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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나는 행복한가? 이 질문에 대하여 ‘예’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일까? 아니면 자신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모른 채 ‘아니오’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불행한 사람일까? 행복과 불행은 어던 기준에서 정해질까?
명예, 재산, 건강, 주택 등 객관적 지표가 사람들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행복을 둘러싼 궁금증은 행복 추구의 시대 흐름을 타고 더욱 거세어지고 있습니다.
과연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얻을 수 있는 것인지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행복幸福 [명사] 1. 복된 운수.- 예) 당신의 행복을 빕니다.
2. [하다형 형용사][스럽다형 형용사]마음에 차지 않거나 모자라는 것이 없어 기쁘고 넉넉하고 푸근함, 또는 그런 상태를 의미합니다. 예) 행복한 나날을 보내다.
행복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 갖가지 욕구가 충족되어 있는 상태, 또는 생기는 만족감을 말합니다.
우리나라 헌법 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행복 추구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개인이 마땅히 누려야 할 고유의 권리로 국가가 이를 보장해줄 것을 헌법에 명문화시킨 것입니다. 이것은 행복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영국의 싱크탱크 신경제학재단(NEF)는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를 세계 178개국 중 102위라고 발표했습니다. 놀랍게도 행복지수 1위는 호주 부근의 작은 섬나라 바누아투가 선정되었습니다. 이 나라 평균 수명은 68.6세 1인당 국민소득은 2944달러에 불과했습니다.
세계 경제대국인 독일은 81위, 일본은 95위, 미국은 105위에 머물렀습니다.
이거은 행복지수가 경제력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자료입니다.
주변의 재한된 환경자원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만족하는 생활태도가 삶의 만족도 7.4의 행복지수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우리는 행복을 이야기할 때 소유의 존재 여부를 놓고 판단합니다. 더 많이 가진 자가 적게 가진 자보다 행복하리라고 추측합니다. 재산 증식이 행복을 이루는 척도이며 디딤돌이라는 인식이 사회에 만연해 있습니다. 돈이 행복의 가치를 결정짓는 잣대라면 로또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이 당연히 이전의 삶보다 질이 높아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오히려 당첨된 후 사람들의 관계가 파괴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우리의 행복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장애물은 상대적인 열등감과 패배감, 빈곤감입니다.
자신이 가진 것이 남에 비해서 작게 보이고 보잘 것 없다는 생각이 행복을 파괴하는 바이러스입니다. 행복의 가치를 타인과의 비교에서 찾으려는 욕망이 자신의 행복을 빼앗아 갑니다. 이제 우리는 남의 떡이 더 크게 보는 시각에서 속히 벗어나야 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상황을 최선의 것으로 보고 감사하는 태도가 행복을 가져온다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물고기는 물속에서 헤엄칠 때 행복합니다. 공중이 새는 하늘에서 큰 날개를 휘저을 때 행복합니다. 길짐승은 땅을 밟으면서 살아갈 때 행복합니다.
행복에는 결코 조건이 따르지 않습니다. 행복과 조건은 1대 1로 대응되는 함수관계가 아닙니다. 행복은 조건을 초월합니다. 행복하려는 마음을 각고 있는 것에서 행복은 출발합니다. 행복은 뜬구름 같은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것입니다. 이제 행복을 다른데서 찾으려 하지 말고 자신의 곁에서 발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행복으로 가는 길을 함께 발견하고 우리 삶속에서 누리길 원합니다.
1. 행복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할 때 옵니다.(요일4:7-8)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우리의 행복은 관계에서 출발합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말하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본문을 기록한 사도요한은 젊었을 때 우뢰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입니다. 즉 성격이 아주 급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남으로 사랑의 사도로 놀랍게 변화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그를 사로잡고 말았습니다. 그는 말년에 주님이 부르시는 그 날 까지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라고 외치며 설교했다고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요한의 인생을 묵상하면서 그는 진정한 행복의 가치를 사랑에서 찾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내가 사랑할 때 행복이 점점 우리에게 가까워 온다는 것입니다.
그 행복의 첫 번째는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할수록 온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출발이 하나님께 있듯이 우리 행복의 출발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요일4:2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찌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15절 “누그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시느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는 예수님을 영접한 자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자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이고 동시에 과거 죄로 인해 상실해 버린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자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반드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것이 곧 증거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전인격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식적으로도 그분을 깊이 있게 알아가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함으로 그분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이 곧 사랑하는 증거입니다. 거기에 우리의 인생의 진정한 가치와 행복이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서 성경도 보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되고 위장된 사랑입니다. 주님도 그런 사랑 받지 않으십니다. 당연히 행복을 누릴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행복은 작은 실천부터 시작됩니다. 매일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겸손히 내 삶을 주님께 맡기며 기도할 때, 그 말씀에 순종하고자 할 때, 그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더욱 알고 사랑할 때 우리 행복은 더욱 커져갈 것입니다.
2. 행복은 나 자신의 가치를 알고 사랑할 때 옵니다.(요일4:9-11)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옛날 유행가에 “사랑을 하면은 예뻐져요...” 정말 사랑을 하면 얼굴이 밝아지고 얼굴도 아름다워집니다. 화장하지 안 해도 더 젊어 보입니다.
이것은 곧 상대방이 나를 보는 모습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 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습니다. 특히 요즘 현대인들은 외모에 무척 신경을 많이 씁니다.
‘몸짱, 얼짱’이란 말이 그래서 유행하나 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지나치면 문제가 되고 상식에 어긋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절제하고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고 봅니다.
세상 유행에 너무 민감하지 마시고 주님의 말씀에 민감한 성도들이 되십시오.
우리는 비록 세상속에 살지만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라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자꾸 치우치는 이유는 내가 누구인가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의 존재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누구인가를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사야43:4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시편16:3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
하나님은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얼마나 가치 있고 중요한 사람인가를 알고 깨달을 때 비로소 행복이 찾아옵니다.
여전히 열등감과 패배감, 상실감에 빠져 사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 인생은 너무나 약합니다. 쉽게 상처받고 쉽게 상처도 주며 삽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너무나 어리석은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상처투성이인 우리를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주시고 우리의 죄와 상처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받고 누리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비통함과 열등감, 패배감, 자기연민에 빠져 살아간다면 우리 주님이 얼마나 안타까워하시겠습니까? 우리 주님은 다시금 십자가에 못 박으시렵니까?
우리의 행복은 이 놀라운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고 내가 하나님의 앞에 얼마나 존귀한 자인가를 알 때 더욱 풍성하게 누릴 수 있습니다.
행복은 나의 존재가치를 발견할 때 찾아옵니다. 어리석게 어디에 가서 찾으려 하지 마시고 내 안에 행복이 있음을 기뻐하시고 발견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3. 행복은 이웃을 알고 사랑할 때 옵니다.(요일4:11-12)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우리 인생의 행복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할 때 출발합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내가 얼마나 귀한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 앞에 참으로 행복한 사람임을 고백하며 삽니다.
‘나는 행복해요 죄사함 받았으니 아버지 품 안에서 더나가기 싫어요
나는 행복해요 사랑이 샘솟으니 이 세상 무엇이든 채우고도 남아요“
내게 주신 행복을 더욱 풍성하게 누리는 방법은 이제 이 행복을 이웃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을 오늘 말씀에 적용해본다면
“도적(마귀,세상)이 오는 것은 불행하게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이요 내(주님)가 온 것은 양(우리들)으로 행복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면에서 풍성한 삶을 누리며 살기 원하십니다.
나만 행복한 삶을 산다면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 행복을 지속시키는 방법은 이웃을 알고 더욱 사랑할 때 옵니다.
에밀린 피어슨이라는 ‘평범한 메리의 특별한 행동’이란 책에 이런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나누면 나눌수록 더 커지는 것은 무엇일까?” 답은 행복입니다.
나의 친절을 나누고, 양보를 나누고, 기쁨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나눌수록 삶은 더 풍요로워지고 행복해집니다.
‘한 사람이 다섯 사람에게만 친절을 베푼다면?’ ‘그리고 그 다섯 사람이 또 각각 다섯 사람에게 친절을 베푼다면?’ 그 스물 다섯 명이 다시 각각 다섯 사람에게 친절을 베푼다면 ?’ 어떻게 될까요? 놀랍게도 불과 15일만에 행복해지는 사람의 수는 무려 61억 351만5625명이라고 합니다. 어른부터 아이까지 지구촌 식구들이 보름만에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작은 친절이 온 지구촌을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나누는 순간 세상이 행복해집니다. 물질만이 아닙니다. 마음과 친절을 나누십시오.
하이패밀리 대표 송길원 목사님은 ‘미고사축’을 강조합니다.
미-미안합니다. / 고- 고맙습니다. / 사- 사랑합니다. / 축-축복합니다.
우리의 이러한 나눔이 우리의 가정을, 교회를, 사회를 더욱 밝고 건강하게 만들어 갈 것입니다.
‘내겐 아무 것도 없어,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하며 스스로 움츠려들지 마십시오.
누구를 원망하거나 누구의 탓으로 돌리지 마십시오. 특히 조상탓, 부모 탓하지 마십시오.
그러한 생각과 마음은 행복을 발길로 차는 것과 같습니다. 생각을 바꾸십시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서로 이해하고 서로 용서하며 서로 사랑하며 사십시오.
하나님 말씀 한 군데 찾아 읽어 봅시다. 빌립보서 2장1-4절입니다.
*빌2:1-4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더욱 풍성한 행복을 누리길 원하십니까?
그러면 먼저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십시오.(가족간,교회간)
그리고 다툼이나 허영을 몰아내십시오. 행복을 파괴하는 것들입니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이것이 곧 주님의 마음입니다.
나보다 남이 잘되는 것을 기뻐하고 축복해 주십시오. 내가 축복의 통로가 되어 나로 인해 이웃을 복을 누리게 하십시오. 특별히 구원의 축복을 누리게 하십시오.
자신의 일에도 최선을 다하고 다른 사람의 일을 돌보는 것을 기뻐하십시오.
본래부터 사람은 이기적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사람은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며 타인의 행복을 통해 자신이 더욱 행복해지는 것을 맛보게 됩니다.
여러분? 목사는 어느 때에 행복할까요? 궁금하십니까?
성도들이 행복하면 저도 행복합니다. 여러분이 잘되면 저도 잘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잘 되어야 합니다. 건강하셔야 합니다. 형통하셔야 합니다. 할렐루야!
나가는 말)
인터넷에서 행복이란 단어를 한번 쳐 보니 많은 카페들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곧 상영되어질 “행복을 찾아서”라는 영화에 대한 글들이 많았습니다.
[ 행복이란 어쩌면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며 살고 있다. 눈물겨운 노력을 통해 노숙자에서 백만장자가 된 크리스 가드너(53)는 아메리칸 드림의 살아있는 증거다. 뉴욕, 시카고, 샌프란시스코에 지점을 둔 크리스 가드너 홀딩스 인터내셔널의 CEO인 그는 한때 다섯살배기 아들과 지하철역 화장실을 전전하며 살았던 노숙자였다. 그의 치열했던 삶을 낱낱이 적은 자서전 행복의 추구(The Pursuit of Happiness)와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행복을 찾아서>(감독 가브리엘 무치노)가 미국인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
행복(happiness)의 철자는 Y(happyness)가 아니라 I(happiness)이다. 행복에는 왜(why)가 아니라 나(I)라는 말이 어울린다. 가드너의 행복론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행복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할 때 비로소 발견하게 되고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 내가 얼마나 귀한 존재고 행복한 사람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더 나아가 이 행복은 나로부터 이웃에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행복은 한 군데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전달되어야 합니다.
내 안에 발견한 진정한 행복을 사랑하는 이웃에게 전달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행복배달부들입니다. 날마다 행복한 삶을 누리며 사는 성도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당신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