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자유와 가짜 뉴스
최근 우리 사회에 가짜 뉴스로 인한 폐해가 심각한 수준으로 일어나고 있다. 특히 탄핵정국과 조기 대선과 맞물려 각종 음모설이나 조작설이 유포되고 특정 집단의 선전 도구로 가짜 뉴스가 양산되어 정보를 왜곡하고 곡해시키고 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도 가짜 뉴스의 파급력이 엄청나 주류 언론의 뉴스보다 가짜 뉴스의 참여율이 20% 이상 높았고 대부분의 가짜 뉴스가 트럼프에 유리한 기사들로 이루어져 대선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인터넷 보급률 세계 1위인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최근 SNS 상의 각종 카톡방이나 밴드를 보면 주로 외신을 가장하여 특정 집단이 유리하도록 가짜 뉴스가 양산되고 이것이 삽시간에 퍼져 거기에 대한 상대를 비난하는 댓글들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실제로 정확한 팩트가 아닌 왜곡된 가짜 뉴스는 진짜 기사보다 흥미롭고 파급력이 커서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난다. 특히 자기들에게 유리한 여론조작의 도구로 가짜 뉴스를 이용하는 실정이어서 더욱더 큰 우려를 낳고 있다.
화성(인)의 침공
사실 이러한 가짜 뉴스의 역사는 8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8년 젊은 오손웰스가 쓴 소설 ‘우주전쟁’을 라디오 드라마로 방송했는데 이때 라디오 뉴스형태로 ‘화성인의 침공’이 보도되었고 이에 놀란 시민들 100만 명이 피난가는 대 혼란이 일어났다. 그 이후 만우절 장난 기사 등 수많은 사례가 있지만 그래도 언론 매체가 한정되었던 시기인지라 정보가 제한되어 그 파급력이 높지 않았고 소위 ‘디지털 매스 미디어 Digital Mass Media’ 시대인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찌라시 등에 나오는 소문들이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올라 크게 확산되는 추세이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확인되지 않은 ‘썰’ 수준에 머무는 것들이다. 물론 그 ‘썰’중 나중에 사실로 확인되는 것도 있지만.
그러나 최근 가짜 뉴스들은 페이크뉴스, 짤방제조기 같은 합성 앱으로 몇 가지 사항만 입력하면 제법 ‘뉴스’ 형태를 띠고 있고 여기서 양산되는 가까 뉴스들은 SNS 등을 통해 급속도로 유통되어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프라우다 읽는 법
프라우다는 1912년 레닌에 의해 창간되어 1991년 공산주의 권력이 붕괴되기 전까지 소련 공산당 기관지 역할을 한 신문이다.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가 된 지금은 대중적인 신문으로 변했지만 꽤 오랫동안 공산주의를 선전하고 대중을 선동하는 매체로서 당시 동서 냉전시대에 민주주의 자유 언론에 대비되는 매체였다. 몰론 독재국가의 매체들이 정부에 의해 통제되어 체재 선전에 이용되는 사례는 나치의 히틀러가 대표적이었고 지금도 일부 국가들에서 자행되고 있다. 도무지 그 나라(대부분 독재국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알 수 없고 그저 모두가 행복한(?) 기사들로 채워져 있다.
내가 70년대에 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며 배웠던 ‘언론의 자유’란 개념은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차치하고 적어도 설렁 잘못되고 왜곡된 뉴스가 언론에 실리더라도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판단은 오로지 독자(또는 시청자)의 몫이고 따라서 모든 국민은 이성적인 판단으로 뉴스를 접해야 한다고 배웠다. 또한 뉴스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를 해야 하지만 어떤 매체(언론사)도 사설이나 논설을 통해 그 매체의 의견을 얼마든지 개진할 수 있는 것이 언론의 자유인 것이다. 따라서 좌파 언론도 있을 수 있고 우파 언론도 있을 수 있다. 마치 미국에서 전통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하는 매체도 있고 민주당을 지지하는 매체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따라서 국가의 통제를 받는 언론 즉, 공산주의 소련의 기관지 프라우다(진리)도 언론이고 비록 자유는 없지만 체제 선전으로 가득 찬 1면이나 주요 면 큰 기사 말고 귀퉁이 작은 모서리 기사에서 진실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어느 학자가 ‘프라우다 읽는 법’이란 책을 저술했고 그것을 공부한 기억이 있다. 그리고 대학을 다니며 ‘언론의 자유’를 부르짖던 그 70년대에 사실 우리의 언론도 보도 통제를 당하고 정부에 의해 자유가 억압된 시기였다.
그러나 이렇게 왜곡된 정보들을 보는 독자(시민)들이 어떻게 이성적인 판단으로 사실이나 진실에 접근할 수 있을까라는 라는 점에서 ‘언론의 자유’에 대한 일종의 회의도 느꼈다. 모든 사람이 다 이성적일 수는 없지 않겠느냐 하는 점에서다.
그래도 ‘언론의 자유’를 무한대로 허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나는 링컨의 말을 자주 인용했다. 우리가 보통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이란 링컨의 명언을 잘 알고 있지만 내가 고등학생 때 어느 사회 참고서에 있었던 링컨의 명언으로 ‘국민의 일부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속일 수는 있다. 또한 국민의 전부를 일시적으로 속이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국민 전부를 끝까지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란 말이 있었는데 이 말이 내 가슴에 와 닿아 그 후로 내가 자주 써먹는 말이 되었다. 솔직히 뭔가 부정이 판치고 정의가 배도당하는 것을 볼 때마다 또는 너무 억울한 일을 당할 때마다 나는 이 말을 자주 반추했다. 또한 이 말을 ‘언론의 자유’에 대비하면 결국 잘못되고 왜곡된 언론의 정보로 단기간은 독자(국민)들을 속일 수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꼭 밝혀진다는 점에서 언론에는 무한대의 자유를 줘도 된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하루키의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었는데 하루키도 이 말을 인용하며 자기 소설에 대해 많은 비판도 있지만 많은 독자들이 장기간 동안 자기 소설에 열광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소설도 그만큼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항변하며 결국 ‘시간’의 문제라고 말했는데 뭔가 그와 통하는 것이 있어 행복했다.
지하철 공사현장 사고와 H빔
이렇게 언론의 자유를 금과옥조처럼 여겼던 내가 첫 직장인 현대그룹 홍보실에서 일하면서 다시 한 번 언론의 자유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 시절(80년대 초) 서울시내에 지하철 3호선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독립문 구간 공사현장에서 양옆에 축대가 무너지는 대형 사고가 났다. 일반적으로 지하철 공사 방법은 open-cut, 터널링, 교각형 등 세 가지 공법이 있는데 지금은 터널링 공법으로 많이 시공하지만 예전에는 open-cut 공법으로 많이 시공했다. open-cut공법은 7,80년대 우리가 흔히 본 지하철 공법으로 도로를 따라 우선 땅을 판 다음에 지하에 구조물을 만들고 다시 흙으로 덮는 방법이다.
그런데 길을 파고 구조물을 건설할 때 양 옆에 흙이 무너지지 않도록 축대를 쌓는데 이때 H빔을 사용하게 되고 독립문 현장에서 그 축대가 무너져 사상자가 난 사고였다. 바로 긴급 뉴스가 보도되었는데 사고의 원인으로 현대그룹 계열사인 인천제철에서 만든 용접된 H빔에 문제가 있어 축대가 무너졌다고 보도가 나왔다. 즉, 용접한 H빔이 흙의 하중을 견디다 못해 용접한 부위가 떨어져 나가면서 사고가 났다는 뉴스였다. 그런데 초창기 H빔은 용접해서 제조한 것이 맞지만(70년대 지하철 1호선에는 용접 H빔이 쓰였다.) 그때만(80년대) 해도 용접 H빔을 생산하지 않고 통으로 뽑은 H빔을 생산했기 때문에 H빔에서는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명백한 오보였다. 물론 속보성이 생명인 언론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건설 자재 전문가 한 사람에게라도 문의를 해봤다면 그런 오보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뉴스였다.
그 때문에 인천제철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불량 H빔을 생산한 회사로 낙인이 찍혔기 때문이다. 물론 그 후에 정정이 되었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런 사례는 그 후에도 수없이 많이 나왔고 하여간 홍보실에 근무하면서 정말 많이 언론의 횡포(?)를 당하면서 언론의 자유를 다시 생각한 적이 있었다.
월드컵 유치 활동과 일본 기자들의 애국심
2002년 월드컵 유치는 정말 맨땅에 헤딩하고 무에서 유를 창조한 사건이었다. 우리의 상대인 일본은 유럽과 미주대륙이외의 대륙에서 최초로 열릴 예정인 2002년 월드컵을 자국으로 유치하기 위해 정말 철저히 준비를 하고 월드컵 유치에 임했고 우리는 93년 말에 바로 결정하여 2년 동안 일본을 상대로 버거운 싸움을 해야 했다. 모든 것이 새로웠고 아무 것도 몰랐다. 오직 이기고자하는 열정과 노력만 있었다. 이 얘기는 너무 길어지니까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고 우선은 그때 경험한 일본 언론의 태도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세계 각국을 다니면서 유치활동을 하는데 그때마다 일본 기자들은 100여 명씩 와서 취재를 했다. 치열한 유치 경쟁의 와중에서 어디를 가나 일본 기자들은(신문이나 TV) 꼭 한국 부스에 와서 인터뷰를 요청했다. 홍보를 맡은 내 입장에서는 왜 우리가 월드컵을 유치해야 하는 당위성을 그들에게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여 성실하게 인터뷰에 임했다. 하루에 10여개 매체하고. 그런데 나중에 현대 동경지사에 확인한 결과 내 인터뷰 내용이 단 한 번도 일본 언론에 보도가 되지 않았고 대신 모든 내용이 일본유치위원회로 보고된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즉, 일본기자들은 보도라는 기본 사명을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유치위원회 일원으로 활동하는 셈이었다. 언론인으로서 갖춰야할 사명보다는 국익이 우선인 것이다. 그에 비해 가끔씩 한두 명 찾아오는 한국 기자들에게는 취재보다는 의전에 많은 시간을 써야 했다. 그 때 느낀 것은 우리보다 훨씬 발전한 일본(90년대 중반이니까)의 언론은 일반론적인 자유 민주주의 언론의 모습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매체 시대에서 일인 매체 시대로
지금 우리는 다매체 시대에 살고 있다. TV만 하더라도 공중파(원래는 지상파라는 말이 맞는 단어다), 종편, 케이블, 위성, IP 등 수백 개 채널이 있고 등록된 인터넷 매체는 2014년 6000개 정도 되고 해마다 1000개 이상씩 늘어나니까 아마 지금쯤 만개 가까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따라서 예전에는 4대 매체(신문 잡지 라디오 TV)가 주요 매체였다면 지금은 소위 디지털 미디어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매체의 환경변화로 인해 우리는 이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또한 인터넷의 발달로 전 세계가 거의 동시에 모든 뉴스(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요새 우스갯소리로 예전에는 젊은 층이 노년층에게 주로 정보를 제공하였는데 최근에는 발달된(?) 종편의 시사토론 프로 때문에 늘 집에만 계신 어르신들이 훨씬 시사문제에 정통하여 거꾸로 청년층에게 알려준다는 얘기가 있다. 이러한 정보의 홍수는 우리가 광우병 파동을 겪을 때 전 국민이 소고기 검역 방법과 통관 문제의 전문가가 되었고 현재의 탄핵정국에서는 헌법 전문가들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다매체 시대도 가고 이제는 일인 매체까지 등장하여 뉴스를 양산하고 있으니 실로 복잡한 정보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소위 주요 언론이란 개념이 없어지고 저마다 의견이 있으면 매체화하여 표현할 수 있는 일인매체 시대인 것이다. 따라서 내가 앞에서 언론의 자유를 말하면서 정보를 수용하는 사람들의 이성적인 판단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이제는 ‘미디어 문해력이 민주시민이 갖춰야 할 중요한 책무’가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리 ‘단기간에 전 국민을 속일 수 있고 장기간에 일부 국민을 속일 수 있어도 장기간에 전 국민을 속일 수 없다.’해도 비교적 단기간에 이뤄지는 선거에서는 정치적 목적으로 개인이 양산한 가짜 뉴스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특히 올바른 판단을 하여야 할 유권자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그래서 이러한 무한정한 언론의 자유가 과연 이대로 가도 좋은가란 생각도 든다. 아무리 이성적인 판단을 한다고 하더라도 또는 JTBC 손석희 사장 멘트대로 ‘깨여 있는 시민’이라고 해도 또는 실시간 ‘사실 확인’fact check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짜와 가짜의 판단(구별)을 정확하게 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점점 이분법적인 사회가 되는 현실 앞에서 자기주장이나 입장을 유리하게 해주는 소식은 그것이 가짜이건 진짜이건 쉽게 받아드리고 널리 알리려는 소시민적 사고와 배타성이 있고 암울하게도 이러한 현상이 좀처럼 개선될 여지가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언론의 자유는 무한정하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짜 뉴스는 이미 언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기성언론의 철저한 반성과 사실 확인을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하고 옳고 그름을 판별할 성숙한 시민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종교법정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부인하고 나오면서 말한 갈릴레이의 말처럼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심정으로 언론의 무한정한 자유에 대해 옹호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세상이 험해져도. 물론 갈릴레이의 이 말도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이 더 우세하지만 말이다. /vja-rudgmleh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