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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원장에게 빌다시피 해서 시간을 얻어냈다. 지친 재수생활을 하는 아이들은 그저 휴강이라면 좋아했다.
동화책이나 나올 법한 연한 초록색의 벽돌집은 누근든 한 번쯤 들어가 보고 싶어했다. 그것이 정신병원이라는 것을 알기 전에는, 닻별이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었다.
국내에서 최고의 권위자라는 민경호 박사가 처음부터 치료를 맡았으니, 민 원장을 알게 된 건 닻별이가 처음으로 자살을 시도한 뒤었다.
워낙 특이한 경우라 관계자들 사이에 소문이 난 모양이었다.
하지만 국내 최고의 전문의라는 민 원장이 처음부터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다.
날카로운 면은 전혀 없고 덥수룩한 모습부터가 어설퍼 보였다. 옷차림도 엉망이었다.
헐렁한 베이지색 면바지에 체크무늬의 남방 차림. 깨끗하기는 했지만 한마디로 구멍가게에 담배
사러 잠시 나온 동네 아저씨 같아 보였다.
모든 인간을 겉모습으로 평가하는 남편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민 원장은 막무가내였다. 치료비 전액을 지원해 주겠다는 말에 남편은 도로 앉았다.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적어도 내가 살아온 인생은 그랬다. 거저 얻어 본 일이 없는 인생은 눈치만 늘었다.
" 왜 그렇게 닻별이한테 집착하세요? 연구노문거리로 참 좋은가 보죠?"
당황할 거란 내 예상과는 달리 민 원장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어디를 가든 닻별이 같은 경우는 연구논문거리가 될 겁니다. 어차피 그럴 거라면 최라리 최고한테 받는 게 낫겠지요."
어수룩한 인상과는 달리 민 원장의 말은 허를 찔렀다. 결국 난 그 말에 넘어갔다.
원장실은 5층 꼭대기에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민 원장의 비서가 먼저 아는 척을 했다. 민 원장이 치료하고 있는 사람은 닻별이 밖에 없으니 내 얼굴이 익숙한 것도 당연했다.
민 원장은 병원 경영에 신경 쓰느라, 자원봉사를 다니느라, 새로운 치료법을 연구하느라 바빠 다른 환자는 거의 보지 않았다.
"지금 상담 중인데요."
"그럼 기다릴게요."
난 원장실 앞에 있는 의장에 앉아 잡지책을 뒤적였다. 잡지책은 연예인들의 사소한 일상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내 일상이 버거운 판에 그런 잡다한 이야기가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잡지책 너머로 비서가 나가는 것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원장실 옆에 붙어 있는 작은 방으로 향했다. 그 방은 환자와의 상담을 녹화하는 곳이었다.
처음 병원에 왔을 떄, 작은 모니터와 방송에나 쓰일 법한 복잡한 기계들이 있는 방을 소개받았다.
초현대적인 시설에 주눅이 들었지만, 그 정도하면 닻별이를 치료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지금 제가 자기방어기제가 강한 편이라고 생각하시겠죠?"
문을 열자 닻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도 모르게 방문을 닫아버렸다. 작은 모니터에는 닻별이의 모습이 비쳤다.
"닻별이 정말 똘똑하네. 그런 것도 알고."
"원장님의 인정하지 않아도 공신력 잇는 기관에서 벌써 인정한 두뇌예요. 그러니까 새삼그럽게 그러실 필요 없어요."
긴 문장을 얘기하는 닻별이의 목소리가 낯설었다. 단음절의 대답 외에 닻별이의 목소리를 들은 기억은 가물가물 했다.
"좋아. 그럼 일주일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말해 볼래?"
"지루한 주제네요."
닻별의 쀼루퉁한 말에 민 원자의 너털웃음이 이어졌다.
"엄마는 어떻게 지내시니?"
"질문이 너무 추상적이고 포괄적이네요. 하루하루가 행복인 사람도 있고, 죽지 못해 사는 사람도 있고, 건강한 사람도 있고, 아픈 사람도 있고...."
"엄마랑 얘기해 본 지 얼마나 됐니?"
"몰라요."
거짓말. 천재가 아닌 나도 기억하고 있었다. 열흘 전, 그녀의 퇴원을 알리던 날, 단 5분의 대화가 마지막이었다. 만약 그것도 대화에 넣는다면 말이다.
"엄마랑 지내기 힘드니?"
"지내다'라는 말의 정확한 정의를 해주시겠어요?"
"닻별아. 이러지 마. 무슨 뜻인지 모르다는 게 말이 되니?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한 검사에서 까지 측정불가로 나온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가? 다시 한번 물을게. 엄마와는 잘 맞는 편이니?"
"세상 사람드은 모두 다르죠. 같은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일란서 쌍둥이조차 어떤 면에서는 달라요. 어떻게 보면 이 세상에는 한 사람과 잘 맞는 짝이란 존재하지 않을 거예요."
"엄마를 사랑하니?"
"사랑이 존재하기는 하나요? 사랑이라는 건 상대방을 위한 완벽한 희생을 전제로 하는 거죠. 세상에 상대방을 위한 완벽한 희생이란 게 존재하기는 하나요?"
"알아듣게 이야기해 줄래?"
"내가 천재가 아니라도 엄마가 날 사랑할까요?"
"무슨 뜻이야?"
"가끔 나 자신한테 그렇게 물어요. 내가 천재가 아니라면, 그렇게 특별하지 않았더라면 엄마가 날 사랑핧까?"
닻별이의 목소리에 내 어릴 적 목소리가 메아리쳐 따라온다.
항상 불안했다.
그 불안을 없애려 죽을 만큼 노력하며 살았다. 하지만 항상 무언가가 모자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장학금에 외할머니가 웃어 주느데요, 용돈을 받은 외할아버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어도, 아무리 악다구니를 쓰면서 살아도 내게 남는 건 그녀뿐이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대답 해 주죠. 엄마는 내가 바보라도 지금처럼 사랑할 거라고."
닻별이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그렇게 널 사랑하는 게 싫다는 것처럼 들리는구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난 그렇게 멍청한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엉요. 삶이 나를 속이는데 슬퍼하지도 노여워하지도 않으려면 딱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미치거나 죽어 버리거나."
"무슨 뜻이지?"
"엄마는 슬퍼하는 법도 노여워하는 법도 없어요. 내가 무슨 짓을 해도...그렇게 맹복적인 감정이 두려워요. 솔직히 엄마가 이해되지 않아요. 나만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 같아요. 바보같이. 내가 어떤 짓을 해도 그냥 받아들여버려요. 바보처럼."
방학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고 받은 돈으로 가족들의 선물을 사면서 그녀의 선물을 빠뜨렸다. 실수였다. 누구도 믿지 않았지만. 외할머니는 상처받은 그녀를 대신해 선물받은 화장품 상자를 던졌다. 그 어색한 상황 속에서 그녀는 내 밥을 챙겼다. 밥은 먹었니? 그 말에 와락 화가 치밀어올랐다. 그녀는....바보였다.
"맹목적이라 믿었던 그 감정이 사실은 맹목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을까 두려워요. 인간의 감정이란 자신마저도 속이는 법이니까."
메마른 목소리였다.
"오늘은 그만하죠."
닻별이의 말에 민 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재빨리 밖으로 나왔다. 닻별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쳤다. 내 사랑이 모자랐던 걸까? 그래서 닻별이가 내 사랑을 믿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걸까?
닻별이는 나를 보자마자 얼굴을 굳혔다.
"내가 병원에 오지 말라고 했잖아."
"원장 선생님이 잠깐 보자고 하셔서."
난 민 원장에게 덮어씌웠다.
"원장? 뭘 안다고?"
"닻별아."
민 원장이 들을까 봐 황급히 원장실을 바라보았다. 문이 열린 채였다.
"그럼 보고 와. 난 집에 갈 테니까."
화가 났다는 걸 알리기라도 하려는지 닻별이의 발거음소리가 유난히 쿵쿵 울렸다. 고개를 돌리니 민 원장이 문 앞에서 서 있었다.
"죄송합니다."
"뭐가 말입니까?"
"제가 거짓말한 것도, 닻별이가 버릇없게 군 것도, 죄송해요."
"나라님도 없는 자리에서 욕해요. 들어오세요."
"제가 뭘 잘못했을까요?"
앉자마자 난 질문을 던졌다.
"무슨 뜻인지?"
"옆방에서 다 들었어요. 닻별이의 말....내가 뭘 잘못했을까요? 말씀해 주시면 고칠게요. 저 그리 멍청하지 않아요. 노력하면 안 되는게 어디 있어요? 고치도록 노력할테니까...."
"물론 약간으 우울증 증세도 있지만,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닻별이는 사춘기를 겪고 있는 겁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일찍 겪는 사춘기고, 특이한 상황이다 보니 더 힘들게 지나가는 것뿐입니다."
모법적인 답안이었다. 하지만 만족스런 답안은 아니었다.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어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죠?"
민 원장은 순간 당황한 듯 보였지만, 금세 너털웃음을 지으며 되물었다.
"그냥이요. 아니, 우리 집에 누가 왔어요. 그런데 그 사람말로는...."
"닻별이 이모 말입니까?"
"예?"
내가 오히려 놀랐다. 그녀의 존재는 항상 비밀이었기에 누군가의 입에서 그녀의 존재에 관해 듣는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철렁했다.
"몇 번 병원에 왔어요. 닻별이랑 같이."
내가 병원에 오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닻별이었다.
그녀와 병원에 올 것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 이모부이 뭐라고 하셨는데요?"
"닻별이가 굉장히 잘 웃고, 잘 떠들고..."
말끝이 점점 흐려졌다. 민 원장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 되물었을 뿐이었다. 그건 곧 부정을 뜻했다.
"우울증이라고 항상 찌푸리고 힘들어하지만은 않습니다."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희망을 가졌다.
정신분열증인 그녀도 완치되었는데 닻별이의 우울증 치료는 왜 이리 더딘 것일까.
"왜 이렇게 치료가 안 되죠? 지금쯤이면 벌써 완치되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괜히 떼를 썼다. 누군가 원망할 사람이 필요했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지는 마세요."
"어떻게 조급하게 생각을 안 해요? 닻별이랑 상담한 녹음 테이프 있죠? 그거 저도 좀 듣고 싶어요 대체 더떻게 하기에 치료가 안 되는 거죠?"
난 괜히 민 원장을 물고 늘어졌다.
"안 된다는 거 알고 계시면서..."
"저도 들을 자격 있어요."
"닻별이 어머니."
"민 원장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죠? 닻별이 같은 경우라면 어디에 가든 연구 대상이 될 거라고. 다른 사람에게 알려질 수밖에 없다고. 다른 의상들이 알게 될 일을 왜 제가 모르고 있어야 하는 거죠?"
"그걸 들으신다고 뭐가 달라지는 건 아닙니다. 오늘도 상담하는거 보고 상처만 입었잖아요. 마찬가지입니다. 닻별인 어머니에게도 닻별이에게도 좋지 않아요."
"상처 입지 않을 거예요."
아니, 상처 입어도 상관없었다. 딸이 들이미는 칼이라면 기꺼이 맞아 줄 수 있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세요."
이미 이성 따위는 버린 지 오래였다. 내 딸이 아픈 그 순간부터 이성이라는 건 내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난 바득바득 우겨 테이프를 얻어냈다. 쇼핑밸에 가득한 테이프들이 덜컹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시렸다.
얼마나 많은 테이프들이 쌓아야 닻별이는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현관문을 열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닻별이가 방에서 나왔다.
"다시는 병원 오지 마! 한 번만 더 병원 오면 병원 안 다닐 거야!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쪽팔려서 못살겠어!"
닻별이는 그 말을 남긴 채 문을 쾅 하고 닫아버렸다.
닻별이에게 내 어린 시절이 겹쳤다.
"싫어. 다시는 오지 마!"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학교로 마중 나온 그녀를 피해 난 뒷문으로 도망쳤다. 거친 장맛비에 내개 나오기를 밤새워
기다린 그녀는 독감에 걸렸다. 고열에 정신이 혼미해져서도 내가 비를 맞고 올까 걱정하던 그녀였다. 그래서 난 소리 질렀다.
"누가 바보 아니랄까 봐, 거기서 밤새도록 기다리고 있냐?"
미음 한 숟가락도 못 넘기고 사흘을 앓던 그녀에게 내가 던진 첫마디였다.
싫어. 정말 싫어. 놀림받는 거 지겹고 지쳐. 동네 사람들한테 놀림받는 것도 싫은데 학교까지 찾아와서 광고할 일있어?"
파리한 그녀의 안색을 보면서도 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저 왜 하필 그녀일까. 라는 생각만 들었다.
이어폰을 꽂고 닻별이의 상담 테이프를 들었다. 닻별이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참 시렸다. 결국 민 원장이 옳았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닻별이의 말이 울려 퍼졌다.
"엄마는 나랑 절반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겠죠? 나에게 절반의 윤전자를 물려준 사람이 엄마일 테니까. 그런데도 난 엄마를 절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절반이 아니라 100만분의 1조차도. 엄마도 그럴 거예요. 날 절대 이해할 수 없겠죠."
알 수 없었다. 절반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그토록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우리 엄만 절대 날 이해 못해. 그렇게 불평하면 현주는 웃어젖혔다. 우리엄마도 마찬가지야. 세상의 모든 딸들이 그렇게 생각할걸? 현주는 똑같은 대답만 했다. 하지만 우리 엄만 달라.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곤 했다. 난 절대 우리 엄마 같은 엄마는 안 될 거야. 그렇게 소긍로 다짐하곤 했다.
난 절대 우리 딸에게 그런 소리른 안 들을 거야.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도 다른 엄마들과 똑같았다. 그녀가, 나의 엄마가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