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우두령-황악산-궤방령-눌의산-추풍령)
1, 일시
2006.10.29.
2, 참석자
둘둘회 백두대간 부부 종주팀 6명

해인산장에서 새벽 두시가 되니 벌서 인기척이 들리면서 일어나라는 소리가 들린다 산행준비는 어제 저넠 해두었기 때문에 세면만 하면 된다 간단한 산행준비를 끝내고 해인산장 김사장님과 함게 우두령에 도착하니 새벽 4시가 조금 넘었다 해인산장 김사장님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우두령 북쪽 능선을 들머리로 산행을 시작하니 04:15분이다
산행의 들머리는 김천시 구성면과 영동군 상촌면을 잇는 우두령. 소의 잔등에 걸치는 질매(길마)와 흡사한 지형의 고개라 해서 질매재라고 불리는 이 어둠 컴컴한 고갯마루에 서니 아직도 한기를 머금은 세찬 바람이 먼저 반긴다. 인기척이 없는 마루금을 따라 계속 오르고 있다 이따금식 비치는 산아래 마을의 불빛는 적막함을 더해주고 있다
좌측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아직도 콧날이 시큰둥하고 가파른 능선길을 올라서면서 잠시 여유를 가져본다 여유도 잠시 내려가는 길목에서 등산로가 끊겨버린 것이 아닌가 어둠 컴컴한 밤하늘아래 손에 들려 있는 손전등만 의지한 채 등산로를 잃어버렸으니 걱정이 태산 같다 이리저리 해매이다 겨우 등산로를 찾아 나섰지만 오던길을 되돌아가는 것만 같아 자꾸 오던 길이 아니냐며 물으며 발걸음을 재촉해본다
조금 지나 삼각점이 박혀있는 985.3봉(삼성산)을 스쳐 지난다. 봉우리를 몇개를 오르락내리락 능선을 타고 주위의 큰바위를 지나고나니 1030봉(여정봉)이다 어느 산악회인가는 모르지만 조그만한 팻말에 여정봉이라고 새겨 달아놓은 여정봉 표시팻말은 컴컴한 밤하늘 아래서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무척 반갑다 후래쉬를 비추라며 찰칵 사진 한장 찍고 지나친다
1030(여정봉)에서 한참 내려오니 도로다 도로를 건너서 백두대간 표시리봉을 따라 봉우리를 올라서니 송신탑이다 송신탑에서 헬기장인 듯 넓은 공터를 지나 내려서니 또 도로가 나타난다 도로를 가로 질러 이리저리 대간 길을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우측 도로를 따라 내려서니 도로에서 올라서는 봉우리길이다 우측으로 도로를 따라 계속 돌아가니 대간길 리본이 보이면서 대간길이 나온다 좌측으로 조금 돌아가니 임도 좌측에 많은 백두대간리본이 붙어 있어 도로를 버리고 숲속으로 들어선다 새벽의 찬바람과 함께 능선길을 계속 내려오니 갈대밭이 나오면서 초목지대가 나온다 스피커가 달려 있는 망대를 지나 내려서니 바람재다
바람재는 경북 김천시 대항면과 충북 영동군 상촌면의 경계로 해발고도 810m이고 우측엔 목장지대이다 바람이 많이 불어 바람재라는 이름을 얻었는지 몰라도 골바람이 여간 아니다. 군사시설물과 농장까지 이어지는 산판도로가 대간 마루금까지 올라와 있다바람재 헬기장 옆에는 김천 산꾼들이 마련한 바람재 표시석이 이채롭다 표시석 바로뒤 나뭇가지에는 수많은 대간꾼들이 달아 놓은 백두대간 종주 기념 리본들이 아름답게 달려 있다
헬기장에서 잠시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잡풀과 떡갈나무 숲속으로 낙엽을 밝으며 진행하니 고도가 높아지면서 경사가 심해지고 김천소방서 "119구조 황악산 11번" 표지판이 나온다 표시판을 보니 여기가 황악산 초입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어 피로감을 덜해준다 조금 지나니 능선길 옆으로 일출이 시작되면서 직지사에서 올라오는 능선 삼거리에 도착한다.
우측 능선은 신선봉(944m)을 시작으로 망월봉(597m)으로 이어져있고 직지사에서 등산로가 이어진다. 능선삼거리에서 북쪽 능선길로 접어들어 봉우리를 오르내리면서 119-10번,9번 표지기를 지난후 잠시 휴식이다. 오르막 길을 따라 1030봉을 지나며 계속 오르니 봉우리 두개가 종긋 솟은 형제봉에 올라선다. 막상 올라서니 다른 봉우리들과 다름없다 전망 좋은 곳에 대구 백두회에서 형제봉이라고 포기한 조그만한 현수막을 달아놓았다 지나온 산하를 뒤돌아보며 발걸음을 재촉하니 긴급구조119-8번이다 봉우리 하나를 넘어 또 다시 갈림길을 지나 계속 올라서니 황악산이다
황악산(1,111m)은 추풍령을 잠시 가라앉힌 백두대간이 서남쪽 멀리 지리산을 향하다가 첫번째로 산릉을 다시 치켜 올려 놓은 산이다. 황악산은 해발 1,111m 비로봉을 중심으로 백운봉(770m), 신선봉 (944m), 운수봉(740m)이 치솟아 직지사를 포근히 감싸준 산으로 가을 단풍과 겨울 설화가 빼어난 산이다
충북 영동과 경북 금릉의 경계를 이루는 황악산은 옛날 학이 많이 찾아와서 일명 황학산(黃鶴山)으로도 불리었다한다 황악산은 정상을 중심으로세 세개의 큰 능선으로 이뤄져 있다. 그 세 능선은 북서, 북동, 정남 방향으로 발달되어 북서방향의 지릉은 곤천산을 빚어 놓은 후 영동군 상촌면으로 내려가 평지로 변한다.
북동릉은 운수봉-궤방령-추풍령을 지나 속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주능선이 된다. 남릉은 백두대간의 체통을 살리려는 듯 활기를 더하여 산의 흐름이 제법 격렬해진다. 바람재-우두령에서 잠시 허리를 굽혀 낮추었다가 삼도봉 석기봉 민주지산에 이르러 점프하듯 해발 1,000m가 넘는 산봉우리들도 솟구치고 있다. 삼도봉에서 충북 경북 전북을 가르는 백두대간의 흐름은 멀리 덕유산 그리고 지리산까지 이어진다. 황악산 정상에는 백두대간 안내판과 정상 표시석 그리고 돌무덤이 있다 아침 안개 때문에 주변의 1,000m가 넘은 산봉우리들은 보이지 않지만 명산임에는 들림이 없다 황악산 정상에서 조금 내려서니 헬기장이다 헬기장을 지나 갈대밭 넓직한곳에 자리를 펴고 아침을 먹고 다음 산행에 나섰다
대간은 황악산 정상에서 북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운수봉과 여시골산을 지나 궤방령으로 이어진다 가파른 황악산을 내려오니 직시사에서 올라오는 등산객들이 한두사람 보인다 잘 정비된 등산로를 따라 계속 내려오니 삼거리 길이 나온다 여기가 직지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여시골산 백두대간길로 이어지는 삼거리다 여기 삼거리 길을 의자와 쉼터도 마련해두어 등산객들이 쉬어가는 쉼터다 직지사에서 올라온 두 처녀가 구슬땀을 닦으며 쉬어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황악산 자락의 직지사는 김천사람들의 자랑거리다. 이 절은 신라에 불교를 전한 고구려의 선교사인 아도화상이 눌지왕 2년(서기 418년)에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아도화상이 금오산에서 이 절터를 손가락으로 가리켜 ‘직지’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전설이 있고. 고려 태조 때 능여대사가 절을 확장하면서 손으로 측량을 해서 유래했다는 전설도 있다 절 이름이 그렇듯 절을 감싸고 있는 황악산 산높이가 바로 곧은 작대기 4개를 세로로 가지런히 세워 놓은 듯한 1,111m인 것이 그것이다. 설득력 있는 유래는 불경의 '직지인심 견성성불' 즉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참된 마음을 똑바로 가리켜 깨치게 되면 부처가 된다는 데서 직지사의 명칭이 얻어졌다는 것이다.
직지사에는 사명대사의 영정이 보관돼 있으며 또 경주 남산의 옥돌로 만든 각양각색의 천불상이 유명하다. 천불 중 알몸의 동자승이 있는데 참배객이 불당에 들어서면서 첫눈에 이 불상을 발견하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삼거리에서의 쉬는 것도 잠시 대간 길을 따라 올라치니 운수봉이다 정상에는 정상석과 함께 원 흙염소가 새기염소와 함께 있는 것이 처량하게 보인다 운수봉에서 내려서서 계속 진행하니 여시골산이다 여시골에 관한 전설이 있는데 전설은 이러하다

옛날 노모를 모시고 사는 영복이라는 순진한 시골 노총각이 있었는데 가난하지만 효성이 지극한 영복은 편찮으신 노모가 한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얼음을 띄운 콩국이 먹고 싶다고 하자 얼음을 구할 방법을 찾기 위해 부심한다. 이런 사실을안 동네 총각들은 영복을 놀려줄 요량으로 여시골산에 가면 얼음을 구할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순진한 영복은 동네 총각들의 말만 믿고 여시골 산골을 찾아 헤매다가 기진맥진하여 폐암자에 쓰러지는데. 때마침 구미호가 사람의 간을 빼먹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이윽고 영복은 죽을 위기에 빠지나 영복의 효심에 감탄한 구미호는 자신을 보았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겠다는 약조를 받고 영복을 살려준다.
얼마 후 영복네 집에 묘령의 여인 찾아들고 영복이와 혼례까지 치루게 된다. 세월이 흘러 딸아이까지 낳게 되었으나 미역국조차 제대로 끓여 먹이지 못하는 형편에 영복은 가슴을 아파한다 이즈음 부인은 밤마다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홀연 값진 구슬을 가지고 돌아온다. 영복은 여시골산에 가서 구미호를 보았던 이야기를 무심코 꺼낸다. 이때 부인이 갑자기 백발 구미호로 변한다. 사실 영복이 십년간만 비밀을 지켜주면 사람으로 변할 수 있었던 구미호였으며 내일이 바로 그 10년을 채우게 되는 날이었다. 영복이 하루만 더 참았더라면 영원히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구미호는 언약을 이행하지 않는 인간의 간사함에 피눈물을 흘리며 두 아이를 데리고 홀연히 떠난다는 전설이다.
여시골산을 뒤로하고 작은 봉우리 두어개를 넘어 내려서니 괘방령이다 시간을 보니 오전 10시20분이다 궤방령에는 3-40여명의 등산객들이 쉬고 있다 어데서 왔나고 물으니 서울에온 싱글 평일산회회원이라고한다 출발지가 어데냐고 물으니 03:15분에 우두령을 출발하여 추풍령까지 간다고 한다 우리보다 1시간 먼저 출발한 산악회다 조금 있으러니 광관버스가 도착하더니만 3-40여명의 산악회원들을 내려놓고 있다 이 산악회는 이곳 궤방령에서 추풍령까지 하는 금수강산산악회란다
궤방령은 추풍령과 이웃한 고갯마루다. 충북 영동군에서 마련한 궤방령에 대한 안내는 옛날 선비들이 한양에 과거 보러 갈 때 추풍령 당마루를 넘으면 낙방한다해서 궤방령을 넘었다 한다. 궤방령은 주로 상로(商路)로 이용됐는데 임진왜란 때는 박이룡이 의병을 일으켜 궤방령에다 방어진을 치고 왜적을 무찌르기도 한 곳이다. 지금은 경북 김천시 대항면과 충북 영동군 매곡면을 잇는 977번 지방도로가 통과하고 있다 이곳 괘방령에는 돌탑과 장승 쉼터 괘방령 유래를 적은 안내판 등이 잘정비되지 않은 공원이며 옆에 휴게소를 신축하느라 공사가 한참이다
궤방령에서 좌측 능선을 따라 대간길로 접어들어오니 가파른 고개길이 나온다 한참 오르니 418봉이다 이곳 궤방령과 추풍령 구간은 가성산과 장군봉, 눌의산(743m)이 낙타등처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이어진다. 능선길을 따라 올라서니 가성산이다 가성산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다시 장군봉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이따금식 금수강산 산악회원들이 구보하듯 지나치고 있고 뒤처진 평일산악회원들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오르락 내라락을 여려번 한참지나니 장군봉이 나온다
장군봉은 대구 백두회에서 소나무에 장군봉 표시 현수막만 달아 놓았을 뿐이다 장군봉을 지나 663봉에 올라서고 있는데 같이온 산대장이 배고파 도저히 못가겠다며 점심을 먹고 가자한다 시간을 보니 12시다 가다말고 능선 넓직한 곳에서 자리를 펴고 점심을 먹고 다시 추풍령을 향하고 있다 663봉을 지나 우측으로 올라서니 눌의산이다 눌의산 정상에 서니 백두대간이 갑자기 동적으로 급변함을 느낄 수 있으며 산아래 경부고속도로와 함께 추풍령 마을이 한눈에 아름답게 조망된다
눌의산(743m)은 추풍령 뒤쪽에 자리잡은 산으로 등산인들의 발길이 뜸하여 대간꾼들만이 찾은 호젓한 산이다. 이 산의 이름인 `눌의'는 한자어로 정의가 눌하다 혹은 더디다는 뜻이니 추풍령 영마루를 경계선으로 하는 충청도와 경상도의 양쪽 인정의 교류가 뜸하다는 것을 뜻한다. 정상에는 정산 표시석과 함께 봉수대 터가 있다 봉수대가 있는 것으로 보면 옛날에는 요긴한 거점구실을 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눌의산은 주변 조망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나라에 긴급을 다투거나 외적이 침범했을 때 활활 타는 봉화를 피워올려 제몫의 역할을 다했을 늠름함이 살아 있다. 주로 백두대간코스 종주팀에의해 지나가는 산으로 많이 이용하고 있다. 추풍령에서 시작하는 산행길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보니 깨끗함을 자랑하고 산새들의 울음소리가 한적한 산행길을 함께 한다.
눌의산에서 가파른 대간 마루금을 따라 내려오니 고속도로 지하통로다 지하통로를 지나니 경부선 철도를 가로 질러 국도 4호선 추풍령 당마루에 도착했다. 당마루에는 추풍령 표지석이 서 있다. '추풍령 고개' 라는 노래가사가 적혀 있다. 이곳 추풍령은 대간을 넘는 고개 중 가장 낮은 고개다. 해발 221m 로 완만한 고개지만 분명 경상도와 충청도를 나누고 물줄기를 구분하는 대간이다. 임진왜란 당시는 정기룡이 용맹을 떨치던 곳이며 의병장 장지현도 왜적을 물리친 역사적인 곳이다.

추풍령은 사실 조선시대까지 만해도 제1관문인 조령에 비할 바가 아니었으나 1905년 경부선 철도가 지나면서부터 급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70년대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부터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고갯마루로 등장했다. 1965년 추풍령고개라는 영화가 제작되면서 영화와 같이 추풍령고개 노래가 유명해졌고 지금도 불리워지고 있다 구름도 자고가고 바람도 쉬어가는 추풍령 구비마다 한 많은 사연....... 그한많은 사연과 함게 추풍령 노래비와 고개마루에 있는 추풍령 할매갈비집은 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피땀흘린 우리 선배들과 대간꾼들의 한많은 사연을 말해준 것 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