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 영화마다 액션에 대한 태도가 있다. 액션 태도로 분류하자면 업종의 상도까지 따지는 <해결사>는 생활 달인형 액션이다. 먹고 살자고 뒤쫓고, 증거 수집하고, 뛰고 구른다. 입금 확인이 액션 시작의 철칙이다. 그러다 어느 날 해결사 강태식(설경구)의 일과가 죽도록 꼬인다.
강태식은 전직 형사이며, 현직 심부름센터 사장 겸 행동 대원이다. 정보와 데이터 분석은 외주를 주었으니, ‘강태식 범죄연구소’는 일인 사업장이다. 가족은 초등학생 딸이 하나 있다. 딸을 등교시키고, 의뢰인의 요청에 따라 모텔의 불륜 현장을 급습한다. 그러나 모텔 방에서 태식이 발견한 것은 여자 의사의 변사체다. 태식은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다. 태식이 혐의를 벗으려면 진짜 범인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 의뢰인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한다. 요구 사항은 정치 비리 증인의 납치다. 이제 증인이 법정에 출두해야 하는 다음날 아침까지 태식의 생업이 갑자기 정치적 사건이 된다. 태식이 무사히 사건을 마무리 할 수 있을까?
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해결사>에서 액션이 벌어지는 공간은 넓지 않다. 모텔 복도, 병원 복도, 건물 내 계단참, 호텔방, 폐쇄병실, 욕실 등에서 액션을 보여준다. 주로 육탄전이며, 연장을 사용해도 생활 밀착형이다. 예를 들어 무기로는 옷걸이, 고무호수, 변기 뚜껑 등을 사용한다. 범죄 도구도 도시가스관, 라이터, 전자레인지, 알루미늄 테이프, 세면용 머리띠 등 익숙한 물건이다. 그런데 공간 크기가 제한되다 보니, 액션과 카메라의 거리가 가까울 때가 많다. 장단점이 있다. 장점은 가까운 거리에서 싸움을 구경하는 것이며, 액션 행위자의 어깨에 올라탄 듯한 시야를 경험할 수 있는 점이다. 단점은 액션이 시원시원하지 않은 경우가 더러 있다는 점이다. 어쨌든 대체로 액션 스타일은 일관성 있다. 단 눈동자 액션은 좀 줄였더라면 하는 바람은 있다.
<해결사>에서 화면에 등장하는 첫 인물과 마지막 인물은 모두 태식과 딸이다. 태식은 딸을 사랑하며, 딸에 대한 걱정이 많다. 마음은 그렇다. 그런데 태식이 딸에게 보이는 말투와 행동을 보면 좀 이상하다. 그가 딸과 함께 있는 장면을 보고 있자면, 태식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남의 뒷일 해결이 아니라, 잘못된 아버지 노릇을 해결하는 일인 듯 보인다. 첫 장면에서 아이를 학교 앞에 내려주면서 잔소리 끝에 태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도 딱 너 같은 딸 낳아서 키워봐라.” 초등학생 딸도 지지 않고 답한다. “나는 아빠가 창피해.” 게다가 둘은 이렇게 상처를 주는 부정적 대화에 익숙한 듯이 보인다. 또한 이 부녀가 가스를 잔뜩 들이 마시고 겨우 살아났을 때, 딸이 구급차에 타며 하는 말은 “강태식씨 빨리 와.”다. 딸이 아버지의 이름을 부른다. 마지막으로 딸을 태우고 운전하는 장면에서는 잠든 딸을 보며 태식이 “나도 너처럼 자고 싶다.”고 한다. 친구 같은 부녀관계를 보여주고 싶었는지는 모르지만, 태식은 딸에게 어른 노릇을 포기한 듯이 보일 지경이다.
태식은 부인이 살해당한 후, 몇 년째 혼자서 아이를 키우고 있다. 부인을 그렇게 잃었으니 상실감과 분노가 컸겠지만, 당장 어린 아이를 혼자 키우는 일이 벅찼을 것이다. 태식의 경우처럼, 배우자 사별 이후에 한 부모 가정의 부모가 가족 내에서 겪는 현실적 어려움은 가족 내 역할 변화다. 사망한 배우자가 했던 역할을 남은 가족들이 맡아서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문제일 수도 있고, 양육이나 가사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니 태식이 겪고 있는 양육의 어려움을 짐작할 수는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이에게 잔소리를 늘어 놓는 것, ‘너 같은 딸’처럼 아이의 사람됨 전체를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아이의 행동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선 잔소리가 길면 아이들이 기억하지 못한다. 또한 잔소리라는 부정적 자극과 아버지가 연결되어서,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을 즐거워할 수가 없다. 심하면 아버지를 귀찮아 하고 피한다. 게다가 아버지가 자식의 인격에 대해 전반적인 부정적 평가를 하면 아이가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낮아져 풀이 죽은 모습을 보이거나 혹은 반항적인 행동을 보이기 쉽다. 그러므로 태식이 부녀 관계를 개선하려면, 아이를 꾸짖는 법과 칭찬하는 법을 배우고, 아이와 긍정적 감정을 교류하는 대화법을 배우는 부모교육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사랑하는 마음 만으로 만사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한가지 더, 아직 어린 딸이 방과후에 갈 곳이 없이 학원을 돌거나, PC방에서 식사까지 거르고 앉아 있는 일이 없도록, 아버지가 돌아올 때까지 방과후에 아이를 돌봐 줄 주 양육자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할 것으로 보인다. 데리러 간다고 하고 자주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 부인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아이들은 아버지가 믿을 수 없고 의지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해결사>에서 사건의 동기는 돈이다. 태식, 상철, 필호, 변호사, 정치가, 모두가 돈 때문에 일을 한다. 좀 서글픈 대목이다. 움직이는 이유에 돈이 개입되지 않은 주요 등장 인물은 형사 오달수, 송새벽 콤비뿐이다. ‘사수와 신참’ 관계인 ‘오-송 콤비’가 유쾌한 이유는, 두 배우의 코믹한 연기 때문이지만, 동시에 그들의 극중 인물 특성 자체가 동기와 행동 면에서 건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리 생업이 실용과 금전을 따른다 해도, 일을 하는 이유에 물질 말고 철학과 원칙이 필요하다. 그래야 스스로도, 보는 사람도 즐거울 수 있다. 그런데, 송새벽의 “도시가슨데, …꺼떠요.” 이 대사, 내가 해봤더니 가족들 반응이 썰렁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