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문학 3호 평론원고 올림.(이유식)

[청다]

「山情無限」으로 본 기행수필의 작법 향방

                                               이유식

1. 들어가며 몇마디

지금은 양적으로 보아 명실공히 ‘수필의 시대’를 맞고 있다. 그런데로 수필작단에는 낡은 병기(兵器)가 되어 있는 지난 시절의 ‘기행문’이 아직도 많이 보이고 있다. 시대가 너무나도 많이 변했으니 단발식 소총과 다름없는 기행문은 이젠 전쟁유물관에나 가 있어야 할 운명이 아닌가.

적어도 지난 시대에 있어서만은 기행문은 새로운 국내 지역이나 국외 나아가 새로운 도시, 새로운 풍물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었기에 호기심과 관심을 충분히 끌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몰랐던 국내외 곳곳을 알게 되었고, 다녀도 보았으며 또 멀기만 해 보이던 세계의 곳곳도 ‘지구촌’시대를 맞이하여 가본 곳이나 다름없이 이웃처럼 느껴지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여행에서 단순히 보고, 듣고, 느낀 것 위주의 기록성 견문기인 기행문은 그 효용가치가 거의 없어졌다. 물론 아직도 덜 알려진 지역 가령 세계의 오지(奧地) 체험 같은 것은 예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외에는 지금 기행문류의 글을 읽고 무슨 새로운 정보를 얻었다고 또 어떤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고 또 아니면 감동을 받았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만큼 이제는 기행문이 ‘기행수필’로 진화하고 탈바꿈 되어야만 한다. 이 고속의 시대, 이 지구촌의 시대에 마치 철 지난 마차나 소달구지가 버젓이 대로에 나와 지나다녀서야 되겠는가 싶다.

그래서 나는 지금 정비석의 명수필 「山情無限」을 타산지석이나 아니면 기행수필의 한 모형으로 생각해 보고 있다. 어쩌면 대중작가란 딱지가 붙어 노상 그의 문명(文名)이 폄하되어 있는 것을 적어도 이 작품이 있었기에 그나마 다소 탕감시켜 주었고, 주고도 있다 할 수 있다.

2. 기행수필의 한 모형 - 「산정무한」

나는 1954년도에 중학을 졸업하고 57년도에 고교를 졸업했다. 그 당시 고교 국어교과서에 바로 이「산정무한」이 실려 있었다. 그때는 ‘기행수필’이란 개념조차 없었기에 그저 ‘기행문’이라고만 알고 두 번 세 번 열심히 읽고 공부했다. 특히 마의태자의 무덤을 보고 느낀 마지막 부분의 회고적 소회야 말로 명문중의 명문이라 여겨 줄줄 외우기도 했다. 또 그 당시 나온 대학입시용 국어참고서를 사서 공부도 했는데, 역시 입시문제 출제 빈도수로는 바로 이 부분이 가장 높았던 문항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나는 5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이 작품이 그동안 교과서에 얼마쯤 여러 번 수록 되었는지를 한번 알아봤다. 국어교과서가 그동안 7,8차례 개정이 되었는데 그것이 국정이었건 또 지금처럼 검인정이 되어 있건 두세 번 정도의 탈락만 있었을 뿐 거의 ‘약방의 감초’처럼 매번 수록되어 왔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교과서에 수록 될만한 현대의 기행문이 그렇게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에도 유독 이 작품이 선호된 데에는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그것은 곧 기행문으로서 문학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 문학성이 곧 다름 아니라 단순한 금강산 기행문이 아니라 기행수필로서 완성도가 있었기 때문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 이 글의 문학성이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알아 보기 위해, 먼저 다시 한번 옛 기억을 더듬어 본다는 뜻에서, 그 기행의 여정과 구성및 내용을 알아 보기로 하겠다. 교과서에서는 수록에 따른 길이 문제로 상당한 길이의 앞 부분을 잘라 버리고 곧 바로 내금강 역사(驛舍)에 도착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 원본대로 한번 보기도 하겠다.

여정은 서울 출발 > 철원에서 금강전철 환승 > 내금강 역사 도착 > 문선교 > 장안사 > 명경대 > 황천계곡과 망군대 > 마하연과 비로봉 > 마의태자의 묘에 이르는 과정이다.

그리고 구성 및 내용을 간추려 보면 1)산행을 나서는 탈속의 감회와 경원선 기차 승차 2)차내에서 자연인으로 돌아가 본다고 느끼는 기대감과 그 환희 3)금강전철  환승 그리고 마음의 여유와 평화 만끽 4) 내금강 역사 도착 5)이틑날 이른 아침에 본 금강산의 아름다운 자태에 대한 찬탄 6)장안사에 당도하는 과정에서 감상해 본 산의 경치 7)명경대 장관과 그 전설에 대한 감회 8)황천계곡의 아름다운 단풍 구경 9)망군대에서의 조망 10)마하연 여사(旅舍)에서의 감회 11)비로봉의 아름다움과 조망 12)마의태자 무덤에서의 회고와 소회 등으로 되어 있다.

특히 이글의 하이라이트인 맨 마지막 부분을 우리 모두 지난 날 학생시절에 각자가 느꼈던 진한 감동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는 뜻에서 새롭게 음미해 보기로 하겠다.

태자의 몸으로 마의를 걸치고 스스로 험상(險山)에 들어온 것은, 천년사직을 망쳐버린 비통을 한몸에 짋어지려는 고행(苦行)이었으리라. 울며 소맷귀 부여잡는 낙랑공주의 섬섬옥수를 뿌리치고 돌아서 입산 할 때에, 대장부의 흉리(胸裏)가 어떠했을까?

흥망이 재천(在天)이라, 천운(天運)을 슬퍼한들 무엇하랴만, 사람에게는 스스로 신의가 있으니, 태자가 고행으로 창맹(蒼氓)에게 베푸신 도타운 자혜가 천년 후에 따습다.

천년사직이 남가일몽이었고, 태자 가신지 또다시 천년이 지났으니, 유구한 영겁으로 보면 천년도 수유(須臾)던가! 고작 칠십 생애에 희노애락을 싣고 각축하다가 한웅큼 부토(腐土)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暗然)히 수수(愁愁)롭다.

아무튼 이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 사람들은 누구나 서정과 서경이 참 조화를 잘 이루고 있구나 하고 느낄 것이다. 화려한 필치에 참신한 비유적 표현도 많아 감복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일단 이런 점들은 우선 제쳐두고 자칫 딱딱해 질 수도 있는 기행문을 어떻게 문학적으로 승화시켰느냐에 대해서만 말해 보기로 하겠다.

첫째, 제목부터가 다르다. 작가의 계산된 집필 의도가 없었다고 한다면, 십중팔구 ‘금강산 등산기’, ‘금강산을 오르며’, ‘금강산 견문기’, ‘금강산 기행’정도로 될 개연성은 높았다 하겠다. 여기서 또 정서적 고려를 염두에 두었다면 ‘금강산의 추정(秋情)’도 되었으리라 본다. 그랬다면 역시 이런 제목의 글들은 여타 기행문과 오십보 백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자칫 건조하고 단순해 질 수 있는 기행문을 한 차원 높여 본다는 의도에서 ‘산에서 느끼는 정취가 끝이 없다’는 뜻의 「산정무한」을 제목으로 함과 동시에 이 제목에 걸맞는 글을 썼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제목에 나오는 ‘山情’의 서정성을 밑바닥에 깔면서 작가의 감회, 자유로운 상상력의 발휘,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보이는 회고적 소회와 인생론적 명상 그리고 ‘수필적 자아’의 심 경토로등을 염두에 두었기에 이 글이 문학적 기행수필이 된 것이라 하겠다.

3. 기행수필의 작법 향방

자, 그럼 이쯤에서 「산정무한」이 기행수필의 한 모형이 될 수 있었음을 대충 알아 보았으니, 이제부터는 앞으로 기행문을 어떻게 하면 기행수필이 되도록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아다시피 기행문이 여행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에 관한 기록성의 견문기라면, 기행수필은 이에서 결코 끝나지 않는다. 문학성의 획득이다. 그것을 비유해서 말해 보면 사진과 사진예술의 차이요, 알에서 성충이 된 나비나 잠자리가 껍데기 속에서 탈바꿈 하여 날아 나오는 과정과 다를 바 없다. 또 그것을 술을 빚는 양조과정을 빌린다면 숙성이나 증류 또는 여과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소재상으로 보면 기행문과 기행수필은 공통성과 공유성이 있다. 여행지의 자연환경, 역사와 문화등의 인문학적 환경, 의식주의 생활환경이나 생활상 그리고 생활문화, 유적이나 유물 그리고 기념물등의 문화재, 풍속이나 관습, 그 나라나 해당 지역의 인심과 인정, 특이한 국민성 등등이 바로 그 소재들이다.

그렇지만 기행수필은 기행문과는 달라 그 소재에 따라 ‘정서적심적 여과’냐 아니면 ‘지적 여과’냐 아니면 ‘혼성여과’라도 반드시 뒤따라야만 한다는 뜻이다. 정서적심적 여과라면 정서적 반응이나 감회 그리고 인생론적 명상이나 관조가 나올 수 있다. 지적 여과라면 인문학적 관조나 명상, 비교 문화적 접근이나 해석 아니면 개별 소재에 대한 작가 나름의 해석이나 의미부여등이 나올 수 있다.

이를 소재와 연관시켜 다시 구체적으로 적용시켜 보겠다. 그 적용은 어떤 대상(소재)에 빛이 비추어 졌을 때 생길 수 있는 실루엣 같은 그 개연성을 말한다.

• 자연환경이 소재인 경우 - 심적정서적 감회나 반응 아니면 인생론적 은유적 명상 또는 관조등

• 역사나 문화등 인문학적 환경이 소재인 경우-인생론적이거나 인문학적 명상이나 관조, 비교문화적 해석등

• 의식주의 생활환경이나 생활상이 소재인 경우 - 심적정서적 감회나 반응, 비교문화적 해석, 인문학적 명상이나 관조 또는 해석등

• 유적유물기념물등의 문화재류가 소재인 경우 - 인생론적 명상이나 관조, 비교문화적 해석등

• 인심이나 인정이 소재인 경우 - 심적정서적 감회나 반응, 인생론적 명상이나 관조등

• 풍속이나 관습이 소재인 경우 - 인문학적 명상이나 관조, 비교문화적 해석등

•  기타 다른 특수한 소재나 대상물인 경우 - 새로운 해석이나 의미부여등

기행수필로서 어떤 글이 적어도 이런 여과과정을 거친다면 비로소 기행수필만이 누릴수 있는 경이와 충격, 감동이나 발견의 기쁨, 깨달음이나 지적 즐거움을 독자들에게 선사할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다시 「산정무한」을 생각해 보자. 먼저 소재론상으로 보아서도 이 작품이 발표될 당시만 해도 금강산기행은 흔치 않아 관심의 표적이 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소재가 자연환경의 경우였기에 작가의 심적정서적 감회나 반응이 나왔고 또 마의태자의 무덤을 보면서는 인생론적 명상이 나왔던 것이다.

한마디로 기행문과 기행수필은 반드시 달라야만 한다. 기행문이 꽃봉우리라면, 기행수필은 심적, 정서적, 지적 향기가 나는 활짝 핀 꽃이다.

이제는 기행문의 시대는 갔다. 대신 명실상부한 기행수필의 시대를 열어가야만 한다.

「山情無限」으로_본_기행수필의_작법향방[1.hwp

이유식 :　평론가. 1961년 《현대문학》등단. 배화여대 교수 정년퇴임,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역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역임. 현 한국문인협회 고문,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상임고문, 청다문학회 이사장. 현대문학상, 예총예술문화대상, 한국문학상 외 다수 수상, 평론집 『반세기 한국문학의 조망』외 8권, 『세월에 인생을 도박하고』외 7권, 기타 10여권.

[김현거사]

열심히 읽고 많은 공부 하고 갑니다.

[봉화]

훌륭한 문학평론가가 남강문우회에 있다는것 영광입니다 고맙습니다 안병남

[청다]

거사님,봉화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