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와인문화
<포도주 신, 오시리스(Osiris)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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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000년경에 인류의 문명이 지중해 연안국들을 중심으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 즈음에 포도재배와 와인 문화도 그 발원지에서 이집트의 나일강 주변으로 이동 되었다.
나일강 유역은 홍수로 인하여 땅이 기름질 때에는 풍요로운 농사를 지었는데 한발이 계
속되고 나일강이 범람하지 않으면 그 해의 농사는 흉작이 되었다. 그리하여 이집트 인들
은 기우제를 지내게 되었는데 이 때 여러 신들 중에 곡식과 포도농사를 관장하는 `오시리
스’ (Osiris)신이 등장하게 되었으며 해마다 봄이 되면 이 신에게 기우제를 드렸다.
이 신은 농경 의례와 결부되어 신앙의 대상이 되었으며 자연의 신이자 죽음과 부활의 신
이라 불렀다. 또 포도나무의 신이기도 한 이 신은 보리로 술을 빚는 법을 가르쳤다고도
한다.
<부활의 상징인 와인>
이집트에서는 와인을 부활의 상징으로 여겼는데 그 이유는 포도나무는 늦은 가을이 되면 잎이 지고 나무가 말라 죽은 것처럼
보이다가도 봄이 오면 소생하는 것과 또 와인을 마시면 몽롱한 상태에 이르는 것을 보고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두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집트 사람들은 귀족이나 왕족이 사후 땅에 묻힐 때 포도주 항아리를 장묘품으로 넣고 또 무덤의 벽화에도 포도나무를
그려 넣어 부활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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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들의 전유물이 된 와인>
고대 이집트에서는 와인의 소비는 물론이고 포도밭을 소유하는 것까지 상류층의 특권으로서 귀족들의 전유물이었었다.
따라서 와인의 생산량은 극히 한정되어 있었고 와인의 값은 맥주의 다섯 배까지 갔다.
와인을 마시는 층은 왕족, 귀족, 중상층과 제사장들 정도였고, 제사장의 경우에는 와인 판매가 주수입원이 되기도 했다.
<신에게 바치는 헌주로서의 와인>
와인은 신에게 바치는 헌주(獻酒)가 되어서 제례의식에도 사용되었고 또 망자와 함께 묻히는 장묘품이 되었다, 그래서 왕의
지하실이나 무덤에서 와인 단지들이 발견되는 경우는 많았다.
그 중에도 가장 흥미로운 유물은 1932년에 발굴된 이집트의 왕 ‘투탕카멘(Tutankamen, B.C. 1365~1346)’ 묘에서 나온 포도주
단지들이다.
기원전 1348년 10세의 나이로 즉위한 이 왕은 9년 후에 사망하면서 36개의 단지가 그와 함께 묻혔다. 36개의 단지 중에서 26개에
는 밀봉용 진흙에 와인이 제작 연도와 만든 사람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 중 한 단지에는 “즉위 4년, 생명, 번영, 건강을 상징하는
아톤 신전에서 빚은 달콤한 와인으로서 양조인은 아페르에르쇼프(Aperershop)” 로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