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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6:3-11, 마 3:11> 세례의 영적 의미, 출애굽 홍해바다, 요단강을 건너는 사건의 세례적 의미, 물세례, 성령세례
1. 말씀배경
▶▶▶ 세례(헬, 밥티조)는 외적으로는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공식적인 입교 인증의식입니다.
이제 세례를 받게 되면 공적으로 우리 교인임을 선포함과 동시에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한 형제 자매가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한 하나님, 한 주 예수, 한 성령, 한 세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인종, 종족, 부하고 낮고 천하고 상관없습니다
[에베소서 4: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고린도전서 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그래서 형제, 자매로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교회의 덕이 되는 삶,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제 혼자 몸이 아니라 연결된 몸이기 때문입니다.
▶ 세례의 형태는 현재 두가지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① 머리에 물을 붓는 세례와 ② 온몸을 물에 잠그는 침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침례는 침례교와 오순절 계통의 교단에서 이루어지고 장로교와 같은 다른 교단에서는 일반적으로 세례를 베풀고 있습니다.
오늘 세례의 영적 의미를 본다면 “침례”가 더 성경적이라 생각합니다.
세례는 물이 귀한 곳이나 임종이 임박한 상황에서 급히 세례를 베풀어야 할 때 하면 좋을 듯 합니다.
우리나라 성경에는 모두 다 “세례”로 기록하고 있으며, 침례를 하는 곳에서는 침례로 바꾸어서 읽고 있습니다.
2. 그러면 세례의 기원은 무엇일까요?
1) 먼저는 구약시대 정결예식이 있습니다.
사람이 부정하게 될 때 부정을 씻기 위하여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려서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언어로 “부정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시체를 만지거나 부정한 자와 접촉한 자, 그리고 나병, 유출병과 같은 부정한 병이 들어 고쳐진 후에도 부정을 씻기 위하여 물을 뿌리는 정결예식을 해야 합니다.
이들이 만일 정결예식을 하지 않고 성전에 들어가면 여호와의 성전, 성막을 더럽히게 되어 이스라엘에서 끊어지게 됩니다.
하나님 만나기 전에 정결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민수기 19:13] 누구든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지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힘이라 그가 이스라엘에서 끊어질 것은 정결하게 하는 물을 그에게 뿌리지 아니하므로 깨끗하게 되지 못하고 그 부정함이 그대로 있음이니라
▶▶▶ 외출하고 오면 유대인들은 손과 발을 씻는 것도 위생 차원보다는 정결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손님이 오면 씻을 물을 주는 것입니다. 부정한 것들과 자신도 모르게 접촉했을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을 정결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① 요한복음 2장에 기록된 가나 혼인잔치에서 유대인의 정결예식에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요 2:6). 이 부분은 뒤에서 조금 더 설명을 할 것입니다.
식사 전후에 씻기 위함입니다.
②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는다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난하는 것도 정결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마 15:2)
[마태복음 15:2]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은 이들에게 손을 씻는다고 정결해지는 것이 아니야! 네 마음 속에 있는 더러운 것들이 사람을 더럽한다고 했습니다 (마 15:17-29)
그러니까, 세례와 연관시켜 본다면 외적 세례 (물세례)보다 내적 세례(성령세례)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주 말씀드렸지만, 성령세례는 죄사함의 증거입니다. 죄사함 받은 자를 인쳐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증하는 것입니다.
▶ 그래서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온 세례요한의 세례는 이런 구약의 정결예식보다 한차원 진보된 회개의 요구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 3: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 세례는 크게 물세례와 성령세례로 나눌 수 있지만 세분한다면 ① 구약시대의 정결예식 ② 회개를 강조한 세례요한의 세례 ③ 예수의 이름으로 주는 물세례 그리고 다음 단계는 ④ 성령세례인 것입니다. 점점 발전되고 차원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결예식과 요한의 세례 단계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음으로 회개하여 받는 성령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행 19:3-5), 오늘 베풀고자 하는 것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주는 물세례인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삼위 하나님의 한분이므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 베풀고 있는 것입니다.
2) 두 번째 구약에서의 세례의 모습은 출애굽 사건에서 홍해를 건너는 것과 요단강을 건너는 것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이 두 사건은 영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집단적으로 세례를 받는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바울은 홍해바다를 건널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한 구름기둥과 좌우에 벽이된 바닷물을 통하여 세례를 받았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물세례인 것입니다.
▶ 유월절을 시작으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거처 마침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일곱 족속을 몰아내고 정착하는 것은 구원의 전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홍해바다를 건너는 것이 물세례라면 성령세례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구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요 3:5)
물은 물세례, 성령은 성령세례라고 본다면 출애굽 과정에서 분명히 성령세례의 과정이 있을 것입니다.
세례요한도 자기는 물세례를,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풀것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마태복음 3: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요한복음 1: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바울은 요단강을 건너는 것에 대한 영적인 해석은 하지 않았지만 저는 요단강을 건너는 것이 성령세례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여정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것은 예수님을 예표하는 여호수아의 영도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 기쁨의 떡도 먹고, 포도주를 마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출애굽 과정에서도 두 번의 세례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한번은 홍해바다에서 또 한번은 요단강을 건너면서 받는 것입니다.
① 홍해바다에서는 모세가 지팡이를 바다 위로 내밀매 바다가 갈라져 백성들이 바다 가운데로 지나갔습니다. 죄우에 벽이된 물 사이를 지나간 것입니다 (출 14:16-28). 모세를 통한 물세례입니다. 요한의 물 세례와 같습니다.
② 요단강을 건널 때에는 여호수아를 통하여 믿음으로 발을 요단강에 잠글 때 요단강을 갈라져 강을 건넜습니다(수 3:15-16)
여호수아는 예수님(예수아)을 예표하므로 예수님을 통한 세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배에서 솟아나는 생수의 성령세례의 모습인 것입니다(요 7:38).
▶▶▶ 가나의 혼인잔치에 정결예식을 위한 물이 담긴 돌항아리 여섯 개가 놓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요 2: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이것은 구약의 정결예식과 물세례 차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통하여 그 물이 포도주로 바뀝니다. 이것은 성령세례를 보여줍니다.
물세례의 외적인 세례에서 → 마음이 변하는 내적인 성령세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외적 세례인 물세례 차원에 머물면 안됩니다. 성령세례 차원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3. 홍해라는 바다를 건너면서 영적으로 물세례를 받았다고 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구원을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세례 이후에 죄된 삶을 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의 삶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광야생활은 이것을 보여줍니다.
1) 출애굽 유월절 사건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와 같은 사탄의 종,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의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습니다.
→ 이것은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죽으심과 그 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이제 죄의 종에서 벗어나 죄된 삶을 끊고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2) 그리고 홍해를 가르는 사건을 경험하는데,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물세레의 여정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난날의 죄를 청산하고 죄에 대하여 죽고, 새로운 삶으로 살고자 결단하는 결단인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연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나는 경험인 것입니다.
[로마서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죄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있는 자로 사는 것입니다.
[로마서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또한 앞으로 어떻게 살겠다고 하는 선한 양심의 간구하는 의식이 세례인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그러므로 세례는 믿음의 시작이요, 구원의 시작입니다. 아직 구원의 여정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 그래서 세례를 받았다고 다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의 더러운 죄가 다 없어졌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사탄에서 하나님으로 주인이 바뀌고 소속이 바뀐 것입니다.
3) 세례를 받은 후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됩니다.
출애굽 여정이 바로 그런 훈련 과정입니다. 광야교회 생활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들은 이 훈련, 광야생활을 통하여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따르고, 거룩한 백성으로 다듬어져 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적 군대로 성숙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군대 훈련소에서 충분한 자유가 없고 오직 명령에 순종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법, 말씀의 법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래서 쓴 물이 나온 마라에서 처음으로 법도와 율례를 주십니다(출 15:25).
말하자면 훈련받는 군인에게 규율을 주는 것입니다.
법도(히,호크)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법입니다.
세례받은 후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살아야 하는 법입니다. 예를 들면 다른 신을 섬기지 않는 것, 우상을 만들지 않는 것, 안식일을 지켜 예배를 드리는 것 등입니다.
율례(히, 미쉬파트)는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를 규정한 법입니다.
하나님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인간과의 관계도 새롭게 정립되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 하위 규정으로 도둑질 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살인하지 말고 등등. 이웃을 헤치면 안됩니다.
홍해바다를 통하여 세례를 받은 후 마라에서,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포함하여 다양한 법을 주시는 것입니다. (출 20장~23장)
▶▶▶ 이것은 오늘날 세례받은 후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법을 배우고 법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준 그 법도와 율례를 가지고 언약을 맺는 것입니다. (출 24장)
→ 이 법을 지키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안지키면 백성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죽게 되거나 처벌을 받습니다. 언약을 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세례를 받은 후 광야에서 훈련을 받는 영적 시즌 동안에는 농사도 지을 수 없으니 마음대로 먹고 싶은대로 먹을 수도 없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신명기 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군대에서는 국가에서 주는 것만 먹을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군대 짠밥과 같은 것입니다. 군인들이 바깥으로 나가 몰래 사먹으면 처벌을 받습니다.
오직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일용할 양식인 만나만 먹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도 쌓아놓고 먹을 수 없습니다. 그날 그날 먹을 양식만 주시는 것입니다
(출 16장), 광야에서 매일 매일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먹는 것도 기적입니다.
그리고 광야에는 특히 물이 귀합니다. 오아시스를 만나면 그나마 좋겠지만 가는 곳마다 오아시스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셔서 200만 명이 넘는 그 사람들과 우양을 먹게 합니다 (출 17장) 이것도 기적입니다. 하지만 광야 훈련 기간에는 힘든 여정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 그래서 그들은 한 때는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다“고 불평을 하면서 고기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메추라기 고기를 한달 동안 주어 먹게 했는데, 이 원망으로 심히 큰 재앙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민 11장).
[민수기 11:6]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하나님께서는 광야 훈련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한 훈련 과정이므로 이런 삶에도 감사하고 오직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 생활하면서 어떤 상황이 다가와도 훈련과정, 시험과정이라 생각하고 감사하며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 그런데, 출애굽 1세대들 모두 곧 여호수아와 갈렘을 제외하고는 한명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불순종 때문입니다. 죄 때문입니다. 그들은 오늘날로 본다면 세례를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히브리서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히 4:3,11)
젖과 꿀이 흐르는 이 가나안 땅에 출애굽 1세대들은 못 들어간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못했고, 불순종함으로 영적 훈련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반드시 훈련이 시작됩니다. 이것을 말씀으로 이겨야 합니다. 순종하므로 이겨야 합니다. 인내해야 합니다.
출애굽 1세대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작전, 요단강 근처에 있는 세렛시내를 지나기 전에 다 죽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불순종의 세대들입니다. 가나안 땅에 영적 군사가 되어 들어갈 자격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 물론 세렛 시내를 건넌 출애굽 2세대들도 일부는 싯딤에서 모압 여인들과 음행함에 따라 염병으로 이만 사천명이 죽었습니다 (민 25:1-18)
이들은 모압여인들이 꼬임에 넘어가 그들의 바알브올을 섬기고 이후에 실제 음행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영적 과정에 있는 자는 죽어 저 천국에 들어가기가지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죄의 유혹은 항상 있기 때문입니다.
지도자 모세와 아론, 미리암도 다 가나안 땅에 못들어갔습니다.
이들이 지옥에 갔다고 말할 수 없지만, 영적으로는 가나안 땅의 풍성함을 이 땅에서 누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안식을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광야 생활만 하다가 간 것입니다. 오늘날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하고 율법에 매여 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4) 드디어 예수를 예표하는 여호수아의 영도 아래 요단강을 건넙니다.
이것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성령세례의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주어지는 그 배에서 생수가 터져 나오는 경험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그러면 이들에게 해야할 사명이 무엇이니까? 영적으로 성령으로 인쳤기 때문에 큰 틀에서는 대부분 구원은 받았다고 봅니다.
▶ 광야 생활은 율법적인 삶으로 율법을 지키냐 안지키냐 하는 훈련의 삶이라면, 안식의 땅인 가나안 땅은 율법이 아닌 예수님을 통해서 믿음으로 들어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으로 안식이 주어진 땅입니다. 그리고 이제 훈련을 마치고 집에 온 것같이 맛있는 것도 먹을 수 있습니다. 좋은 옷도 입을 수 있습니다. 포도주도 있습니다. 다양한 곡식도 과일도 있습니다. 물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광야보다 더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곳입니다. 전반적으로 안식입니다.
▶ 출애굽 2세대들은 믿음의 세대들입니다. 그들은 요단강이 항상 언덕에 넘치는 곡식 거두는 시기에 발을 믿음으로 물에 디딜 때에 요단 강이 갈라진 것입니다. 요단강을 믿음으로 갈랐습니다 (수 3:15).
[여호수아 3:15]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성령세례는 믿음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율법에 따라 억지로 따라 다니는 자에게는 물세레 수준에 마물게 됩니다 (요 7:39).
▶ 그러나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들에게도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말씀에 따라 가나안 일곱 족속들과 전쟁을 하여 그 땅을 취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고도 영적 전쟁을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광야교회에서도 아말렉과 전쟁을 했던 것처럼 영적 전쟁은 있습니다.
이것은 훈련을 위한 전쟁입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서는 약속의 땅을 물려받기 위한 본격적인 영적 전쟁인 것입니다. 기업을 얻기 위한 전쟁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것을 예표하지만 가나안 일곱 족속 곧 가나안, 헷, 아모리, 브리스, 히위, 여부스 족속을 완전히 몰아냈을 때 이 땅에서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그들은 가나안족속들을 다 몰아내지 못하여 끝임없이 전쟁을 하거나 그들이 옆구리에 가시가 되어 괴롭힘을 당하게 됩니다(삿 2:3).
성령세례를 받고 영적 기업을 얻기 위하여 그리고 누리기 위하여 전쟁에서 승리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가나안 땅은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땅이라기보다는 저 영원한 안식, 사탄 마귀의 역사가 없는 천년왕국, 새하늘과 새 땅을 조금 경험해 보는 곳이기도 합니다.
가나안 땅에서의 영적 전쟁은 치열하지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의 군대장관을 보내주셨고, 우박으로 왕벌로 적군을 치셔서 이기게 하십니다 (수 10 :11, 출 23:28, 신 7:20).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믿음으로 취하면 됩니다. 순종하면 됩니다. 두려워 떨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는 곳마다 승리를 했습니다. 그들의 능력으로 실력으로 이긴게 아닙니다. 이기게 해 주신 것입니다.
[여호수아 10:11]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우박 덩이를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 많았더라
<맺는 말>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물세례, 성령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물세례를 받은 후에는 광야와 같은 곳에서 훈련을 해야 합니다.
이때에 내가 예수님과 함께 죽고 장사되어야 합니다. 죄에 대하여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듯이 새생명으로 태어나야합니다.
[로마서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이것이 끝이 나닙니다. 주어지는 말씀에 따라 순종함으로 승리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갑니다. 약속의 기업이 있는 요단강을 건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광야에서 다 죽게 됩니다.
요단강을 건너면서 성령을 받고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성령의 능력으로 가나안 일곱 족속을 몰아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기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때에 간혹 넘어지더라도 물두멍에서 손을 씻듯이 회개하면 됩니다.
▶ 베드로가 성령을 받고 복음을 외칠 때 하루에 삼천 명이나 세례를 받았습니다 (행 2:41). 대산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세례는 예수님의 유언입니다. 모든 민족을 제자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셨습니다 (마 28:19-20)
이것이 교회의 사명인 것입니다.
오늘 세례를 받는 분을 축복하며 교회의 일원이 된 것을 환영하며, 이제 성도로서 예수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날마다 승리하여 이 땅에서 진정한 안식과 평안을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