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 요약 4.
- 소현세자 / 강학회 / 이승훈의 영세 / 을사추조적발사건 (1644-1785년)
1) 소현세자 (1644년)
- 1637년 정월 조선의 인조는 청 태종 앞에 무릎을 꿇고 절하며, 조공을 약속한다.
이때 소현세자와 봉림대군과 삼학사 등이 볼모로 끌려간다.
1644년 명나라가 멸망하여, 청나라가 수도를 북경으로 천도하는데...
당시 북경에는 천주교 선교사역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때 소현세자는 독일인 예수회 신부 아담샬과 깊은 친교를 갖는다.
1645년 소현세자가 본국으로 귀환하게 되었는데...
신앙이 돈독한 환관과 궁녀들이 함께 조선에 오게 되었으나,
소현세자는 귀국한지 70일 만에 학질에 걸려 3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2) 강학회 (1777년)
- 남인계열 소장 지식인 계층인 권철신, 정약전, 이 벽 등이 주축이 되어
서학 교리서(천주교 교리서)를 읽고 연구하면서...
새롭고 바람직한 사회 건설과 윤리체계의 방법으로 서학 교리를 받아들여...
기록된 대로 실천해 보기 시작했다.
1777년 겨울 서울의 동쪽 양주군 근처에서 강학회를 열고,
교리서에 규정되어 있는 대로 주일을 지키고 아침 저녁으로 기도하며,
계율 지키기를 실천하기 시작했다.
3) 이승훈의 영세 (1783년)
- 1783년 이승훈의 아버지 이동욱이 서장관으로 북경에 가게 되었는데,
서학을 연구하던 이들이 이승훈을 이들 일행에 함께 보내,
신앙을 제대로 알아오도록 임무를 부여한다.
이승훈은 신부들과 교제하며 교리강습을 받고,
1784년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하여,
그라몽 신부로부터 영세를 받아, 한국인 최초의 수세자가 된다.
4) 명동 김범우의 집에서 예배 시작 (1785년)
- 이승훈이 천주교 서적 등을 가져와 이 벽에게 주고,
이 벽은 이승훈에게 신앙을 배운 후, 이승훈에게 영세를 받는다.
(당시는 신부가 아니면 영세를 줄 수 없는 것을 몰랐다.)
이 벽은 새 진리를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서...
경기도 양근에 사는 권철신과 그 아우 권일신을 전도하여 신자로 만들고,
이어서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삼형제를 전도하여 신자로 만들었다.
그 후 그들은 1785년 봄 부터 서울 명동에 살던 역관 김범우의 집에 모여
예배도 드리고 교리 강습도 한다.
5) 을사추조적발사건 (1785년)
- 서울 명동 김범우의 집에서 모이기 시작한 천주교 모임은
그 횟수가 늘어나면서 집회 인원도 수십명으로 증가 했다.
1785년(정조9년) 봄에 형리들이 그 집 앞을 지나다가
투전을 하는가 하여 들어가 조사 하게 되고,
서적과 화상 등을 발견하여, 모두 형조로 압송하는데...
당시 형조판서는 이 일을 크게 확대하지 않고 대부분 훈방하여 방면하고,
배교를 끝내 거절한 김범우는 충청도 단양으로 유배를 보냈다.
그는 그곳에서 계속 공공연히 자기 종교를 신봉하고,
용기와 인내로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 신앙을 가르쳤다.
그러나 고문의 후유증으로 일년 후에 세상을 떠나 한국의 첫번째 순교자가 되었다.
(그가 살던 집 근처에 오늘날의 명동성당이 있다.) 이 사건을 을사추조적발사건이라 한다.
- 김용범 목사 - (김인수의 '한국기독교회의 역사'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