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카니니의 비밀은 지휘자들 가운데 가장 위대하다는 것이다.
-런던타임즈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
이탈리안 지휘자(1867.3.25~1957.1.16)로 파르마국립음악원을 졸업하고 NBC 교향악단 지휘한 그의 음악인생은 단순한 저 문구 하나로 명예롭게 표현되어지고 있다.
불멸의 음악을 탄생시킨 토스카니니의 확고한 예술론, 그건 ‘1차원적 음악’이였다.
우린 평상시 1차원적인 생각은 해삼, 말미잘 같이 단순하고 바보 같은 생각이라 말한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토스카니니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였다. 그는 오직 음악의 완성을 추구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고, 그 외의 모든 것은 이차적인 문제에 속했다. 그는 진정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유일한 분야인 음악만을 위해 살았다.
나는 그가 다른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브루노 발터와는 최근의 연극과 소설에 대해 토론할 수 있지만, 그러나 토스카니니와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에이드리언 볼트 경
그의 태도를 살펴보면 ‘금시조’(이문열)의 고죽의 예술론과 흡사함을 발견했다. 고죽은 유미주의자로 예술이 수단이 되는 것에 반대하며 심미주의, 예술지상주의를 추구한다. 예술의 독자성을 강조하여 예술 자체가 목적인 그에게 있어 예술이란 학문, 정치의 아류가 아닌 예술 그 자체이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그는 미의 체험과 관련된 정신적 즐거움을 행복이라고 칭했다.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에게 철학하는 활동, 즉 영혼의 덕을 쌓는 시간인 여가가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바로 이 여가를 위한 한 방편으로 음악을 가르쳐야 하며, 그는 음악이 치료의 효과만이 아니고, 고귀한 여가를 가져다준다고 말함으로써 음악 자체가 어느 지엽적인 분야에 봉사하지 않는 독립적인 것으로도 이해하는 길을 연다고 말했다. 플라톤에게 음악은 교육을 위한 수단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음악은 자율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자연으로부터 분리 되어있다. 예술, 즉 음악이 도구가 아닌 독립적인 것으로 보는 그와 고죽, 토스카니니는 일치하는 면이 있다.
즉 토스카니니는 예술을 위한 예술, 예술을 그 자체로 인정하는 절대주의를 따름을 알 수 있었다. 절대주의란 예술이 인생에 있어서 실제적ㆍ사회적 목적에 봉사하지 않고 종교․도덕․정치 등과 같은 다른 문화의 제약을 초탈하여 그 자체로서의 절대적 독립성을 지닌 것을 말한다.
토스카니니의 예술론을 이야기하다 이문열의 소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서 절대주의까지 이야기하는 것은 필자의 지식을 자랑 하려는 게 아닌, 그가 정치에 음악이 악용되는 것을 얼마나 부정적으로 생각했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베토벤의 ‘영웅교향곡’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 음악을 더러는 나폴레옹이라 말하고, 더러는 히틀러 또는 무솔리니(히틀러와 더불어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이탈리아 독재자)라고도 하지만, 내게 있어 이것은 단순히 알레그로 콘 브리오일뿐

-토스카니니
토스카니니는 나치가 잘츠부르크에서마저 득세하자 히틀러를 위해 일하는 푸르트벵글러 및 다른 예술가들과 제휴하지 않겠다면서 그곳을 떠나 버리기도 했다. 또 그는 ‘내가 만약 살인을 할 수 있다면 무솔리니를 죽일 거야’라며 거침없이 말하기도 했다.
내 생각엔 이 위대한 대가는 이탈리아의 가장 위대한 마에스트로일 뿐 아니라 전세계의 가장 위대한 거장이다
-피에르 몽퇴
토스카니니는 음악에서 자신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위의 글처럼 위대함이 가장 드러난 모순의 지휘자다. 대체로 음악의 주관적인 해석자들은 스코어를 자기표현의 한 수단으로 사용함으로써 음악 속에다 자신을 투입하는 데 반해, 토스카니니의 철저한 객관주의는 오히려 스코어로부터 자신을 배제하려는 태도를 견지했다.
나는 지휘를 할 때면 언제나 준비를 합니다. 나는 내가 토스카니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대중 앞에 서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결단코!
-토스카니니

절제된 지휘, 불필요한 동작을 행하지 않았던 그의 지휘는 자신 개인의 감정을 호소하는 게 아닌 오직 음악, 작곡가의 의도를 표현하려 했다. 성악도, 기악도 마찬가지다. 지은이의 의도를 표현하기 위해 감정을 이입한다. 하지만 음악자체를 표현하는 데에 아직 미숙하여 소리의 길만을 치중하는 데에 그치고, 개인의 상황에 따라 감정의 변화가 심하다. 예를 들어 남자친구와 헤어진 다음 날, Strauss의 Zueignung은 괜찮지만, Schubert의 Fruhlingsglaube는 내 개인 감정 때문에 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지 못할 것이고, 슈베르트는 자신의 감정에 치우친다고 욕할 것임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토스카니니가 라 스칼라에 있을 당시 ‘팔스타프’를 지휘했을 때 베르디가 ‘Grazie'를 연발한 것도, 푸치니가 ’감정과 세련, 감수성 및 균형의 기적을 이룩했다‘고 격찬한 것도 아마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그는 위기를 기회로, 기회를 성공으로 변화시킨 인물 이였다.
파르마 음악원을 졸업한 직후 브라질 순회의 이탈리아 지방 오페라단의 수석 첼리스트 겸 코러스 마스터의 조수로 계약된 그는 돌발적인 사고로 지휘자가 없게 되자 문자 그대로 ‘등을 떠밀려’ 지휘대 위로 올라섰고, 즉흥적인 지휘로 파탄 직전의 공연단에게 단번에 승리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이는 오페라 ‘아이다’ 스코어를 모두 외우고 있었고, 탁월한 지휘 능력이 기본으로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기회를 단번 성공으로 이끈 그의 능력,
같은 곡이여도 그가 지휘를 하면 장소를 불문하고 관객들은 열광했다고 한다. 혹 그곳이 이탈리아가 아닌 문화 자존심이 강한 프랑스, 뉴욕. 심지어 독일에까지 말이다.
베를린에서 흥분이 너무나 고조된 나머지 실제로 우리로 하여금 독일의 예술에 대해, 독일의 음악문화에 대해 근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우리는 과연 블레흐나 클라이버 또는 클렘페러가 이탈리아에서 이와 비슷하게 광란적인 열광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를 자문한다. 대단한 NO! 왜냐하면 이 세 사람의 지휘자를 합해도 토스카니니 한 사람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 바이리셰 쿠리에
E.Grieg의 Ich liebe dich를 고음 G음에 집착하여 고음의 발음도 제대로 내지 않고 부른 자의 무대와 2008년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시상 축하공연 때 부른 조수미의 공연이 아마 같은 맥락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조수미와의 큰 능력의 차이라 인정하지만, 다른 뛰어난 능력을 지닌 세계적인 작곡가들과 견주어도 가히 토스카니니는 여타 지휘자들을 능가하는 최고의 예술가였을 뿐 아니라, 오케스트라 연주자들까지도 최고의 높이까지 올려주었다고 평가되어지고 있다.
토스카니니 같은 위대한 지휘자는 고등학교 관현악단의 소리를 보스턴 심포니의 소리처럼 만든다.
-숀버그

무엇이 그에게 열광하도록 하게 했을까?
그가 스코어보다 더 드라마틱한 concertato 스타일을 했나? 오늘날의 영화나 뮤지컬처럼 퍼포먼스의 유흥을 관객들에게 선사했나? 아님 그의 친구였던 니콜라스 핀녀같은 성악가들에게 바로크시대 다카포아리아보다 더 과장한 기교를 행하게 했었을까?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고, 또 희귀한 그의 인터넷 연주동영상 Beethoven-Symphony과 verdi의 ‘운명의 힘 서곡’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는 감정에 치우쳐 스코어를 변화시키거나 무시하지 않는 철저한 완벽주의자였다. 이는 당대 유명했던 또 다른 지휘자, 푸르트뱅글러가 리듬구조를 손상시키면서까지 지나치게 로맨틱을 나타내 극단적으로 표현했던 것과는 확실한 차별을 보여준다.
아름다움의 극치는 정확함에 있다. -토스카니니
그는 음악의 완벽함을 위해 대중의 앙코르 요청에 따라 어떤 하이라이트 부분을 반복하는 것은 드라마의 연속성을 깨뜨린다는 이유로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고, 1926년 무솔리니가 푸치니의 ‘투란도트’ 세계 초연에 임해서 토스카니니에게 파시스트 찬가인 ‘조비네차’를 지휘하도록 했을 때, 그는 단연코 거절했다. 때문에 파시스트 광신자에게 피살당할 뻔한 적도 있었고, 이로 인해 그는 그의 조국 라 스칼라를 아주 떠나버렸다.
그의 음악적 고집을 누가 막을 수 있으랴.
그의 완벽하고 멸각 적이며 지독히 고집스런 음악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된다.
음악으로 인해 고뇌하고 절망하며, 음악으로 인해 감동하고, 기쁨과 사랑을 배우는 이 아이러니한 삶이 진정한 음악인의 삶이라 생각한다. 누군가는 음악이란 이해하기 쉽고 듣기 편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토스카니니에게 음악이란, 뼈를 깎는 고통이 수반된 완벽의 ‘음악을 위한 음악’을 추구하였기에,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의 음악을 연주했던 음악원 합창단들은 얼마나 영광스러웠을까? 아니, 그 시대에 그의 음악을 들었던 청중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존경하며 음악을 그저 ‘나를 표출하는 2차적인 도구’로만 대했던 과거를 반성한다. 음악이란 그 존재자체만으로 아름다우며 개인의 사상이나 개념으로 변질되는 것이 아닌, 평생 사랑하고 보존해야하는 가치가 있다는 걸 깨닫는다.
현재 학문과 상업적으로만 생각되어지고 국한되어있는 우리의 음악을, 토스카니니의 음악에 대한 태도를 본받아 예술적 고결함으로 다시금 순수음악으로 성숙시켜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참고문헌: 토스카니니 (세기의 마에 스트로, 현대 예술의 거장 3. 이덕희 저. 을유 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