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표는 창근님의 노래 가사를 모조리 붓펜으로 필사하는 것이다. 미발표곡이 300 여 곡 있다고 전해진다.
다할 수 있을까 거북목이 될 거 같애. 놀아가면서 해야지.
언제 또 게으름이 나를 유혹할지도 몰라
그 곡을 다 필사하고 나면 나는 어느새 그니 닮은 음유시인이 되어 있을지도 몰라.
300 여곡을 다 필사했는데도 그니 닮은 감성시인이 못 되어 있다면 접시물에 코 박고 죽어야 한다고
스스로 주문을 걸면서 그니 노래 가사를 새기며 글을 쓴다.
주중에 한 번 정도는 내 일상의 일부분을 노래와 시 붓글이 3박자가 되어 즐기며 논다.
그러던 중 느닷없이 임인년 코씨가족 명절 나기를 해야했다.
아들이 코로나를 친히 영접해 반쯤 얼이 빠져 집으로 왔다.
하필 명절 코 앞에....
아들 방은 답답할 것 같아 화장실이 딸린 안방을 내어주고 책상 노트북을 방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일제히 동시에 마스크를 썼다. 마스크를 쓰든 안 쓰든 말이 없는 우리가족은
서로 마스크를 쓰고 키득키득 웃었다.
3일 째 되는 날부터 잔기침이 잦아들고 기운을 차리더니 거실로 슬쩍슬쩍 나왔다. 소파에 앉으면
살짝 거리를 두면서 엄마의 이 철딱서니 없는 듯한 행동에 웃음거리가 될까봐
한쪽 벽면에 붙여 놓았던 창근이표 물건들은 후다닥 가렸다.
아들은 씨익 웃었다.
'하던대로 하시지 뭘 가리고 그러셔욤' 한다.
실은 콘서트 때 받아온 그니 사진, 응원봉 , 미니현수막, 호박색 마스크 등등 그것만이겠는가.
그니 옷도 있는 걸. 어쩌면 한때 가수 조용필, 이은하, 윤시내, 정수라 한참 좋아했을 때
이런 문화를 못 누려 봐서인지 뒤늦게 팬카페를 다 가입을 해봤으니 이 나이에 나도 좀 웃기기도 하지.
그런데 신기한 건 마냥 그니 덕에 웃음이 실실 샌다.
뮤지컬 공연도 했다는 국민가수 박창근님은 화가 못지 않게 그림도 잘 그린다.
기타를 밥숟갈보다 더 많이 들었을 가수, 그가 작곡한 찬불가 '아발로키테스바라'는 들으면
신비롭기까지 하면서 차분해진다.
불교신자가 아니지만 마음이 복잡할 땐 그 곡을 검색해 듣기도 한다.
본인은 아무것도 없다며 기타 몇 개가 자기 전 재산이라며 멋적은 미소를 보여주곤 했던
잔망미 넘치는 다재다능한 천재뮤지션을 그래서 난 그 매력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참으로 겸손한 가수 나이는 어디로 먹었는지 참 곱상하게 생긴...
가사 필사했던 것을 모두 모아 벽에 걸어두었다.
안방에서 아들은 노트북을 만지고 나는 차 한잔 옆에 놓고 박창근님 연구학에 몰두한다.
붓펜으로 필사하다 글자를 빠트리기도 하고 오자를 쓰기도 한다.
필사하다 어느 한 줄 글에 내 정서와 닮은 부분이 있으면 여러 번 읽어보며 같이 늙어가는구나 싶다가도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래봐야 그 가수와 나는 10년 차이니 별 차이도 없다.
이렇게 창근님에 빠져 임인년 한해를 아주 즐겁게 보냈다. 코로나로 두문불출 한가위를 보내긴 했지만
노래와 시와 즐겁게 보냈다. 아들이 가고 난 뒤 잽싸게 벽에 다시 박창근님 모시기를 했다.
이처럼 혼자놀기 좋아하는 나더러
글동무는 '그니그니 하다가 그이 될라' 해서 배꼽잡고 웃었다.
그니는 콘서트장에서 우리를 이모님이라고 부를 걸 그래놓고
'아니아니 죄송합니다' 할 거라고 하니 차를 마시다 내뿜는다.
한때 못해 본 팬문화를 들여다보며 마음만은 젊게 살아가고 있다. 이래서 글을 끼적이고 있는건지도
세상에 눈만 돌리면 흥미로운 관심거리, 유혹거리가 얼마나 많은데 이런 소소한 행복에 빠져 이리 놀고 있으니
남편 왈
그렇게 노는 게 신기하다며 남편은 가끔씩 콘서트 VIP석을 예매해 살짝꿍 들이미는 센스도 있다.
고마운 나머지 남편에게 '한 달 동안 아침 밥상에 조기 올려드리리다.' 너스레를 떨면서
우린 이렇게 소소한 일상을 마주하며 철없이 살아가고 있다.
첫댓글 참 멋진 송향님,
어디서 이런 열정이 나올까 궁금하기만 하네요.
박창근님도 송향님의 이런 사연, 이런 상황 알고 있을까요? 꼭 알아야 할 것 같거든요.
필사를 하는 동안 흥얼거리며 즐거움을 느낀다니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요?
글을 읽는 동안 부럽기도 하고 웃음도 나왔어요.
그래요.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게 제일 행복하다고 그랬어요. 응원할게요.파이팅입니다.
열정이 부럽기만 합니다. 연예인을 좋아한다는 것은 드라마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찾아 듣는 것 이상은 해보지 않아서 선생님의 열정넘치는 모습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필사하신 글씨에 탄복합니다. 박창근 님이 이런 진짜 팬이 있다는 것을 알면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더불어 선생님께서도 행복하게 생활하고 계시는 것 같아 보기에 좋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