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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5월 29 (토) 맑음
사랑하는 아들아! 어젯 일로 우울했던 하루였는데, 저녁 7시경, 집배원으로부터 네가 착용했던 사제 옷을 소포로 받고 너무너무 반가왔다. 너를 만나 보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받는이의 주소를 볼펜으로 몇 번씩이나 진하게 표시한 너의 마음씨를 잘 읽을 수가 있었단다. 재치와 요령있게도 병원용 봉투를 뜯어서 급하게 안부를 써 보낸 너의 정성에 정말로 고맙게 생각한다. 편지 쓸 시간적 여유가 만만치 않았을텐데도 재치있게 써서 피복 갈피속에 넣어 보낸 걸 보면 상황을 알 수가 있었다. 불현듯 아빠의 옛날 생각이 나더구나. 엄마 아빠가 번갈아 가면서 몇 번씩이나 읽고 또 읽고 했단다. 역시 엄마는 또 훌쩍훌쩍 눈물을 흘리더라. 사랑하는 아들아. 부모 자식의 관계란 이런 것이란다. 이런 아빠 엄마의 마음을 잘 알고 건강하게 힘내서 훈련을 무사히 잘 받아라. 이 세상에서 가장 너를 사랑한단다.
편지 내용으로 보아서는 아직 힘들지 않았다고 했고, 내일 28일 신교대로 가서부터는 힘들거라고 했더구나. 본격적으로 받는 교육 훈련이겠지. 힘들어도 잘 견뎌야 한다. 힘이 들 수록, 식구들 생각도 나고, 여자 친구 생각도 간절하겠지만, 찰나찰나 그런 생각을 끊어 버리고 오직 투철한 군인정신으로만 임해야 한다. 마음이 약해지면 절대로 안된다. 멀리, 높이 바라보면서 큰희망을 갖고 이를 악물고 극복해야 한다. 아빠는 너를 사랑하고 철석같이 믿는다. 그리고 친구 창민에게 썼던 내용은 가위로 잘 절취해서 네가 알려준 주소로 "빠른우편"으로 보냈다. 서울에서 친구의 입영을 환송하기 위해 먼곳까지 동행해 준데 대하여 너무 고맙기에 몇 자 적어서 동봉을 했다. 걱정하지 말고 지금은 아무 탈없이 훈련에만 열중해야 할 때다. 멀지않아 서로 다시 만나 회포를 풀 때가 있지 않겠느냐?
보내온 소포를 식구들과 풀어보면서 T-셔츠 속을 유심히 관찰해 보았다. 혹시, 아토피가 성해서 피라도 묻지 않았을까 염려가 돼서 말이다. 그런데 다행이도 특별한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기에 조금은 안심을 했단다. 양말과 팬티는 없더구나. 포장해서 보낸 그대로 잘 받았다.
식사는 잘 하느냐? 무조건 잘 먹어야 한다. 뛰고 딩굴고 포복하고 나면 먹어도 먹어도 피교육생은 배가 고프더라. 그런 가운데 참고 견디는 것을 몸에 익히게 되더구나. 부디부디 몸성히 훈련에 임하기를 두손 모아 기도한다. 언제 쯤 편지를 받아 보게 될지... 우표를 보내주는 건 잊지 않겠다. 취침 20분 전이구나. 아빠의 경험으로는, 정신적 무장을 강화시키기 위해 취침 중에도 비상을 걸어 기상시켜 단체기합을 주는 경우도 있고 그렇단다. 민첩하게 기꺼이 잘 해야 한다.
아빠, 엄마는 이렇게 기도한다.
十方世界에 두루하신 諸佛菩薩님께 합장하여 기원합니다. 제21사단 신병교육대에서 6주 동안 교육훈련을 받고 있는 아들에게 항상 부처님의 가호가 함께하시어, 동거동락하는 동료 신병들에게도 모두모두 건강하게 소정의 교육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내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상호간의 참다운 전우애로서 군복무를 훌륭히 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고 나아가서는 사회와 국가에 이바지할 수 있는 동량이 되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 바라밀. 99. 5. 29. 22:00 -소포를 받던 날에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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