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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2:11-2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되는 교회, 이질적인 사람들의 공동체, 둘이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 한 성령 안에서
1. 말씀배경
오늘은 교회에 대한 신학적인 정의를 하기보다도 실제 교회 공동체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어떤 기능이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론적인 것보다 실제적인 교회의 참 모습을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바울이 기록한 말씀으로 교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성경 말씀입니다. 에베소교회는 바울이 2차, 3차 전도여행 중 세운 교회입니다. 삼년 반동안 눈물로 세운 교회로 바울에게는 애착이 가는 교회입니다 (엡 20:31).
더구나 옥중(로마 1차 투옥, AD61-63)에서 기록한 말씀으로 에베소교회 안에서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되지 못함에 대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둘이 하나되어야 한다”고 편지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주님이 죽으셨다“라고 말씀하고 싶은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은 2000년이 지난 오늘날 교회들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분열되고 하나되지 못한 우리들 교회, 계층간 분리되어 소외된 백성들이 있는 한국교회에 주신 말씀인 것입니다.
2. 당시 교회 상황은 어떻습니까?
에베소교회는 바울이 회당과 두란노서원에서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복음을 전하여 세워진 교회입니다.
[행 19:10]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행 20: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그래서 에베소교회는 유대인과 헬라인으로 구성된 교회임이 분명합니다.
바울이 말씀하고 있는 ”헬라인“(헬, 헬렌)은 헬라사람 Greek 사람 만을 의미하지 않고 헬라어를 사용하고 헬라문화 속에서 사는 모든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 입장에서는 이방인들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강한 선민의식과 독특한 삶의 방식, 더 나아가 유대율법주의자들로 인하여 교회 내에서 이방인들과 하나되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구성된 모든 교회가 이런 갈등 속에 잇었던 것 같습니다. 로마서를 보면 로마교회도 상황은 이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를 통하여 로마교회에 하나님은 유대인의 하나님이기도 하지만,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신다. 이방인들도 유대인처럼 불렀다.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롬 3:29, 롬 9:24).
[로마서 3:29]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로마서 9: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바울은 교회 안에서는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하나님 앞에서 똑 같이 구원을 받을 자라는 것입니다.
▶ 오늘 말씀도 유대인들이 이방인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잘 나와 았습니다.
11절을 보면, 할례 받은 무리 곧 유대인들로부터 ”할례받지 않는 무리“하고 칭함을 받는 자들입니다.
다윗이 블레셋 골리앗에게 똑 같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할례 받지 않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삼하 17:26)
이 말은 ”구원을 받지 못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삼 14:6, 17:26,36). 하나님으로부터 버려진 자들이며, 거룩하지 못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사 52:1)
그래서 유대인들은 할례받지 못한 자들에 의해 죽는 것도 수치를 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삼상 31:4)
12절을 보면, 이방인들은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약속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외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은 세상에서 소망도 없는 자요, 하나님도 없는 자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구원이 없는 지옥갈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11절 말씀의 다른 표현들입니다.
13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멀리 있던 자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인간으로 유대인들과 이 땅에서 함께 살고는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에서, 보호에서, 축복에서, 구원에서, 유대인들과 달리 멀리 떨어져 있는 무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보는 이방인에 대한 시각입니다.
그러니 함께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교회를 이루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들도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구원이 없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자의 무리 안에 있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어떤 이방인도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유대인들이 무시하는 그런 구원받지 못하는 자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동일한 자인 것입니다.
3. 오늘 이 시대의 교회 상황은 어떻습니까?
▶ 오늘날 한 민족으로 구성된 한국 교회공동체에서도 하나되지 못하고 나이별로 계층별로 갈등하고 있는 것을 보면, 초대교회 안에서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되지 못하고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수많은 교단이 분열되면서 생기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교회 내에서도 많은 교회가 분열되어 떨어져 나가고 그 내부에서도 다양한 파가 생겨 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교단의 수 : 2021년 310개)
교회 내에서도 이 사람은 이래서 저 사람은 저래서 따 돌림을 당하고 있습니다. 오래 교회에 다닌 사람은 은연 중에 텃세를 부립니다. 묶은 닭이 새로운 닭을 부리로 쪼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분은 그 사람이 오면 자기는 교회에서 나가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반대도 있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교회에 가지않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좋은 데 사람들 때문에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분들이 많은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는 아니지만 교회가 하나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하나되지 못할까요?
① 첫째로, 사탄의 가장 강력한 전략이 하나되지 못하게 하는 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되지 못함 속에는 반드시 사탄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루시퍼가 하나님을 대적할 때 천사 삼분의 일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분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분리의 영인 것입니다.
싸우는 곳에서는 반드시 분리의 영이 역사를 합니다. 그래서 가장 작은 단위인 둘이 하나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반대로 둘이 하나되게 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도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는다“고 하셨고 (엡 2:18), ”성령이 하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라고 하셨습니다 (앱 4:3)
그러므로 완전히 다른 유대인과 이방인과 같은 두 사람이 하나되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들 만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힘써 지켜야 하는 우리들의 노력도 필요합니다.
그러면 둘이 아니라 셋도, 넷도 가능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룹 단위로도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날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마찬가지로 부부도 하나되지 못하고 많은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쉽게 이혼하는 현상을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습니다.
옛날처럼 사나 죽으나 같이 살지 않는 것입니다. 싫으면 쉽게 헤어지는 세대인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자들도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부부가 하나되지 못하면 가정이 파괴되고, 자녀들도 빗나가게 되고, 그러면 그들도 교회와 멀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집요하게 가정에 역사하는 것입니다.
▶ 우스운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한 가족이 높은 아파트 옥상에서 자살하기 위해서 동시에 뛰어 내렸는데 모두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아버지는 제비족이요, 어머니는 날라리요, 자식은 비행청소년 이었답니다. 제비족, 날라리, 비행청소년은 사탄이 가정을 파괴한 열매들입니다. 모두 하나되지 못한 분리의 현상입니다.
부부가 하나되는 것이 둘이 하나되는 것이 첫 걸음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서로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화성인과 금성인의 만남과 같습니다. 언어가 다르고, 사고가 다르고, 습관도 다르고, 취미도 다르고, 영적 수준도 다르고, 먹는 것도 다르고, 입는 것도 다 다릅니다. 잠자는 자세까지 다릅니다. 그래도 성경은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숙제입니다.
가장 큰 하나됨의 훈련 조교는 배우자인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되어야 교회와 같은 큰 공동체도 하나될 수 있습니다.
② 하나되지 못하는 두 번째 이유는, 오늘날 우리들은 공동체 훈련을 받을 기회가 많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하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앱 4:3)에서 힘써 지키는 훈련인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도 있어야 하지만 힘써 지키는 공동체훈련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요새는 자식을 많이 낳지 않습니다. 큰 일입니다. 제발좀 아이를 낳으세요.
세 명은 낳아야 합니다.
과거에는 함께 좁은 공간에서 떠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함께 먹고 자고 놀고아야 하는 환경에서 자신도 모르게 남들과 조율하면서 살아가는 공동체 훈련을 받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 명, 두 명 낳고 낳지 않으니 공동체 훈련 기회조차도 없습니다. 강아지하고 만 잘 놉니다. 그래서 유모차에 강아지를 태우고 다닙니다. ”개모차“라고 합니다. 젊은 사람은 어느정도 이해하지만 할머니가 끌고 다니는 모습은 정말 이상하게 보였습니다.
개인의 개성만을 중시하고, 남들을 배려하지 않고, 공동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을 중시하여 더불어 사는 것을 배우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③ 이런 이유로 교회가 하나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쉽게 교회를 등지고 떠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떠나라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자는 당연히 떠나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차원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사탄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요 12:43)
마치 사사기 시대에 각기 자기의 옳은 소견대로 사는 시대처럼 되어가는 것입니다 (삿 17:6, 21:25).
성령의 역사보다 분리의 영이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동체 훈련을 받지 않은 것입니다. 개인주의가 팽배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의 초대교회나 오늘날 교회에 대하여 바울이 가르치고 싶은 것은 둘이 하나되는 교회가 되라는 것입니다. 가장 어려운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된 교회가 참된 교회, 하나님 기뻐하시는 교회, 구원을 받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4. 교회가 왜, 둘이 한 몸이 된 교회가 되어야 하는지 성경적인 근거는 무엇입니까?
① 십자가로 둘을 하나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시대에는 율법으로 이방인과 유대인이 구분되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언약에서 멀리 있는 자, 먼데 있는 자였습니다(엡 2:13, 17)
한 몸이 될 수가 없었고 하나님과도 원수되어 화목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방인들은 외인이요 나그네였습니다(엡 2:19)
그런데 이제는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다는 것입니다 (엡 2:13), 원수된 것 곧 중간의 막힌 담이 헐어졌다는 것입니다 (엡 2:14), 이방인과 유대인을 구분하는 계명의 율법이 폐하여 졌다는 것입니다 (엡 2:15)
그래서 이제는 둘이 한 새사람으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엡 2:15).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셔서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엡 2:16)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었습니다 (엡 2:18),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습니다(엡 2:19)
이런 말씀은 당시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엄청난 시기할 수 밖에 없는 내용입니다.
반대로 이방인들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복음인 것입니다.
바울이 회당에서 복음을 전할 때 유대인들은 시기가 가득했지만 이방인들은 기쁨이 가득했다고 했습니다 (행 13:45-48). 그들에게는 엄청난 복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3: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 이것처럼 오늘날 교회안에도 마치 율법처럼 분리하는 자신만의 율법을 정해놓고 이런 자, 저런 자들을 분리하여 하나되지 못하게 하는 요소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서 다 허물어 져야 하는 것들입니다. 모두가 동일한 성도요 시민이요 권속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 바울은 믿는 유대인들에게 교회 바깥에 있는 이방인과 하나되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믿는 이방인 곧 헬라어를 말하는 믿는 이방인과 하나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유대인들에게 말이 잘 통하지 않는 헬라인들을 이방인 취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와 다른 말을 한다고 해서, 다른 문화를 가졌다고 해서 멀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멀리하고 기피하고 있는 그가 여러분들의 이방인인 것입니다.
헬라인들이 헬라말을 하여 유대인들에게 말이 통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을 멀리하고 있다면 그들도 오늘날 우리들의 이방인 것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실제 언어학적으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저런 이유로 마음이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이유가 수준 차이도 있을 것입니다. 이질적인 문화, 경험도 있을 것입니다. 관계 속에서 불편함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교통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자들을 기피하고 멀리하고 분리한다면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인 것입니다.
나의 이방인은 누구입니까? 우리들의 이방인은 누구입니까?
오늘날 교회 안에서 내가 싫어하는 이방인이 없습니까?
하나님은 이들과 하나되기를 원하십니다.
② 하나되어야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성경적인 근거는 이것입니다.
▶ 둘이 한 새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16절), 새 사람은 ”카이노스“적 질적인 새 사람인 것입니다 (↔네오스, 시간적 새로움)
둘이 썩여 마치 화학적 반응을 한 후 새로운 한 물질이 된 것과 같은 새로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도 없는 형식적인 하나가 아닌 것입니다. 개밥에 도토리와 같은 모습이 아닙니다.
질적인 새로운 하나가 되었을 때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 둘이 한 몸이 되어야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기 때문입니다. (엡 2:18).
이것은 너희 둘이 하나되지 못한 상태에서 어찌 나와 화목할 수 있겠느냐? 둘이 하나되지 못한 상태에서 나에게 나아오겠느냐? 입니다. 화목한 상태로 나에게 나아오라. 그러면 나와도 화목하게 될 것이고 나에게 나아옴을 얻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둘이 하나되지 못하면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하다는 것이며,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 이것 외에도 둘이 하나되면 영적으로 많은 유익들이 있습니다.
대적과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전 4:12), 기도도 응답받습니다 (마 18:19), 증인도 될 수 있습니다 (신 19:15), 둘이 함께 하면 좋은 상을 얻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전 4:9)
이래도 하나되지 못하고 분리하며 살것입니까?
▶ 교회는 하나됨의 훈련장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이런 의미를 잘 아실 것입니다.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서 훈련 소대, 중대를 이룹니다. 좋으나 싫으나 하나되어야 합니다. 낙오자가 생기면 공동책임입니다. 그래서 끝까지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동료를 보낼 수도 없고 내가 떠날 수도 없는 곳이 군대입니다. 내가 싫다고 다른 부대로 갈 수도 없습니다. 대열에서 이탈할 수도 없습니다. 처음에는 간혹 서로 싸움도 있지만 훈련이 마쳐질 때가 되면 동료애로 끈끈하게 뭉쳐져 있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훈련 소대로, 중대로 묶어 놓으신 것입니다.
싫으나 좋으나 함께 가야할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하나됨의 훈련을 받지 못하고, 통과하지 못하고 여기 저기 떠돌아 다닌다면 맨날 그 수준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훈련을 마치지 못하고 떠나면 그곳에서 더 혹독한 훈련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한번은 통과해야 합니다.
요즘 캠핑카족 교인들이 많습니다. 여기 저기 옮겨다니면서 교회를 다니고 있는 분입니다. 이것은 제게 어느 누구에 대한 꿈을 통해서 보여주신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면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이 지상 교회는 모두 훈련받는 신부이므로 부족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속한 교회공동체가 이것 저것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러한 교회에서 30년, 40년 섬겼다면, 그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자인 것입니다. 그는 최소한 둘이 하나됨의 훈련을 통과했기 때문에 분명히 하나님과 화목되어져 하나님 가까이 나아가는 성도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니라 오늘 말씀인 것입니다.
정말로 믿음 생활하다가 보면 특이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해가 안갈 정도로 말입니다. 사실 자기 배우자도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힘이 들 때가 많습니다.
특이한 사람이 내 옆에 있어도 둘이 한 몸이 되는 훈련을 통과해야 합니다. 도망가도 더 심한 사람 만나게 되니 도망갈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늑대 피하려다가 호랑이를 만나게 됩니다.
▶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오는 프로그램에서 ”다시 결혼을 하면 지금 배우자와 결혼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부분 사람은 고개를 흔들며 이 사람하고는 안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한 할머니가 지금의 할아버지와 결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그렇게 할아버지가 좋으냐고 물어보니, 할머니 하시는 말이, ”그 놈이 그 놈이여“ 했답니다. 이 할머니가 말씀이 정답인 것입니다.
하나됨의 훈련을 통과하지 못한 자는 어느 교회나 나를 힘들게 하는 자가 있는 것입니다.
왜, 지금의 교회공동체에서 이런 저런 사람을 만나야 하는지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분명히 이유가 있습니다. 특히 자기가 싫어하고 멀리하고 싶은 사람에 대하여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국에는 둘이 하나되는 훈련을 통과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날 자기 가까이에 있어 싫은 사람들이 여러분들의 이방인인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되어야 하는 이유, 근거가 또 있습니다.
③ 우리들은 주안에서 함께 성전으로 지어져 자라가야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의 각부분입니다.
[고린도전서 12: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에베소서 4: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우리들은 그리스도께서 건물의 모퉁이돌이 되시고 기초가 되시는 지체들인 것입니다. 마치 팔과 다리, 눈과 귀처럼 말입니다.
이 지체가 각 마디를 통하여 서로 도움을 받고 연결되어져 있어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지체 가운데는 유대인, 이방인들과 같은 관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코가 못나서 싫은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발가락이 못생겨서 싫은 자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처럼 교회공동체 가운데서도 모난 자들도 있고 보기 싫은 자들도 있습니다. 참으로 다양한 지체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대부분 나와 다른 사람들인 것입니다. 지체가 마음이 안든다고 지체를 베어버릴 수 없습니다. 코를 베어 버리면 더 흉한 병신이 됩니다. 지체인 손가락을 씹어 먹으면 안됩니다. 그러면 자기 지체이니 결국 아픔이 자기에게 돌아옵니다.
지체들끼리 서로 손에 손 잡고 하나되어 있는 모습이 참 교회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런 원리로 본다면, 결코 혼자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중요한 기둥일지라도 기둥 혼자 건물이 될 수 없습니다.
함께 연결되어 하나되어 있을 때 하나님은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실제 교회 내에서 직임적으로 사도, 선지자, 목사, 복음전하는 자, 교사와 같은 기름부으심이 있는 자들이 하나의 교회를 이룬 모습인 것입니다(엡 4:11).
은사적으로도 예언, 통변, 치유, 능력행함 등 다양한 은사들이 어울어져 사역하는 교회가 참 교회인 것입니다.
신체의 각 부분이 서로 싸우지 않고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는 그런 관계인 것입니다 (고전 12:26). 그래서 서로 싸우는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지체가 보기 싫다고 억지로 떼어 내고 싶은 그 사람이 그의 이방인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되어 연결되어 있을 때 서로 자랄 수 있는 것입니다. 온전한 성전이 지어지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엡 4:13),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는 것입니다 (엡 4:15), 그러면 지체들을 이루는 각 성도들이 서로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엡 4:12).
다시 말씀드리지만, 성전, 교회는 혼자 짓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짓는 것입니다. 그렇 때 함께 자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성전도 눈에 보이는 교회 안에서 함께 이렇게 될 때 지어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들이 하나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③ 하나님도 한분이시오, 주도 한분이시오, 성령도 한분이시오,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엡 4:4-6)
우리가 하나되어야 할 이유의 가장 큰 것은 다름아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같은 동일한 한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우리들이 믿고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삼위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이 역사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다른 예수를 믿거나 다른 신을 믿거나 다른 악령이 역사할 때는 결코 하나될 수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6: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하나될 수 없듯이 믿지 않는 자와 하나되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 믿는자, 구원을 받는 자들끼리 하나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부 지체가 구원에서 떨어져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안에 하나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면, 그 부분을 잘 분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사탄이 역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분리하는 자가 있다면, 권면하시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에게 역사하는 분리의 영을 결박하십시오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한 형제 자매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육신으로는 혈통으로는 형제자매가 아니지만 영적으로 형제. 자매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이 어머미와 동생들이 찾아 왔을 때, 육적인 부모, 형제자매보다 믿음으로 된 형제 자매를 더 앞세우고 있는 곳을 볼 수 있습니다.
[막 3: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34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영적인 형제. 자매가 되었는데 여전히 싸우고 있는 것입니까? 그러면 누군가에게 마귀가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에게도 취약함이 있기 때문에 분리의 영이 형제.자매의 모습으로 다가온 것임도 알아야 합니다.
<맺는 말>
신학적으로 교회는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자들의 모입니다 (마 16:16-19)
이것이 기본입니다. 이런 교회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고 매고 푸는 권세가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가 있는 하나됨을 전제로 한 말씀입니다.
교회가 악령이 역사하여 찢어지고 나누어지는 그런 상태를 교회라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참 교회는 가장 먼저 둘이 하나되는 교회가 진정한 교회입니다. 인종, 나이, 학벌, 재산 상관이 없습니다. 모두가 동일한 형제 자매로서 지체로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서로 너무 다릅니다. 한 뱃속에서 태어난 자식들 간에도 차이가 많습니다. 하물며 다른 문화에서 자란 사람들끼리 모두가 마음에 속드는 경우는 없습니다. 다 다릅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성격도 다르고, 도덕적 기준도 다르고, 영성도 다르고, 기름부으심도 다르고, 부와 지식도 다른 것을 알고 그 다양성 속에서 하나되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이 훈련과정을 통과해야 진정으로 성숙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참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참 성전으로 지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고 그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저 사람 보기 싫어서 난 교회 나가기 싫은 자가 있다면 더 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 이익을 조금 내려 놓아야 합니다. 이게 하나됨의 지름길입니다.
아무튼 이 대산교회 공동체에서 하나되는 훈련을 통과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