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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기다란 흰 수염을 봄바람에 날리며 손에 든 목탁을 가볍게 두드린 후 덧붙여 말했다.
“소승이 한 걸음 늦어져 죄송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 동안 평안하셨는지요?”
그가 허리를 굽혀 좌중에 인사했다. 고가장의 노장주 고승은 그를 보자마자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다름 아닌 계성 남쪽 파사사波斯寺(교회당)의 대덕大德 고양원高揚元이었기 때문이다. 고가장의 노장주인 고승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영주도독 조문홰를 비롯한 모든 손님들도 내방한 인물이 대단히 존중받는 고승高僧임을 알아차리고 얼떨결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양원 대덕은 고구려 황족의 종실로서 고승과는 먼 친척 간이었고 항렬은 고승보다 한 단계 높았다.
모두가 일어서서 그에게 예를 표하는 사이, 고승은 그를 상석으로 인도했다.
“아닙니다. 여기가 좋습니다.”
고양원은 상석을 굳이 마다하고 조영의 옆 자리에 앉았다. 고양원은 영주도독 조문홰, 송막도독 이진영 등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다.
“고 대인의 초빙을 받고 무슨 일인가 궁금했었는데, 지금 보니, 이 지역의 어른들께서 모두 모이셨군요. 소승으로서는 참으로 영광입니다.”
방금 전만해도 기고만장하던 조문홰 역시 대진사大秦寺(파사사)의 대덕 앞에서는 아주 겸허한 태도를 취했다.
당나라 태종을 이은 고종 이치李治는 경교(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를 국가 정책적으로 몹시 장려하며 전국 십삼도 삼백오십 여 주州에 경교 교회당인 대진사를 건립하고 선교사 아라본(알로펜)에게 진국대법주라는 칭호를 내리는 등 경승(경교 성직자)들을 존대했다.
후대의 일이지만, 현종은 다섯 형제 친왕들에게 직접 경교 사원에 가서 제단 터를 세우라고 명하며 경교 사원의 편액을 친히 쓰기도 했다. 경교는 당나라에서 현종 때 가장 크게 번성했다.
이런 발전은, 당태종 이세민의 기독교 우대정책에서부터 비롯되었다. 781년 장안의 대진사 경내에 세워졌던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의 비문에서, 우리는 당태종 이세민이 기독교의 도리를 얼마나 존숭하고 높이 평가했는가를 엿볼 수 있다.
그에 따르면, 당태종은 친히 경교의 교리를 배웠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진리를 깊이 터득하고 특명으로 이를 전하게 했다. 정관 12년(638년) 음력 7월 태종 이세민은 조서를 내려, 이 도리가 만물과 사람을 구원하고 유익하게 하므로 마땅히 온 천하에 선포해야 한다고 명했다.
“경교 가르침의 뜻을 상고해 보니 詳其敎旨(상기교지),
극히 오묘하고 완벽하며 玄妙無爲(현묘무위),
경교의 으뜸 되는 근본진리를 살펴보니 觀其元宗(관기원종),
인생사의 모든 일에 긴요하도다 生成立要(생성립요).
경교의 말씀에는 번거로운 잡설이 없고 詞無繁說(사무번설),
이치가 확연해, 터득 방법을 애써 되새길 필요도 없도다 理有忘筌(리유망전).
이 도가 만물과 인류를 구원하고 유익하게 하니 濟物利人(제물리인),
마땅히 온 천하에 시행할지라 宜行天下(의행천하).”
당태종의 이런 조서는, 의례상의 공치사가 결코 아니다.
선교사 아라본이 장안성에 왔을 때,
“황제는 재상 방현령 공을 시켜 帝使宰臣房公玄齡(제사재신방공현령), 의장대를 거느리고 서쪽 교외에 나가서 總杖西郊(총장서교), 빈객을 극진히 영접해 들이게 했으며 賓迎入內(빈영입내), 장서전에서 경교의 경전을 번역하게 했다 飜經書殿(번경서전).”
“황제는 문을 닫아걸고 사람의 출입을 금하면서까지 경교의 도를 캐물었고 問道禁闈(문도금위), 경교의 진리가 바르고 참됨을 깊이 깨달아 深知正眞(심지정진), 이를 전수하라는 특별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特令傳授(특령전수).”
그 때가, 아라본 선교사가 장안에 들어온 지 삼년 후다. 그러니까, 의례상으로 “좋은 게 좋다고, 경교 사원 하나 적당한 데 지어주지 뭐. 귀찮으니까, 알아서 해.”라는 식으로 경교의 사원이 건립된 게 아니라는 말이다.
당 태종이 친히 문을 닫아걸고 아라본에게 근 삼년 동안이나 경교의 가르침을 배웠다.
단순히 졸음에 겨워 눈을 감고 머리를 끄덕이다가 때로는 “응, 응” 칭얼대며, 경교의 강설을 신하들과 함께 마지못해 대충 한번쯤 들은 게 아니다.
사람들의 출입을 금하면서까지, 전심으로 도를 캐물었다. 잘 납득이 되지 않거나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질문도 던지면서 경교의 가르침을 배웠던 것이다.
처음 삼년 동안 아라본 선교사는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하는 한편, 이 도리를 태종 황제와 신하들에게 가르쳤다. 그리하여 당대의 명재상인 위징, 방현령 등 “조정의 저명한 인사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사람들이 경교를 깊이 신봉하게 된다<상재상서><오주연문장전산고>.
경교의 가르침이 바르고 참되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은 태종황제는, 의녕 마을에 다른 사원들보다 극히 장려하고 크게 경교 사원을 건축했을 뿐만 아니라, 경교를 각지에 전파하게 했다.
알다시피, 당 태종은 자신의 부친인 당 고조 이연을 감금하고, 자신의 친형인 태자 이건성과 아우 이원길을 궁궐의 현무문에서 죽인 후 황제 자리를 찬탈한 사람이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유명한 “현무문의 변”이다.
태종의 마음에 평소 얼마나 깊은 죄책감이 자리 잡고 있었을까? 기독교의 죄 용서와 십자가 대속의 구원 진리는, 그가 진심으로 회개하고 이 진리를 받아들였다면, 그를 한없는 회오와 참회 가운데로 이끌고, 따라서 그의 마음에 가없는 평화를 주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 때로부터 경교는 당나라에서 대단히 존중받는 종교가 되었고 경교의 경승(성직자)들은 백성들로부터 깊은 신망을 받았다.
경교의 모든 교리는,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도 인정했다시피, 오늘날의 개신교 교리와 다른 게 거의 없었다(구범회 <예수, 당태종을 사로잡다> 참조). 경교는 신약전서 27권을 극히 중요시했음이 “대진경교유행중국비” 본문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고양원이 나타나자 무예 얘기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고양원은 그곳의 분위기를 이미 파악한 듯, 축복의 말을 건네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 경존景尊 메시아께서는 천하 만민이 서로 사랑하며 평화로이 살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마라나타!”
마라나타는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라는 의미의 아람어다(신약성경 고린도전서 16:22, 요한계시록 22:20 참조). 좌중은 그의 말을 고요히 경청했다.
“기왕에 오셨으니, 우리에게 덕이 되고 복이 되는 설법이나 교훈이라도 한 마디 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고승이 정중하게 두 손을 모은다.
“제게 무슨 좋은 말이 있겠습니까? 우리 구주께서는 ‘서로 사랑하라’고 이르셨습니다. 구주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 중국의 묵적 선생도 유사한 가르침을 주셨잖아요? 묵자 선생은, 겸애兼愛(보편적인 사랑)를 가르치셨지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이르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구주 메시아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사랑할 때, ‘서로 사랑’이 이루어집니다. 고려국의 먼 선조이신 단군왕검께서도 경천애인, 하나님을 먼저 경외하며 사랑하고 서로를 사랑하라 가르치셨습니다.”
고양원은 몇 마디를 더 보탠 후에 속으로 경문을 외우는 듯 가끔씩 입을 달싹 거리거나 침묵을 지켰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가면서 일진의 바람이 마당을 한바탕 휩쓸었다. 뜰 안의 환꽃나무와 모란이 흔들거린다.
고양원의 경건한 분위기에, 주변마저도 숙연해지는 듯, 이내 바람은 잠잠해지고 멀리서 행상들의 외침이 가끔씩 들려올 뿐, 장원 안은 정적에 감싸였다.
한참 후 고양원이 다시 정적을 깨뜨리고 입을 열었다.
“시간이 되면 조만간 유주 서남쪽 삼분산三盆山의 파사사 교당을 한 번 들러주십시오.”
누구에게 말을 거는지 모르게 한 마디 던진 후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그는 홀연히 나가더니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고승과 조영은 그의 뒷모습을 멍청하게 바라보고 있다가 뒤늦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배웅하기 위해 허겁지겁 길을 돌아 대문 밖으로 나갔다.
대문 밖에서는 봄바람에 나뭇가지만 흔들릴 뿐, 그의 자취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깜짝 놀란 조영은 드넓게 트인 공간에서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멀리 한길까지 나가봤으나, 고양원의 종적은 묘연했다.
조영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바람처럼 나타났다가 묘사하기 힘든 강렬한 인상과 이상한 향기를 남기고, 역시 바람처럼 사라져버린 경승의 체취와 자태는, 그의 비목鼻目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조영뿐만 아니라, 거기 앉은 모든 사람들도, 고양원의 내방에서 이상한 충격을 받고 묘한 감흥에 휩싸여 있었다. 고승은 이전에 두어 차례 고양원을 만난 적이 있었지만, 조영이나 다른 인물들은 말로만 들었을 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으므로 그에 대해 기이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머리털을 민 것이나 목탁을 두드리며 염주를 두른 것 등, 외양은 부도교浮屠敎(불교)의 승려와 여러 모로 흡사했으나, 풍기는 분위기는 판이하게 달랐다. 특히 새하얗게 빛나는 백색 가사는 그 인물의 자태를 매우 돋보이게 했다.
부도교의 고승들은 이웃 할아버지 같은, 뭔가 구수한 듯한 냄새를 풍기지만, 고양원은 그와 달리 고고하면서도 온화하고, 따스하면서도 엄장하며, 선하고 인자하고 사랑스런 태도가 몸에 가득 배어 있었다.
특히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지금까지 만난 어느 고승에게서도 느낄 수 없었던, 기이한 평화의 기운이 그의 얼굴에 가득히 천착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평화는 사람들의 가슴에 이상한 충격과 매력을 쏘았다.
속세를 초탈해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선계에서 노니는 신선이 잠깐 나타났다 사라진 듯, 경각간에 떠나간 고양원은, 짤막한 시간 동안 모두의 가슴에 긴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조영은, 유주 대진사 대덕 고양원을 본 순간부터 묘하게도 가슴이 울렁거리고 마음이 묘사하기 힘든 어떤 충동에 사로잡혔다. 마치 어머니 태속에 다시 들어간 듯한 모종의 평화가 가슴에 맴돌고, 뭔가 울컥 치밀어 오르는 듯한, 슬픔 같기도 하고 기쁨 같기도 한 이상한 움직임이 내면에서 감지되었다.
한바탕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 일어나는가 하면, 홀연 일어나 춤을 추고 싶기도 했다. 일진의 시원한 바람이 가슴 속을 훑고 지나간 듯하고, 한 줄기 뜨거운 온천수가 배속에서 가슴으로 솟구치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갑자기 정신이 돈 건가?’
이런 느낌은 조영만 받았던 게 아니다. 실은 이루하 역시 고양원의 출현에 이상한 흡인력을 느끼며 그 매력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고양원이 떠나가 버리자, 그 곳의 군웅들 특히 조영과 이루하는 뭔가 허전함을 느끼며 누군가가 몹시 그리워지는 것 같기도 했다. 옛 추억이 가슴 속에 밀려와 머나먼 고향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었다.
조영은 어릴 적부터 줄곧 계성에서 자라났으나, 자신의 국적을 생각하며 형언하기 어려운 동경심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문득 하늘을 쳐다보니, 평소와 달리 하늘은 무척 맑고 아름답고 새파랗게 보였다.
‘혹시 그 자가 어떤 최면심법을 걸어놓고 사라져버린 건가?’
이런 생각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유쾌하고 맑고 아름답고 그립고 아늑하고 평온하게 하는 최면심법이 있다면, 거기엔 얼마든지 걸리고 싶었다.
조영은 눈을 들어 앞을 바라보다가 우연히 이루하의 시선과 마주쳤다. 그녀가 아주 영롱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다가 깜짝 놀란 듯, 얼굴을 돌렸다.
고양원이 떠난 후 영주도독 조문홰는 그의 신비로운 자태에 큰 충격을 받았으나, 젊은이들에게 무예 대결을 시켜보자는 자기 제안에 정면으로 제동을 건, 아주 상식적인 그 경승景僧의 말이 귀에 은근히 거슬렸다.
“호승심은 평화를 얻기 힘들고, 호기심은 평화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그 경승이 나타나나마자 불쑥 내던진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말은, 당나라 동북지방의 평화를 유지해야 할 자신의 소임 이행에 반드시 필요한 금과옥조였지만, 아무튼 그는 불쾌감을 제어하기 어려웠다.
경승이 떠난 후 맨 먼저 침묵을 깬 이는 조문홰였다. 그는 헛기침을 하며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킨 후, 경승 고양원의 체취를 제거하려는 듯, 입을 열어 색다른 얘기를 꺼냈다.
“일전에, 후고구려 조정으로부터 이곳으로 아주 진귀한 보물이 도착한다고 들은 바 있습니다. 그건 아마도 허무맹랑한 헛소문이겠죠?”
그 말을 들은, 후고구려 사자들과 조영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지만 고승高丞은 백전노장답게 얼굴에 놀란 빛을 나타내지 않고 물끄러미 조문홰를 바라보았다.
“조 대인께서는 어디서 그런 풍문을 들으셨습니까? 파사사 대덕님의 말씀대로 호기심은 평화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조문홰는 귀에 거슬렸던 경승의 그 말을, 고승의 입으로부터 다시 듣게 되자 속이 몹시 불편했다. 급기야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만한 정보망은 저에게도 있습니다. 세상에 비밀이라는 것은 없지요.”
고승은 침착하게 대꾸했다.
“역시 조 대인의 혜안은 놀랍습니다.”
고승은 조영을 바라보며 명했다.
“영아야, 어서 가서 그 검을 가지고 오너라.”
후고구려의 사자들뿐만 아니라 조영도 아연했다. 하지만 조영은 가슴의 기복을 내리누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시 후 그가 보자기에 싼 물건을 가지고 나타나, 이를 조부 고승에게 공손히 건네었다. 고승이 보자기를 푼 다음 그 안에 든 물건을 꺼내었다.
“보잘 것 없지만, 궁금해 하신다면 구경시켜 드리겠습니다.”
찬란한 금빛이 서쪽으로 기울어진 태양의 볕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였다.
“이것이 무언지 아시겠습니까?”
그가 호기심 가득한 군웅들의 앞 탁자 위에 검을 올려놓았다. 아무도 선뜻 집어서 살펴보려 하지 않았다.
“오! 겉보기에도 참으로 진귀한 물건 같습니다.”
조문홰가 드디어 손을 내밀어 검을 집으며 말했다. 그는 검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검집을 빼서 칼날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허허! 과연 명검이로고! 명불허전名不虛傳이외다.”
그는 찬탄을 금치 못하더니, 고승을 쳐다보며 물었다.
“고 대인, 이 검의 내력을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겠소?”
“여부가 있겠습니까?”
고승의 대략적인 이야기는 이러했다.
이 검은 청동으로 만든 두 자 두 치 길이의 단검으로서 천명신검天命神劍이라 하며 단군조선 22세 색불루 임금(재위 서기전 1285-1238)께서 당대의 명장名匠을 시켜 제작하신 것이다. 원래 한 쌍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천명영검天命灵劍이라 불리는 다른 짝은 사라지고 이것만 대대로 유증되었다.
검집에는 제왕의 통치이념이 새겨져 있다. 또한 색불루 임금은 생전에 막대한 보물을 수거해 모처에 비장해 놓았다고 한다. 검집에 입혀진 “삼삼오륙칠칠三三五六七七”이라는 신비로운 명각문은, 그 보물의 비장 위치를 가리켜 주는 암호다.
그러나 단군조선 종결기이자 북부여의 개막기인 해모수 임금(재위 서기전 239 - 195) 시절에 그 보물의 은닉처가 세상에 폭로되고 보물은 그 후 어디론가 사라졌다(<해와같이 빛나리> 참조).
세간에는, 천명신검과 천명영검 중 어느 하나만을 얻어도 천하의 제왕이 된다는 비의전승이 있었다. 또 이 단검들이 세상에 나타나면 반드시 일남과 일녀의 인연을 맺어주고 들어간다는 얘기도 떠돌아다녔다.
반면, 피비린내를 맡지 않고는 단검이 절대로 들어갈 수 없다는 불길한 야담도 전해진다.
한편, 다물 임금과 해모수 임금은 그 검집에 새겨진 “삼삼오륙칠칠”의 비밀을 풀기 위해 애를 썼는데,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그 숫자가 단지 금은보화의 은닉처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천제 하나님이 거하시는 나라 천궁天宮, 하나님나라의 백성, 인간 자신의 영혼이 바로 최고 보배들임을 설명해준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설명도 여전히 그 숫자의 참된 뜻을 다 풀기에는 뭔가가 부족하고 애매하다는 것이었다.
끝으로 고승은, 그 숫자의 의미와 관련된 색불루 임금의 시를 그들에게 읊어주었다(<해와 같이 빛나리> 참조).
血 得 天 下 揚 世 名 혈 득 천 하 양 세 명
喜 見 萬 金 似 露 生 희 견 만 금 사 로 생
千 年 光 陰 擧 一 杯 천 년 광 음 거 일 배
別 有 眞 寶 三 七 中 별 유 진 보 삼 칠 중
천하를 피로 얻어 이름을 드날리고
만금 보아 기뻐해도 이슬 같은 인생이네
천년의 세월도 한잔 술에 지나가니
삼칠 중에 따로이 참 보배가 있느니라
고승이 이 시를 들려주었을 때, 그 옛날 이 시를 맨 처음 발견하고 읽었던 그 삼칠성三七城 지하 석실 속의 군웅들이 그러했듯이, 고가장에 모인 영웅들도,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들이 이 시에서 받은 인상은, 방금 전에 홀연히 떠난 계성 대진사 대덕 고양원에게서 받은 느낌과 매우 흡사했다. 하나는 글이고, 하나는 사람이라는 점이 달랐으나, 돌 다 살아서 사람들의 마음 속을 후비는 것 같았다.
고양원에게서 받은 충격이 아직 가시기 전 이 시를 대하자, 그들은 자신의 호기심과 호승심, 물욕 등이 순간적으로 몹시 부끄럽게 생각되었다.
“여러분, 궁금하시면 이 검을 자세히 구경하십시오. 저는 이번 기회에, 이 불길하기 짝이 없는 물건을 불에 녹여 없애려고 합니다.”
고승이 침중하게 말했다.
“잠깐 참으시오. 고대인. 이건 귀국에서 전해 내려온 희대의 보물인데, 그리고 뭔가 깊은 비밀을 담고 있다는데, 함부로 없애면 되겠소?”
조문홰가 말렸다.
“검집 양면의 문자만 외우고 있으면 그만이지, 이 검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고승의 반문에 이번에는 이진영이 대꾸했다.
“고 대인, 진정하시오. 물건이 사라지면 언젠가는 문자도 사라지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실, 배달겨레 고대사가 대부분 사라져 버린 것은 고대의 문자가 실전失傳되었기 때문이고, 문자가 없어진 것은 문자를 기록해 둔 물건 즉 문서가 멸실되었기 때문이다.
“내 의견에는 오히려 실전된 천명영검이 이 검과 한 쌍으로 동일한 모양과 문자를 담고 있다면, 그것을 오늘날 다시 재현해서 쌍검雙劍을 후대에 전해주는 것이 더욱 나은 방안이오.”
이진영의 말에 고승이 대답했다.
“이 대인의 말씀도 일리가 있소. 하지만, 보물은 언제든지 상실될 수 있으니, 이 검에 새겨진 문자들과 이 검과 관련된 서책들, 시문 등을 따로 비밀리에 잘 보관해 후세에 전하는 게 좋겠소.”
고승은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계속했다.
“이건 우리 고려국의 물건이지만, 이것이 만일 천하의 보물이라면, 임자가 따로 있겠소? 여러분도 자세히 관찰한 후 이와 유사한 것을 만들어 후대에 전해주면 좋을 것이오.”
조문홰가 다시 검을 세밀히 조사해보니, 검집이 금으로 된 것과 몇 가지 보석이 박혀 있는 점, 한자와 이상한 문자들이 새겨져 있는 것 말고는, 처음 보던 때와 달리 대단히 값지게 보이는 면은 없는 것 같았다.
“이 숫자가 가리키는 곳의 보물도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고 하니, 이것이 귀중하면 얼마나 귀중하겠소? 이런 검은 우리가 오늘날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 않겠소이까? 자세히 살펴보니, 제작연대가 그리 오래 돼 보이지 않소. 설사 이게 옛 명인이 만든 희귀한 명품이라 하더라도, 그 보물 이야기도 벌써 일천 구백여 년 전의 일이니, 어찌 신빙성이 있겠소? 어쩌면 이것이 희대의 사기극인지도 모르오.”
조문홰가 조심스레 말했다.
군웅들이 천명신검을 두루 구경한 후 고승은 검을 보자기에 싸서 조영에게 건네었다.
조문홰의 가슴에는, 그의 표면적인 말과 달리, 기복이 더욱 심하게 일었다. 그는 천명신검을 빌려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체면상 꾹 참고 있었다.
그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고승이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조문홰의 의사를 물었다.
“조대인, 혹시 이 검에 흥미가 있으시다면, 이 검을 빌려 드릴까요?”
“아, 아닙니다. 그까짓 단검 한 자루가 고려인들에게는 소중할지 모르나 우리에게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사실, 우리 중국에는 그보다 천만 배 값지고 진귀하며 유서 깊고 의미심장한 보검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저도 그런 것들 가운데 하나를 소장하고 있소이다.”
“아, 그렇군요. 조대인의 말씀이 옳습니다. 이 보잘것없는 청동단검이 쇠를 무처럼 자르는 명검도 아니고,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검에 입혀진 이런 글귀나 색불루 임금의 시구는 성현들의 글에서 얼마든지 읽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소. 그리고 솔직히 난 그 검이 일천 구백여년 전의 유물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소. 그다지 놀라운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닌 이런 물건을 둘러싸고 헛소문이 나돌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기기 쉽소. 대인은 특히 입단속을 잘하시오.”
조문홰가 고승과 조영의 신상을 염려하는 듯 힘주어 말했다.
“명심하겠습니다. 대인.”
이어 고가장의 노장주 고승은 손님들을 별채의 영빈관으로 안내해 술과 음식을 대접했다. 모임이 파하기 전 손님들 각자에게 후한 선물도 주어졌다.
잔치가 끝나고 조문홰를 전송하러 나간 길에, 고승은 조문홰의 곁에 서서 걸으며 속삭였다.
“대인, 방금 전 구경하신 천명신검은 그리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가치한 것도 주인을 잘 만나면, 가치가 매우 높아지는 법이오.”
고승은 조문홰의 얼굴을 은근히 살피며 덧붙였다.
“그래서 제가 여쭙는 건데, 목하, 이 검을 빛나게 할 만한 천하의 주인은 누구일 것 같소?”
고승의 말은, 이 검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는 밀의전승을 염두에 둔 것이다.
조문홰의 얼굴에 긴장의 빛이 스쳤다. 그는 고승을 돌아보며 역시 낮은 목소리로 반문했다.
“무슨 뜻으로 묻는 말이오?”
“제 말은, 동도東都 낙양궁의 태후마마가 이 검의 주인이 되시기에 적임자가 아닌가 묻고 있소.”
당시 당나라에서는, 황태후 무조武照가 아들 황제를 가택 연금한 채 친히 정사를 돌보고 있었다. \
삼년 전인 683년 고종 이치李治가 죽고 그의 아들 중중 이현李顯이 즉위했으나, 이치의 아내이자 이현의 어머니인 황태후 무조는 두 달 지나 아들 중종을 폐위시켰다.
이어 그녀는 다른 아들 예종 이단李旦을 황제로 세웠지만, 그를 별전에 둔 채, 스스로 친정親政을 감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 그렇소, 그야 당연한 말씀이오.”
“하지만 변방 나라의 이런 보잘 것 없는 물건을 그 분께 바친다면, 그건 그분께 무례하고 무엄하기 짝이 없는 어리석은 짓일 수도 있을 것이오.”
“뭐, 그거야 그렇소만.”
“그래서 제가 제의하는 것입니다. 대인께서 이것을 간직하고 계시면 어떻겠습니까? 저는 죽을 날이 멀지 않아서 이런 물건에는 아무런 흥취가 없고, 제 손주 녀석은 아직 어려 이런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 다치기 쉽습니다.”
고승이 조문홰의 낯빛을 보니, 조문홰는 애써 평정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제가 이것을 대인께 드리고 싶어 하는 것은, 방금도 말씀드렸듯이, 이런 하찮은 물건이라도 귀한 주인을 만났을 경우 천고千古의 빛을 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문홰는 체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는 듯, 신음소리를 내었다. 고승이 못을 박았다.
“그럼 대인께서 저를 홀대하지 않으시고, 저의 이 작은 정성을 가납하신 것으로 믿겠습니다. 수일이 지나면, 제가 믿을만한 심복을 통해 물건을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아, 뭐 그렇게까지야. 으흠. 정 그러시다면 제가 구경삼아 당분간 보관하고 있겠습니다.”
“대인, 이건 저의 진심입니다. 제가 죽더라도 우리 아이를 잘 돌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아, 그거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조카는 영특하고 비범하니 장차 큰 인물이 될 것이오.”
조문홰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어느 새 조영을 조카라 부르고 있었다.
고승은 돌아가는 조문홰에게 별도로 거액의 황금을 선사했다. 송막도독 이진영에게도 합당한 선물을 주었음은 물론이다.
조문홰의 가슴 속에서 일어난 기복은, 귀가하는 마차 속에서도 내내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괴승 고양원, 색불루 임금의 시, 천명신검,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 이루하라는 새파랗게 젊고 요염한 여인 때문이다.
고려출신 대진사 일좌승一座僧 고양원이 남기고 간 이상한 신풍神風에, 색불루 임금의 시가 주는 색다른 감흥, 그리고 색불루 임금이 만들었다는 천명신검에 접하고 나니, 영주도독 조문홰뿐만 아니라, 송막도독 이진영, 그의 처남 귀성주자사 손만영, 신창 이해고, 절색 이루하, 서연, 조영 등의 가슴 속에서도, 부지불식간 어떤 풍운이 일기 시작했다.
그들이 헤어질 때, 이루하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조영에게 다가가 남이 듣지 못하도록 고려 말로 뭔가를 속삭였다.
그러나, 겉으로 점잔을 피우면서도 진즉부터 이루하를 남몰래 훔쳐보던 한 쌍의 눈길이 있었다. 그것은 영주도독 조문홰의 가는 시선이었다. 그의 칼날 같은 눈길은, 이루하의 입김이 조영에게 번개같이 뻗쳤다가 거두어지는 그림을 포착해 냈다.
손님들이 모두 떠나간 후 조영은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방에 들어와 이루하가 건넨 말을 상기해보았다.
닷새 후, 유주 서남의 파사사에서 꼭! 만나 뵙길.
돌이켜보니 그녀의 어조가 대단히 간곡했었다.
‘무슨 일이지? 왜 하필 파사사? 시간 나면 파사사에 한번 들르라는 고양원 대덕의 언사 때문인가? 그녀는 경교 신도인가? 혹시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다음 장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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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2023. 6. 26.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