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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 ․ Ⅱ
솔바람이 동굴 안쪽으로 스며든다. 동굴 입구로 스며드는 그 솔바람은 동굴 벽면을 핥다가는 나의 옷깃 안으로 파고든다. 음습한 동굴인데도 그 바람은 나를 조금 상쾌하게 한다. 그렇다. 좀 전과는 달리 상쾌하다. 오늘이 마침 입추라서 습하고 후덕지근한 열기가 물러가서일까? 아니다. 그것은 어쩜 아들 수현이가 방금 하산했기 때문에 더 개운하게 느껴지는 지도 모른다. 그렇다. 그건 분명 하다. 아들 수현이가 하산한 영향이 크다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 동굴은 아들의 하산과 관계없이 음습한 곳임에는 틀림없다. 동굴 벽을 타고 습기가 번질거리는 것도 여전하다.
나는 입구에서 좀더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잠시 멈추어 섰던 나는 다시 아들 수현이가 칩거한 그 자리에서 20M쯤을 걸어 더 은밀한 곳으로 들어간다. 그곳은 아들 수현이가 아닌 선친이 기거하면서 전쟁 중에 몸을 숨겼다는 자리이다. 아버지는 여기서, 이 동굴 속에서 당신이 선택한 이데오르기를 확실하게 신봉하면서 어떻게 눈빛을 빛내고 있었을까? 애국열사 김사국을 흠모하면서 통일 조국을 꿈꾸었을 지도 모른다. 이 음습한 동굴에서 말이다.
아들 수현이 역시도 이 동굴에서, 이 눅눅한 동굴에서 제 조부와 색깔은 다르지만 자기가 신봉하는 이념을 곧추세우고 있었다. 그건 이 동굴이 음습하다는 것과 함께 명백한 사실이다. 나는 선친이 숨어있었던 그 눅눅한 자리에 철푸덕이 주저앉는다. 방금 하산한 아들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그 뒤로 선친의 모습도 오버랩 된다.
이 음습한 동굴, 그렇다. 분명 이곳은 음습한 동굴이다. 나의 기억으로는 이 동굴의 음습함은 오래 전부터였다. 전쟁이 끝난 직후인 유년 시절 그 때부터 동굴 안은 이렇게 눅눅했었다. 친구들과 전쟁놀이를 할 때, 박쥐들이 놀라 퍼덕일 때, 그 박쥐들을 포획했던 그 때도 동굴은 늘 음습했었다. 아니다. 천만 년 전부터 바람이 이 동굴로 스며들며 박쥐도 데려다 놓았을 때나, 그 바람결을 타고 들어온 산거미가 거미줄을 느릴 때부터도 음습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눅눅한 바람이 이 동굴의 주인이지, 내 선친도 그리고 내 아들 수현이도 사실은 이 동굴의 주인이 아니다. 그들은 잠시 머물었을 뿐이다. 이곳은 좌를 신봉하던 선친이나, 정의라는 이름을 걸고 현실에 참여하는 의식 속에서의 자기 의지를 회복하겠다는 이념을 붙잡아 세우기 위해 촛불을 켰던 자가 잠시 머물며 각각 몸을 피했던 동굴일 뿐이다.
아까부터 불기 시작한 바람은 미풍이지만 지금도 피부로 감촉될 만큼 동굴로 밀려든다. 신기하다. 동굴 속에 이런 기류 이동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반쯤 허리를 펴고 손을 벌려 솔향기 배여 드는 눅눅한 그 바람을 더듬는다. 나는 바람을 피하려 들지 않는다. 그 바람을 끌어안는다. 내 아이, 아니 이제는 내 아이가 아니다. 언제인가부터는 내 아이라고 말하기에는 독립된 자아를 형성하고 있는 건장한 스물여섯 살의 대한민국 군역을 필한 청년, 3학년에 복학하고도 자신의 이념을 신봉하고 있는 그 아들을 끌어 안 듯이 동굴의 바람을 맞아들인다. 아. 갑자기 아들이 다시 보고 싶다. 방금 전 하산한 아들 수현이인 데도 그가 또 그립다.
지금도 마음 같아서는 수현이가 내 가슴 깊은 곳에서 나의 분신으로 살아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 바로 나이다. 이제는 그를, 그의 의식을 도저히 수용하거나 따라잡을 수 없는데도 나는 그를 늘 감싸 안으려 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경찰에 쫓기던 아들을 찾아 헤매다가 들판 갈대숲 속에서 반갑게 그를 상면했었던 그 어느 날인가 그 때처럼, 그 때 아들의 몸을 껴안았을 때 바람에 옷깃이 흔들렸던 것을 기억해내며 이 음습한 바람을 아들 수현이인냥 다정스럽게 맞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 동굴 안은 지금 나의 권유를 받아들이면서 하산한 내 아들의 체취가 분명 남아 있지 않은가! 그건 분명하다. 그래서 이 바람이 내게 상쾌한 것이다.
하지만 여름 내내 질축거리다가 아들이 하산을 하고 나서야 겨우 솔향기가 짙은 바람이 왜 이제야 스며드는 건 애석하다. 가슴이 메어진다. 내 아이가 휭하니 하산한 후에서야 바람이 상쾌하게 부는 것이 참 야속하다. 상쾌한 바람이 좀더 일찍 불어왔다면 그 바람을 쏘이며 더 좀 수현이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는데……. 제 할아버지에 대해서, 그리고, 애국열사 김사국에 대해서도 조금 더 이야기할 걸 그랬다. 더 단단히 설득할 걸 그랬다. 아들을 하산시키고 보니 당부할 말이 더 남은 것 같아 아쉽다.
아이는 이 음습한 동굴 속에서 몸을 숨기고 지내느라 답답했을 것이다. 내 아들이 가여워진다. 아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또 와르르 내려앉는다. 선친의 얼굴도 순간적으로 다시 오버랩 된다. 나는 살그머니 일어나서 동굴 입구 쪽으로 다시 걸어나와 내 아이가 머물던 자리로 옮겨간다. 제 어미가 눈물로 깔아준 깔 자리가 아직도 그대로 이다. 담요가 두 장 그리고 나뒹구는 헌옷 몇 가지가 예상한 것 이상으로 어수선하다.
나는 수현이가 앉아 있던 자리에 아까 선친의 자리에 앉았던 것처럼 철푸덕이 주저앉아 벽면을 더듬는다. 좀 전 상쾌하다고 느꼈던 것과는 달리 손바닥에 느껴질 만큼 습한 것은 여전하다. 그 습함이 나를 찝찝하게 만든다. 내가 잠시 상쾌했던 것은 바람 탓이 아니고 아들이 하산해서였나보다. 역시 그랬었나보다. 그가 앉아 있던 자리는 볼록하게 높은 자리라서 좀 덜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도 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곳에서 어떤 자유를 기구하며 자기 사유세계를 구축했을까? 그는 환청에 시달리면서 제 할아버지는 물론 애국열사 김사국도 문득문득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떤 때 넋을 놓고는 바람이 눅눅한 습기를 동반하여 들어오는 동안에도 입구에서 들어오는 작은 빛을 통해 동굴 벽면을 기어 다니던 성성이나 딱정벌레들을 할 일 없는 사람처럼 관찰하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아들 때문이 아니고, 내가 유년 시절에 전쟁놀이를 할 때부터 이것들을 동굴 속에서 쫓아내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나를 화들짝 놀라게 했던 박쥐랑 두꺼비까지도 좇아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아니다. 아주 욕심을 더 부린다면 당시에 나는 이 바람이 나의 가슴 깊숙이 침전으로 가라앉은 질곡의 역사와 함께 동굴 속에서의 선친의 삶 까지를 다 쓸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전쟁놀이를 했었다.
나는 갑자기 외로움을 느낀다. 좀 전까지는 아들이 의지가 되었던가 보다. 나는 그 외로움에서 벗어나려고, 다시 동굴 입구로 엉금엉금 기어 나와 하늘을 바라본다. 밤하늘의 별이라도 봐야 나는 덜 외로워질 것 같았다. 그래서 동굴 밖으로 나왔다. 이미 사위는 어두워지고 있었다. 땅거미가 소나무 숲을, 아니 이 세상을 야금야금 먹어가고 있다. 역시 별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어둠이 드리우자 기다렸다는 듯이 별이 나타난다. 하나, 둘, 셋……. 나는 별을 헤아린다. 내 ‘아버지별’은 어디에 있나? 나는 열심히 두리번거린다.
유년시절 이렇게 외로움이 밀려들 때, 별이 나타나는 것은 그나마 반가운 일이었다. 지금도 밤이 되었으니 별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데도 나는 반갑다. 진작 동굴에서 나올 걸 그랬나 보다. 동굴에서 벗어나 한 걸음 더 나오니 소나무 가지 사이로 총총히 뜬 별들은 눈앞으로 더욱 확실히 다가든다. 그 별을 바라보니 기분이 좀 전환된다. 외롭기가 좀 덜하다. 맞다. 아버지별, 1등성. 아버지별, 1등성 나는 열심히 아버지별을 찾는다. 아, 드디어 찾아냈다.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팔을 뻗어 손가락으로 별을 가리킨다. 내가 찾던 바로 그 아버지별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도 유년 시절 지목해서 밤이면 밤마다 그 별을 찾으며 선친을 그리워했던 그 아버지별이 반갑게 느껴진다. 방금 전 동굴 안으로 빌밋이 불어오며 아들의 하산을 축하해 주었던 그 솔바람만큼이나 반갑다.
나는 이 동굴 앞에서 유년 시절부터 하늘 한 복판에서 빛나는 저 별을 바라보면서 자라났다. 사람은 이승에 오기 전에 별로 살다가 다시 저승으로 가면, 별이 된다고 조모는 내게 늘 말했었다. 어머니를 보고 싶다고 칭얼대면 내입을 틀어 막으면서 조모는 별이 된 선친에 대해 말했었다. 나는 그 말에 반신반의하면서도 조모의 말을 믿기 시작했다. 그러니 별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조모에게서 세뇌를 당해서 일게다.
이 동굴 앞보다 우리 집 마당가에서는 별이 훨씬 더 많이 쏟아졌었다. 여름밤에 사립문 옆 감나무 밑에 밀대방석을 깔아놓고 6월, 하지 무렵에 캔 자주 색 찐 감자를 먹어가면서 바라보던 별들은, 이 동굴에 떨어지던 별보다 두 배는 더 많이 쏟아지곤 했었다. 여기 동굴 앞은 빽빽한 숲이 별을 가린다. 그러나 마당은 하늘을 가리는 것이 없어서 별이 훨씬 많아보였었다. 아버지별은 어디 있어 하고 물으면 그 때마다 조모는 늘 같은 대답해주곤 했다. 저 하늘 복판에 제일로 빛나는 별이 네 아버지별이란다. 그래서 나는 밤하늘에서 빛나는 별 중에 제일 빛나는 별을 찾기 위해 아주 많이많이 헤맸다.
그러나 실상은 우리 집 마당에서 제일 빛나는 별을 찾기는 어려웠었다. 별이 너무 많아 이 별이 제일 빛나는 것 같았고, 또 저 별이 더 빛나는 것 같아 좀처럼 아버지별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별이 그 별 같았다. 그 때쯤 해서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바로 집 뒤로 우거진 참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는 오솔길을 지나 솔숲이 우거진 동산에 올라 아버지별을 다시 찾곤 했었다. 이 동굴 앞에서는 1등성을 찾기 쉬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때부터 조모가 지정해 준 그 1등성 하나를 아버지별로 삼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 집 앞마당보다는 오히려 이 동굴을 나는 더 좋아한지도 모른다.
그렇다. 겨우 일곱 살에, 스물여덟 해를 살다가 세상을 등진 아버지를 추억하며 고독한 삶을 살기 시작했던 그 자리에 나는 지금 다시 앉아 있다. 아들을 하산시키고 그 동굴 앞에 앉아 있다. 내내 아버지를 추억하던 그 자리, 마당 앞 감나무 밑 밀대방석에서 벌떡 일어나 올라와 아버지별을 찾아냈던 이 자리, 저승으로가 아닌 이승에서 내 곁을 떠나면서 작별을 하고 난 후에 지금까지 종적이 없는 어머니를 그리워 하다가 가슴에 상흔을 만들었던 이 자리, 그래서 나는 한 번 이 동굴에 오면 이 자리에서 얼른 일어 설 수 가 없었다. 바로 일어서면 마음이 헛헛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 자리가, 아니 내 아들을 또다시 칩거하게 만든 이 동굴이 밉다. 아주 밉다. 아들의 자유의지가 그리고 그가 켜들었던 촛불이 밉다. 하지만 지금은 미움을 논할 때가 아니다. 나는 그 한스러움을 탓하면서 스물아홉에 낳은, 스물여섯 살의 자식을 방금 하산시키고 이렇게 고독하게 앉아 있는 이유를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그러니 나는 그나마 상쾌해진 솔바람의 향기에만 젖어 있으면 안 된다. 별을 바라보면서 유년의 추억에만 젖어 있어도 안 된다. 수현이는 정말 자수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게 영 마음에 걸린다. 반신반의한다. 어떤 돌출 행동을 다시 하지 말란 법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불안하다.
수현이는 어렸을 때, 참 천진한 아이였었는데…. 언제인가 아들 수현이가 내게 물은 적이 있었다. 그 아이가 열 두 살이었던 때였다. 그 날 나는 어린 수현이를 데리고 동산에 올랐다. 참나무가 듬성듬성 선 사이를 빠져나와 오솔길을 따라 소나무 숲을 아들과 손잡고 걸었다. 그 숲 위쪽으로 위치한 동굴은 여름 내내 음습했지만, 가을로 접어들던 그 날은 좀 보송보송했었다. 별만이 수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 날 수현이는 처음으로 제 할아버지에 대해 물었다. 아니, 할아버지를 보고 싶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어디 있느냐고 물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의 실체를 확실히 하기 위해 아들을 이 동굴로 데리고 들어왔었다.
그 때 나는 그를 동굴 속으로 데리고 들어와 내 조모에게 들은 대로 선친에 대해 처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애국열사 김사국에 대해서도 얼핏 말했다. 그리고는 그 날 내가 유년기에 어렵게 찾아낸 ‘아버지별’을 그에게 ‘할아버지별’로 인계해 주었다. 너무 쉽게 가족사를 아들 수현이에게 털어놓은 것일까? 당시 나는 가슴의 비밀을 아들에게 열고서는 허전한 가슴이 되었었다. 그 날, 아들 수현이는 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반신반의하면서 처음에는 접수를 하려들지 않았다.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얼마 후에서야 그의 가슴에 할아버지별을 묻기로 하겠다고 말했다. 하늘 한 복판 가장 빛나는 바로 내가 지정해 준 그 별을 할아버지별로 삼기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아들은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 사람은 죽으면 별이 되는 거야? 전(前)사춘기가 시작되고, 자아에 눈을 뜨려는 시점에 처해 있던 수현이는 그 걸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어쩜 어린 수현이는 그 날, 할아버지 죽음 그 자체보다는 별이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더 관심이 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길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런 아들을 향해 나는 열심히 별 이야기를 했다. 세뇌를 시킨 셈이다. 조모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수현아, 우리는 먼 훗날, 아주 먼 훗날 하늘나라에 가서 별이 되어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 거야. 나는 그날 나의 조모가 내게 그랬듯이 애써 아들의 가슴에 깊이깊이 제 할아버지를 묻어주었다.
하지만 그 날, 제 할아버지의 비참한 죽음을 알 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수현이가 지금처럼 의식화되어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신념을, 자유를 신봉하게 한 걸까 하고 생각하면 후회가 된다. 그렇다면 난 참으로 큰 실수를 범한 셈이다. 결국 아들 수현이는 할아버지만 찾은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의 이념까지도 비판적으로 승계한 것이다. 그랬다면 나는 너무 일찍 아들 수현이에게 할아버지별을 넘겨준 셈이 된다.
그랬는데 그 날, 더구나 더욱 나를 당혹하게 한 것이 있었다. 아들의 그 다음의 갑작스런 발언 때문이다. 아버지, 그럼 할머니는 우리 곁에 안계시지만 아직 별이 안 되었겠네. 수현이가 나의 모친인 제 할머니 이야기까지 꺼내는 것이다. 할머니!? 나는 아들의 말에 퍼뜩 놀랐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아들 수현이는 할머니가 생존해 있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그 때까지 나는 아들에게 할아버지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던 것처럼 제 할머니의 이야기를 해 준 적도 없었다. 당시 우리 집에서 내 어머니 이야기를 하는 것은 금기였다. 용납이 안 되었다. 아내도 그 때까지 한 번도 자기 시어머니 이야기를 내게 한 적이 없었다. 그 것은 우리들의 약속이었다. 아내는 나의 가정사를 인지한 상태로 나에게 시집을 왔기 때문이다. 어머니라는 말은 우리 집에서 금기어였다.
그랬는데 불쑥 아들이 제 할머니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 말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아들의 마음에 상처를 줄까봐 나무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이해시키기 위해 애써 변명을 늘어놓았다. 사람은 인연이란 게 있단다. 인연? 수현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눈을 까막거리며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인연이 뭐야? 음, 인연은 일테면 말이다. 부모와 자식으로 만나는 것이 큰 인연이고 나중에 네가 네 색시와 만나는 것도 인연이란 게 있어야 한단다. 나는 그 설명을 하면서도 마음이 아주 무거워졌다. 그럼 할머니와 우리는 인연이 없다는 거야? 그래, 맞다. 네 말이 맞다. 우리는 할머니와 인연의 끈이 질기지 못한 거야. 그래서 끊어진 거야. 그래도 할머니가 보고 싶은데……. 친구들은 할머니가 다 있는데…. 아들은 그날 천진하게 제 마음을 표출했다. 수현이에게는 당연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상처가 되었다. 그가 내 마음을 헤아릴 리가 없다. 나는 아들의 그 말을 들으면서 가슴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수현이는 그렇게 순순했던 아이였다. 할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제 할머니를 보고 싶어 하며 순하디 순하게 커 왔던 아들 수현이가 지금 왜 의식화 된 이념으로 진정한 자유를 외치며 촛불을 켜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역시 그의 유년 시절 그 날 밤 아버지별을 할아버지별로 인계해 주던 그 날의 충격이 계기가 되어 그를 지금 이렇게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또 생각하며 후회한다.
나는 아이의 유년 시절에 인성이 긍정적으로 형성되기를 바랐었다. 그래서 낙인이 찍혀버린 가정이 다시 회오리바람이 불지 않기를 바랐다. 그랬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들 수현이가 의식화 되어가고 있었다. 비판적인 사고가 팽배하면서 아이는 아주 의식화 쪽으로 야멸차져 가고 있었다. 대학 2학년을 마치고 특수 정보부대에서 청음병으로서의 군무를 필한 후, 예편하면서는 그는 더욱 그랬다. 믿어지지 않았다. 환청 속에서 그는 제 할아버지를 닮는 것일까? 그러나 내가 관찰하기에는 아들 수현이는 극좌도 극우도 아니다, 좌도 우도 아닌 아들의 냉철한 의식. 무 체제? 무 이념? 그렇다면 그가 투쟁하려는 표적은 무엇인가? 이렇게 나가다가는 그 역시 제 조부처럼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희생되는 거다. 아, 역시 나는 그를 설득해야 했다. 그래서 적어도 보편타당한 사고방식으로 전환되도록 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다.
그랬다. 나는 아버지를 그리면서 고독하게 살던 삶이 또다시 아들로 이어져 가슴이 이렇게 무너지는 아픔을 겪는 삶을 살아서는 결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걸 대물림하면 나는 너무 불운한 삶을 또 사는 것이다. 이 불행은 내게서 끝이 나야 한다. 어머니 얼굴을 잘 기억 못하며 외롭게 살던 내가, 아이를 미루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어느 교도소의 한적한 언덕에서 깟깟깟 까치소리를 들으며, 그를 면회하게 된다면 그 건 내 처지가 너무 가엾다. 그러므로 우리 부자의 삶을 가엾지 않은 삶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라도 나는 꾸준하게 아들을 아주 평범한 사고의 소유자로 전환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아들에게 긍정적인 삶이 무엇인지도 알려 주고, 인생의 의미도 전달했어야 했었다. 지금이라도 그에게 상식이 활개를 칠 수 있는 보편의 진리를 터득시켜 주어야 한다.
하지만 수현이의 태도는 늘 나와 상반됐다. 아버지, 저는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두 체제의 틈바구니에 끼어 할아버지처럼 어눌한 죽음은 하지 않고 싶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수현이를 향해 나는 질책하듯이 물었다. 누가 네 삶을 속박이라도 했니? 그렇습니다. 저는 늘 속박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전 그 속박에서 벗어나 영원한 자유를 누리고 싶습니다. 나는 그의 말에 나의 가슴이 와르르 내려앉을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 지저스 크라이스트가 로마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백 살을 살았다면 영원을 살 수 있었을까요? 전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서른세 살을 살다 간 그 말고도 영원을 살려고 속박에서 벗어난 많은 자유와 신념의 속죄양들 때문에 인류가 오늘로 이어지면서 자유나 평등 그리고 그 이상의 가치 있는 의미를 창출하고 있다고 봅니다. 저도 이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물론이다. 네 말이 맞다. 나는 긍정한다. 하지만 얘야, 수현아.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은 법이라고 순응하며 스스로 죽음을 택하지 않았니? 그래도 그는 우리들 가슴 속에서 진리롭게 영원을 살고 있잖니? 너도 법에 순응하는 자가 될 수는 없겠어? 나는 수현이를 설득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현이는 여전히 초지일관이었다.
나는 수현이가 지금 하산하면서도 그 의식이 변하지 않고 있다면 그건 정말 큰일이라고 생각한다. 많이 걱정이 된다. 그렇게 확고한 신념을 가졌다면, 아들 수현이는 내게 약속한대로 하산했다 해도 제 발로 파출소에 걸어 들어가 자수를 할까? 그렇다. 혹시……? 불길하다. 나는 머리를 흔든다. 아들이 자수를 한다는 약속은 허위이고, 다만 제 애비의 염려를 덜어 주려는 눈속임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이 다시 답답해진다. 그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그는 어느 후미진 거리에서나 그의 절친한 친구 집에 가서 또 몸을 의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를 찾아가서 다시 만나야 한다. 얼른 가서 그의 자수를 도와주어야 한다. 역시 내가 함께 내려가야 하는 거였는데…. 후회가 된다.
그랬다. 지금 생각하니 조금 전의 아들의 태도가 믿기지 않을 만큼 너무 순종적이었다. 전 같지 않았다. 수현아, 지금은 여름의 끝이다. 이제는 네가 켜들었던 촛불을 끄렴. 찬바람이 불기 전에 이제 더 방황하지 말고 이쯤해서 네가 신봉하는 이념에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어떻겠니? 평범한 삶으로 돌아올 수 없겠어? 그러니 얘야, 이제는 촛불을 끄자,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그는 의외로, 정말 의외로 순순하게 고개를 끄덕였었다. 나는 처음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심경이 변한 이유를 찾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나의 긴- 설득이, 나의 오랜 기도가 이제야 그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라며 생각하며 쾌재를 외쳤었다. 그래, 너 참 잘 생각했다. 나는 아들 수현이의 등을 토닥여 주었었다.
수현이는 전에 그렇지 않았었다. 이제 이 세상으로 나오는 것이 어떻겠니?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도 그는 오래도록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있었다. 저도 할아버지별을 세고 싶습니다. 그렇게 한가로운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그렇게 한가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는 늘 딴청을 부리고 있었는데, 오늘은 예상 밖으로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그 동안 아들 수현이를 설득시키는 일은 결코 쉽지는 않았었다. 언제인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자리는 어디냐? 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 때 아들은 초록별 위에 위치한 작은 지표면 대한민국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엉뚱했다. 그러나 참으면서 다시 물었다. 그가 대답하려는 속내를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네가 살다간 자리에 흔적이 남을 것 같으냐? 이 분단된 작은 땅에서……? 나는 다시 그렇게 물었었다.
그러자 그는 이 작은 땅이라니요? 하고 반문을 하더니 이내 강경해졌다. 그렇습니다. 전 이 땅에서 영원을 살고 싶습니다. 이 분단된 지표면 위에 흔적을 남기고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나는 이 작은 땅에서 우리의 의지의 자리를 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를 구속하는 체제에서 확연하게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는 늘 당당했다. 그날 그렇게 당당했던 그를 나는 다시 회유하기 시작했었다. 평범하게 살자. 우리가 살았던 흔적은 지표면 속에 묻히게 마련이다. 이름을 남긴다는 게 무어냐? 의미를 창출한다는 것이 무어냐? 우리 보통 사람이 되어 보통사람이 누리는 행복을 추구하자. 나는 그렇게 권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군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을 때, 백부가 나를 달랬듯이 그렇게 아들 수현이를 달랬다. 그러나 내 말에 내 아이는 오히려 눈빛이 달라졌다. 아닙니다. 가치 없고 사소한 삶이라도 일단은 속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누구로부터도 자유로워야합니다. 그 누구도 우리의 행동이나 사유의 세계를 구속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의미를 창출해야 합니다. 아들 수현이는 끝내 뜻을 굽히지 않고 있었다. 누가? 너를 구속했는데? 이념입니다. 이념? 그렇습니다. 누가 너에게 사유의 세계를 속박했는데? 구속입니다. 그리고 지명수배입니다. 그는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음습한 동굴에 칩거하고 있는 그를 위해 여름 내내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들을 달랬었다.
나는 진심으로 아들 수현이를 보편타당한 사유의 소유자가 되게 하기 위해 계속 설득해 온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자신의 본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그러지 말고 지금부터는 너와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자. 네가 대학을 매듭짓지 못하고 이렇게 방황하는 것이, 자유를 획득하자는 것이었니? 그러나 그게 존재의 이유는 아니잖니? 그것만이 의미를 창출하는 일은 결코 아니잖니? 나는 다시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수현이는 헛기침을 해대며 일단 한 번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아버지의 견해로만 치면 그게 존재하는 이유는 아닙니다. 그저 나의 생물학적 존재는 조부님이 존재했기에 아버지가 존재하고, 그리고 내가 존재하니까 이 땅에서 존재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게 아버지의 견해입니다. 그러나 제겐 그런 생물학적 존재의 의미는 애당초 없습니다, 따라서 나의 존재 의미는 인류가 아니, 적어도 대한민국 국민이 다 누릴 수 있는 자유를 획득하는데 있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여전히 마음을 내게 주지는 않았다.
그는 또 버릇처럼 절규하고 있었다. 아! 비행기 소리가 들립니다. 이럴 때 저는 당황스럽습니다. 그랬다. 그것은 외마디였지만 절규였다. 그들의 비밀 언어가 들립니다. 그는 다시 소리를 지른다. 당시의 비행기 이착륙 소리는 아들 수현이에게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아픔이었다. 그는 그렇게 환청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어떤 때는 멍한 채로 우두거니가 되기도 했다. 아들은 예편 직후에 그 고통을 더 자주 호소하곤 했었다. 그럴 때의 아들 수현이가 가여웠다. 나는 아들 수현이가 26개월 군무를 마치는 동안에도 가슴이 조마조마했었다.
그는 서부 전선 황×산 ○○기지. 해발 800M 고지. 밥만 먹으면 이어폰을 끼고 살아야 했다. 비행기의 이륙, 그리고 착륙, 그외에도 잠수함의 이동 상황이 그가 가진 무선 수신기에 청취되어야 한다. 아들 수현이의 임무 중 핵심이었다. 백×도에서, 오×에서 청취된 내용과 일치되어야 하고. 또 다른 ○○기지에서 청취된 기록들과도 일치해야 한다. 그래야 그 정보를 취합 분석해 상부에 보고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보고는 곧바로 미 펜타콘으로 가서 분석되었다. 제군들, 우리는 국가의 간성이다. 적을 확실히 알아야 승리할 수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 최첨단에 서서 대한민국을 사수하고 있다. 알았는가! 아들은 그곳에서 상급자에게 복종하고 있었고, 한 체제를 유지하게 하기 위해 역할 수행을 충실히 해야 했다.
아들이 예편하고 얼마 후 언제인가 그는 예삿일처럼 내게 한번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애국열사 김사국의 영향을 정말 받았을까요? 그러니까 아들 수현이가 스스로 김사국에 대해 물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그 물음에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띵했다. 가슴까지 철렁했다. 선친은 그의 영향을 얼마나 받았을까? 그건 나도 모르는 사실이다.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그에 대해 백모에게 물은 적이 없었다. 백모도 그 이야기를 해준 적이 없다. 다만 백모는 당시 어린 나에게 여러 번 친정아버지의 독립운동을 하던 영웅담을 들려주었을 뿐이다. 그래서 김사국은 나에게도 전설 속의 인물이었다. 맞다. 선친도 가랑비에 옷이 촉촉하게 젖듯이 김사국에게 젖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 후 나는 어느 날인가 한 번 더 아들에게 조심스럽게 물은 적이 있다. 네가 복학하고 나서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한 것은 바로 네가 군무를 필하는 동안에 알고 있던 비밀 때문이냐? 김사국의 영향으로 좌경화 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네 할아버지의 행적 때문이냐? 그러나 그 물음에 대해서 수현이는 끝내 노코멘트였었다. 나 역시 한 때는 군인이 되는 것이 간절한 꿈이었다. 그래서 백부 앞으로 갔었다. 백부님, 군인이 되고 싶습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할 무렵 오랫동안 꿈꾸어 오던 나의 진로를 백부에게 말씀드린 것이다. 그러나 나의 말에 백부는 전혀 생각이 달랐다. 백부는 질겁했다. 군인? 예. 그렇습니다. 나는 소망이 담긴 눈빛으로 미래를 설계하며 대답했었다. 아니? 너 우리가 낙인이 찍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그러는 거야? 백부는 무척이나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모른 척하며 계속 의사를 밝혔다.
그 때 백부는 나에게 간절히 당부했었다. 우리 평범하게 살도록 하자. 그러나 나는 백부의 설득에도 오래도록 저항했다. 지금 나의 아들 수현이처럼은 아니지만 말이다. 백부님, 지금 우리를 다스리고 있는 최고의 권력자인 통치자 그 분도 우리처럼 한 때 낙인이 찍혔던 분이라던데요? 그랬다. 나는 겁도 없이 대들었다. 그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굳이 쉬쉬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말에 백부는 매우 놀라고 있었다. 얼굴이 하애졌다.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여? 네 명대로 살고 싶은 거여? 너 아예 딴 소리 말고 그냥 죽어지내며 평범하게 살어. 백부는 한참만에야 겨우 평정을 되찾으며 한숨 섞인 말로 나를 달랬다. 나는 결국 움츠러들며 백부에게 순응했다.
그러나 수현이는 달랐다. 그는 늘 당당했다. 제가 할아버지를 닮고 싶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두 기존의 질서가 만든 틀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을 따름입니다. 누구도 제가 추구하는 정신적 사유에 대해 속박 당하지 않고 싶습니다. 우린 그런 사람들끼리 모인 것입니다. 촛불을 들었지만 우린 순수해요. 우리가 촛불을 켰다는 이유만으로 왜 지명수배를 받아야 합니까? 아버지, 지금은 맑은 시냇가에 유영하는 피라미가 흰 비늘을 하얗게 드러내놓듯이 밝아진 세상임을 잘 알지 않습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의 지명수배 그건 아이러니이고, 자기모순입니다. 김사국도 이미 체재에서 자유로워진 분이 아닙니까? 그는 복권이 되었습니다. 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그이처럼 신념대로 살면 어느 때인가는 면죄가 됩니다. 나는 그 걸 믿습니다.
그건 아들 수현이의 말이 맞다. 바로 오늘 나는 오전 10시에 김사국의 묘비 제막식에 참석했었다. 미아리 공동묘지에 모셨던 그와 그의 아내 박원희의 유해를 대전 국립 현충원으로 이장하고 안장식을 거친 후 가족이 모여 묘비를 제막하는 자리였다. 나는 유족들보다 조금 늦게 현충원으로 천천히 차를 몰고 들어갔다. 그러나 시간을 맞추기 위헤 차를 내렸을 때는 바지런히 걸었다. 애국지사 묘역은 일반 묘역을 훨씬 지나 한참 올라가서야 산 밑으로 넓게 펼쳐져 있었기 때문에 좀 멀었다.
나는 묘역에서 눈을 돌려 사위를 주의 깊게 돌아보았다. 멀리 주봉인 옥녀봉이 보이고 휘- 둘러 서 있는 소나무들이 울울창창했다. 산자락을 가득히 메운 검초록색의 소나무 녹음이 시원해보였다. 나는 정중한 몸가짐으로 김사국의 유족이 되어 애국지사 묘역에 당도했다. 백부에 의해 생육된 나는 사둔 어른의 묘비 제막식이었지만 유족의 일원이 된 셈이었다. 어차피 홀홀 단신인 백모 쪽의 친가는 아예 가족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현장에는 백부님 내외를 비롯해 사촌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일 수밖에 없다. 그 자리에 바로 내가 낀 셈이다.
유년 시절 뇌리에 박혀 있는 김사국 열사를 마음으로 그리며 나는 묘소 앞에 서서 유족 중 제일 나중에 분향을 했다. 백부모와 사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분향을 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묘한 기분이 되었다. 아니, 가슴이 무너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에 의해 낙인이 찍힌 아들이라서 군인도 될 수 없었던 나였다. 아예 군인이라는 꿈조차 꾸어볼 수 없었다. 그 당시 백부가 깜짝 놀라면서 내개 원하는 진로를 막았었다. 그 때의 백부의 놀람은 당신 아우의 좌경화보다는 자신의 장인의 행적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렇다. 그게 맞을 지도 모른다. 아, 그랬었는데……. 지금은 반전이 되었다. 김사국은 복권되어 국가가 인정한 한 시대의 영웅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앞에 서 참배를 하고 있다. 아들 수현이가 지적한 대로 이념의 속박에서 벗어난 한 영웅 앞에서 서 있자니 더욱 선친이 그리웠다. 나의 가슴이 메어진다.
여기
어둠과 절망의 시절을
뜨거운 가슴으로 맞섰던
선각의 부부가 잠들었노라
빛나는 지성과 푸른 신념으로
조국 광복에 영육을 바친
눈부신 지아비와
겨레의 몽매 일깨우며
여성 운동의 횃불을 밝혔던
옹골찬 지어미
그대여
삼가 옷깃을 여미고
귀 기울일지라
이곳에
선열의 아름다운 숨결
아직 살아있나니
나는 애국 열사 김사국 부부의 비문을 한참 동안 매만지며 쓸어내리다가 씁쓸한 기분으로 대전 현충원에서 빠져나왔다. 함께 식사라도 하고 가지 그래? 사촌 형이 나를 붙잡았지만 나는 굳이 사양을 했다. 그 자리에 있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오히려 아들 수현이가 칩거하고 있는 동굴에 마음이 더 가 있었다. 그래서 평소보다 차를 빨리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도착하는 대로 나는 바로 아들 수현이가 있는 이 음습한 동굴로 올라온 것이다.
내가 도착했을 때, 아들 수현이는 여전히 이 동굴 안에서 좌선하고 있었다. 수행하는 사람처럼 동굴 벽을 향해 자세를 흩트리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 적막함과 고요를 깨뜨리면서 수현이의 등 뒤로 가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를 설득하는 일이 급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동안 애를 먹이던 수현이가 순순히 자수를 한다면서 해가 질 무렵에서야 하산한 것이다. 나는 지금 아들 수현이가 이제라도 촛불을 끄고 보편타당한 생각으로 복학해 줄 것을 빌며 간절히 정말로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나는 아들 수현이 문제가 빠른 시일 내로 매듭이 지어지길 바란다. 정부가 그를 관용해고 보듬은 후에 다시 복학이 될 수 있도록 선처해 줄 것을 간절히 기도한다. 나는 그가 김사국과 같은 영웅이 되어 돌아오는 것도 싫다. 아, 지금쯤 백모는 어떤 흡족한 모습으로 앉아 있을까? 나는 나의 백모를 떠올리며 자수를 하겠다며 아들 수현이가 총총히 내려가던 그 뒷모습을 다시 떠올린다. 이제는 밤이 점점 깊어지고 있나보다. 사위가 조용해지는 걸 보니…. 산새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적막감만이 감돈다. 수현이가 정말 이번에는 자수를 할까? 난 기도하는 마음으로 멀리 밤하늘을 응시한다. 아버지별이 여전히 빛난다. 1등성, 아버지별. 아! 아버지별이 내리꽂힐 듯이 빛난다. ♧
첫댓글 오늘은 소설 '아버지와 아들'을 읽고 갑니다.
좋은 읽을 수 있어 갑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