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길연수
옷을 최고의 예술로 생각하는 신세대 패션 디자이너 길연수. 그는 고졸의 학력이지만 천부적인 재능으로 94년 한국패션대전과 중앙 디자인 콘테스트에서 금상과 은상을 수상했고 95년엔 '아시아 패션대회 95'에서 대상을 타며 패션계의 꿈나무로 부상했다.
대입에 실패한 그는 과감히 대학을 포기하고 우연히 본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의 패션쇼에 감명을 받아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어 에스모드 서울에서 3년간 정식 패션 교육을 받은 후 남성복 쉬퐁의 디자이너로 패션계에 입문했다.
그에겐 쟁쟁한 학벌도 든든한 배경도 없다. 돈 없는 젊은 디자이너 길연수는 하루종일 시장을 누비며 옷감, 단추, 실을 직접 구하러 다닌다. 그렇게 하루종일 뛰어다녀도 피로감은 어느새 뿌듯함으로 다가온다. 그의 스승은 바로 그 자신의 끼이기 때문이다.
2)강희숙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생활 자체인 옷'을 만드는 것이 디자이너 강희숙의 패션철학이자 그녀의 브랜드 '강희숙'의 컨셉이다.
그녀는 옷을 만들 때 '어떤 사람을 위해 옷을 만드느냐'를 먼저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옷에 대한 관심이 유난히 많았던 그녀는 당시 구하기 힘들다는 일본 책을 구해 손수 패턴을 만들어 보며 이론을 습득했고, 영화를 보면 영화의상에 대한 생각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그러나 주위의 편견을 극복하지 못한 그녀는 결국 미대로 진학했다. 결혼 후에도 옷에 대한 미련은 계속되었고, 결국 이대입구에 '강 의상실'이라는 맞춤 전문 숍을 오픈했다.
그리고 79년에 처음으로 압구정동 한양쇼핑센터(현재 갤러리아 백화점 생활관)에 '강희숙'이라는 기성복 브랜드를 런칭했다. 또한 현재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본 보스토'의 안주인이기도 하다.
3)김동순
평범한 주부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6년간의 톰보이 실장에서 83년 '김동순 울티모'라는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까지… S.F.A.A. 창립 10주년이 되는 올해 회장이라는 중책을 맡은 그녀는 S.F.A.A. 컬렉션을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한 개근생이다.
그의 라인은 전통적인 편안함과 모던한 세련미를 모두 갖추고 있으면서도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으로 여성의 인체 곡선과 내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그의 옷에 숨어있는 남다른 형태감이라던가 색감은 그가 대학에서 전공했던 조소의 잔영이 남아있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이런 요소를 패션쇼를 통해 발견하는 것은 또다른 즐거움일 것이다.
몇 시즌 전부터는 같은 대학 같은 학과를 나온 딸 송자인이 옆에서 그의 손발이 되어주고 있어 더욱 힘이 난다고. 이제 혼자가 아닌 모녀의 팀으로 변신한 '김동순 울티모'의 컬렉션을 기대해 본다.
4)김선자
섬유 도시 대구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김선자. 수더분한 인상으로 디자이너라기보다 알뜰 주부같은 그는 사실 옷에 파묻혀 사는 일벌레. 그에게 있어 옷을 만드는 것은 일이라기보다는 삶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미스김테일러'가 처음 선보인 것은 1970년으로 결혼 후 1년 만에 벌인 자신만의 꿈같은 사업체였다.
엘레강스한 여성미를 단순하고 화려한 색채와 함께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전개해 가는 그의 디자인이 인정받아온 것은 소량 생산 전략이 적중했기 때문이다. '한 번 사면 최소한 10년은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일관해 온 터라 그의 매장에는 맞춤 손님이 늘 북적댄다.
디자인 영감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면 자신의 초창기 시절 옷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는다는 그는 '밀라노 프로젝트'의 중심에 서서 대구 패션계의 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다.
5)김수현
남성복 디자이너 김수현. 아직은 낯선 이름이지만 이미 작년 가을의 2001 S/S 서울 밀레니엄 컬렉션을 비롯해 다섯 차례나 큰 컬렉션을 가진 당찬 신인이다. 그녀는 단정하고 깔끔한 댄디 스타일을 추구한다. 의상 공부를 해보라는 가족들의 권유로 떠나게 된 미국. 93년에 미국 F.I.D.M에서 소재-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후 곧 바로 얻은 첫 직장이 현지의 '누벨 바그'라는 브랜드였다. 여기서의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1998년에 자신의 브랜드 '네오 나토'를 런칭했다. 현재는 2000년에 런칭한 Digitalian 21을 떠나 keis homme에서 디자인 실장을 맡고 있다. 패션디자인과 일상생활의 사건들은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발전해 나간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는 김수현. 그녀는 디자인이란 머리가 아닌 일상생활을 통해 나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때문에 김수현은 현시대의 흐름과 경향을 파악하여 패션에 접목시키는 작업을 즐긴다.
6)김연주
디자이너 김연주는 96년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KFDA)의 회장으로 선출되어 3년동안 그 역할을 맡았을 정도 리더십과 인화력이 남다르다.
젊은 디자이너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등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든든한 선배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그녀는 바잉이 없는 열악한 국내 패션 환경 속에서도 KFDA 정기 컬렉션을 주도해 작품성 위주의 아트적인 패션쇼에서 탈피한 웨어러블한 기성복 컬렉션을 주도했다.
해외시장에도 눈을 돌려 96년에는 중국의 초청을 받아 대련에서 KFDA 컬렉션을 열었고 미국 LA 현지에 있는 캘리포니아 마트에 쇼룸을 오픈해 좋은 성과를 올렸다.
홍대에서 응용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이모와 어머니가 운영하던 이대 앞의 의상실을 물려 받아 본격적으로 패션계에 입문한 그녀는 책을 읽거나 그림을 감상하다가 겪는 일상 생활에서 주로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그녀가 지향하는 디자인은 고급원단과 편안한 테일러링으로 품격을 최대한 살려주면서도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를 잃지 않는 것.
7)문영희
한국적인 요소를 모던하게 표현해 세계인이 공유하는 라인을 만드는 꾸준한 행보를 해 온 디자이너 문영희. 96년부터 2001 S/S 파리 컬렉션까지 줄곧 파리 프레타포르테 컬렉션에 참가를 하고 있는 그녀는 IMF 여파로 국내 디자이너들이 파리 컬렉션 참가가 주춤한 가운데서도 파리행을 멈추지 않는다. 파리 진출에 있어 컬렉션은 중간에 포기할 수 없는 가장 큰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파리 컬렉션에 참가하면서 늘 '한국적'이라는 화두를 마음에 새긴다. '이것이다'라고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녀의 옷을 보면 어디엔가 한국적인 유려한 선의 미가 들어 있다. 힌국적인 요소를 모던하게 표현해 세계인이 공유하는 옷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녀는 파리 진출을 위해 15년간 준비했다. 시장조사, 상법 공부, 현지법인설립 등을 천천히 그러나 단계적으로 꼼꼼하게 추진해 온 것.
그녀는 파리와 한국의 차이를 하늘에 비교한다. 파리에서 보는 하늘과 서울에서 보는 하늘은 너무 다르다는 것. 파리에서 디자인한 것을 서울에서 보면 이상하고, 서울에서 디자인한 것을 파리에서 보면 이상하게 보인다. '문영희'를 국내에 선보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어릴 때 돼지 저금통을 털어서 복장학원에 다녔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스스로 강사를 할 정도로 기본기가 튼튼하다. 대학은 의상학과보다 파리 진출을 염두에 두고 불문학과를 택할 정도의 치밀한 계획과 꾸준함이 오늘의 그녀를 있게 한 것이다.
8)박윤수
대학에서 응용미술을 전공한 그는 스물여섯살 때 중앙 디자인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차지한 것이 인연이 되어 패션 디자이너가 되었다.
그의 옷을 보면 통통 튀는 생동감이 느껴진다. 자칫 촌스러워 보이기 쉬운 화려한 원색도 그의 손을 거치면 얄미울 만큼 세련된 이미지로 탄생된다.
특히 라이브 무대를 응용한 컬렉션은 늘 역동성이 엿보여 패션쇼와 음악을 잘 조화시킨다는 평을 종종 듣는다. 최근에는 '서태지와 아이들' 출신 가수 이주노의 무대 의상과 이혜영의 무대 의상을 만들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의 디자인은 생활에서 나온다. 영화를 보다가 거리를 지나가다 연상되는 것을 메모해두면 언젠가 그 아이디어는 옷으로 변신해 패션쇼를 통해 보여진다. 최근 인터넷에 심취한 그는 21세기형 디자이너의 선두주자임에 틀림없는 듯 하다.
9)박윤정
디자이너 박윤정과 함께 떠오는 것은 영화의상이다. 그녀는 <아마게돈>, <구미호>, <은행나무 침대>, <단적비연수> 등의 영화 의상을 제작했고 개봉 예정인 이윤기 감독의 <클럽 샴페인>의 스타일링을 끝낸 상태다. 최근에는 <패왕별희>를 만든 첸 카이거 감독의 영화의상을 맡아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국내 톱 디자이너 이신우의 딸로서 수순을 밟듯 디자이너로의 길이 탄탄대로였던 그녀지만 돌이켜 보건데 지나 온 삶은 영화처럼 변화무쌍하다. New York School of Design을 졸업한 후 어머니가 만든 브랜드 '오리지날 리'와 '이신우'의 디자인 실장으로 일하면서 부도를 겪은 뒤 제일 모직의 월급쟁이 디자이너로 회생했고, 주위의 우려 섞인 시선을 뒤로하고 자신 이름의 브랜드, 박윤정(Vack yunzung)으로 홀로서기를 선언했다. 늘 그 중심에서 자신의 색깔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디자이너 박윤정. '이신우의 딸'이 아닌 '제 2의 이신우'를 꿈꾸는 그녀의 새 출발이 주목된다.
10)박은경
매드믹스를 기억하는가? 93년부터 몇 년간 모든 메이저급 백화점의 명당자리를 차지했던 브랜드 '매드믹스'를 만든 장본인이 디자이너 박은경이다. 의상학과를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패션에 별다른 열정을 느끼지 못한 그녀였지만 결혼 후 남편과 함께한 독일 유학 중 패션에 대한 숨겨진 자신의 열정을 확인했다고. 그때부터 그녀는 7년이라는 세월을 패션 공부에 몰두했다. 어학코스부터 시작해서 창작디자인, 스케치와 누드크로키, 패턴과 재단, 봉제 등 모든 과정을 다시 밟은 것이다. 귀국 후 중앙디자인 콘테스트에 입상, 국제 패션 디자인 연구원 강사 등을 거쳐 압구정동에 '매드믹스'를 오픈했고, 현재는 '이즘'이라는 브랜드를 'ism thru Park, eungyung'으로 리뉴얼하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밝고 다양한 컬러를 아기자기하게 조합하는 장기를 가지고 있는 박은경. 정교한 재단과 기발한 아이디어의 패턴에서 그녀만의 색깔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