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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간 |
장 소 |
09. 7. 9(목) ~ 7. 19(일) 11일간 |
광주롯데화랑 전시실 |
09. 7. 9(목) ~ 7. 23(목) 15일간 |
푸른길기차(옛 남광주 역사) 광주천변(학림교-학강교 광주천 둔치) |
○ 세부 일정
- 작품 반입 및 설치 : 09. 7. 8 오전 10시부터(롯데화랑)
09. 7. 6일부터(푸른길기차, 광주천변)
- 오프닝 : 09. 7. 9(목) / 광주천주민문화제한마당 오후 6시~9시
- 작품 철수 : 09. 7. 19(일) 오후 3시부터(롯데화랑) / 7. 24(금)부터(푸른길 기차, 광주천변)
○ 참여작가
- 광주천변 및 푸른길기차 : 김록연, 김수옥, 김숙빈, 김영태, 김종갑, 김지선, 김화순, 김희련, 김혁, 마소희, 안희정, 이가영,
이승일, 위재환, 박일구, 박슬기, 박태규, 소종호, 송혜경, 정다운, 장용훈, 정선휘, 조은미, 최대주, 최정훈, 하현아, 천현노
- 광주롯데화랑 : 이창훈, 채경남, 김보수, 최희정, 이춘홍, 이정기, 한태희, 채지윤, 이선희, 안 정
○ 광주롯데화랑 출품안내
※ 출품작 기준(광주롯데화랑 참여작가에 한함)
- 평면 : 20호 기준 2점(1인당 약 2m~2.5m사용)
- 입체 : 전시장 도면 참조 요망
※ 작품사진 제출 : 7.6(월)까지 웹하드로 전송
(인물사진은 싣지 않습니다. 포스터 제작 예정)
작품사진 전송 시 제목, 사이즈, 기법 상세 표기
(웹하드 ID:barhe1 비밀번호:5837/광주롯데화랑 → 광주천환경미술제폴더)
※ 간략한 작업노트도 꼭 첨부해주시기 바랍니다. (작품 설치 시 전시장 내 부착 예정)
전송 후 연락 요망
광주롯데화랑 062-221-1808 / 큐레이터 고 영 재 011-627-2914
어시스턴트 배 수 진 010-8610-4323
◎ 전시 세부 내용
광주천주민문화제의 본 프로그램 중 두 번째 마당에 속하는 광주천환경미술제는 옛 남광주 역사 푸른길 기차(현, 남광주시장 주차장 내), 학림교에서 학강교 사이의 광주천 둔치, 그리고 광주롯데화랑 등, 세 공간에서 진행된다. 푸른길 기차와 광주천변에서의 미술제는 인근 주민들과 미술인이 함께 진행한 공동작업 혹은, 야외 공공미술제의 성격을 띠는 작품들이 대거 설치될 예정이다. 단, 환경미술제가 또 하나의 공해로 전락하지 않도록 미술제 개막 전까지 간헐적인 참여 작가 워크샵을 진행하며 내실 있는 문화제를 추진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광주롯데화랑에서의 전시 목적은 본 문화제의 취지를 알림과 동시에 물길 그 주변을 에둘러 흘러온 광주의 역사를 바로 인식하고, 더불어 미술인으로서 올곧은 문제의식을 갖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함이다.
녹은 그 쇠를 먹는다!
(광주롯데화랑)
주지하다시피 문명은 인간중심, 혹은 성과 ․ 결과 위주의 사고 안에서 자연과의 불협화음을 수반한다. 광주천 또한 일제강점기, 광주의 현대화 속에서 본래의 기능을 점차 상실해갔고, 하천 주변으로 생의 터전을 다잡았던 광주의 역사도 사라졌다. 옛 세대를 함께하지 못한 지금의 세대가 느끼는 광주천은 여전히 냄새 고약한 건천에 불과하다. 그 간 관의 주도아래 조금씩 그 모습이 나아진 듯 하였으나, 사람과 물길이 공생하는 근본적인 물길 살리기를 기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여전히 ‘관을 위한 행정’에 불과하다. 문화행정 상 ‘사회적 공공성’을 우선시해야할 관의 정책은 언제나 궁극적인 행정 본연의 역할을 망각하고, 더 나아가 정책의 주인도 간과해버린다. 좁은 의미의 생태적 환경을 벗어나 사람과 그 사람을 키워온 넓은 의미의 ‘환경’이 온전히 자리할 수 있도록 모두 섬세한 노력들을 요구하고 간청해야한다. 그러나 그 이전 우리 스스로가 변화해 온 환경과 그 역사에 관심을 갖고 이를 지키는 노력을 간구해야하며, 사람보다 자본에 집중한 이유로 사라져버린 우리 주변의 역사들을 바로 인식해야한다. 본 미술제의 목적은 이 부분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녹은 그 쇠를 먹는다’는 법정 스님의 잠언집에서 얻어온 내용이다. 법구경의 ‘녹은 쇠에서 생긴 것인데, 점점 그 쇠를 먹는다’는 구절을 스님이 풀어쓴 것인데, 인간 마음의 그늘로 인해 사람 자신이 점차 녹슬고 마는 행태를 우려하며,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쓰라는 의도에서 제기된 구절이다. 좀더 편리하고 좀 더 풍부히 소유하기 위해 인간은 역사 안에서 풍성하게 존재할 수 있는 길을 버려왔다. 잠깐의 풍족함을 위해 깎고 다지고 세우는 일들을 여전히 지속하며, 자유의지를 제멋대로 오용하고 있다. 그 안의 역사는 온데간데없고 더 풍부해지기 위해 우리 삶의 터전을 스스로 좀 먹는다. 반성의 과정 없는 발전은 순간의 발전일 뿐이다. 본 환경미술제는 현재를 포함한 앞으로의 시간이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일련의 가능성을 미술로서 풀어보는 자리이며, 이를 통해 사회의 다양한 문제의식과 담론들이 기록되었으면 한다.
버들마을 너머
(광주천변, 푸른길 기차)
광주천변과 푸른길 기차에서의 미술제는 본 환경미술제의 성격을 대변한다. 사라져가는 역사 및 환경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과 더 나아가 그 관심이 사람과 사람, 그리고 자연과의 건전한 소통으로 발전, 궁극에는 풍요로운 우리 삶의 터전을 만들어가는 데 역할 할 수 있도록 미술인의 노력을 한데 모으는 것이다. 이것이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운동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그 초석을 다지는 일이며, 현학적인 미술 이론을 포장하기 위한 소재주의적 행사로 전락하지 않기를 바란다. 미술인이 사회 안에서 올바로 존재할 수 있는 실천적 개념의 움직임으로 발전하였으면 한다.
우리가 유년시절 흔히 보아왔던 풍경 중에 개울가나 강가, 혹은 신작로에 우거진 버드나무를 들 수 있다. 보통 버드나무는 개울가 제방에 효과적으로 쓰이던 나무이다. 그 뿌리가 소나무와 비교해볼 때, 소나무가 땅속 깊이 뿌리를 박아야하는 것에 비해 버드나무는 뿌리가 깊지 않아도 그물처럼 촘촘한 잔뿌리로 흙을 보전해준다. 도시화의 과정에서 버드나무가 잘 들어선 물가의 제방을 모두 헐어버리고, 콘크리트나 육중한 잡석을 이용한 돌망태들이 주변 경관과 자연환경을 저해해왔다. 물을 정화하는 능력 뿐 아니라 부드럽게 바람을 응수하는 버들은, 가지런히 늘어선 자태 자체로 자연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버들의 순응력을 옛 선비들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고. 거스르지 않고 큰 물결에 이끌려 가는 중용의 힘을 배웠다. 때문에 동양의 옛 그림에는 곱게 늘어선 버들과 선비의 모습들이 자주 보인다. 또한 버드나무는 불교의 자비사상과 결합, 관음보살로 비유되기도 한다. 관세음보살은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있거나 병에 꽂는 모습을 취하는데, 버드나무의 유순함이 자비로움의 성정으로 대변되는 듯하다.
그러나 현대화의 이름 아래 개발이 주가 되면서,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 따위는 기대할 수 없는 가치가 돼버렸다. 광역시에 속하는 광주의 모습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삶의 안식처 역할을 해오던 광주천변은 변화하는 환경을 반영하듯 가까스로 그 모양새만 유지하고 있다. 본 환경미술제는 광주천 물길 속에 흐르고 있는 진정한 광주 이야기를 찾고, 그 물길을 따라 늘어선 다양한 역사를 통해, 광주의 삶을 이해하는 데 목적이 있다. 더불어 그 이해가 모두의 관심을 한데 모으고 소통의 장을 형성하는 데 시발점으로 작용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버들마을’은 이와 같은 관점에서 규정된 소제이다. 버들이 지니고 있는 거스르지 않는 순응력과 친화력, 그리고 그 유순한 힘을 빗대어 건강한 공동체 의식의 형성을 지향하는 의미이며, 인간과 환경이 올바로 소통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뜻이기도 하다.
물길은 곧 생명길이라 한다. 물길 따라 생명의 터전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우리의 역사는 지금의 상황처럼 토목건설로 부귀한 국가를 만들어보자는 허황된 공명의식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 터이다. 그저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에 감사하며 자연과 더불어 ‘공존’하고자 했던 선조들의 슬기와 지혜로움에서 문제해결의 단초를 찾을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