의 한 길이다.
《대변설》의 주에 말하기를「남해현 낭하리의 계곡의 바위 위에 신시의 古刻이 있다. 그 글에, “한웅이 사냥 나왔다가 제를 삼신께 드리다”라고 있다」고 했다. 또 가로되「大始에 옛것을 전함에 있어 다만 전해오는 이야기만 의지한지 오래이다. 나중에 형상을 그림으로 그렸고 또다시 그림이 변하여 문자가 되었다. 대저 문자의 근원은 나라의 풍습에 믿음을 존중하는 것에서 나오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하나의 氣로부터 셋으로 갈려진 氣는 곧 極이다. 極은 즉 無다. 저 하늘의 근원은 곧 三極을 꿰뚫어 虛가 되고 빈 것이다. 안과 밖도 역시 그런 것이다. 하늘의 宮을 곧 빛이 모이는 곳, 만가지 변화가 나오는 곳이라 한다. 하늘의 一神은 능히 그 虛를 體로 할 뿐 아니라 곧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고로 말한다. 一氣는 즉 天이며 곧 빈 것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中一의 신이 있어 능히 三이 된다. 三神은 곧天一ㆍ地一ㆍ太一의 신이다. 一氣는 그가 스스로 능히 동작하여 이루고(造), 가르치고(敎), 다스리는(治) 三化의 신이 된다. 神은 氣이고 기는 곧 虛이며, 허는 즉 一이다. 때문에 땅에는 三韓이 있으니 眞ㆍ弁ㆍ馬의 三京의 韓이다. 한은 곧 皇이며 황은 大이다. 대는 곧 一이다. 고로 사람에 三眞이 있다. 性ㆍ命ㆍ精의 三受의 眞이라 한다. 眞은 즉 衷이고, 충은 곧 業이고, 업은 곧 續이며, 속은 즉 一이다. 그리하여 일에서 시작하여 일에 끝난다는 것은 돌아서 眞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곧 一은 즉 三이라고 하는 것은 善에 大合하는 것이다. 미립의 작은 알갱이를 쌓아서 一로 되돌아오는 美이다. 곧 性의 善이라 하는 것이고 곧 命의 淸이라 하는 것이며, 곧 精의 厚라고 하는 이유다. 다시금 또 무엇이 있어서 있다고 하고 없다고 하는 것일까? 眞은 이를 <물들지 않음>이라 한다. 이 물듦을 妄이라 하고 善을 不息이라 한다. 그 息을 惡이라 하고 淸을 不散이라 한다. 散을 濁이라 한다. 厚를 不縮이라 한다. 縮을 薄이라 한다. 하나를 잡아 삼을 머금은<執一含三> 이유는 곧 그 氣를 하나로 하며 그 神을 셋으로 하기 때문이라, 셋을 모아 하나로 돌아간다<會三歸一> 하는 이유는 역시 神을 셋으로 하고 氣를 하나로 하기 때문이다. 저 삶을 사는 자의 體는 一氣이다. 일기란 안에 삼신이 있고 智의 근원도 역시 삼신에 있다. 삼신은 밖으로 일기를 포함한다. 그것은 밖에 있는 것은 일이고 그 내용도 일이며 그 통제도 일이다. 역시 모두 포함되어 있을 뿐 놓을 수 없다. 그것이 글자가 이루어진 근원이 된다. 會를 포함하고 잡고 돌아온다는 뜻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
神市엔 算木이 있었고 蚩尤에게 鬪佃目이 있었으며 부여엔 書算이 있었다. 그 算木이라 하는 것은 一二三ㆍ l ㆍllll- X이다. 또 전목은이다. 단군 가륵 제2년 三郞 乙普勒이 정음 38자를 찬하고 이를 加臨多라고 했다 한다. 그 글을 보면 이렇다.
《李太白全書》의 玉塵叢談에는「발해국에 글이 있는 바 당나라에서는 아무도 이를 해득하는 자가 없었다. 이태백은 능히 이를 풀어 이에 대답했다」하고 있다.《삼국사기》엔 「헌강왕 12년의 봄 北鎭으로부터 狄國人이 진에 들어와 나무 조각을 나무에 걸어 놓고 갔음을 상주하고는 마침내 그 나무에 쓰여진 15자를 취하여 바쳤는데 <寶露國과 黑水國의 사람이 함께 新羅國과 화통하고자 왔노라>고 써져 있다」고 했다. 또 고려의 광종 때 張儒는 接伴使로서 저명한 사람이다. 처음 난을 피해 吳越에 이르렀다. 越氏에 호사가가 있었으니 東國寒松亭의 곡을 거문고 바닥에 새기고 이를 파도에 띄워 보냈다. 월나라 사람들은 그 글을 풀지 못하더니 때마침 장유를 만나 절하고 그 글의 뜻을 물으니, 장유는 즉석에서 한시로써 이를 풀었다.
달빛 소나무에 하얀 밤.
파도까지 잠든 境浦의 가을
애처로이 울며 오가는
한 마리 바다 갈매기여!
아마 거문고 바닥에 각문한 글은 옛 가림다 종류의 글이었을 것이다.
원동중의 <삼성기>의 주에「倭ㆍ辰ㆍ餘國은 혹은 橫書하고 혹은 結繩하고 혹은 楔木한다」고 있다. 오로지 고려만이 穎法을 모사했으니, 생각컨대 한단의 상고시대엔 반드시 문자의 模刻이 있었을 것이다. 최치원은 일찍이 신지의 옛비석에 새겨진 천부경을 얻어 다시 또 첩을 만들고 이로써 세상에 전했으니 낭하리의 조각은 바로 모두 그 실체의 자취이다. 세상엔 전하기를「신시에는 鹿書가 있고 紫府에겐 雨書가 있고 蚩尤에게는 花書가 있어, 鬪佃文 등은 즉 그 남은 흔적이다. 伏羲에겐 龍書가 있었고 단군에겐 神篆이 있었으니 이들 글자들은 널리 백산ㆍ흑수ㆍ청구ㆍ구려에 쓰여졌다」고 했다. 夫餘 사람 王文은 처음 篆文을 번거롭다 여기고 좀 그 획을 없애고 새로 符隸를 만들어 사용했다. 진나라 때 程邈은 肅愼에 사신으로 왔다가 왕문의 隸法을 漢水에서 얻었고, 또 그 획을 계승하여 조금 바꾼 형으로 고쳤다. 그것이 지금의 八分이다. 진나라 때 王次仲은 또 楷書를 만들었는데 그는 王文의 먼 후예이다. 지금 글자의 근원으로 삼는 것을 탐구해 보면 모두 神市에서 전해진 법이며 지금의 한자도 그 지류를 계승한 것이 명백하다.
《삼일신고》의 구본에는 分章이 없고 행촌선생이 처음으로 장을 나누어서 1장에 허공, 2장에 일신, 3장에 천궁, 4장에 세계, 5장에 인물이라 했다. 저 허공을 하늘의 질량이라 하고, 일신을 하늘의 主宰라 하고, 천궁을 하늘의 조화를 갖춘 곳이라 하고, 세계를 만세라 하였다. 인물은 곧 市이다. 인물은 우주의 삼계의 元勳이다. 대저 太白眞敎는 天符에 근원하여 地轉에 합치고 또 사람의 일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 있어서 정사를 일으킴에 있어 和白보다 앞섬이 없고, 덕을 다스림에 있어 責禍보다 선한 것이 없다. 在世理化의 도는 모두 천부에 준하여 거짓이 없고, 지전을 취하여 게으름이 없고, 인정에 합쳐서 어긋나지 않는다면, 천하의 공론이 어찌하여 한 사람인들 아니라 할 자 있으리요? 神誥의 五大 旨訣도 역시 천부에 바탕을 둔 것이다. 신고도 역시 천부 가운데 하나의 이상에 다름 아닌 것이다. 처음으로 字의 근원이 오래됨을 알았다. 글자의 의미는 크고도 크도다.
세상에 전하는 바 牧隱 李穡 休崖 (范世東)은 모두《천부경》을 주해했다고 하는데 그렇지만 지금은 볼 수 없다. 지금의 풍속은 한자(一字)라 할지라도 程朱에 합치지 않으면 뭇 화살의 집중적인 비난을 받을 정도로 儒家의 예봉은 바야흐로 번득거린다. 저 天經과 神誥의 가르침을 전하고자 하여도 어찌 쉽사리 논할 수가 있으리요?
신시의 음악을 貢壽라 하거나 供授라 하기도 하고 또 頭列이라고도 한다. 무리를 둘러서서 줄지어 합창으로써 삼신으로 하여금 크게 기쁘시게 하고, 나라가 번영하고 민심이 윤택해 질 것을 빌었다.《白虎通疏義》에서는 朝離라 했고《通典樂志》에서는 侏離라 하였고《삼국사기》는 兜率이라 했다. 대저 즐겁고 건강하기를 신에게 기원하고 순리를 따라 족함을 안다는 뜻이 있음을 안다는 뜻이 있음이라. 단군 부루 때 於阿의 樂이 있었으니, 대저 신시의 옛 풍습으로, 삼신을 맞는 노래였을 것이다. 즉 가로대, 大祖神을 삼신이라 부르고 하늘의 주재자라고 하였다. 고로 태양으로써 儀象을 삼고, 광열로써 功能으로 삼고, 生化發展으로써 마음을 삼고, 禍福報應으로써 正義로 삼는다. 이때부터 풍속은 參佺으로 戒를 가졌다, 예복에도 법칙이 있었으니 의관한 자는 반드시 활과 화살을 차고, 잘 쏘는 자는 반드시 높은 자리를 얻었다. 마음을 착하게 가짐을 수업의 근본으로 삼고, 과녁을 가상의 악귀의 우두머리로 삼았다. 제사는 반드시 조심하여 근본에 보답함을 알게 하고. 한마음으로 뭉쳐서 스스로 여러 목숨 가진 것들을 가까이하여 교화하였다. 안으로는 닦고 겉으론 겸손하여 모든 것이 때에 알맞아 배달국의 영광은 백백천천년이 되게 쌓여서 높아질 것이니, 이 커다란 은덕을 어찌 한 순간인들 잊을 수 있을 손가?
옛날에는 제천에 舞天의 樂이 있었다.《遼史》예지에 말하는 바의 繞天과 같은 것은 이것을 말한다. 이 제사는 반드시 먼져 생을 상징시켜 평상시 살아있을 때처럼 정성을 드리려고 한다. 신주를 세우고 상을 차리고 공물을 올리는 것은 곧 친견을 표하려 하는 의식이다. 멀리 지나간 일을 되새겨서 근본에 보답함은 곧 금생을 거듭하여 뒤에까지 계속하여 보전코자 하는 가르침이다.
《대변경》에서 말한다. 단군 구물은 국호를 바꿔 대부여라 하고 수도를 장당경으로 바꾸었다. 지금의 開原이며 역시 평양(한반도의 평앙이 아님)이라고도 한다. 삼조선의 칭호는 단군 색불루에게서 시작된다. 그렇더라도 아직 완전하지 못하더니 이에 이르러 갖추었다. 삼한이란 분조관경의 뜻이 있으니, 삼조선이란 分權管境의 제도가 있다는 말이다. 먼저 큰 가르침은 매우 복잡하였으니 사람들이 능히 행하지 못하였고 연나라의 침입이래 전화가 여러 차례 있어 왔다. 해를 거듭하여도 일은 잘 풀리지 않으니 治化를 잃고 국력은 날로 약해져 갔다. 어느날 단제께서는 꿈에 천제의 가르침을 얻고 다스림을 크게 바꾸고자 하여, 천제묘의 마당에 큰 나무를 세우고 북을 매달도록 하였다. 3ㆍ7일을 기한으로 연령순으로 서로 술을 마시면서 서로 권하여 덕화를 이루자는 내용을 책으로 만들었다. 이 모임을 九誓之會라 하였고, 그 때 서로 맹세한 내용을 ‘九誓之文’이라 하였습니다.
한 번 절한 뒤에 무리에게 말한다.
「모름지기 집에서 효도를 다하라. 집에 부모 처자가 있으니 정성스런 마음으로 공경하고 헤아려 우애있게 하고, 성심으로 제사를 받들어 한 뿌리 근본에 보답할 것이며, 손님을 공손히 접대하여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고, 자제를 가르침에 게으름이 없도록 하여 영재를 기르니, 이 모두가 인륜교화의 큰 덕목이라. 이 같은 효와 자비와 순종과 예<孝慈順禮>를 어찌 닦지 않겠는가?」
하니, 무리 소리내어 가로대,「옳습니다. 거부하는 자 그를 쫓으리다.」라고 하였다.
두 번째 절하고 서약하여 말한다.
「모름지기 형제 사이에는 우애 있도록 힘쓰라. 형제란 한 부모에서 나뉜 바이니, 형이 좋아하는 바는 아우도 좋아하고 아우가 싫어하는 것은 형도 좋아하지 않는다. 사물을 대하여 좋고 싫음은 나와 남이 같을 것이니, 나의 몸에서 사물에까지, 가까운 것에서 소원한 것에까지 미쳐야 하느니라. 이 같은 도리로서 향리와 나라를 헤아리면 향리와 나라가 흥할 것이며, 천하에 미치면 천하가 교화될 것이라. 이 같은 우애와 친목과 어짐과 헤아림<友睦仁恕>을 어찌 닦지 않겠는가?」
하니, 무리 소리내어 가로대,「옳습니다. 거부하는 자 그를 쫓으리다.」라고 하였다.
세 번째 절하고 서약하였다.
「모름지기 스승과 벗에는 믿음을 다하라. 스승과 벗은 도와 법이 서는 곳이니, 덕과 의를 서로 연마하고 과실은 서로 경계하여 학문을 세우라. 사업의 성취는 모두 스승과 벗의 힘이로다. 이 같은 믿음과 진실과 성실과 근면함<信實誠勤>을 어찌 닦지 않겠는가?」
하니, 무리 소리내어 가로대,「옳습니다. 거부하는 자 그를 쫓으리다.」라고 하였다.
네 번째 절하여 맹세한다.
「모름지기 나라에는 충성을 다하라. 나라는 선왕이 세우신 바요 백성들이 먹고사는 곳이라. 국정을 쇄신하고 나라의 부를 늘리고 국토를 수호하고 국권을 널리 펼쳐 국세를 굳세게 하고 역사를 빛냄은 모든 나라의 미래상이라. 이같은 충성과 의로움과 기개와 절개<忠義氣節>를 어찌 닦지 않겠는가?」
하니, 무리 소리내어 가로대,「옳습니다. 거부하는 자 그를 쫓으리다.」라고 하였다.
다섯 번째 절하며 맹세하기를,
「모름지기 뭇 사람들에게 겸손을 다하라. 뭇 사람들은 곧 천제의 백성으로 나와 똑 같이 세 가지 참됨<三眞>을 받았으니 주체상의 근본이요 국력의 원천이라. 위가 겸손치 않으면 아래가 떠나고, 우측이 겸손치 않으면 좌측이 벗어나고, 앞이 겸손치 않으면 뒤가 물러가고, 아래가 겸손치 않으면 위가 싫어하고, 좌측이 겸손치 않으면 우측이 떨어지고, 뒤가 겸손치 않으면 앞이 소원해지리라. 이제 겸손하고 양보하고 서로 존중하여 무리를 모아 힘을 통하면, 밖으로는 업신여김이 그칠 것이요 안으로는 다스림을 이루어질 것이로다. 이 같은 겸손과 양보와 공경과 삼가함<遜讓恭謹>을 어찌 닦지 않겠는가?」
하니, 무리 소리내어 가로대,「옳습니다. 거부하는 자 그를 쫓으리다.」라고 하였다.
여섯 번째 절하며 맹세하기를,
「모름지기 정사는 밝게 알도록 힘쓰라. 정사란 다스림과 혼란에 관계되는 바이니, 風伯은 약속을 세우고, 雨師는 정치를 베풀고, 雲師는 형벌을 행하고, 각기 직권이 있으니 서로 침범하여 넘어서지 않는도다. 이제 식견이 고매해지고 言路를 널리 채택하고 기예를 연마하고 경험을 두루 쌓아 가면, 나라 일은 고르게 될 것이요, 백성의 살림살이는 펴질 것이로다. 이 같은 밝음과 앎과 결단과 식견 <明知達見>을 어찌 닦지 않겠는가?」
하니, 무리 소리내어 가로대,「옳습니다. 거부하는 자 그를 쫓으리다.」라고 하였다.
일곱 번째 절하여 맹세하여 말하길,
「모름지기 싸움터에서는 용맹하도록 하라. 싸움터란 나라의 존망이 결정나는 곳이니, 나라가 없다면 임금과 아비가 깍은 나무 인형이 될 것이고, 주인이 서지 않는다면 처자는 몰락하여 노예가 되리라. 일에 응하고 사물에 접함이 모두 나의 길이 아님이 없고, 세상에 가르침을 전함이 또한 나의 일이 아님이 없도다. 나라 없이 살고 주인 없이 존재함이 정녕 나라있어 죽고 주인 있어 삶을 마치는 것과 같겠는가. 이제 나를 비우고 희생하는 풍조가 확연하고, 규제와 정숙함으로 무리가 스스로 잘 다스려지고, 상과 벌이 반드시 바르고 공평하게 행해지고, 나와 남이 또한 신의로서 서로 도우니, 뭇 사람들을 양육하고 능히 많은 사람을 복되게 하리라. 이 같은 용기와 담력과 위엄과 의협<勇膽武俠>을 어찌 닦지 않겠는가?」
하니, 무리 소리내어 가로대,「옳습니다. 거부하는 자 그를 쫓으리다.」라고 하였다.
여덟 번째 절하며 맹세하여,
「모름지기 몸가짐이 청렴하기를 힘쓰라. 행동이 청렴하지 않으면 양심이 저절로 어두워지고 능히 청렴하면 신명이 저절로 통하리니, 치우쳐 사사로운 이익을 쫓으면 반드시 습한 병을 앓을 것이고 독선적으로 교만해지면 반드시 부패할 것이다. 어리석게도 스스로 만족하니 자신과 남을 해치고 인습이 돌아 쌓이면 그 곳에 빠져 구제받지 못하리라. 이 같은 청렴과 곧음과 고결함과 맑음<廉直潔淸>을 어찌 닦지 않겠는가?」
하니, 무리 소리내어 가로대,「옳습니다. 거부하는 자 그를 쫓으리다.」라고 하였다.
아홉 번째 절하며 맹세하여 말하길,
「모름지기 맡은 일에는 의로움을 다하라. 사람이 맡은 바 일을 하여 일을 성취하는 데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하나라도 의롭지 못함이 있다면 순식간에 극진함을 잃게 되어 업신여김을 당하고 헐뜯겨 무너질 것이고, 만약 정의롭다면 공신력을 얻으리니 누가 업신여기고 헐뜯고 침탈하겠는가. 의로움이란 무리의 힘이 일어나는 바이고 바른 기운이 나오는 바탕이니, 거두면 한 몸에 갈무리 될 것이고 펼치면 천지에 그득할 것이라. 이 같은 바름과 의로움과 공평함과 도리<정의공리>를 어찌 닦지 않겠는가?」
하니, 무리 소리내어 가로대,「옳습니다. 거부하는 자 그를 쫓으리다.」라고 하였다.
이때부터 풍속은 순박하고 도타운 것을 숭상하고, 의로운 싸움에 용감하고, 공동의 이익에 힘쓰며, 공동의 일에는 민첩하며, 公德에는 밝았다. 선업은 권하고 과실은 바로잡고 스스로 예의 있고 자애로운 풍속을 이루어 같이 삼신께 돌아와 의지하여 교화되었다.
《단군세기》에서 말한다.
「엄지손가락을 교차시키고 바른손을 올린 뒤에 삼륙대례를 행한다. 엄지손가락을 교차시킴은 바른 엄지는 子를 나타내고, 왼 엄지는 亥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른손을 더함은 태극의 형상을 만드는 것이다. 옛날에는 꿇어앉기에 앞서 반드시 먼저 揖을 한 후 꿇어앉았으니 바로 보통의 예의이다. 揖은 이를 가리켜 聚라 한다. 마음을 모아 하늘을 생각한다. 꿇어앉음은 順이다. 氣를 順하게 하고 무릎을 합쳐서 땅에 감사하는 것이다. 俳는 獻이다. 몸을 바치고 머리를 땅에 대며 선조에 보답하는 것이다. 獻은 또 現이라고도 한다. 머리가 손에 닿는 것을 배수라 하고 머리가 땅에 이르름을 叩頭라 한다. 叩頭는 곧 이마가 땅에 닿도록 머리를 굽혀 절하는 것이다.
《참전계경》이 세상에 전해진 것은 을파소 선생이 전한 것이라 한다. 선생은 일찍이 白雲山에 들어가 하늘에 기도하고 天書를 얻으니 이를《참전계경》이라 했다.「大始에 哲人은 위에 계시사 인간의 360여 事를 주재하시었다. 그 강령에 8條가 있나니 성誠ㆍ信ㆍ愛ㆍ濟ㆍ禍ㆍ福ㆍ報ㆍ應이라 한다. 誠은 衷心이 발하는 것으로서 眞實에서 나오는 精誠을 관장하는 곳이라, 6體 47用이 있고, 信은 천리의 天理之必合으로서 인사의 필성(人事之必成)이라, 5團 35部가 있다. 愛는 자심의 慈心之自然으로 인성의 본질(仁性之本)이다. 6梵 43圍가 있다. 濟는 덕의 겸선(德之兼善)으로서 도가 잘 미치는 것(道之賴及有)이라, 4規 32模가 있다. 禍는 악이 부르는 것(惡之所召有)이다. 6條 42目이 있다. 福은 선의 여경(善之餘慶有)이다. 6門 45戶가 있다. 報는 天神이 하는 것으로 악인에 보하는데 있어서는 화로써 하고(惡人以禍報) 선인에 보하는 데 있어서는 복으로 한다(善人以福有). 6階와 30及이 있다. 應이란 악은 악보를 받고(惡受惡報) 선은 선보를 받음이라(善受善報有). 6果 39形이 있다. 고로 하늘은 비록 말은 없으나 陟降하여 두루 보호한다. 나를 아는 자 이를 열심히 찾아서 열매를 맺으리니, 하나같이 온전함에 이르고 모든 서람이 戒를 받음이라.」
을파소가 덧붙여서 말했다.
「神市理化의 세상은 8훈으로써 經을 삼고 5사를 緯로 삼아 교화가 크게 행해져 弘益濟物하였으니, 參佺이 이뤄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지금의 사람들은 이 佺戒에 의해 더욱 더 스스로에 힘쓸지면, 백성들을 잘살게 하는 일이 어찌 어려운 일로 될까보냐?」
사실 이 부분 때문에 환단고기가 완전한 위작이 아니라고 주장됩니다.
혼자, 또는 몇 명의 사람으로 지을 수 있는 수준의 글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환단고기의 원본이 되는 진짜 진서의 행방이 궁금한 것이죠.
환단고기는 분명 위작입니다. 사서가 아닙니다.
그러나 환단고기를 짓기 위한 원본이 된 책은 분명 있었을 겁니다.
그것을 찾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