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길 진위 고을길
▲집에서 5시에 출발해 8시 9분에 서정리역에 내린다.
▲ 작년에는 7-7번을 이용했는데 시간표도 버스번호도 바뀌었네요.
▲10코스,9코스 싯점과 종점인 곳..9번 버스를 타고 내린 내리정류소
▲원균장군 묘 가기전에 慕先齋 (모선재)
▲묘지 입구
▲원균장군 묘 (경기도기념물 제57호)
임진왜란 발발 당시 경상우수사였던 원균은 이순신과 함께 합포, 적진포, 사천 등지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1597년 이순신의 뒤를 이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지만 칠천량에서 전라우수사 이억기,
충청수사 최호 등과 함께 전사했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조정에서는
그를 선무1등공신으로 봉했다.
▲경기도 평택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무신 원균(1540∼1597) 장군의 묘이다. 그의 자(字)는 평중(平仲), 본관은 원주(原州)이다.
무과에 급제한 후 선전관을 거쳐 여러 관직에 올랐다.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수군(水軍)을 통솔하는
절도사로서 옥포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구원을 요청하여 적을 물리쳤다.
그 후 선조 25년(1592)의 합포해전, 적진포해전 등 여러 차례에 걸친 크고 작은 해전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선조 30년(1597)에 칠천량해전에서 전사하였으며, 선조 36년(1604)에 권율, 이순신과 함께 선무 1등공신으로
벼슬이 높여졌다.
그의 묘는 경기도 기념물 제57호이고. 묘역의 규모는 400㎡이며, 묘역은 내리 저수지를 아래로 두고 도일동 마을 뒤쪽
인접한 야산에 잘 조성되어 있다.
묘역은 봉분을 중심으로 상석(床石)이 있고 그 앞으로 장명등(長明燈)을 배치하였으며 좌우로 망주석(望柱石)과
무인석을 각각 한쌍씩 배치하였다. 석물들은 모두 근래에 후손들에 의해서 마련된 것들이다.
▲원균장군 묘비
묘비는 상단에 옥개석(屋蓋石)을 두고 비의 전면에는 ‘資憲大夫知中樞府事三道統制使贈效仗儀迪毅協力宣武一等功臣崇祿大夫議政府左贊成兼判義禁府事原陵君元均墓配貞敬夫人坡平尹氏祔左(자헌대부지중추부사삼도통제사증효장의적의협력선무일등공신숭록대부의정부좌찬성겸판의금부사원릉군원균묘배정경부인파평윤씨부좌)’라는 명문이 있으며 뒷면은 앞면의
글을 한글로 옮겨 새겨 놓았다.
▲ (애마총) 뒷면에 적혀있는 글
1596년 장군이 순국하시자 말은 주인의 <신발><담뱃대>등 유품을 입에 물고 천리길을 달려
그 생가로 돌아와서 전사하신 소식을 알리고 슬피울며 지쳐서 죽고 말았다고 한다.
말이여 장군과 함께 기리 명복을 누릴지어다.
▲원릉군 기념관
▲기념관 윗쪽에 향토유적 제6호 원릉군 원균장군사당
본 사당은 도일리에 대대로 살아온 원주 원씨 문중의 인물인 명장 원 균을 모신 곳이다.
원균장군은 조선 선조 명성이 높았던 무관으로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정유재란시 삼도수군 통제사로 임하여 전사한 장군이며
전한 후 선무공신 1등에 제훈 되었던 분이다.
선조 임금이 원균장군의 사후 숭록대부 의정부좌찬성겸 판의금부사로 증직을 내렸고 사당을 세워 후손에게
제향하도록 하여 오늘에 이르는 사당은 본래 경기도 지방 기념물 제57호인 묘역옆에 있었으나 물이
나고 낡게 되어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운것이다.
▲ 사당 설명판과 원주임씨 임란15공신 정문
▲ 덕암산 입구
▲ 지난번에는 여기서 한참 헤맸는데 지금은 이정목을 세워놨네요.
▲기존의 생태통로로는 갈수 없고, 새로생긴 우회길로 가야함. 생태통로 옆 길로 내려서야 한다.
▲산업단지 공사중으로 생태통로가 다리만 덩그러니...
통로 아래를 지나 신호등에서 4차선 도로를 건너면 가파른 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317번 지방도 흔치고개와 생태통로..작년에 찍은 창고사진
▲ 꽃길 따라서..저 다리를 건너 왔는데..
▲ 흰치고개 쉼터에서 쉬어 간식을 먹고 쉬어 간다.
▲흰치고개 쉼터
▲흰치고개를 내려와 사거리에서 길을 건너 도로따라
▲ 저 뜨거운 시멘트에서 저렇게 무성하게 자라 길손을 반겨준다.장하구나..
▲ 부부화가네
▲ 흐미 이 땡볕에 아직도 10km가 넘는 길을 가야 하니...
▲ 120년의 수령의 마산4리 보호수
▲ 마산리 들판을 가로질러
▲ 유난히 뜨거웠던 햇볕과 징마와 태풍도 이겨내고 잘 자라 주어 풍년을 기약하고...고마워
▲스토리 보드
▲진위천교를 지나며 본 진위향교 모습
▲코로나가 완화되면서 향교 문이 활짝 열려있어 안으로 들어가 본다.
오늘 따라 초등생들 체험학습이 있다고 한다.
1983년 9월 19일 경기도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조선 초기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을 교화하기 위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본래 건물이 병자호란으로 소실되자 초가집 두어 칸을 지어 위패를 모시다가 1644년(인조 22) 기와집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이후 여러 차례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향교는 남향으로 경사지에 자리하고 있다.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로 되어 있는데, 문묘의 상징성을
강조하기 위해 지대가 높은 곳에 대성전(大成殿)을 위치시켰다.
가파른 계단 오른쪽에 명륜당(明倫堂)이 있으며, 그 양쪽에 각각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겹처마에 단층 맞배지붕이며, 쇠서(전각의 기둥 위에 덧붙이는
소 혀 모양의 장식) 두 개를 기둥과 주두(柱頭)에 얹은 이익공식 구조이다.
강학(講學) 공간의 중심인 명륜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단층 팔작지붕이며, 외삼문은 맞배지붕을 이룬다.
평면 형식으로 보아 좌우에 온돌방이 있고 중앙에 대청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공자(孔子)·맹자(孟子)를 비롯한 선현의 위패를 봉안하며 2월과 8월에 석전의식을 행하고 있다
▲ 우측이 명륜관,마주보이는 곳이 동재..숙식을 하며 공부하던 곳인가 보다
▲진위향교 대성전 (경기도문화재자료 제40호)
현재 진위향교에는 대성전과 명륜당, 동·서재, 내·외삼문 등이 잘 남아있습니다.
대성전은 본디 중국과 우리나라의 유학자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그 중에서도 진위향교 대성전은 18세기의 건축기법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습니다.
▲ 명당중의 명당 진위향교
▲ 120년이 훌쩍 넘은 진위초등학교..역사와 함께 했네요.
▲무봉산 초입
▲지난 봄엔 이런 풍경이였는데,
▲ 와..여기도 배꽃 필때면 얼마나 예뻤을까?
▲ 작년 5월 5일에 찍은 사진
▲미국으로 수출하는 배
▲ 남은 기간 무탈하게 수확기 맞아 주길 바라면서
▲ 가곡1리 보호수
▲ 오늘은 여기서 걸음을 멈춘다.2시 39분 11-1번을 타고 2시 55분에 오산역에 하차
▲ 역 주변에서 늦은 점심 해결하고 3시 39분 급행 전철로 출발,4시 58분에 서울역 하차,
두번째 찾은 진위 고을길
그렇게 대지를 익혀 버릴 것 같았던 올 여름의 무더위도 태풍과 폭우로 조금은 식혀진 듯 해
아침 저녁으로는 많이 수월해진 8월 하순이다.
그래도 한낮은 따가운 햇빛으로 긴 도보는 부담이 가 짧고 그늘진 곳을 찾아 가려 하다가
전철속에서 행선지를 바꿔 삼남길 진위 고을길 9코스로 향한다.
노량진역에서 1호선을 타고 병점역에 내려 마주한 천안행 전철로 환승해 서정리역에 내려
시간과 버스 번호가 바뀌었단 얘기를 듣고 정류소로 가니 7-7번이 9번으로 바뀌고 8시 20분이던
시간은 9시 15분으로 바뀌어졌다.
새벽같이 달려 온 우리는 많은 시간을 기다려 하는 상황..
그래도 갈수 있는 교통편이 있다는거에 감사한 일이죠?
20분 소요에 내리 정류소에 내려 오늘의 여정 시작한다.
원균장군 묘에서부터 시작되는 9길,먼저 장군의 재실 모선재를 지나 저수지에 반영된 묘지..
확 트인 묘지앞,참 자리가 좋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서나 죽어서나 택지가 중요한 건 다를게 없다는
걸 느끼며 지난번 걸음에 둘러봤기에 묘지만 올라가 보고 기념관과 사당을 지나 마을앞으로 난 길을
따라 덕암산을 오른다.
아침부터 헉헉..몇주 쉬었던 다리는 힘 들다고 하는데 기분은 상쾌하다는 것...
지난번에 이정표가 없어 난감했던 곳에 이정목이 세워져 있어 초행길 벗님들 순조로울 것 같아
참 다행으로 여기며 가는데 갈림길이 여러군데 있는데 이정표시기가 하나도 없어 두번째 길인데도
가다보면 앱이 아니라고 울어대니 첫 걸음하는 분들 많이 혼란스러울 것 같다.
그러나 갈래길은 합류되는 길이기에 어디로 가도 된다는 거에 안심하시길 바라며 1시간여의 덕암산
자락을 걸으며 조금씩 빛 바래져 가는 계절의 느낌을 받으며 흰치고개 쉼터로 내려서 간식과 함께
한참을 쉬어간다.
이제부터는 푸릇한 산정이 아닌 햇빛 아래를 걸어가야 한다.
옅은 구름으로 한 더위적 더움은 아니라 다행이지유...
대로로 나와 사거리에서 신호 건너 대로변 따라 가는데 길섶에 하얀 씀바귀꽃 흐드러지고,
뜨거운 시멘트 벽에 고운자태 뽐내는 능소화꽃이 장하게도 피어나 길손을 응원한다.
대로 끝내고 우측길로 들면 부부화가네,별 변화없는 이곳은 자연의 변화만이 다를뿐이고..
마산4리로 접어들면 좌측으로 120년의 수령 마을 보호수가 큰 그늘 만들어 지나는 객 그 품안에
쉬어가게 하니 오늘도 자연은 넉넉한 품으로 미욱한 인간을 그 품에 안아준다.
어머나 옛날 막걸리 가게 여기가 그 옛날 도일동과 장안동의 경계 감주거리 주막이 있던 그 곳이가요?
시원한 막걸리 한잔이 그리운 시간..그러나 2리터 한병을 사야하니 마셔보지 못하고 지나가야 하는
아쉬움이 남는 곳이구먼유...
다시 한번 걷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꼭 한잔 하고 가리라 흠흠...
막걸리 한잔을 아쉬워 하며 우리의 주식 벼 이식이 피어나 배 부른 느낌으로 들녘길을 가로질러 진위천
둑방길로 올라서 조선초기의 정도전 스토리와 평택나루터 얘기를 일독하며 진위천교를 건너 명당중의
명당 진위향교에 도착한다.
작년 5월에는 코로나로 인해 문이 잠겨있어 겉만 보고 갔는데 오늘은 문이 열려있어 계단을 올라
명륜당과 대성전을 둘러 보는 영광을 허락한다.
그 시절 학생들이 숙식하며 공부하던 동재와 체험을 위해 준비중인 명륜당에서 돌 계단을 오르면 대성전이다.
그저 겉만 보고 가지만 예전의 교육을 담당했던 그 시절 우리의 예가 오늘 우리 나라의 동방예의지국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는 시간이다.
배산임수 풍수지리가 으뜸인 진위향교의 명당,경기옛길로 인해 볼수 있음에 감사한 걸음이다.
진위향교를 둘러보고 봉남1리로 들면 진위관아의 터이자 만세 운동의 자리 진위면 사무소을 지나
진위 초등학교를 지나는데 120년이 훌쩍지나 역사와 함께 한 학교,참 많은 것을 배우며 걸음하는 도보길,
첫 걸음때 알지 못한 것들이 두번째는 알고 가는 스토리가 고마울 따름이요.
그렇게 봉남리를 지나며 일본인이 일으킨 남사당의 스토리와 노블리제와 오블리제의 모범을 보여준
경주이씨 육형제의 스토리를 일독하고 무봉산을 넘어 배 과수원으로 내려선다.
10코스만 배꽃이 예쁜게 아니라 여기도 이뻤을것 같은 9길의 가곡1리의 배 과수원으로 내려선다.
허락해 주신 과수원을 가로 질러 가는 길...
봉지에 싸인 배는 얼마 남지 않은 수확의 날을 기다리며 익어 갈 시기..
가곡리 350년의 보호수 아래에서 잠시 땀 식히고,사거리에서 직진해 가곡4리 정류소에서 걸음을 멈춘다.
날씨가 아직은 너무 더워 여기서 멈추고 11-1번으로 오산역으로 출발한다.
아직은 너무 더워 길 나섬이 두려운 시기 그 길던 해도 짧아져 새벽길이 어둑한 시간,9월부터 시작하리라
했던 삼남길,갑자기 변경되어 걸음한 길,이제는 절기에 따라 더위가 좀 사그러 든 싯점에 시작한 삼남길,
남은 길,가을안에 걸어야 하는데 계획대로 될런지..
도보로 이어지는 둘레길로 인해 각 지역의 풍경으로 우물안 개구리가 많은 것을 학습하며 오늘도 그 걸음에
감사하며 계절이 순환되어 가는 시기에 또 하나의 길을 마무리 하며 이어질 그 길을 설렘으로 기다리는
여유를 배운다.
2023년 8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