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은 유난히 더 추운 겨울입니다.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5도를 넘나드는 날이 일상이 되었고, 코로나 19로 마음까지 얼어붙는 나날인데....
펑청 쏟아지는 눈이라도 맞아보자고 나섰던 서산에서 해미읍성에서 개심사까지 걷고, 계속해서 요즘 인스타그램의 핫플레이스로 특히 꽃 피는 봄 경치가 환상적인 용비지까지 다녀왔습니다.
눈 내린 해미읍성과 개심사, 용비지는 어떤 모습일까.....
아라메길은 바다의 고유어인 '아라'와 산을 뜻하는 우리말 '메'를 합친 말로 바다와 산이 만나는 서산지역의 특색을 갖춘 둘레길이라고 설명한다 - 서산시청 누리집
1월 6일 이미 어둠이 깊게 내린 서산에는 칼바람 속에 눈발이 새차게 퍼붓고 있었다.
식당을 찾아 헤메다 겨우 찾은 순대국집 주인은 9시 땡하면 나가야 한다고 코로나 경고부터 날렸다. 국밥을 주문하고 냉장고에서 소주부터 꺼내왔다(한국에서는 이렇게 하는 게 당연한 듯했다). 안주 없이 글라스 채로 마시자니 주인이 '그렇게 바빠유~ ?' 하신다. 그럼유 바쁘지유... 9시 땡 했는데 소주 남기고 가면 어째유~ ?
서산의 첫날밤은 그렇게 국밥 한그릇에 소주 한 병으로 끝났다.
다음 날 아침 창밖을 보니 온통 눈세상이긴 하지만 분위기는 살풍경이었다.
바람에 쓸려 날아가는 가루눈을 보자니 밖으로 나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진다. 따끈한 모텔방에서 하루쯤 빈둥대도 좋겠지... 하고 핑계거리를 찾는데 전화벨소리....
여행사교육동기생이었던 서산세진여행사의 윤사장이 아침부터 전복백숙에 해장소주로 어떨떨하게 만들더니 해미읍성 앞에서 던져버리고 갔다.
아라메길 1구간은 운산면 여미리에 있는 유기방가옥부터 시작해서 여기 해미읍성에서 끝나는데, 날이 날이니 만큼 개심사까지만 걸어보자.
해미읍성 남문 앞... 사진으로도 추워 보인다.
읍성 안도 춥고 썰렁하기는 마찬가지인데 소나무는 눈바람 속에 오히려 더 기품이 느껴지는군....
한낮임에도 인적조차 드문 해미읍성 안
성안을 한바퀴 돌아본다.
둘레 1.8km, 높이 5m의 돌을 쌓아 만든 석성이다.
호서좌영이란 현판이 걸린 조선시대의 관청
해미읍성은 군사요충지로 인근 내포지방 중 유일하게 군사 1,500명이 주둔한 진영이었으며, 진영장이 해미현감을 겸하며 독자적인 처형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해미읍성 객사 -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관원들이 모여 임금에 대한 예를 올렸으며, 조정에서 파견된 관원들의 숙소로 쓰였다.
호야나무로 불렸던 회화나무
해미읍성은 천주교 순교성지로 유명하다. 저 회화나무에도 붙잡혀온 신자들을 철사줄로 목이나 손발을 묶어 매달았다고 한다.
1866년 병인박해 이래 수천명의 신자들이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진영장이 독자적으로 처형을 할 수 있었던 탓에 피해가 더 컸었던 듯하다. 잔인한 역사의 현장이다.
성문 밖으로 나간다.
읍성 밖의 해미는 자그마한 면소재지이다.
읍성 주변은 관광지의 상가모습이나 몇 걸음 더 나가면 주민들이 살아가는 생활공간이라 이곳저곳 둘러볼 만하다.
1491년(성종 21)에 처음 쌓았다는데 이렇게 크고 작은 호박돌로 쌓아올렸다.
나중에 복원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리 튼튼해 보이지는 않는다.
아라메길 안내도
서산을 대표하는 둘레길이란 자랑이 무색하게 안내판이나 길표시는 부실했다.
길 표시가 잘 되어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별 준비없이 갔더니 길 시작(끝) 지점을 놓치고 도로를 따라 갔다. 나중에 조사해보니 해미읍성 북문에서 왼쪽의 산으로 갔어야 하는데 눈 덮인 성벽길은 발자욱 하나 없어서 이 길로 오고 말았다.
얼마 안가서 이 길이 아니고 저 산등성이로 둘레길이 이어지겠다는 생각은 했으나 저쪽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없구나.
도로에서 보는 설경이 멋지긴 하다.
황락저수지 옆 도로를 따라 간다. 차도 사람도 다니지 않는 길이 한적하다. 저수지 끝에서 왼쪽 골짜기로 접어들면 둘레길로 갈 수 있을 것 같다.
황락저수지 끝에서 둘레길을 찾아 가는 길에 가족묘지인듯 눈을 쓴 무덤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야산의 허리를 질러가는데 목화송이가 열린듯 관목들이 소담스런 눈을 쓰고 있다.
건너편에 둘레길이 보인다.
이제 둘레길에 제대로 들러섰다.
아무도 지나간 적 없는 눈길을 따라 간다.
아직 눈꽃을 쓰고 있는 나무들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자아낸다.
저 건너 능선 아래 자리한 절은 개심사 위에 있는 보현사가 아닐까...
지나온 길
개심사로 올라간다.
늦은 오후 시간이라 발자국만 남았을 뿐 절에도 인적이 없다.
개심사는 이미 몇 차례 와 봤지만 이렇게 한겨울 눈 속에 덮인 모습을 보기는 처음이다. 상왕산 개심사 현판의 글씨가 건물의 분위기와 잘 맞는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서예가로 이름 높은 해강 김규진의 글씨라고 한다.
개심사는 소박한 절의 분위기와 함께 봄에는 청벚꽃, 홍벚꽃으로 유명하다.
구불구불한 목재를 다듬지 않고 그대로 쓴 범종각도 멋스럽다.
자연스러우면서도 단정한 모습의 심검당이다. 심검당은 마을을 칼같이 세운다는 뜻이라고 한다. 절집이라기보다 선비의 집을 보는 듯하다. 조선초기의 건물답다.
명부전 앞의 휘어진 향나무가 하늘로 올라가는 영혼을 보는 듯하다. 개심사는 나무 한그루도 절묘하다.
웅장하면서도 단정한 안양루와 건물에 걸맞는 편액. 멋을 부리지 않은 듯 멋을 부린 멋진 글씨
여기서 불국사의 정경이 떠오른다. 둘 다 멋있는 경관인데 비교하자면 불국사는 장인들이 최상의 재료로 만들어낸 세련된 아름다움이라면 개심사는 그 장인들이 주변에 있는 재료로 만든 소박한 아름다움이라 할까...
주변경관과 잘 어울리는 자연스러움, 절제된 경내 분위기....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이 지금 이대로의 개심사만한 절이 몇이나 될까. 보고 또 봐도 머무르고 싶은 곳이다.
눈 덮인 서산목장과 신창저수지
춥고 추웠다.
오랫만에 손이 시릴 정도로. 남쪽의 서산에 와서 손이 시릴줄이야....
얼어붙는 신창저수지 너머로 내포들 가득 눈이 날린다. 매서운 북서풍과 함께...
용나래미
용비지로 가는 이 언덕을 용나래미라고 한다.
용비지가 내려다 보이는 목장 안에 메타세콰이어인지 낙엽송인지 잎 떨어진 나무들이 타원형으로 늘어서 있다.
나무들은 가까이 가 보면 두 줄로 늘어서 있다. 봄에 초록색 잎이 돋아날 때는 참... 아름답겠다.
용비지 호수(저수지) 안으로 튀어나온 곳에 정자 하나
호수를 돌아가는 길은 편백나무 숲을 돌아가는 길이다.
줄기의 한쪽은 눈을 그대로 붙여놓은 편백나무 숲
시베리아 벌판에서나 봄직한 경관이다.
울창한 편백나무 숲
편백나무 숲을 지나면 오솔길이 이어진다.
건너편에서 본 용비정.... 호수는 얼어붙었고 춥다.
한겨울의 이 허허로운 풍경이 봄이면 갖가지 색으로 물들며 환상적인 경치를 보여준다.
용비지를 둘러싼 하얀 언덕은 목장이다. 봄이면 초록빛 들판으로 바뀐다.
제주도의 오름 풍경이 아닙니다.
용비지 아랫쪽 목장의 풍경
대관령 목장길을 닮은 서산목장길
목장길은 대관령에도 제주도에도 그리고 서산에도 있었다. 규모는 좀 작아도 길만 잘 찾으면 한겨울 눈길걷기에도 좋은 곳이다.
다음날은 서해바다와 붙어있는 황금산에 갔다가 아라메길 3구간을 걸으러 나섰으나 주변을 뒤덮은 화학공장의 연기를 보고는 조금 걷다가 되돌아왔다.
첫댓글 고생하신덕에 눈덮인 해미읍성 구경 잘 했습니다. 오서산 산행하고 잠깐 들렀던 곳, 부연설명까지 해주신 대장님~짱이예요~
해미읍성 개심사는 아무래도 꽃 피는 봄날이 제격인듯 합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