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요지】 업무상의 재해라 함은 근로자가 업무수행중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재해를 말하는 것이므로 그 재해가 질병 또는 질병에 따른 사망인 경우에는 업무와의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하지만, 그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하여야만 하는 것이 아니고 제반사정을 고려하여 업무와 질병 또는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도 그 입증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어서 근로자가 업무상의 질병으로 요양 중 자살한 경우의 인과관계에 관하여도 자살자의 질병 내지 휴유증상의 정도, 그 질병의 일반적 증상, 요양기간, 회복가능성 유무, 연령, 신체적 심리적 상황, 자살자를 에워싸고 있는 주위상황, 자살에 이르게 된 경위 등을 종합 고려하여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할 수 있으면 족하다.
【주 문】 1. 피고가 1996. 2. 5. 원고에 대하여 한 유족보상일시금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을 처분한다. 2. 소송비용은 피고의 부담으로 한다.
【이 유】 1. 처분의 경위 갑제1 내지 3호증, 갑제4, 5호증의 각 2, 을제6호증의 각 기재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달리 반증이 없다.
가. 원고의 남편인 소외 홍00는 1988년경 주식회사 ○○에너지에 입사하여 위 회사가 운영하는 태백시 소재 ○○탄광에서 광부로 근무하였는데, 1991. 9. 4. 갱내 작업 중 초안폭약 및 다이나마이트 발파작업으로 발생한 가스에 질식되는 사고가 발생하여, 가스 중독, 요부염좌, 외상후 자극 장애, 제3∼4 및 제4∼5 요추간 추간판 섬유륜팽윤의 진단을 받고, 피고로부터 요양급여를 받아 치료를 받아오다가, 1995. 10. 26. 13:30경 자택에서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 나. 이에 원고는 피고에 대하여 유족보상일시금 및 장의비의 지급을 청구하였으나, 피고는 1996. 2. 5. 위 망인의 자살이 업무상 입은 최초 상병과 상당인과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원고에 대하여 유족보상일시금 및 장의비를 지급하지 아니하기로 하는 처분(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을 하였다.
2. 처분의 적법 여부 가. 갑제1 내지 3호증, 갑제4, 5호증의 각 2, 을 제4호증의 1 내지 3의 각 기재와 증인 홍선미의 증언, 이 법원의 산재의료관리원 중앙병원 및 대한의사협회에 대한 각 사실조회결과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달리 반증이 없다. (1) 망인은 1929. 1. 12. 생의 남자로서 1973년경부터 광부로 일하여 왔는데, 1988년경 위 ○○탄광에 입사하여 광부로 근무하던 중, 앞서 본 바와 같이 1991. 9. 4. 갱내작업 중 가스중독사고를 당한 후 유독가스 중독증, 외상후 자극장애 등으로 태백시 소재 장성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고, 그후 1991. 12. 31. 인천 소재 중앙병원으로 전원하여 신경정신과 병동에서 계속 입원치료를 받다가 1994. 5. 2. 자진 퇴원한 다음 사망 직전인 1995. 10. 13.까지 위 병원에서 통원치료를 받았다. (2) 망인은 유독가스 후유증에 기인한 위 외상후 자극장애는 고정된 상태이었고, 위 입원치료기간 동안 지속적인 심한 두통, 불면증, 현훈증, 요통, 경부통, 손발저림, 이자극성 등의 증세가 계속되어 보존적 치료에도 불구하고 호전되지 아니하였으며, 여기에 내성적인 성격이 더하여 늘 찌푸린 얼굴로 의욕상실, 자신감 결여 상태에서 말이 없이 주로 침대에 누워서 지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처인 원고가 교통체증 때문에 퇴근시간이 늦는 경우에는 5분 간격으로 전화를 하여 퇴근을 재촉하기도 하였는데, 뇌파검사 등에서는 이상 소견은 없었으나, 다면적 인성검사상으로는 우울증의 척도(D척도)가 65점으로 높이 올라가 있음에 반하여 경조증의 척도(Ma척도)는 38로 떨어져 있었고, 그 결과 만성적인 우울증과 함께 정서 불안이 있는 것으로 진단되었다. (3) 망인은 장기간 입원치료를 받고서도 증세가 호전되지 아니하자 자포자기하여 1994. 5. 2. 자진 퇴원하였으나, 퇴원 후에도 위와 같은 증상은 계속되면서 기억력이 급격히 감퇴되고 또한 자신의 신병 및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을 못함에 따른 비관적 심리상태가 지속되면서 대인관계를 기피하고 말도 하지 아니한 채 거의 외출도 하지 아니하고 집에서 누워지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병을 앓기 전과는 달리 화를 잘 내면서 처와 자녀에게 욕설을 하고 급기야 폭행을 하기에 이르는 등 감정의 기복이 심하였으며, 한편 통증 특히 심한 두통으로 잠을 이루지 못해 진통제와 수면제를 다량 복용하기도 하고 폭음을 하기도 하였는데, 자살 10일전에는 요양종결통지가 왔다고 하면서 더욱 자신감의 결여 상태를 보였고, 자살 3일전에는 처를 폭행하고 자살 전날에는 신경이 더욱 날카로워져서 자녀들을 폭행하였으며, 급기야 1995. 10. 31.에는 신문지 여백에 "나 살기 싫어서 이렇게 간다. 그러나 나의 죽음에 대하여 웃지 말아라. 우리 마누라는 천사보다 더 좋은 사람이다. 다 나의 몹쓸 병으로 많이 괴롭게 됨을 새삼 반성하면서 이 길을 택하기로 했다"는 내용의 유서를 써 놓고, 자택의 안방 문기둥에 쇠파이프를 고정한 후 나일론 끈으로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 (4) 우울증의 척도가 65점으로 높은 경우는 우울 장애 진단이 내려지고, 경조증의 척도가 38점으로 낮은 경우는 우울증에 긴장과 불안감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은데, 개인적 심리적인 이유와 가스중독에 의한 뇌신경계의 장애가 모두 위와 같은 병증의 발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이러한 우울증이 장기간 지속되는 경우에는 평소 자살의 징후를 발견하지 못한 경우에도 갑자기 예측 불가능한 충동적인 자살에 이를 가능성이 있고, 한편으로는 위 상병으로 심신상실이나 정신착란에 이르지 않더라도 자살에 이를 수는 있는 바, 망인의 경우 자신의 신병비관, 생활의 부적응, 유독가스 영향으로 인한 뇌세포 기능의 장애 및 이에 동반된 불안, 우울 등의 정서 장애 등의 전반적인 영향으로 인하여 극심한 흥분, 분노 등 감정 변화에 따라 충동적으로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나. 한편,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4조 제1호 소정의 "업무상의 재해"라 함은 근로자가 업무수행중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재해를 말하는 것이므로 그 재해가 질병 또는 질병에 따른 사망인 경우에는 업무와의 사이에 상당인관계가 있어야 하지만, 그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하여야만 하는 것이 아니고 제반사정을 고려하여 업무와 질병 또는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도 그 입증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어서(대법원 1996. 9. 10. 선고 96누6806 판결, 1992. 5. 12. 선고 91누10022판결 등 참조), 근로자가 업무상의 질병으로 요양 중 자살한 경우의 인과관계에 관하여도 자살자의 질병 내지 후유증상의 정도, 그 질병의 일반적 증상, 요양기간, 회복가능성 유무, 연령, 신체적 심리적 상황, 자살자를 에워싸고 있는 주위상황, 자살에 이르게 된 경위 등을 종합 고려하여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할 수 있으면 족하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1993. 12. 14. 선고 93누9392 판결, 1993. 10. 22. 선고 93누13797 판결 참조).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망인은 갱내에서의 가스사고로 인하여 가스중독에 의한 뇌세포기능의 장애 및 이에 수반된 불안, 우울 등의 정서 장애가 발생하였고, 그 질병이 만성화되어 심한 두통과 불면증으로 계속 고통받고 또한 비관적 심리상태와 정서불안 등이 지속되어 감정의 기복이 심하였으며, 그러한 상태는 계속적인 요양에도 불구하고 4년 가까이 지속되어 그 회복 가능성이 적었고, 더욱이 자살 10일전에는 요양종결 통지까지 받게 되자 실망이 더욱 커지면서 신경이 날카로워졌으며, 이러한 여러 가지 사정들이 자살 당시 56세 9개월 정도 된 망인에게 영향을 주어 극심한 흥분, 분노 등의 감정 변화를 일으키게 하여 결국 망인으로 하여금 자살에 이르게 하였다고 추단할 수 있으므로, 망인의 자살은 업무상 입은 위 질병과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할 것이고, 따라서 망인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3. 결 론 그렇다면, 망인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가 아님을 전제로 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고 할 것이므로 그 취소를 구하는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있어 인용하고, 소송비용은 패소자인 피고의 부담으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