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사도행전을 공부할려고 한 목적은 교회의 참된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서였다.
흔히 설교자들이나 목사님들이 말씀하시기를 교회의 모습은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초대교회의 모습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나는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초대교회의 모습을 제발견하기 위해 사도행전 공부를 할려고 하였다. 하지만 막상 공부를 하면 교회의 모습은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간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교회의 본래의 모습을 발견하고자 안디옥 교회의 모습과 그 형편을 살리고자 한다.여기서 많은 주석가들의 주석을 참고 했지만, 더욱더 나아가 나의 의견과 교회에 대한 가치관이 새롭게 형성되길 바란다.
-서론적 이해-
9장의 마지막단락과 10장의 기록은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한 베드로의 준비를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11장의 서두는 복음의 보편성을 전하기 위한 사도들의 준비를 묘사하고 있으며, 11장의 이 마지막 단락은 그와 동일한 목적을 위한 한디옥 교회의 묘사를 준비하고 있다. 교회의 초점은 북쪽 , 즉 놀랄만한 전도본부인 시리아 안디옥교회로 옮겨지고 있다. LAB주석 시리즈 사도행전 그랜트 오스본 편집 성서유니온선교회 P.281
성령의 역사적인 섭리-
1. 예루살렘에서의 환난과 핍박이 여러지역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라는 사실 2.핍박받아 흩어진 성도들이 율법을 준수하던 히브리파 유대인들보다는 헬라파 유대인들이었다는 사실(이로 인해 더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빨리 전파) 3.비록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지만 복음을 들은 자들이 다시 안디옥의 이방헬라이에게도 전하였고 성령께서 이 헬라인들의 심령을 감동시켜 복음이 급속적으로 전파된 것 4.바나바의 파송이전에 베드로의 변론으로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을 향한 하나님의 복음 사역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 5.안디옥이 인구 50만을 넘는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다음의 대도시이기 때문에 이곳을 통해 이방인 교회의 중심지가 되고 바울의 3차선교여행의 출발지며 선교기지가 된 것 그랜드 성서 주석 성서 아카데미 P.285
19절
스데반의 일ㅡ역사의 과거에 되돌아가 (8:4) 역사의 다른 흐름을 설명하고자 한다.
이 일로 몇몇은 해안선을 따라 베니게, 구브로 및 안디옥에 전도하였다. 하지만 대상은 헬라계 유대인에게 한하였다. 신약주해 사도행전 이상근 저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 교육부
첫 시작 단어인 μεν ουν은 새로운 장면을 이끈다. 이것은 사도행전에 주로 사용되는 어구 가운데 하나로서 그 기능은 앞에서 서술된 내용과 연관이 있기는 하나 새로운 장면으로 옮겨진 이야기를 도입하는 것이다. 국제 성서주석 헨렌 지음 한국신학연구소 p.531
베니게-베니게:남쪽으로는 가르멜에서 북쪽으로는 엘류테로스강에 이르는 기껏해야 가로 12킬로미터 세로약 120킬로미터 정도의 해안지역이다. ibid p.531
베니게: 120마일 길이에 약 10마일 넓이의 해안지대로서 엘루에루스강에서부터 갈멜산 남쪽 도라에 이르는 지역. 인종학적 명칭은 페이누스,푸니크스 또는 페니쿠스이다. 그리고 이 명칭은 칼타고인들에게 적용된다. 풀핏 성경 주석 한국광보개발원 p.158~163
:베니게-레바논 산맥과 지중해 연안을 사이로 하는 약 200km에 달하는 긴 평원지역이다. 오늘날에는 레바논 지역이라불리운다. 이 지역에는 유명한 갈멜산이 있으며 주요도시로서는 두로와 시돈이있다. 그랜드 주석 p, 270
키프르스:주전 22년부터 원로원이 있었던 지역, 집정관이 있던 곳은 바보. 헨렌 ibid p.531
구브로:베니게를 마조보고 있는 해안지방으로서 일찍이 베니게인들이 식민지를 개척하였던 곳이다. 풀핏 p. 158
구브로- 구약시에는 깃딤(민24:24)이라 불리운 곳으로 지중해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섬이다. 이 섬은 안디옥, 다소, 길리기아 지방과 마주하여 지중해의 요충지며 바울의 동역자 바나바의 고향이기도 하다. 오늘날 에는 ‘키프러스’,떠는 ‘싸이프러스’로 불리운다.
지중해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인 구브로는 오늘날의 터어키인 길리기아 남쪽 74km,시리아 서쪽 96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구약시대에는 수도 키티온의 이름을 따서 깃딤이라불렸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키프로스로 잘 알려져 있다. 구브로 섬은 그 길이가 224km에 달하며 그 폭은 96km가량 된다. 길리기아와 시리아의 해안에 인접해 있으며 소아시아와 이집트 사이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역사와 문명에 있어 주요한 요충지였다. 구브로의 남서지역은 산악지대인데, 제일 높은 산봉우리는 해발 1951m인 트루도스이며, 북동부에는 메조리아 대평원이 있다. 구브로는 비교적 농업과 목축이 발달하였으며 또 천연자원이 매우 풍부했다. 특히 구리가 유명했는데 구브로에 해당되는 헬라어의 뜻이 바로 구리라는 뜻일 만큼 일찍부터 광범위하게 구리가 채금되었다. 그리고 고대로부터 많은 꽃들과 과일로도 유명한 곳이 바로 이곳 구브로였다. 그랜드 ibid p.280
안디옥- 지중해안에서 동쪽으로 27킬로 지점에 오론테스강변에 서 있는 도시로 로마행정구로는 수리아주의 수도. 이 곳은 주전 300년 알렉산더 대황의 후계자의 하나인 세레우커스 니카톨이 건설하여 그의 아버지이름을 따라 안디옥이라 함. 그 후 로마의 직할시가 됨, 이곳의 인구는 마카비시대에 12만을 헤아렸다고 하므로 신약당시에는 50만을 넘는 대도시였음, 요세푸스는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다음으로 로마제국에서 셋째가는 대도시였다고 전한다. 도시의 외곽은 로마보다 오히려 장대하였다고 한다. “동방의 여왕” 또는 “동양의 로마”라고 할 정도로 아주 크고 멋진 도시였다. 시민들은 부유하고 사치와 향락에 빠져서 생활하고 있었다. 안디옥 교회의 초대 감독은 베드로라는 전설이 있으나 신빙성이 약하고 제 2세기 초기의 감독은 순교자 이그나티우스(ignayius)였다. 이상근 ibid p,177
안디옥:많은 σεβομενονοι(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와 함께 강력한 유다인 거류민단을 가지고 있었다. 헨렌 lbid p.531
안디옥: 구약의 하맛 또는 리블라라고 칭해지던 곳에 서 있었다. 이 역사책의 저자인 누가와 수신자인 데오빌라도 안디옥 출신인 것같이 보여진다. 성서 주석시리즈 사도행전 상 메튜헨리 저 p.462~473 기독교문사.
안디옥:수리아에 있는 헬라 왕국의 수도, 안티오쿠스는 알렉산더대왕의 장군 중의 한 사람, 이곳은 베니게 북방 약 180마일 떨어진 변경에 자리잡고 있음,, 이곳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고 셀루쿠스는 그들에게 헬라인과 똑같은 정치적 특권을 부여하였다. 폴핏 ibid p, 160
안디옥:예루살렘 북쪽으로 약 48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중요한 상업 중심지며 로마에서 세 번째 큰 도시 지중해에서 24킬로 떨어짐, 헤롯왕의 도움으로 황제 아우구스투스와 티베리우스는 이 도시를 미화시킴. 그 도시는 아름다운 곳에 있었고 물공급이 풍부,또한 유대인들이 많이 거주, 안디옥은 매우 타락한 도시이며 여러 가지 이교적 제의를 위한 예배 중심지, 악한 풍조들과 성적부도덕을 부추기는 이방종교의식이 많았던 곳이기도 하다. LAB주석 P. 294
안디옥(280)-오늘날 터키의 안타키아(Antakya)에 해당하는 곳, 이 도시는 오롵네스강의 하구에 위치해 있고 근처에 실피우스 산이 있어서 자연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곳. 또한 이러한 지리적 위치의 특성상 안디옥은 일찍부터 지중해와 시리아 그리고 근동 국가들간의 무역의 중심지로 발전 하였다. 이 안디옥은 남서 소아시아에 위치한 비시디아 안디옥 과는 구별되어 그냥 안디옥이라고만 불린다. b.c300년 알렉산더 대왕 사후 스스로 왕이 된 셀류쿠스1세에의해 시리아 지역의 중심 성읍으로 건립 되었다 건립자의 아버지인 안티오쿠스(antiochus)의 이름을 따서 안디옥이라고 명명 됨. 이 도시는 정치적으로 시리아 왕국의 통치자 셀류쿠스가 헬라와 마게도냐에 대한 지배를 확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함. b.c63년 경에 시리아 왕국이 로마에 의해 멸망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안디옥은 정치,경제,문화,종교적으로 발전한 부유한 도시로 명맥을 유지해 나갈 수 있었다.종교는 고대의 아스타레트와 로마의 아폴로신을 숭배했으며 그 외에도 잡다한 각종 잡신 숭배가 성ㅐ앴다. 도시민들은 대체로 부요했으며 향락을 즐겼다. 이는 안디옥이 동지중해 지방을 군시적,상업적으로 장악하려던 로마의 전략적 요충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로마제국에는 안디옥이라는 이름이 많이 나오지만 신약에는 구증 비시디아 안디옥과 수리아 안디옥 두곳만이 언급되고 있다.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지기 이전에 로마제국중 교회가 세워진 곳은 여러곳 있었지만, 모두 팔레스틴에서 우대교인들의 핍박에 의해 흩어졌던 유대인성도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이며 순수하게 이방인 성도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는 안디옥 교회가 최초이다. 또한 안디옥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세게 선교를 위해 파송한 이방선교기지의 전초가 된 교회이다. 그 후 약 2세기경에는 이그나티우스가 감독으로 있었고, 데오드로,크리소스톰과 같은 식견높은 지도자들이 뒤를 이어 로마,알렉산드리아와 견줄만한 신학의 요충지로 명성을 날리게되었다.(286)ad6c경 콘스탄티노플이 세계 교회의 중심지로 등장하기 까지 중요한 역할을 한 교회로 남았다.그랜드 주석 P. 288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유대인들은 곳곳마다 회당을 가지고 있었음으로 그들은 회당에서 유대인들을 만나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LAB 주석 P. 293
유대인 신자들이 핍박을 받아 흩어져서 복음을 전했는데 유대인에게만 한정되었다.
예루살렘은 이제 선교의 중심지가 아니었다. 그 이유는 기독교에 대한 반감때문이기도 하고
이방인 전도에 대한 새로운 열정때문이었다.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누가가 이렇게 복음이 유대인에게만 전해졌다고 하는 것은 조만간 이떤 경위로든 이방인에게도 복음이 전해질 것임을 암시하기 위해서다.그랜드 ibid p.282
전하다:이 곳에 복음을 전한사실은 성직자의 권위있는 목소리로 전파된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을 받은 평신도들이 전파했다는 것은 주의할만한 것이다. 폴핏 ibid p.162
20절
-구레네사람:13:1절에의하면 루기오와 아마도 니게르라고 하는 시몬도 그 출신이었을 것이다. 헨렌 ibid p. 532
헬라인:사본에 따라 다르게 Ελληνας 또는 Ε λληνατσς로 읽히기 때문에 이들이 그냥 이방인 헬라인인지 아니면 유대계 헬라인인지는 논의가 있다.하지만 이방인으로 보는 견해가 더 유력하다( alford, bruce, vincent등) 이상근 ibid p. 177
돌아오더라: επεστρεψεν 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돌아와는 것으로처음으로 회개하는 자에게도 (3:19) 이미 믿는 신자의 신앙적부흥( 눅22:31,약5:19)에도 응용된다. ,이상근 ibid p.177
돌이키다: 돌이키다(επιστρεψειν)는 회개한다(μετανοειν)과는 다른 의미다 회개하다는 악으로부터 떠난다는 의미를 강조하고 그에 비하여 돌이키다는 새로운 방향으로 향한다는 긍정적 의미를 지닌다. 즉 이것은 하나님과 그이 주님 그리고 새로운 생활을 향해 지향한다는 의미이다. 헨렌 lbid p.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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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인:헬라파 유대인을 표시하는 Ελληνιστας대신에 헬라인을 의미하는 Ελληνας 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사본이나 역본 그리고 교부들의 강력한 권위에 의해 지지를 받고 있다.여러 비평가들에 의해서 Ελληνας로 읽는 것이 올바르다고 입증되었다. 또한 그는 이 단어들이 ‘개종자’들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여기서 생각하ㅡ 여기서 언급하는 헬라인들은 고넬료와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나, 할례를 받지 않는 헬라인으로서 회당에 참석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던 자들로 생각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어떠한 헬라인들은 그들의 도시에 널리 퍼져 있던 미신과 방탕한 풍조가 싫어서 유대인의 가르침과 예배를 동경하였음에 틀림없다. 폴핏 ibid p. 163
헬라인에게도 말하며-헬라인이 시내산사본,알렉산드리아사본 베자사본에는 헬레나스("Ελληνας)로 되어있고 본문역시 이것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다른 바티칸 사본, 바질사본,풀피리안사본에는 헤레니스타스(Ελληνιστας)로 되어있다. 본문이 따르고 있는 전자는 글자 그대로 이방인인 헬라인을 지칭하며 후자는 행 6:1과 같이 헬라계 유대인을 지칭한다, 그랜드 p. 286
21절
구약적 표현이다. 이 표현을 통해 이방인에게 복음이 증거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나타내고자하 하는 누가의 의도이다.
21:돌아오더라-하나님의 피조물로서 마땅히 하나님을 경외하여야 하나 그러지 아니하던자들이 이제는 본연의 자세로 돌아오게 된 것을 말함. ibud p. 286
22절
22- 귀에 들어가서: 구약성서적 언어양식(사5:9)적 표현이다. 헨렌 lbid p.533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은 주변의 지방에서 복음 사업이 어떻게 계속되는가를 늘 탐문하였다. 아마 그들은 여러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드로가 서신 왕래를 계속하였던 것 같다. 그러므로 안디옥에서 많은 수효의 사람이 회심했다는 소문이 곧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전달된 것 같다. 메튜 ibid p.470
바나바가 예루살렘교회를 위해 해야 할일은 사도베드로에게 계시된 복음이 미치는 범위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설명하고 유대인들을 위해 일했던 사람과 이방인들을 위해 일했던 사람들이 협력하여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사역에 비추어볼때 바나바의 성품은 매우 중요했다. 그의 인품에 따라 그 일의 성공이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매우착하고 관대한 시람이라야 여러 가지 어렴우에 당면할 때 올바로 대처하게 될 것이다. 생활에 있어서 재능보다 인격이 더 훌룡한 일을 해내는 경우가 많이 있고 재능은 경건한 성품과 일치되고 셩별되어야만 비로소 값진 승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폴핏 p.194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예루살렘 중심의 전도 체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안디옥의 구브로 출신 전도자는 바나바와 동향인이므로 혹시 서로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이상근 ibid p. 180
23절
붙어 있으라 : πρισ 같이+μενω 머물다. 굳게 머물러 있으라는 뜻 이상근 ibid p.181
23-붙어있으라: προσμενενιν은 거하다,계속하다, 견디다라는 의미이다. 폴핏 ,ㅔ\p.168
23:굳은마음으로-τη προθεσει της καρδιας 프로데세이는 앞에 두다 또는 진열하다 라는 뜻의 명사 프로티데미에서 유래한 것으로 서 특별히 성전에 진열된 “진설병”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였다.그러나 다른 경우에 있어서는 이것은 마음을 정하다라는 의미로서 의도나 의향또는 뜻으로 번역된다. 본문에서 이 단어는 바로 이런뜻으로 쓰인것이다. 한편 카르디아스는 마음 혹은 중심을 뜻하는 카르디아의 단수소유격 명사이다. 그러므로 이상의 의미들을 종합해서 본문의 굳은 마음으로 직역하면 그 마음의 의지대로가 된다. 이는 강제적인 압박에 의한 결정과 아주 대조되는 것이다. 본문에서 바나바는 안디옥 성도들을 향해 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자발적으로 응답하여 주께 붙어있으라고 권면한 것이다. 그랜드 p.287
24절
착한:αγαθος는 현저한 의미에서 도덕적 미덕인 선함을 나타내는 말이고 καλοσ κ'αγαθος는 일반적으로 존경할 만한 하고 선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가 착하다는 것은 후에 마가문제를 두고 바울과 다툰 일을 후에 누가가 기록해야 했기 때문에 누가는 그의 독자들이 그 사건으로 인해서 마가의 동료들의 기질이나 성품을 잘못 생각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였다. 폴핏 p.193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이라는 표현은 이미 6:5에 나온 말로 스데반에 대한 표현과 같은 저자의 애용구라고 볼 수 있다. 이상근 ibid p.182
24:착한사람-이는 구제와 같은 선행을 일삼는 자라는 뜻.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확실한 주님의 제자라는 의미.
즉 수직적으로 하나님께나 수평적으로 사람에게나 진정한 신앙의 면목을 지닌 자임을 보여주는 것. 그랜드 p. 288
25절
바나바가 다소에 갔다가 사울을 발견하고 그를 안디옥에 데리고 간 것은 주후 43년이나 아니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후 정확히 10년째가 되는 봄이었다. 실루기아에서 다소의 항구까지 가려면 약 12시간의 항해가 필요하였다. 그리고 육로로 갈 경우 안디옥에서 8마일을 여행하면 다소에 갈 수가 있다. 폴핏 ibid p. 170
25:사울을 찾으러-사울을 찾기 위해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북서쪽으로약 13km에 위치한 다소로 갔다. 여기서 ‘찾으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나제테사이(αναξητησαι)는 ’한 집 한 집 뒤져가며 세밀히 찾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러 바나바의 정성어린 노력으로 사울은 바울이 되어 이방선교의 핵심을 이루는 사람이 되었는데, 이는 바나바의 개인판단에 의해 된것이다. 즉 예루살렘 교회가 바울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고 유다에서는 죽을 위기까지 겪었으므로 바나바가 보기엔 바울이 이방선교지인 안디옥에서 활동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해서였다. 그러한 논리적 사오하안단과 아울러 여기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이방 선교를 위한 뜻이 이있었다. 그랜드 .p. 288
25-이절은 바나바가 어떻게 착한지를 설명해 준다. 그는 두 가지 점에서 착한 종류의 사람인 것으로 나타난다. 첫째는 그가 은둔해 있는 사람을 들어 활동적이고 유용한 사람으로 인도하는데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는 사실이고 두 번째는 그는 안디옥에 데려다가 설교자(14:12)로 삼았다. 아마도 사울은 더욱 인기있는 설교자가 된 것 같고 그가 이같이 밫을 발하므로 바나바는 여기서 인기가 떨어진 것 같다. 바나바는 일이 공적인 사업을 위한 것이었을 때 그가 인기가 떨어지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였다. 그때 당시의 기독교에 대한 편견이 있었는데 이 편견된 생각을 제거시키기 위하여 기독교인들은 스스로 명칭을 정하였고 그러므로 기독교ㅢ 적들도 바르게 그들을 호칭 할 수 밖에 없도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그들이 그들의 명칭을 그리스도의 이름인 “예수”라는 데서 취하지 않고 그의 직능을 나타내는 칭호인 “그리스도”즉 “기름부음 받은 자”란 명칭에서 그들의 명칭을 만들었다. 이러므로 그들은 자기들의 호칭을 통하여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였다. 메튜 ibid p.471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αναξητησαλ)̈ : 이 동사는 합성어로 한 집 한 집 물어서 찾는 것을 뜻한다.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다소까지 먼길을 갔고 다소에서도 사울의 주소를 몰라 힘들여 찾은 것이었다. 이로써 사울의 십여년 간의 준비와 은거의 생활은 끝나고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주의 부르심을 받은 대로 이방의 대사도로 출발할 차비에 오란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가 그를 환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9:20~30)안디옥으로 오는 것이 좋아고, 여기서 일년간을 바나바와 같이 힘써 일하며너 준비를 갖춘 후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이방 대전도에 나섰던 것이다. 이상근 ivid p.182
다소:중요한 통로에 있었던 다소는 길리기아 지역의 중요한 도시였으며 교역을 ㅜ이해서도 중요햇지만 헬레니즘적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13:1의 전승으로 보아 누가는 바나바의 다소여행을 추론했을 것이다. 헨렌 ibed p.534
26절
26:일년간-이 상겨의 정확한 시기는 알수 업으나 혹자에 의하면 a,d 43~44년이라고도 한다. 그랜드 p. 288
제자들이- 본문의 제자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마데테스’(μαθητης)로, 이 단어는 예수님의 12제자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고그의 가르침을 따른 모든 사람들을 지칭한다.(160) 단, 이제까지는 이 용어가 유대인 중의 기도교인들을 ㅣ칭하였는데, 본문에서는 안디옥 교회의 도들을 지칭하는데도 사용되었다. 구원의 장벽이 무너졌으므로 성도들을 일컫는 용어의 장벽도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ibid
그리스도인;“그리스도의 것”이라는 뜻이다. 이 명칭은 신약에 세 번 나온다.(26:28,벧전4:16) 이 명칭의 기원에 관하여는 두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이 어미가 라틴식으로 끝나기 때문에 로마인이 부친 이름이라는 설(meyer)과 여기에 반대하는 의견(holtzmann, knowling)이 있고 또 하나는 이것이 경멸적 별명이었다는 설(lumby,gaylord)과 거기에 반대하는 의견이다. 행 26;28의 경우는 경멸적 의미이고 벧전 4:16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당시에는 수령의 이름을 따르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헤롯인(herodiani) 폼페이인 (pompeiani),가이사인(gaesariani)등이 있다. 이 외에 유대인들은 신자를 “나사렛인”이라 불렀고(24;5) 또 “갈릴리인”이란 별명도 있었다.(1:11)그러나 그들 자신들의 칭호는 성도들 혹은 형제 였다. 안디옥에서 불린 “크리스챤”이란 명칭은 점차 보편화 되여 2세기 초에는 신자들 측에서 받아들여 공식적 명칭이 된것이다. 이상근 ibid p.183
그리스도인: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이 주어졌다는 것은 교회역사상 기억할만한 사건이었다.그리스도인 즉,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뜻을 가진 이 단어의 라틴어 형태를 볼 때 이것은 이방인에 의해서 만들어진 명칭임에 틀림없다. 즉 안디옥에 있는 로마의 법정이나 군대 또는 그들 사이에서 사용되던 로마식 어법의 영향을 받고 있던 헬라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리스도인 즉, 메시야를 따른다는 의미의 이 말은 유대인에 의해서 붙여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다. 그리고 조롱하기 위해서 이 이름을 붙여ㅆ다는 증거가 전혀없다. 수이다스는 글라우디오황제가 통치할 때 베드로가 유디우스를 안디옥의 감독으로 임명했을 때 이전에 나사렛 사람과 갈리리 사람으로 불리웠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바꾸었다고 전한다. 이 이름은 예수께서 메시야이셨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이름이기 때문에 이 이름이 유대인들이 부여한 것이라고 불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믿는 자”, “형제”, “성도”등 널리불리워진 이름과 같이 제자들이 지은 이름도 아니며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지은 이름도 아니다. 이 이름은 신속하게 성장해 나가는 단체를 비난하는 이름이거나 편리한 데루 부른 이름이었다.(176) 이 이름을 별명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라고 때때로 지적되었다. 악당이며 사기군으로서 십자가에 못박힌 자로서 알려진 사람에 대한 조롱이 있었을 것이고 그러한 자를 섬긴다고 해서 제자들이 계속해서 조소를 받아왔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폴핏 p.196
이다.
그리스도인- 신자들 스스로 이 명칭을 사용한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은 이미 제자들, 형제, 성도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틀림없이 유대인들은 이 새로운 운동과 ‘메시아’(크리스토스“)라는 용어와 연관되기를 원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란 용어는 안디옥의 비 기독교적 문화에 의해 붙여진 이름같다. 성경외에 최초로 이 용어를 사용한 예는 네로 황제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어떻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식별이 되는 그룹, 즉 유대교와 구별이 되는 그룹이 되기 시작했다. LAB 주석 P. 297
그리스도인-헬라어 크리스티아누스는 영어 크리스챤으로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 명칭은 신약에 단 세 번 사용되었다.(행26:28,벧전 4:16) 문제는 이 명칭을 누가 붙였는가에 관한 것이다. 첫째는 로마인들이 붙였다는 설이 있고 둘째는 당시에 그 추종하는 대상의 이름을 따서 추종자들의 명칭을 붙이는 경향이 있었으므로 그에 따라 그리스도를 추종하는 무리라는 뜻에서 자연스럽게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또 다른 설은 이 명칭이 경멸적인 호칭으로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역사가 타키투스, 신학자 럼비, 가이로드는 이 명칭이 기독교인들을 경멸하는 의미에서 붙여졌다는 주장을 한다. 사실 아그립바 왕이 이 용어를 사용 하 ㄹ때 약간의 경멸적인 뉘앙스가 풍겨지는 것은 사실이다.(행26:26)당시 기독교인들은 일반일들의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는데 이는 기독교 의 특성이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을 항상 받아들였고, 저항보다는 순교자의 길을 걸었으며 , 또한 유대인들이 종교젹인 니유에서 무조건적으로 경멸시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리스도인이라는 용어는 기독교가 유대교와느 ㄴ완전히 구별되는 새로운 종교로인정받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 한편 이 명칭은 점차 공식화되어 2세기 초에는 완전히 받아들여져 완전한 공식명식으로 되었다.(ignatius) 그랜드 ibid p. 2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