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29819.html
https://www.spotv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67016
*영화 <파묘>의 스포일러 포함
<용어 정리>
오컬트 영화: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악령, 악마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는 심령 영화
모방 욕구: 소비자들이 자신의 롤 모델과 같은 것을 욕망한다는 개념
(브랜드) 네이밍 : 회사나 제품에 대한 철저하고 깊이 있는 연구로 오랫동안 소비자에게 기억되고 사랑받는 상표 이름을 짓는 일.
<기사 요약>
장재현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오컬트 영화 <파묘>가 오늘 3월 24일 개봉 24일 차에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OTT 시장의 성행으로 전체적인 영화 시장이 비수기를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오컬트라는 마니아층이 두터운 장르로 올해 첫 천만 영화를 달성했다는 쾌거를 이룬 것은 주목할 만한 점이다. 전문가가 분석한 <파묘>의 예상치 못한 흥행 요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영화 전체에 깔려 있는 ‘항일 코드’이다. 파묘는 겉으로는 미스터리 오컬트 영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과거 항일 운동에 참여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등장인물들에게 부여하거나 등장인물들의 차량 번호판에 독립기념일을 상징하는 코드를 심어 놓는 등 치밀한 디테일을 선보인다.
둘째, 배우들의 열띤 홍보 활동 역시 <파묘>의 흥행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주요 등장인물 넷이 영화 속에서 보인 훌륭한 케미스트리가 영화 밖에서도 이어진 것이다. 특히 <올드보이>, <악마를 보았다> 등에 출연하며 카리스마 대배우로 등극한 최민식 배우는 무대인사 현장에서 기존 이미지를 과감히 탈피하고 아동용 머리띠를 착용하거나 감귤 모자를 쓰며 ‘할꾸(할아버지 꾸미기)’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었다.
셋째, <파묘>를 둘러싼 논란과 그 대처가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가장 큰 논란은 바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을 제작한 김덕영 감독의 SNS상 발언이다. 김덕영 감독은 <파묘>를 두고 “반일주의를 부추기는 <파묘>에 좌파들이 모이고 있다” 며 영화와 그 관객에 대한 강한 불호를 드러냈다. 대부분의 누리꾼들은 이에 "이념 갈라치기"라며 비판적인 의견을 내세웠다. ‘<파묘>는 좌파 영화이고, <건국전쟁>은 우파 영화인가?’라는 논쟁이 불거지는 와중에, 장재현 감독은 1000만 돌파를 앞두고 진행된 스포티비뉴스와 인터뷰에서 ‘크게 개의치 않는다’라고 발언하며 쿨한 대처를 보였다.
천만을 돌파한 파묘의 인기는 여러 논란 속에서도 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나의 생각>
-파묘, 사람이 모이는 이유는 ‘좌파 영화’ 라서?
장덕영 감독의 ‘좌파 영화’ 발언 이후로 <파묘>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장덕영 감독의 주장에 따르면, <파묘>에 대중이 열광하는 이유는 바로 반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영화의 ‘좌파적 성향’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장덕영 감독의 발언을 비판한 평론가들 대부분도 <파묘>의 흥행 요인에 영화 전반에 깔려 있는 항일 코드가 있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파묘>가 오직 항일 메시지만으로 뜬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항일 메시지가 없었다면 <파묘>는 더 흥행했을지도 모른다는 대담한 추측마저 해 본다. 영화 내외적으로 대중이 열광할 만한 요소가 곳곳에 숨어 있다. 그러니 지금부터 정치적 메시지는 전부 쳐내고, 철저히 내 진로인 마케터의 관점에서 <파묘>라는 상품이 소비자인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갔나 알아보자.
-’MZ 무당’ 이 갖는 한국적 아름다움
<파묘>가 본격적으로 대중의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국내 개봉 전 풀린 캐릭터 포스터에 있다. 한복을 입은 채 악귀를 쫓아내는 축경을 몸 전체에 새기고 헤드폰을 머리에 쓴 캐릭터 ‘봉길’이 주는 MZ 무당의 포스는 예비 관객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영화 개봉 이후에도 컨버스를 신은 채 대살굿을 선보이는 ‘화림’의 모습, 앰프를 놓고 마이크를 찬 채로 굿판을 벌이는 ‘봉길’의 모습은 완벽한 전통과 신세대의 조화를 보여 주었다. 실제로 많은 관객들은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인 ‘일제가 심은 나무 말뚝’ 보다도 영화 초반에 이들이 벌인 ‘MZ적’ 대살굿 현장의 충격적인 비주얼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웹에 <파묘>를 검색하면 가장 상단에 뜨는 연관 검색어 ‘파묘 굿’, ‘파묘 굿 장면’ 등이 이를 반증한다. <파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키워드를 ‘MZ 무당’으로 일축시킨 것이다. 자사 상품만이 갖는 고유 이미지를 갖는 게 마케팅의 최종 목표인데, <파묘>는 이미 이를 달성했다. 대살굿 장면에서 ‘화림’이 신은 컨버스, 영화 중반에 입고 나오는 ‘르메르’의 의상에 대한 정보가 화제를 불러오기도 했다. 마케팅의 기본 목표인 모방 욕구마저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반면, <건국 전쟁> 하면 떠오르는 고유 이미지가 이승만 외에 있는가? 따라 하고 싶게 만드는 요소가 영화 내에 있는가. 내 생각에 이 영화는 네이밍부터 틀렸다. 홍보 상품(이승만)과 브랜드네임(건국…)의 괴리가 너무 크다. 소비자에게 바로 반감을 불러오게 하는 이름이다.
-영화 관계자와 관객 간의 활발한 상호 작용
뉴스에서 언급했던 배우와 관객 간의 소통 역시 <파묘>가 정상에 오르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통칭 ‘묘벤저스’ 라 불리는 배우들은 무대 인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파묘 팬덤과의 소통을 이어갔다. 군 복무 중이라 아쉽게 무대 인사에 참여하지 못한 ‘봉길’ 역 이도현의 부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적극성이다.
그런데 이 ‘소통’에 충실한 것은 배우들 뿐만이 아니다. <파묘> 마케팅 담당자들은 SNS를 통해 각종 비하인드 사진이나 메이킹 필름을 업로드하며 팬덤을 만족시켰다. 특히, 한 관객이 SNS에 올린 팬아트를 모티브로 새로운 특별 포스터를 제작하여 상당한 이슈를 불러오기도 했다. 팬아트와 포스터의 완성도가 불러온 인기도 컸지만, 팬아트를 제작한 팬의 허가를 우선으로 받은 뒤 포스터에 출처를 표기해 준 담당자의 정중한 태도 역시 대중으로부터 큰 호감을 샀다.
적극적으로 소비자와 상호 작용을 이어 가고, 윤리적 태도를 준수하는 것은 홍보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요소이다. 배우든 감독이든 관계자든 상관없이, SNS로 상도덕 없게 굴면 안 된다는 뜻이다.
많은 영화 평론가들이나 정치 관계자들이 <파묘>의 흥행 요인을 너무 정치적인 관점에서만 보고 있다. 영화가 성행하는 이유를 관객의 정치 성향에만 두고 탐구하면 절대로 <파묘>가 이렇게까지 흥한 까닭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관객은 그렇게 진지한 존재가 아니니까… 특히 <파묘>의 주 타겟층인 MZ세대는 더더욱.
재밌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관객의 재미를 극대화시킬지 백방으로 탐구해야 하는 게 마케터라는 존재이다. 그런 점에서 <파묘>는 성공적인 마케팅의 전형을 보여준다. 나도 <파묘> 속편이 개봉하면 보러 갈 의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