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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상징하는 인장(印章)의 명칭은 새(璽), 보(寶), 어보(御寶), 어새(御璽), 옥새(玉璽), 국새(國璽)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어져 왔다. 여기서 새(璽), 보(寶)는 나라의 인장(印章)의 뜻을 지니고 있으며, 어보(御寶), 어새(御璽)는 시호, 존호 등을 새긴 왕실의 인장을 뜻하는 말이다. 옥새(玉璽)는 재질이 옥으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현대적 의미에서 국가를 상징하는 인장의 이름으로는 국새(國璽)라고 표기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국새는 국사(國事)에 사용되는 관인으로서 나라의 중요문서에 국가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그러므로 국새는 국가 권위를 상징하며, 그 나라의 시대성과 국력, 문화를 반영하는 상징물이다.
국권의 상징인 국새가 가진 불가침의 권위와 신성성은 다소 퇴색하였으나, 오늘날에도 국새의 상징적 의미는 그대로 존재한다. 정부에서는 헌법개정공포문의 전문, 대통령이 임용하는 국가공무원의 임명장, 외교문서, 훈장증 등 국가 중요문서에 지금도 국새를 사용하고 있다.
국새는 동양(한국, 일본 등)에서는 인장의 형태로, 서양(미국, 영국, 프랑스 등)에서는 압인의 형태로 주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 사용처는 우리나라의 경우와 유사하다.
우리나라 관인사(官印史)에 관한 유물이나 기록 등 대부분의 자료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이후의 것들이다. 따라서 그 이전의 역사를 바로 고증해 체계적인 관인사(官印史)를 세우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남아 있는 몇몇 문헌들의 기록들을 통해 볼 때 우리나라의 관인(官印)의 용도는 치민(治民)의 장(長)이 전신(傳信)의 표시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옛날 환웅(桓雄)이 아버지 환인(桓因)으로부터 받아가지고 왔다는 천부3인(天符三印 : 風伯, 雨師, 雲師)이 우리나라 역사상 나타난 최초의 국새라는 주장이 있고, 증보문헌비고 예고새인조(禮考璽印條)에 부여(夫餘) 예왕(濊王)이 예왕지인(濊王之印)을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국새의 사용 역사는 수천 년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국권의 상징으로 국가적 문서에 사용되는 국새는 고려·조선시대에는 국인(國印), 새보(璽寶)·대보(大寶)라 하여 왕의 인장이 국새로 간주되었다. 이것은 국왕의 권위와 정통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대교린(事大交隣)의 외교문서와 왕명으로 행해지는 국내문서에 사용되었고, 왕위 계승시에는 전국(傳國)의 징표로 전수되었으며, 왕의 각종 행차시 그 위의(威儀)를 과시하기 위하여 행렬의 앞에서 봉송되기도 하였다.
국새는 시대와 용도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가 있었으나 외교문서(특히 대중국 관계)에 사용되는 국인(國印, 大寶로 통칭)과 국내용 보인(寶印)으로 대별된다.
1894년 갑오경장 이전까지의 국인(國印)은 대부분 중국 역대왕조의 황제들에 의해 사여(賜與)되어 들어왔고, 기타의 보인(寶印)들은 국내에서 제작되어 사용되었다.
부여에서는 일찍부터 예왕지인(濊王之印)이라는 국인(國印)을 사용하였고, 삼국시대에는 분명한 기록이 없으나, 중국과의 외교관계 문서에 국인을 사용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시대에는 1172년(명종2년) 금나라에서 금인을 보낸 것을 비롯, 요·원·명나라 등에서도 여러 차례 고려왕의 인장을 만들어 보내왔다. 1370년(공민왕 19년) 명나라 태조가 공민왕에게 보낸 금인(金印)에는 ‘고려국왕지인(高麗國王之印)’이란 인문(印文)이 있었다.
1392년에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고려 국새를 명나라에 반납하고, 새 국새를 내려주도록 여러 차례 청하였으나 실현되지 않다가 1403년(태종3년)에 성조(聖祖)에 의해 비로소 ‘조선국왕지인(朝鮮國王之印)’의 국인(國印)이 수여되었다. 이를 대보(大寶)라 하여 1636년(인조14년)까지 대중국 외교문서에만 사용하였다.
이 밖에도 국내에서는 여러 가지 보인(寶印)들이 제작, 사용되었는데, 교서·교지 등에 찍는 ‘시명지보(施命之寶)’, 유서(諭書)에 찍는 ‘유서지보(諭書之寶)’, 과거시험의 문서에 찍는 ‘과거지보(科擧之寶)’, 교린문서, 특히 대일본관계에 찍는 ‘소신지보(昭信之寶)’등이 있었고, 소신지보는 조선 후기에 ‘이덕보(以德寶)’로 고쳤다.
1636년 병자호란 이후에는 청나라에서 만들어준 국인(國印)을 공식 대보(大寶)로 사용하였으나, 숙종 때 명나라에서 준 옛 국인의 인문(印文)을 찾아 별도의 것을 모조하여 비장해 두고 왕위계승 의식 때만 사용하게 하였다.
이 밖에도 조선 후기에는 여러 가지 특수 목적의 보인(寶印)들이 사용되었는데, 서적을 반포·하사할 때 쓰는 ‘선사지기(宣賜之記)’, 서책의 발간에 사용하는 ‘동문지보(同文之寶)’, 왕이 지은 글에 찍는 ‘규장지보(奎章之寶)’, 각신(閣臣 : 규장각의 벼슬아치)의 교지에 쓰는 ‘준철지보(濬哲之寶)’, ‘명덕지보(明德之寶)’, ‘광운지보(廣運之寶)’등이 있었다. 이러한 인장들은 모두 도승지의 책임하에 상서원 등에서 제작·보관·관리하였다.
1894년 갑오경장 후에는 중국과의 사대관계를 종식하여 이전의 대보(大寶)를 폐지하고, 1881년~1882년경에 제작한 ‘대조선국보(大朝鮮國寶)’와 ‘대조선대군주지보(大朝鮮大君主之寶)’등을 사용하였다.
1897년에 대한제국이 수립되면서 국새로 ‘대한국새(大韓國璽)’, ‘황제지새(皇帝之璽)’, ‘황제지보(皇帝之寶)’, ‘칙명지보(勅命之寶)’, ‘제고지보(制誥之寶)’, ‘시명지보(施明之寶)’, ‘대원수보(大元帥寶)’, ‘원수지보(元帥之寶)’등을 제작, 사용하였다.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듬해인 1949년 5월 새로운 국새가 마련되었는데, 사방 두치(약 6㎝)의 정방형 인면(印面)에 한자 전서(篆書)로 대한민국지새(大韓民國之璽)라 전각하였다.
1963년 1월에는 국새규정을 고쳐, 사방 7㎝의 정방형 인면(印面)에 한글 전서체로 「대한민국」 넉자를 가로로 새겨 사용하였다.
1999년 2월 1일부터는 민족의 자존과 문화적 자긍심을 회복하자는 취지로 국새규정을 전면 개정하여 사방 10.1㎝의 정방형 인면에 훈민정음체로 “대한민국” 넉자를 가로로 새겨 사용하였다. 또한, 현재의 국새(제4대)는 새로운 국새 관련 사항을 반영하여 국새규정을 개정, 2008년 2월 22일부터 사용하고 있다.
국가의 인장(印章) 제조에 대한 통제기록으로는 고려 18대 의종(毅宗)(1146~1170)때 “인부랑(印符郞)” 이란 인부(印符)를 두었다는 기록과 조선시대 초기에 상서사(尙瑞司)가 설치되어 새보(璽寶)·부패(符牌)·절월(節鉞)을 전담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에는 총무처에서 관장하여 왔으며, 정부조직개편으로 98년 2월 28일부터는 행정자치부 의정국 의정과(현, 행정안전부 의정관실 의정담당관실)에서 국새와 함께 대통령직인, 국무총리직인을 관리하고 있다.
註 : 부패(符牌)는 마패(馬牌), 순패(巡牌) 따위의 총칭이며, 절월(節鉞)은 지방의 관찰사, 유수, 병사, 수사, 대장, 통제사 등이 부임할 때 임금이 내어 주던 절(節)과 부월(斧鉞)로서, 절(節)은 수기(手旗)와 같고 부월(斧鉞)은 도끼같이 만든 것으로 생살권(生殺權)을 상징함.
국새는 예로부터 국가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그 나라의 사회적 배경·요구·사상에 바탕을 두고 제작되었다. 따라서 국새는 그 나라의 시대성과 국력, 문화를 반영한 상징물이다.
그러나 정부수립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제작하여 1999년 2월 1일부터 사용해 온 제3대 국새가 감사원 감사과정에서 균열이 확인되어 국새를 계속 사용하기는 곤란하다고 판단되어 선진국과 기술강국으로 도약하는 우리나라의 위상에 걸맞도록 국새를 새로 제작하기로 하였다.
정부는 민족의 자긍심을 회복하고 민족문화유산으로 영구히 남을 수 있는 예술성 있는 작품이 될 수 있도록 철저한 고증과 역사적 고찰을 거침은 물론 제작 과정에 공정별·단계별로 감리 절차를 도입하여 국가상징으로 손색이 없는 완벽한 제품을 제작하기로 하였다.
인뉴(印紐, 손잡이)
국새의 형상
새로 제작된 제4대 국새의 인뉴(印紐, 손잡이)에는 봉황이 다섯 발가락을 움켜쥐고 고개를 15도 가량 숙여 구름 위에 내려앉는 순간을 담아냈으며, 또한 곧 비상할 채비를 하는 듯 진취적 기상을 담았다.
국새의 의미
봉황의 벼슬은 관(官)을 상징하는데 엄숙한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서 그 길이를 길게 했다.
주둥이는 일반적으로 참새 주둥이를 사용했으나 독수리와 다른 큰 새의 중간단계로 표현했다.
눈은 이전에 표현된 봉황의 눈에 비해 크게 만들어 광안을 만들었으며 턱 밑의 벼슬은 운문대신 당초문을 사용해 결집되는 효과를 보이게 했다. 이로써 봉황을 볼 때 근엄함 속에 풍요를 느낄 수 있게 했다.
이런 세세한 표현 외에 봉황이 정면으로 보는 형태 역시 의미를 갖고 있는데 우리나라 전통 무예인 태권도의 기마자세를 모티브로 하고 있으며 봉황은 자신의 가슴털을 잡고 있다.
이는 강한 국력과 국가의 힘을 응축, 미래를 준비함 등의 의미를 갖고 있다. 또한 율감(중간기단)에 봉황을 얹음으로서 존경을 받는 자세를 표현하였다.
인영(印影)
서체의 특징
인문(印文)은 “대한민국”을 훈민정음체로 각인하였으며, 글씨는 정지된 상태이지만 움직이는 느낌을 주었다. 인획의 기운찬 생동함이 국운 융성을 잘 나타냈다.
인영에 담긴 뜻
정사각형의 인면은 바른 정치와 공직사회의 굳건한 기강을 의미하며, 여백을 시원스럽게 하여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정신을 표현하였다.
국새 저고리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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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 | 한상수(자수) | 중요무형문화재 80호 자수장 |
구혜자(침선) | 중요무형문화재 89호 침선장 | |
용 도 |
국새를 싸는 보자기 |
매듭인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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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 | 김희진 | 중요무형문화재 22호 매듭장 |
용 도 |
국새에 다는 다회(多繪)끈 |
다회(多繪)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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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 | 심영미 | 한국매듭연합회장 |
용 도 | 국새 다회끈(좌) - 국새저고리보를 묶는 끈 |
내함 다회끈(우) - 내함 겹보자기를 묶는 끈 |
내함겹보자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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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 | 유희순 | 대한민국 자수명장 |
용 도 | 국새 내함을 싸는 겹으로 된 보자기 |
인상(印床)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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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 | 최정목(백골) | 전통 상 공예가 |
손대현(칠) | 서울시무형문화재 14호 칠장 | |
용 도 | 국새를 올려 놓는 상 |
소배안상(小排案床)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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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 | 최정목(백골) | 전통 상 공예가 |
손대현(칠) | 서울시무형문화재 14호 칠장 | |
용 도 | 인궤를 올려 놓는 상 |
배안상(排案床)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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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 | 이강연(백골) | 전통 가마 공예가 |
손대현(칠) | 서울시무형문화재 14호 칠장 | |
용 도 | 국새를 찍을때 사용하는 상 |
요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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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 | 이강연(백골) | 전통 가마 공예가 |
손대현(칠) | 서울시무형문화재 14호 칠장 | |
용 도 | 각 상의 받침 |
인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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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 | 소병진(백골) | 대한민국 소목명장 |
박성규(과피) | 대한민국 칠피명장 | |
박문열(장석, 자물쇠) | 중요무형문화재 64호 두석장 | |
홍종진(배접) | 충북무형문화재 7호 배첩장 | |
엄익평(옥 조각) | 서울시무형문화재 37호 옥장 | |
용 도 | 인궤 내함을 넣는 함 (국새 외함) |
인궤내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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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 | 양현승(제작 및 의장) | 전통 두석기능 전승장 |
홍종진(배접) | 충북무형문화재 7호 배첩장 | |
용 도 | 국새를 보관하는 함(국새 내함) |
호갑(護匣)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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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 | 설석철(백골) | 중요무형문화재 55호 소목장 |
박성규(과피) | 대한민국 칠피명장 | |
양현승(장석) | 전통 두석기능 전승장 | |
홍종진(배접) | 충북무형문화재 7호 배첩장 | |
민홍규(덮개 뉴조각) | 국새제작단장 | |
용 도 | 인궤를 넣는 함(국새 이동시 사용) |
석(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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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 | 김혜자미(종이 배접) | 전통한지 공예가 |
유희순(자수) | 대한민국 자수명장 | |
용 도 | 국새를 놓는 받침 |
자물쇠가죽주머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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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 | 심영미(다회끈) | 한국매답연합회장 |
유희순(가죽주머니, 자수) | 대한민국 자수명장 | |
용 도 | 자물쇠를 보관하는 주머니 |
배안상 복권(覆巾)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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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 | 구혜자(침선) | 중요문형문화재 89호 침선장 |
심영미(술) | 한국매듭연합회장 | |
김덕환(금박) | 중요무형문화재 119호 금박장 | |
용 도 | 배안상 위에 까는 천 |
인상 복건(覆巾)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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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 | 구혜자(침선) | 중요무형문화재 89호 침선장 |
한상수(자수) | 중요무형무화재 80호 자수장 | |
심영미(술) | 한국매듭연합회장 | |
용 도 | 인상 위에 까는 천 |
국새함장(國璽函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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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 | 박명배(백골) | 대한민국 소목 명장 |
정수화(칠) | 중요무형문화재 113호 칠장 | |
박문열(장석, 자물쇠) | 중요무형문화재 64호 두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