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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부터 '노점상의 추억'까지 돌고 도는 이명박의 '도돌이표 강의' | |
끼니를 걱정한 어린 시절, 고학으로 대학입학, 총학생회장과 투옥, 현대건설 입사 초고속 승진, 국회의원, 서울시장,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대선 후보가 되기까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삶에는 드라마틱한 요소가 많다. 그의 삶은 드라마 <야망의 세월>(1990)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 때 주인공으로 이명박 전 시장 역할을 맡은 배우 유인촌씨는 이명박 전 시장의 열혈 지지자이기도 하다. 이런 이명박 전 시장의 '이야기 요소'는 대중강연의 단골메뉴가 된다.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전, 대선 후보들은 강연을 통해 대중을 만난다. 이명박 전 시장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전 시장은 3월에만 6차례 강연을 했다. 강연 대상자는 20대 대학생에서 60대 보수인사까지 다양하다.
이명박 전 시장의 강연은 구체적이고 생생하다. 이론보다 경험을 강조한다.
'일자리' 문제를 얘기할 때 경제 이론과 외국의 사례를 들지 않는다. 인력 시장을 전전하던 자신의 20대 초반의 고난과 소망을 이야기한다. 서민의 삶 개선을 이야기할 땐 '뻥튀기' 장사하며 겪었던 10대 후반의 에피소드를 꺼낸다. 또 경부운하의 실현 가능성을 거론할 땐 "나는 이미 경험해봐서 알고 있다"며 건설회사 CEO 경력을 부각시킨다.
강단에 선 이명박 전 시장의 태도는 자연스럽다. 손짓발짓을 동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느 특정 인물의 표정과 말투까지 직접 따라하기도 한다.
그러나 생생하다는 장점이 거부감으로 작용할 때도 있다. 이명박 전 시장의 강연을 들은 박민지(24)씨는 "너무 과거 이야기만 하니까 지겹다"고 말했다. 박종화(48)씨는 "강연이 편안하긴 하지만 훈계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경쟁 관계에 있는 '박근혜 캠프'의 한 핵심관계자는 "국가를 책임지겠다는 사람의 강연이 건설 '노가다판'에서 하듯이 너무 쉽게 말한다"고 비난했다.
이명박 전 시장의 강연과 메시지 팀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메시지를 담당하는 김윤경씨는 "이명박 전 시장은 체험과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가 많고 청중들도 그런 '휴먼 스토리'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씨는 "이명박 전 시장이 강연 노트를 읽는 게 아니라 즉석에서 편안하게 말하기 때문에 '사고'가 생기지 않을까 가끔 조마조마하다"고 말했다.
강연자 누구나 그렇듯 반복되는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다. 이명박 전 시장이 대중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뭘까? 반복되는 그의 '도돌이표' 강연의 스토리를 정리해 봤다.
#1. 이명박 전 시장의 '노점상의 추억'
그의 강연에서 '노점상의 추억'은 빠지지 않는다. 특히 뻥튀기 장사를 하며 겪었던 에피소드는 청중들의 반응이 가장 좋다.
"야간고등학교에 다니며 좌판을 할 때 일부 손님들은 위로한다며 '부모님이 무엇을 하시느냐'고 묻곤 했다. 그때마다 가슴이 철렁했다. 부모님이 뭘 하는 지 내세울 수 있으면 시장에서 좌판하겠냐고 되묻고 싶었다."
이어 그는 "국회의원이 된 뒤 지방에 가면 일정에 재래시장 방문이 꼭 있는데, 기자들 요청으로 시장 상인들에게 '장사 잘되느냐'고 물어보게 된다"며 "아마 그런 질문 받는 시장 사람들 속은 뒤집어졌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시장에서 장사를 안 해보면 그 마음을 모른다"는 게 이명박 전 시장의 설명이다.
이 때쯤이면 청중들은 어김없이 박수를 보낸다. 이명박 전 시장은 그런 청중들의 반응을 잘 아는지 이 부분을 이야기할 때면 몸짓까지 똑같이 반복한다.
#2. 청년 이명박의 '꿈'과 '747 비전'
"내 청년시절의 꿈은 아침에 출근해 저녁에 퇴근하는 월급쟁이였다."
이명박 전 시장이 3월 27일 한양대학교 한양종합기술연구원에서 학생 500여 명을 앞에 두고 한 말이다. 이명박 전 시장은 "나는 시장에서 좌판 장사도 해보고, 노동판에서 일하며 판자촌에서도 살아봤다"며 "일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전 시장은 매번 청년 시절의 꿈을 강조한다. 지난해 2월 노숙인 상대 강연에서도 같은 말을 했다. 그리고 지난달 춘천 강원일보사에서 열린 강연회에서도 한나라당 포럼에서도, 또 자유시민연대 창립 6주년 기념 강연에서도 반복됐다. 이름하여 '삽질론'이다.
"아무리 건장하고 운동을 많이 한 사람도 삽질은 한시간도 잘 못한다. 오히려 비쩍 마른 할아버지가 잘한다. 그 할아버지는 해봤기 때문이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말로만 하는 경험 없는 정치인의 이야기보다 경험하고 행동 옮겨본 사람들은 잘 안다."
대선 예비주자 중 나이(67세)가 가장 많은 축에 속하는 점을 의식하면서도 자수성가형 벤처정신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747 비전'으로 연결된다. 지난 3월 출판기념회에서 이명박 전 시장은 "경제가 한 해에 '7%' 성장하고, 1인당 국민소득이 '4만' 달러에 이르면 이탈리아와 경쟁하는 세계 '7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모두가 잘 살기 때문에 지역 감정도 사라진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전에는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얘기했다. 2005년 11월 21일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대학언론인과의 토론회에서 그는 "경제가 발전해 소득 3만불 시대가 오면 지역갈등은 물론 양극화 문제들도 해소될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1년여만에 1만불이 늘어난 셈이다. "지도자만 잘 하면 모두 가능하다"는 것이 이명박 전 시장의 논리다.
#3. 이건희 회장의 '멘트'와 노조의 파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우리나라가 이대로 가면 4~5년 뒤에 큰 혼란이 올지 모른다고 했다. 삼성이 어려우면 다른 곳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정신을 못 차린다."
이명박 전 시장의 강연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 관한 언급은 빠짐없이 등장했다. 이건희 회장은 대통령에 버금가는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이명박 전 시장은 '재계의 대통령' 발언 중 특히 "이대로 가면"이라는 단서를 강조한다.
그리고 "4~5년 뒤 큰 혼란"을 막기 위해서 추진력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걸 빠뜨리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 이명박 전 시장은 기업 CEO 출신인 자신의 경력을 적극 부각시킨다. 기존 정치인 출신 인물들과는 다른 리더십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전 시장의 강연에 대기업 회장만 등장하는 건 아니다. 노동자에 관한 얘기도 매번 언급된다. 노동자는 자주 파업과 연결된다. 그리고 파업하는 노동자로 자주 언급되는 주인공은 현대자동차 노동자다.
이명박 전 시장은 지난 1월 23일 부산 해운대 벡스코에서 열린 '한나라 부산포럼 초청강연회'에서 "현대자동차의 파업은 생계형 파업이 아니다"며 "최고의 대우를 받는 노조가 파업한 것이고 이와 관련해 기업의 잘못도 있지만 정부의 책임도 크다"고 말했다. 이어 "불법 파업에 국가는 원칙을 갖고 강력히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현대자동차 노조 파업에 관한 이명박 전 시장의 '철학'은 3월에 열린 각종 강연에서 다시 반복됐다. 이건희 회장과 현대자동차 노조. 이명박 전 시장은 신분적으로 대척점에 있는 이들을 강연에서 한 쌍으로 묶어 언급하곤 한다. 이 때 '기업인 출신 이명박'의 정체성은 더욱 부각 된다.
#4. 추진력과 낙동강 물고기
"추진력이 있는 분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이명박 전 시장의 장점에 대해 한 말이다. 이 발언은 지난 13일 한국인터넷신문협회 주최 간담회에서 나왔다. 박 전 대표는 6개월 전부터 이 명박 전 시장에게 지지율 1위 자리를 내주었다.
대중들은 이명박 전 시장이 청계천을 복원하는 걸 두 눈으로 지켜봤다. 눈으로 확인한 추진력은 도덕성 공방에서도 큰 힘을 발휘했다. 지난 2월 김유찬 전 비서관이 도덕성을 정면으로 문제 삼을 때도 이명박 전 시장의 지지율은 큰 변동이 없었다.
청계천 복원으로 '추진력=이명박'이라는 등식을 확립한 이명박 전 시장은 대권에 도전하며 경부운하 카드를 꺼내들었다. 당연히 강연에서 경부운하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특히 이명박 전 시장은 아래의 말을 반복하며 경부운하를 반대하는 사람에게 날을 세운다.
"어떤 사람들은 경부운하 건설되면 한강에 있는 물고기가 낙동강으로 가고, 낙동강의 물고기가 한강으로 가기 때문에 생태계에 교란이 일어난다고 한다. 이게 무슨 생태계 교란이냐."
이명박 전 시장은 늘 "안 되는 것만 보지 말고, 안 되는 것을 어떻게 하면 되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며 "(비판 세력들도) 긍정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추진력 있다"고 이명박 전 시장을 추켜세운 박 전 대표. 그러나 경부운하에 대해서는 "나 같으면 추진하게 않겠다"며 우회적으로 이명박 전 시장을 비판했다. 이명박 전 시장에게 경부운하는 청계천에 이은 또다른 추진력의 상징이다. 그러나 비판 세력에게 경부운하는 뚜렷한 공격 대상이다.
이명박, MUST HAVE '센스'
정치인에게 '도돌이표' 강연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 번'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재미있는 드라마도 재방송을 초과하면 욕을 먹는 게 세상인심이고, 술자리에서 했던 말 또 하는 사람은 기피 대상 1호다.
서두에 말했듯 이명박 전 시장의 삶은 드라마틱하다. 그러나 그 삶의 이야기가 책으로 출판되고, 드라마로 재연되고, 강연에서 또 반복되면 아무래도 재미가 반감된다. 게다가 강연의 대상이 노숙자에서 한나라당 당원으로, 또 우익인사에서 대학생으로 바뀌는데도 메시지가 같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어쩌면 이명박 전 시장에게 필요한 건 변화와 변신의 '센스'인지도 모른다.
<출처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