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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그때 그사람들(장소).안보이는데서 이루는 자들 스크랩 ‘선이골 5남매 엄마’김용희씨 숨져
ANGEL 추천 0 조회 110 07.05.15 22:5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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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화천군 상서면 노동리 선이골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살며 그 사연을 ‘선이골 외딴집 일곱 식구 이야기’라는 책으로 풀어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던 김용희(45)씨가 숨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숨진 김씨는 5남매를 출산하면서 9년 이상 앓아온 산후통이 최근 악화돼 지난 9일 저녁 선이골 자택에서 갑자기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최관지 상서면장은 “약사인 김씨가 그동안 자연요법으 로 동네사람들을 많이 치료해주는 등 동네사람들과 사이가 매우 좋았었다”며 “동네사람들이 모두 김씨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슬퍼하면서 함께 장례를 치렀다”고 말했다.

김씨는 11일 선이골 외딴집 위쪽 50m 지점에 묻혔다. 숨진 김씨는 대학을 나와 약국을 운영하다가 대학강사 출신인 남편 김명식(61·오른쪽)씨와 지난 98년 서울을 떠나 전기도 전화도 없는 화천군 산골짜기 외딴집에 정착해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김씨 부부는 마을에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곳에 살면서 차도 경운기도 없이 9세인 막내부터 16세인 큰아이에 이르기까지 5남매 모두 ‘제도권’학교에 보내지 않고 자연의 학교인 ‘하늘맞이 학교’를 열어 직접 가르치는 등 자연과 어우러지는 생활을 택했고 이 사연이 지난 2004년 KBS TV에 영상 다큐멘터리 ‘선이골, 다섯 아이를 품다’로 소개되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어 숨진 김씨가 가족과 살아온 그간의 이야기를 4계절로 나눠 엮어 ‘선이골 외딴집 일곱 식구 이야기’라는 책으로 펴내면서 주위사람들에게 문명을 떠난 소박한 생활을 다시 한번 생각케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2006/1/13/문화일보>

 

[문학예술]‘선이골 외딴집 일곱 식구 이야기’

◇선이골 외딴집 일곱 식구 이야기/김용희 지음 임종진 찍음/283쪽 샨티 1만1000원

 

‘1998년 4월 18일, 우리는 서울을 떠났다! 큰 도시 서울의 삶에서 나왔다! 이제 우리 가족은 언제나, 어디서나, 무슨 일에서나 함께 있을 수 있고 또 함께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떠남

저자 김용희씨(44)는 5남매의 어머니다. 쌍둥이처럼 닮은 선목(15), 주목(12), 일목(11), 화목(10) 네 아들과 이제 여덟 살이 된 막내딸 원목을 가졌을 때까지 그는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10년간 약국을 운영한 약사였다. 친정아버지는 밥을 굶더라도 정직한 약사가 되라 했고, 대학강사인 남편 김명식씨도 양심적인 지식인이 되고자 했지만 그러려면 “도시에서 아이를 다섯씩이나 낳아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조제실과 기저귀빨래가 널린 살림집을 종종걸음하며 매일 지쳐가던 어느 날. 제주 출신의 부부는 강원 화천군 선이골로 삶터를 옮겼다. 아이들은 부부가 가르치기로 했다. 그로부터 7년째. 가족은 제 먹을 쌀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됐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밥상에는 감자, 앉은뱅이강낭콩, 옥수수, 밤호박, 갖은 산나물들로 넉넉하다.

●하늘평화학교

‘비나 눈이 와서 들일을 할 수 없을 때 우리 가족은 편지를 쓴다. 전화와 컴퓨터가 없는 선이골. 이곳에서 우리의 유일한 통신수단은 편지다.’

마을로부터 걸어서 1시간 거리인 선이골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5남매에게는 인터넷은 물론 전화조차 낯설다. 보고 싶은 사람, 기억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아이는 편지를 써야 하고 일기를 남겨야 한다. 아이들은 말과 글을 이렇게 깨쳐 간다.

5남매의 학교 이름은 하늘평화학교. 교과목의 첫째는 그림그리기다. 아이들의 그림을 보며 부모는 손가락 힘을 가늠하고 글자 공부시킬 시기를 정한다. 아이들의 관심과 관찰력도 살핀다. 둘째는 수학공부. 글자공부보다 먼저 수를 익힘으로써 추상과 상징의 부호인 글자의 세계로 이끌려는 생각이다. 겨레말·글공부, 자연으로부터 배우기, 농사짓기, 역사공부, 편지쓰기…. 바느질도 빠질 수 없는 교과목이다. 마음이 산란할 때 부모와 아이들은 바느질거리 앞에 앉는다.

●스승들

한 달에 3번꼴, 선이골 식구들이 찾는 화천 3·8 5일장은 가족들의 또 다른 학교다. 톱 가는 아저씨, 옷가게 아주머니, “아이들이 많아서 반찬도 많이 필요할 거야”라며 늘 인심을 얹어주는 광준씨네 야채가게, “자연생활을 아무나 하는 게 아냐. 철학이 있어야지” 한 말씀을 빼놓지 않는 멋쟁이 과자장수 아저씨, 다리쉼을 하는 민하네 과일가게…. 각양각색의 물건, 각양각색의 사건과 이야기가 있는 5일장에서 일곱 식구는 ‘사고파는 행위’만 남은 거래가 아니라 사람과 물건,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를 배운다.

‘신세진다는 생각, 도움 받은 만큼 내 쪽에서도 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도시 사람의 강박임을 화천의 새로운 스승들은 깨우쳐 준다.

 

●남편을 다시 만나다

선이골에 뿌리내리기까지 저자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아이들 교육도, 선이골 개간도, 농사짓기도 아니었다.

“하루 24시간, 저 ‘웬수’인 남편과 같이 있어야 하고 어쨌거나 한밥상에서 밥을 먹어야 했다. 오로지 남편만이 힘들었다.”

도시에서 동지인 줄 알았던 두 사람은 진저리쳐지는 원수가 됐다. 서로가 변해야 했다. 남편은 가끔 도시로 하루 이틀 혼자 나들이를 떠났다. 남편이 없을 때 느낀 것은 해방감이 아니라 뼈가 스르르 녹는 무서움과 허망이었다. 밥상 앞에서 아이들에게 하던 말이 고스란히 아내에게 돌아왔다.

“어떤 귀한 음식도, 잘 차려진 맛난 음식도 혼자 먹어봐. 맛이 있을까. 가장 맛있는 음식이 어떤 음식일까? 사랑하는 사람, 보고 싶은 사람, 그리운 사람과 같이 먹는 거야.”

남편과 아내는 선이골에서 서로를 다시 만났다.

●젖니를 뽑다

선이골에 들어와 가족들은 제 몸 안에 있던 자연의 시간을 찾아냈다. 달력이 알려주지 않아도 봄은 2월 초에 시작되고 여름은 5월 초, 가을은 8월 초, 겨울은 11월 초에 시작되는 것을 산천의 변화와 몸을 통해 알게 됐다. 도시 아이들은 치과에 가야만 뽑을 수 있는 줄 아는 이를 혼자 뺀 뒤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아들처럼, 일곱 식구는 결코 오만하지 않게 존재의 귀함을 알아간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도 때가 되면 걷고, 아무런 애를 쓰지 않아도 때가 되면 젖니가 빠져 튼튼한 영구치가 나오고, 다만 밥 먹고 똥 싸고 잠잘 뿐인데 점점 키가 자라고 힘이 세지고 어른이 되고…이 놀랍고 기적 같은 일이 우리 몸 안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날마다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가.’

 

선이골 다섯 아이를 품다 그후(2004년 설말 특집 프로그램)

외딴 산골, 전기도 없고 전화도 없는 5남매의 '자연 학교' 강원도 화천. 군사분계선 가까이의 외진 골짜기에 외딴 집이 있다. 전기도 없고 전화도 없고, 학교도 다니지 않는 다섯 아이의 집이다. 서울 살림을 접고 인적없는 외진 선이골로 들어온 지 7년-. 어머니 김용희씨는 서울에서 약사였고, 아버지 김명식씨는 대학 강사였다.

 

부부는 줄줄이 다섯 아이를 낳자, 자연 속에서 아이들을 기르자며 선이골로 들어왔고 무럭 무럭 자라나는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놀라운 능력을 발견해갔다.

7살 딸아이 원목이에서부터 화목이, 일목이, 주목이, 선목이(14살)까지 다섯 아이들은 곤충을 잡아도 곤충 몸에 깨알보다 작게 붙어 사는 진드기부터 잡아줄만큼 자연을 사랑한다. 밀렵꾼들의 덫에 걸린 새끼 노루를 살리기 위해 애쓰고, 죽은 오리를 땅에 묻으며 생명을 배워간다.

오남매에겐 밭에 나가면 밭이 학교가 되고, 숲에 가면 숲이 학교다. 마당의 솥단지 속엔 하늘소에서부터 도마뱀, 토끼가 자라고 연도감을 새로 고칠 정도로 아이들의 관찰 능력도 뛰어나다.

이른 아침 자연의 소리는 선이골만의 독특한 교과서, '서징교육'의 장이다. 단군 이래 조선시대까지 널리 쓰였던 서징교육은 모든 생명이 자신을 드러내는 '소리'속에 삶의 지침이 될 징조가 들어 있다는 철학이자 과학의 원리로, 자연에 마음을 열어 자연과 하나가 되는 훈련이다.

- 7개의 다랑이논, 7개의 실험

오남매의 가족은 작은 선이골 골짜기에서 자급자족한다. 논은 일곱 개의 손바닥만한 다랑이논으로 이루어져 있어 각 자가 한 해 동안 책임지고 일군다. 7살난 원목이 역시 작고 보드라운 손으로 자신의 논을 일구며 흙의 생명력을 배워간다.

이들은 사라진 밭벼나 돼지감자, 배추등 사라진 토종 씨앗을 구해 농약은 물론 비료도 주지 않은 채 키우고 농사를 짓거나 땔감과 부엽토를 만드는 모든 일을 오남매가 함께 한다. 7개의 논과 밭들은 첨단 도시의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세상의 기본 원리가 들어 있는 교과서다.

그러면서도 늘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아이들은 이라크전쟁을 일으킨 미국에 대해 토론하고, 찬송가와 불경과 천부경을 노래하며 자신들만의 독특한 '아침맞이' 행사를 한다.

- 자연의 아이들, 그 1년간의 기록과 실험

처음 김명식씨네 부부는 교육과 문명으로부터 동떨어진 생활에 불안해 했다. 아이들의 미래를 어떻게 책임질 거라며 주변 사람들의 비난도 빗발쳤다. 그러나 그들의 불안감을 씻어준 것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따라갈 수 없으란큼 자연과 하나가 되어갔고, 어른들에 앞서 자연을 헤쳐가는 능력을 보여줬다.

"아이들의 꿈이 실현되는 장소가 바로 자연임을 깨닫는다. 아이들에게 특별한 숙제를 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지금 엄청난 숙제를 풀어가고 있다. 자연은 인간이 살아가야 하는 본래성을 가르쳐 준다."

- 아버지 김명식씨-

이제 그들은 자신있게 말한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경쟁력이 인터넷을 잘 다루는 것이라면 이 아이들은 몇 시간만에 인터넷을 배울 수 있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라면 단 몇 년만에 최고 대학을 갈 수 있다고. 그러나 이들이 생각하는 미래의 경쟁력은 다르다.

지난 1년간 많은 의문점을 가지고 문명 밖의 세상에 사는 다섯 아이를 기록해 온 제작팀은 아주 서서히 깨달아갔다.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나는가, 아이들의 힘과 자연의 힘은 무엇인가..

'세계 어떤 철학자도 다 깨치지 못한 자연의 원리 깨쳐가는 이 아이들이야말로 어떤 사교육으로도 채워줄 수 없는 진정한 경쟁력을 가진 아이들이다. 세상이 말하는 경쟁력이란 이미 이들에겐 경쟁력이 아니다. 이들의 삶은 오늘 우리들이 삶과 교육, 행복과 성공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 이 아이들 역시 도시 속에서 자랐다면

학원 순례와 시험 점수에 찌들어 자신들의 잠재 능력을 잃어갔을 것이다.그러나 자연은 아이들의 감수성과 잠재 능력을 개발해 각자가 더욱 개성있는 아이들로 키워가고 있다.

- 자연스럽게 놓아두는 삶-.

이들에겐 문명 속의 사람들이 갖기 힘든 그들만의 행복과 질서가 있다. 이들은 문명이 채울 수 없는 빈 자리를 자연의 힘으로 채워가고 있다. 경쟁과 속도에 지친 오늘의 사람들이 눈여겨 보아야 할, 놀랍고도 행복한 실험이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은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어떤 모습일까? 제작진은 선이골 가족을 통해 그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강원도 작은 산골에서 작은 혁명이 일어난다. 전기는 없지만 자연의 빛 속에서 다섯 아이들이 자연과 더불어 자란다. 자연 속에서 모든 필요한 삶의 요소들을 얻는 아이들이 그들의 동반자인 자연을 얘기한다.

6년 전,서울 생활을 접고 5남매와 함께 전기도 없는 강원도 화천 깊은산골에서 생활하고 있는 김명식 김용희 부부와 다섯아이들의 모습을 10개월간의 촬영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운 공존을 그려보고자 한다.<방송: 2004년 1월 22일 7:30 - 8:25 pm>

 



강원도 화천군 선이골 외딴 집 한 채. 전깃불도 우체부도 들어오지 않는 그곳에서 농사짓고, 나물 캐고, 책 읽고, 동식물과 어우러져 살아온 7년. 전기 대신 촛불을, 전화 대신 편지를, 학교 대신 자연을 택하면서 더 행복해진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이들 가족이 자발적 가난을 택해 서울을 떠난 것은 1998년. 대학 강사였던 남편 김명식씨와 약사였던 부인 김용희씨는 직업을 버리고 선이골로 들어와 한 번도 지어본 적 없는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버릴 것 다 버리고 떠나고 나니 이들에게는 새로운 것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온 식구가 아침을 함께 먹을 수 있는 여유, 달빛과 별빛뿐인 어둠이 주는 깊은 휴식, 소음없는 고요... 이메일도 전화도 없는 저자와 연락을 주고 받기 위해 출판사에서는 우편과 직접 방문을 통해야 했다고. 3년여의 시간 동안 느릿느릿하게 만들어진 소박하고 아름다운 책.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며 우리에게 고하는 노을빛 인사, 이제 그만 저녁 들기를 하라고 산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춤과 솔새들의 지저귐, 서서히 내리는 어둠과 이슬, 하나둘 나타나서 반짝이며 인사하는 별들, 감청색 하늘에 드러나는 산등성이의 선, 따뜻한 방, 어둠 중에 빛나는 촛불, 하늘의 품에 안겨 꾸는 꿈... 이런 것들은 전기가 없음으로 해서 누릴 수 있는 축복이다. 전깃불이 없기 때문에 천연 그대로 흘러가는 것에 우리의 삶을 맡겨야 하고, 맡김으로 해서 받게 되는 축복인 것이다.



김용희 - 1961년 제주도 서귀포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약학과를 졸업했다. 현재는 남편과 다섯 아이들과 함께 강원도 화천군 선이골 외딴집에서 농사 지으며 살고 있다.

임종진 - 월간 「말」을 포함한 여러 매체에서 사진 기자로 일했으며, 2006년 현재 「한겨레」 사진부 기자로 일하고 있다.


    

책을 내면서


편지를 쓰며
아침맞이 노래
선이골에 온 까닭은
때와 철을 알아가며
선이골의 밤
먹는 것과 사는 것
아버지를 생각함
한 알의 쌀을 만나다

여름
오일장 사람들
까치독사의 가르침
옥수수 두 개면 족하다
손님을 맞으며
나들이의 참맛
가장 아름다운 옷
풀과의 전쟁

가을
소포를 풀며
산짐승들과 화해하다
막내딸 원목이
선이골에서 접한 9·11
남편을 '다시' 만나다
만추의 아침을 줍다
첫 수확, 그 황홀한 경험

겨울
옛 이야기 맛있는 겨울 밤
"어머니! 저 이 뺐어요"
열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외딴 집
땔감을 준비하며
봉순이에게서 배우다
성탄절 선물
콩나물처럼 자라는 아이들
선이골 다섯 아이의 학교



'돌아가신 선이골 5남매 엄마의 착각'

문명을 거부하고 철저히 자연인으로 돌아가 전기도 전화도 없는 강원도 선이골에 살았던 김용희씨의 죽음을 보니... 안타까움을 넘어서 참 씁쓸한 생각이 든다. 이제 그의 나이 45세라니...

몇해 전이던가... 티비 프로그램 인간극장에서 그녀와 가족들의 삶을 방영했는데 정말로 도시인들이 늘 동경하는 생활이었다.

온갖 야생 나물에 현미밥, 맑은 공기에 전기와 전화도 없는... 조용하고 고즈넉한 산골짜기의 삶은 공해와 소음에 찌들어 빠듯하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도시인들의 감탄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허나, 그들의 선택은 극단적이었다.

환갑이 넘어 수염이 하얗게 변한 남편과 8세부터 17세까지의 어린 다섯 자식을 대책없이 남긴 것은 제쳐두고 정작 그 자신이 여성의 평균수명 80세의 시대에 절반 밖에 살지 못했으니 그가 그토록 부르짖던 '자연의 힘'은 당최 공감할 수가 없다.

45세는 중세 평균수명 아니던가... 그의 이상향에서 오래도록 장수하며 행복했다면 만원이 넘는다는 그이의 책을 한권쯤 사볼 수도 있었을텐데...

그녀는 산골에 들어간지 7년만에 숨졌고 학교도 안다닌 다섯 자식들과 늙은 남편만 남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가 제 때에 병원만 갔더라도 그래서 현대문명의 강점인 의료혜택을 충실히 받았더라면 아직 한창 나이인 45세에 죽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도시문명 자체를 거부함으로써 그 안에 들어있는 눈부신 장점들도 함께 밀어낸 바 이런 어리석은 선택이 또 있을까. 양약을 철저히 거부하고 자연요법으로만 치료한다던가...

어이없게도 그녀는 현대의학을 공부한 '약사'였고 남편 또한 한 때 대학강단에 섰던 지식인이었다니... 아는 게 병인 수준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대체의학과 자연요법같은 같은 것들은 현대의학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으며 상호보완적 관계라는 건 초등생도 안다.

도시의 삶이 맘에 안든다고 모두 산골로 갈 수는 없다. 도시에서 자연친화적인 삶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하고 산골에서도 도시같은 문명의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문명을 아예 거부하고 석기시대의 삶을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아직 남아있는 아마존 원주민들을 찾아볼 일이다.

완전 자연 그자체로, 날 밝으면 사냥해서 오직 생존할 뿐인 그들... 인간과 짐승의 차이가 뭐란 말인가. 간단한 질병에도 속절없이 죽어나자빠지는 삶에다가 인간으로서의 가치실현은 꿈도 못꾸는 원시적 삶이 정말 행복하고 완벽한 삶일까?

나는 솔직히 산골에 산다고 인간이 순박하게 순수할 것이란 기대조차 없다. 거슬러 올라가 태초에 낙원 옆에 살던 카인은 동생 아벨을 죽였다. 인간의 선함은 자연속에서 산다고 무조건 길러지는 게 아니란 거다. 오히려 무지와 무식이 죄 짓게 만들 수도 있다.

선이골의 부모야 충분히 배웠고 도시에서 살아봤으니 그렇다치고 그들의 꿈을 위해 자식들을 희생한 점은 분명 잘못됐다. 자식은 낳아서 한양으로 보낸다고 그들은 교육받을 권리가 있고 더불어 사는 사회속에서 꿈을 키울 권리 또한 있는 것인데...

물론 매일 농사지으며 짬짬이 애들을 '집에서' 교육시켰다고는 하나 애들이 평생 산골에서 살 것도 아닌 이상 그들은 무학력의, 세상 물정 모르는 벌거숭이에 다름 아닌 것이다. 도시에 산다면 '방학' 때 시골로 보내 자연을 체험하게 해도 충분할 것을...

농사는 아주 힘든 일이다. 척박한 산골에 들어가 흔하디 흔한 농기계 하나 없이 몸으로 때워가며 농사를 짓는다는 게 그게 어디 마음 편하면 그만인 일인가 5남매나 다산한 그녀가 갑자기 중노동을 해댔으니 몸이 안망가질 수 있겠나.

그녀의 죽음은 정말 애석한 일이지만 그녀가 중용과 조화를 알고, 진정한 행복이란 환경이 아니라 마음안에 있다는 것을 진즉 깨달았다면 남은 다섯 자식들이 이토록 불쌍하지는 않았을텐데... 정말 씁쓸할 뿐이다. <다음 아고라에 올라온 글 中에서...>

 

위의 글에 수긍한 하지만 결코 동의하고 싶진 않다. 幸, 不幸의 잣대를 인간에게 주어진 천수(天壽)를 채웠다거나 부와 명예를 이루었다고 해서 가늠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속의 보편적인 잣대로 함부로 예단해서는 고인을 오히려 욕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故人이 된 김용희氏가 살아 생전에 품었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이다. 그리고 그 가족들이 김용희씨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공감하고 같이 했느냐일 것이다. 단지 육체적인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았다고 해서 섣불리 세속적인 잣대로 그들을 불행하다고 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아마존의 밀림 속에서 짐승들과 뒤섞여 오직 생존만을 위해 살아간다면 정말 그들은 불행한 삶인 것인가? 그들에게 물어 보았는가? 그들 스스로 불행한 삶을 살고 있노라고... 세속의 욕심을 앞세워 생각한다면 가진 것 없이 수도생활에 전념하는 신부나 스님 같은 분은 모두가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물질적인 가치는 욕심이 내재되어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식 또한 마찬가지이다. 학교를 다니고 글을 깨우치고 못깨우치고가 뭐가 그리 대수인가. 모든 것들이 세속적인 잣대로 보니 그러한 것일 뿐, 세속을 등지고 모든 욕망을 달관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 

 

설사 故人께서 허망한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하더라도 俗人들의 잣대로 감히 불행한 삶 云云해서는 안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저 세상에서는 진정한 삶의 자유와 평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無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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