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朴泳善.1910.4.10∼1994.6.15)
서양화가. 예술원 원로회원. 평양 출생. 1936년 일본 가와바타(川端)미술학교 졸업. 1938년부터 1943년까지 조선미술전람회에 연 5회를 특선하고 2회 수상하였다. 또 같은 무렵 일본문전(日本文展)에서도 3회 입선하였으며, 1947년까지 개인전도 5회를 가졌다. 그 뒤 이화여대ㆍ홍익대 교수로 있다가 1955년 도불(渡佛), 1959년까지 파리 아카데미 그랑 쇼미에르에서 수학하면서 파리 국제미술전람회에 출품하는 한편 개인전도 가졌다.
1960년부터 서라벌예대ㆍ중앙대 교수 등으로 재직하였으며, 1972년 국전심사위원장으로 선임되고, 1978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한국 미술계에 이바지한 공로로 3ㆍ1문화상, 예술원상 등을 받았다. 장지 경기도 이천군 모가면 진갈리.
【작품세계】
1910년에 평양에서 태어난 박영선(朴泳善)은 한국 양화의 선구자들과 1925년에 개설하였던 성회(星會)회화연구소에서 유화의 기초를 익히며 양화가의 길을 열었다.
그의 천부적 그림 재능은 평양고등보통학교 졸업반 때인 1931년에 당시 가장 귄위있는 미술가 등용문이던 서울의 조선미술관람회(약칭 鮮展) 서양화부에 풍경을 그린 유화가 첫 입선한 데 이어 다음해에도 여인상의 작품이 거듭 입선함으로써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다.
1933년에 그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동경(東京)의 가와바타화학교에서 수학하였다. 서울의 조선미술전에도 계속 출품, 입선을 거듭하고, 1939년부터는 특선도 거듭함으로써 신예 양화가의 위치를 굳혔다.
서정적 사실주의 성향의 두드러진 유화역량으로 주목을 사게 되었던 그는 1939년 이후 서울 에 정착하여 작품 활동을 하는 가운데 1940년 이후 서울에 정착하여 작품 활동을 하는 가운데 1940년에는 동경(東京)의 주요 전람회에도 입선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해방 후, 박영선(朴泳善)은 1949년의 제1회 국전(國展) 때부터 추천작가, 이어서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였고, 서라벌예술대학(뒤에 중앙대학에 편입) 교수,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을 역임하며 폭넓은 미술계 활동을 보였다.
그 한편으로 그의 예술적 개성과 확연한 특질적 내면성은 1950년 후반부터 더욱 신선하게 실현되었다. 그것은 1955년에 파리로 가서 현대적 미술동향의 자극과 새로운 국제적 표현감각을 수용하고 소화하는 가운데 자신의 화면작업에 창의적 변화를 나타내게 되었던 배경에서 이루어졌다.
1933년부터 1936년 일본 가와바타(川端)미술학교에서 수학한 박영선은 서정적 사실주의 성향의 두드러진 유화 역량으로 주목을 받았고, 1939년 이후 서울에 정착하여 작품 활동을 하는 가운데 1940년에는 동경의 주요 전람회에도 입선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신개지(<新開地)>(1940.鮮展 특선작.한국산업은행 소장), <산과 서울>(1941.鮮展 입선작.호암미술관 소장) 등이 현존하는 그 시기의 대표작들이다.
1955년에 파리로 가서 현대적 미술동향의 자극과 새로운 국제적 표현감각을 수용하고 소화하는 가운데 자신의 화면작업에 창의적 변화를 나타내게 되었다. 1960년에 서울에서 가진 체불(滯佛) 작품전에서 그가 보여준 작품은 많은 나상작품과 파리의 풍경화, 그리고 <콤퍼지션>(구성)·<팬터지>(환상) 등으로 명제한 추상적 표현 시도의 작품 등도 포함된 대단히 참신하고 독특한 화면작업이었다. 그 화면들은 특히 부드러운 변화와 깊이가 있는 붓놀림으로 표현된 청회색조와 여인의 피부색의 감미로운 홍색조 또는 갈색조의 분위기로 그의 작품세계의 특질을 부각시켰다.
그러한 요소는 말할 것도 없이 작가의 체질적 표현 감성을 반영한 것이었다. 파리에서 돌아온 후의 작품들도 이와 같은 색채 분위기와 서정적 필치의 성향으로 그려졌다. 그 한편으로 작가가 파리에 가기 전에 이미 집중적 주제의 하나로 삼았던 한국의 농촌생활과 향토적인 자연환경의 정취를 다시금 주제 삼으려고 한 심정적인 애착의 연작도 남겼다. 1970년 제작의 대작인 <농부와 가족>(국립현대미술관)은 그 시기의 대표작이다. 그는 1970년대 이후 서울의 古宮을 비롯하여 시골과 농촌의 풍경을 현장 사생과 스케치를 토대로 많이 그렸고, 꽃과 과일을 소재삼은 탁자 위의 정물화도 함께 그렸다.
박영선이란 화가는 우리들에게 무엇보다도 우유빛 아름다운 누드를 그리는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 설령 그의 이름을 못 들어본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의 누드를 보면 아하 그 사람, 하고 떠올릴 정도로 그의 누드는 인상적이다. 특히 그는 누드뿐만 아니라 인물, 풍경, 그리고 정물에까지 우리나라 구상회화에 있어 비교적 독특한 화풍을 구축한 작가이기도 하다.
박영선이 누드를 집중적 주제로 드러내긴 했지만 농촌생활과 향토적인 자연환경의 정취를 담은 주제도 있다. 1970년의 대작 <농부와 가족>(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등은 그 시기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서울의 고궁을 비롯, 꽃과 과일을 소재로 삼은 감칠맛 나는 정물화도 많이 그렸다. 누드 아니면 정물이라고 할 정도로 그는 정적인 운치가 있는 정물들을 남기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한 작가의 작품 속에서 이렇게 누드작품만을 모아서 감상한다는 것은 그리 흔치도 않고 쉽지도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도 작고작가의 경우 작품이 여러 곳으로 흩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박영선 화백의 누드를 중심으로 한 전시회는 우리들에게 오랜만의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고 할 것이며, 아울러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여인의 아름다운 육체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공적】
1910년, 평양에서 태어난 박영선은 일찍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이며 1931년 조선미술관람회에 첫 입선하게 된다. 1933년 도일, 가와바타화학교에서 수학하고 조선미술전에서 입선과 특선을 거듭한다. 해방 후 국전 추천작가,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였고 서라벌 예술대학 교수, 대한민국에술원 회원을 역임하며 폭넓은 미술계 활동을 보였다. 이화여자대학교·홍익대학교 교수로 있다가 1955년 프랑스로 건너가, 1959년까지 파리 아카데미 그량 쇼미에르에서 수학하면서 파리 국제미술전람회에 출품하는 한편 개인전도 열었다.
1978년 대한민국에술원 회원이 된 박영선은 한국 미술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3ㆍ1문화상, 예술원상을 수상하였으며 작품으로는 <파리의 서커스>와 <박영선체불작품집>등이 유명하다.
그는 생전에 우윳빛 아름다운 누드를 그리는 작가로 유명했다. 젊은 한국여서의 사실적인 모습 속에 작가의 이상형인 서구적인 느낌의 외모가 한 데 어우러진 작품들을 많이 선보였고 그로 인해 ‘도시적 감각을 가진 화가’라 평가 받기도 하였다. 파리시기의 스케치와 드로잉은 새로운 회화세계 정립의 확실한 기본을 확인시켜주는 단면이다.
<여인초상>, <항아리를 든 여인>, <실내의 나녀상>, <둘 또는 세 미녀의 누드> 등을 비롯하여 파리 곳곳의 풍경과 구성의 드로잉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예술원)
【학력】
1936 일본 가와바타[川端]미술학교 졸업
1959 프랑스 파리 아카데미 그랑 쇼미에르 수학
1976 미국 컬럼비아대학 명예예술학박사
【경력】
1948 이화여대 미술대학 교수
1949 국전 추천작가 및 초대작가 (~1977)
1959 국전 심사위원 (~1977)
1960 대한미협 이사장
1960 서라벌예대 교수 및 미술교수과장 (~1973)
1961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교수
1962 5ㆍ16 기념 미술상 심사위원
【상훈】
1931 조선미술전람회 특선 및 입선 (~1944)
1941 일본문부성전 입선 (~1943)
1966 5월 문예상
1967 5ㆍ16 민족상
1969 3ㆍ1 문화상
1973 대한민국예술원상
1983 보관문화훈장
【주요작품 및 예술활동】
1939 제1회 개인전 (평양 상공회의소)
1945 해방기념전
1949 제1회 국전 (추천작가)
1953 현대미술작가 포대전
1954 현대미술 작가전 (천일백화점)
1955 도불기념 작품집 (미도파화랑)
1955 파리국제미술전 (프랑스파리)
1956 [대표작품] <아트리에>
1957 개인전 (프랑스 파리 샤르뎅 화랑)
1960 [화집] <박영선 화집>
1960 귀국전 (신세계 미술관)
1962 개인전 (국립도서관 화랑)
1964 목우회전
1968 한국서양화 10인전 (신세계 미술관)
1969 [대표작품] <하일>
1970 [대표작품] <누드>
1970 한국주제미술 9인전 (서울신문사)
1972 한국근대미술 60년전 (국립현대미술관)
1973 한국현역화가 100인전 (국립현대미술관)
1975 개인전 (진화랑)
1977 한국현대서양화대전 (국립현대미술관)
1977 회고전 (신문화랑)
1979 한국현대미술 1950년대 미술전 : 서양화 (국립현대미술관)
1983 국전출신작가전 (미술회관)
1985 한국현대미술 40년전 (국립현대미술관)
1986 서울미술대전 (국립현대미술관)
1986 한국현대미술의 어제와 오늘전 (국립현대미술관)
1987 초대 개인전 (백송화랑)
1992 원로작가 회화전 (국립현대미술관)
1992 한국근대미술 명품전 (호암갤러리)
【작품】<아트리에>(1957) <하일>(1969) <누드>(1970) <파리의 서커스> <박영선체불작품집> <신개지(新開地)>(1940,鮮展 특선작.한국산업은행 소장), <산과 서울>(1941.鮮展 입선작.호암미술관 소장) <여인초상> <항아리를 든 여인> <실내의 나녀상> <둘 또는 세 미녀의 누드> <계곡의 여인> <나부> <정물)
【저서】<박영선화집>(동아일보사.1960) <박영선체불작품집>(동신문화사.1960)
[출처] 서양화가 박영선(朴泳善)|작성자 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