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여정
覺勇 채지수 居士
신촌제3모임(法師 天達)/대학생
초보자를 위한 화두 과정을 마치고 <무문관>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스승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을 때가 되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법명을 받기 위해서 인생의 여정에 대하여 글을 써야하는데 정형적인 형식을 정해주시지는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글을 써나가야 하는지 고민하였습니다. 저는 올해 25살이 되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의 저간의 일들에 대하여 일일이 나열하기보다는 삶에 대하여 어떠한 생각과 태도를 가지고 살아왔는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선(禪)을 처음으로 접한 지 어느덧 6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항상 화두를 놓지 않고 깨어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무문관>에로 들어가게 된 것은 고양이가 쥐를 생각하는 마음과 같은 절실함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스승님이신 서명원 교수님을 통하여 처음으로 선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외국인으로서 한국에서 한국인보다 더 유창한 언어를 구사하시며 불교 과목을 강의하셨는데, 이에 깊은 인상을 받아서 스승님을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수행을 시작하게 된 것은 2005년입니다. 당시 살아가는 것이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었습니다. 인생이 고통으로 가득 차 있고,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것이라고 하지만, 저에게 있어서 고통은 대상화된 어렴풋한 무엇이었습니다. 인생이 힘들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지만 힘들기만 할 뿐, 정작 왜 힘든지는 알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생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종교가 필요하다면 그것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유였습니다. 철없이 초등학교와 중학생의 기간을 보내고 어느 정도 생각이 깊어가면서부터 원하는 것은 자유였습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으로서 유년 시절을 보내면서 육체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느끼며 성장했기 때문에 자유를 원했었는지 정확히 모르겠으나 물리적인 부자유뿐만 아니라 정신적 자유를 갈구 했습니다. 그러나 참구를 하면서도 원하는 자유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유를 넘어선 다른 어떤 것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육체적 부자유에는 극복이라는 단어가 필요하지 않았고, 정신적 자유는 대상화된 어떤 것에 불과했습니다. 자유와 부자유를 떠난 진리를 찾게 되었고 그것은 진정한 자유였습니다. 육체적 부자유에 극복이 필요치 않았던 것처럼, 자유에도 더 이상 자유라는 단어가 필요 없어졌습니다. 선에서의 불립문자(不立文字)와 언어도단(言語道斷)을 몸으로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건대 제가 원하던 자유는 진리의 또 다른 저만의 이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항상 깨어있는 각자(覺者)의 삶을 살고 싶지만 저의 의지는 그리 강하지 못합니다. 마음이 약하고, 항상 흔들리고, 뒤를 돌아보고, 때로는 뒤로 되돌아가기도 합니다. 수행을 함에 있어서 기복도 많이 있었지만 수행을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의 의미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수행을 하면 할수록, 저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명확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고, 전과는 다른 생각, 의지, 판단력이 생겨났습니다. 사물을 올바르게 직시할 수 있는 눈이 생겨났다고 믿습니다. 또한 겸손하고 겸허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겸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겸손함은 당연히 갖추어야 하고 겸손함에 자신감을 더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행복합니다. 학생으로서 공부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자신감은 너무나 중요하고 자신감을 가지고 시도한 일은 좋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겸손함과 함께 노력이라는 것도 당연히 갖추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은 시간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만 싶을 때는 서산대사의 시, ‘답설야중거(沓雪野中去)’를 생각했고,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나태하게 될 때에는 ‘천류불식(川流不息)’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한 쪽에 치우친 자신감은 자신감이 아닌 자만감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당연히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던 겸손함과, 포기하지 않는 부단한 노력의 의미를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뛰어난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물론 뛰어난 노력을 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 삶을 살아오면서 항상 올바른 노력을 했다고 자신할 수는 없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한 것은 알지만 깨달아 살기 위해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진지한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겸손, 노력, (자만감이 아닌) 자신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근본에 대한 물음에 답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진리와 온전히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정말 힘든 일이 있을 때에는 눈을 뜨고도 제대로 볼 수 없고, 듣고도 제대로 들을 수 없고, 올바른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깨어 있다고 착각합니다. 모두 마음뿐이고, 이미 부처이고, 이미 다 깨달아져 있다고 하나 저는 아직 모자랍니다. 미혹하여 자꾸만 왔다 갔다 하고, 확신과 의심사이에서 고민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미 깨달아져 있다는 것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머무르면서도 머무르지 않는 그 어떤 진리와 조금이나마 하나가 되어 가는 것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진정으로 깨어 살고 싶습니다. 위없는 진리와 하나가 되고, 진리 앞에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삶의 여정은 더 이상 어쩔 수 없지만, 지금부터는 다르게 살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첫댓글 그 나이에 그렇게 생각하는 젊은 사람은 극히 작다고 생각이 듭니다.참선의 힘이 대단함을 느끼며 당신은 행복하고 책임도 커진다는 것을 말씀드림니다.보회
고맙습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