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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10:1-12:24 하나님의 선물을 취하는 성도의 태도 찬송: 3, 25, 359장 교독문: 수 23:1-13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묻지 않고 기브온 족속과 조약을 맺은 후, 이에 반발한 가나안 남부 지역의 다섯 왕은 동맹을 맺고 기브온을 공격하게 되었다. 10:1-5은 이들의 태도를 이렇게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과 아이 성을 점령한 사건과 기브온이 화친한 내용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브온을 대적하여 싸우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진멸하시고자 하는 의도를 보여준다. 애굽에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신 것처럼 가나안 남부 지역의 왕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셔서 그들로 기브온을 치게 하셨고, 이에 기브온은 여호수아에게 도울 것을 요청하였고, 이에 이스라엘 군대는 길갈에서 밤새 올라와 연합군과 전쟁을 하였고, 남부 지역 다섯 왕을 물리치게 되었다. 이 내용이 10:1-15의 내용이며, 이후 10:16-27은 연합군의 다섯 왕을 사로잡아 죽인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이후 계속 남하하여 남부 지역에 속한 성읍들인 막게다, 립나, 라기스, 게셀, 에글론, 헤브론, 그리고 드빌, 총 일곱 성읍을 점령하게 된다. 이 점령들에 대해서는 10:28-39에서 한 두 절로 간단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10:40-42에서는 “호흡이 있는 모든 자는 다 진멸하여 바쳤”다고 기록한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였기에 얻은 결과였다.
하지만 여호수아 10장에 기록된 점령 기사는 가나안 남부 지역을 점령한 것에 불과하다. 이 점령이 가능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중부, 즉 허리 지역의 두 큰 도성인 여리고와 아이를 점령하게 하심으로 가나안 북부와 남부 지역이 서로 연합하지 못하도록 하셨음에 일차적인 이유가 있다. 그리하여 가나안 남부 지역만 연합하여 기브온을 공격하였던 것이고, 이에 하나님은 여호수아에 기록된 세 가지 이적 가운데 세 번째 이적을 베푸셨는데, 그것은 하늘에서 큰 우박덩이를 내리셔서 우박에 죽은 자가 더 많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태양이 기브온에, 달이 아얄론 골짜기에 머물도록 여호수아가 기도하였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태양과 달을 멈추게 하신 내용이 10:12-14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 사건은 10:11과 연결 된다. 밤새 길갈에서 올라온 이스라엘 백성이 아침에 연합군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때 기브온은 동쪽에 있는 성이요, 아얄론은 서쪽으로 약 11~16km 정도 떨어진 지역으로 달이 지는 곳이었다. 따라서 아침에 전쟁 지역에 도착한 여호수아는 낮의 길이가 더욱 길게 되기를 원하여 이렇게 기도하였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의 기도를 들어 주셔서 10:13의 말씀대로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게 되었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대로 이때 하늘에서 큰 우박 덩이를 내리게 하심으로, 연합군의 많은 수가 이 우박에 죽게 되었다. 이 이적들로 인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군대는 가나안 남부 연합군으로부터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여호수아 11장은 가나안 북부 지역과의 전투를 11:1-15에 간단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10장의 기록과 유사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님의 이적 사건은 기록되지 않았다. 그저 전투에서 승리한 것만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10장과 11장 모두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격려를 하고 계신다.
수 10:8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그들 중에서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 하신지라”
수 11:6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일 이맘때에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 넘겨 주어 몰살시키리니 너는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그들의 병거를 불사르라 하시니라”
이 두 말씀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계속하여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전쟁에 임할 것을 말씀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러한 격려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은 전쟁에 담대히 임하였고, 그 결과 승리를 거두었고, 그 정복의 결과가 11:16-23:14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땅에 전쟁이 그쳤다고 11:23은 선언한다.
지금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성읍들을 점령한 사건들을 보고 있다. 자세하게 기록된 전쟁은 세 번인데, 여리고 성, 아이 성, 그리고 기브온을 공격한 가나안 남부 지역 연합군과의 전쟁이다. 그 외의 전쟁은 아주 간략하게 기록함으로써, 전쟁이 쉽게 끝난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전쟁은 거의 칠 년 동안 이어진 전쟁이었다. 왜냐하면 갈렙의 나이를 계산하면 7년이 나오기 때문이다.
수 14:10-11”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갈렙은 40세에 열두 명의 정탐꾼 가운데 있었으며, 이때는 출애굽 2년째로 이제 38년간 광야에서 방황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 85세가 되었으니, 여기에서 78년을 빼면 7년의 기간이 나온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 강을 건넌 후로 정복 전쟁이 그치기까지의 전쟁 기간은 약 7년이 됨을 알 수 있다. 왜 이 기간을 계산하느냐 하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전쟁은 7년만에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7년이면 길다고 생각하지만, 이 7년이란 기간은 그저 시작에 불과한 시간일 뿐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쟁은 사실 다윗 시대까지 계속되었으며,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서야 안정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다. 이 7년 전쟁을 기반으로 앞으로의 전쟁을 계속 수행해 나가야 할 의무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11:18에서 “여호수아가 그 모든 왕들과 싸운 지가 오랫동안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13:1을 보면 “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도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여호수아가 점령한 지역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을 뿐이며, 12장을 보면 요단 동편에서 점령한 지역은 시혼과 옥의 두 지역이요, 이 지역들은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요단 서편의 지역은 아홉 지파 반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12:7-24을 보면, 여호수아 시대, 즉 7년의 전쟁 기간에 오직 서른 한 지역만 점령하였음을 말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아직 이 전쟁은 계속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우리의 착각이 있다. 여호수아를 읽으며 우리는 너무 쉽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승리를 주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10-12장에 기록된 승리에만 집착할 뿐이다. 그것은 어떤 결과를 낳느냐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기만 하면 여호수아가 승리한 것처럼 우리도 승리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승리를 쉽게 얻을 수 있었는가? 여러분의 과거의 삶을 돌아보라. 그렇지 않았던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왜냐하면 이 전쟁은 오랜 기간 동안 이루어지는 전쟁이기 때문이다. 결코 순간순간의 짧은 승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이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이며, 가나안 땅을 심판하는 전쟁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오해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필요한 부분을 놓고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해결하실 것이라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소원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전쟁인가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내 삶이 하나님의 전쟁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우리의 오해가 시작되며, 하나님께서 나의 순종을 받아주시지 않고 나의 소원을 해결하시지 않는다고 불평할 뿐이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받은 승리는 무엇인가? 그들이 순종해서 그렇게 되었는가? 겉으로 볼 때에는 그렇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더욱 크게 작용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사용하셔서 가나안을 심판하고 계신다. 이것은 영적 전쟁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승리하시고, 그 승리를 이스라엘에게 내려주셨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이 승리를 그저 받은 것이다. 겉으로 볼 때에는 순종하여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하나님께서 그 승리를 경험하게 하시고 계속하여 그들을 돌보시고 지켜주시는 경험을 한 것이다. 그것이 겉으로 볼 때에 승리로 보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원리를 무시한 채, 우리 인생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특히 태양과 달이 머물러 오랫 동안 내려가지 않은 그런 기적을 기다리면서, 우리의 행복이 오래 가기를 바라고, 또 우리의 승리가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소망한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아직 그런 완벽한 승리를 맛보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이스라엘이 거주할 지역 정도로만 점령을 하였고, 이제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다른 지역들을 점령하기 위한 전쟁을 계속해야 하는 상황일 뿐이다.
이런 상황을 살펴볼 때 우리의 생각은 어떠해야 하는가? 순종하면 승리를 맛본다는 것은 사실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물론 전체의 상황을 놓고 볼 때, 즉 큰 그림으로 볼 때는 정확하게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려 놓으신 그림이요, 계획이요, 경영하시는 방식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인간이 소망하는 대로의 소원인 순간순간의 짧은 승리는 들어설 틈이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본문에 기록된 여러 가지의 전투에서 배운 바가 무엇인가? 이스라엘은 요단 강의 이적과 여리고 성의 이적을 통해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경험하였고, 바로 이것 때문에 가나안 남부와 북부 지역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여 전쟁에 임하게 되었고, 북부 지역에서 하나님께서 이적을 보이시지 않아도 의지하는 믿음으로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저 순종하면 된다고 말하지 말라! 왜냐하면 우리의 믿음은 여호와 하나님께 그렇게 순종하고자 하는 믿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에는 우리의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강한 욕망이 가득할 뿐이다. 중요한 것은 지속되는 믿음이다. 지금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인도 아래 여러 전쟁에서 승리하였고, 12장에 기록된 여러 성읍들을 점령하였지만, 이제 7년이 지났을 뿐이다. 앞으로도 계속되는 전쟁이 있을 것이며, 수 13-21장을 보면, 이스라엘의 각 지파가 기업으로 받아 점령해야 할 지역이 많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정복의 과정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계속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한 순간의 순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순종이 필요한 것이다. 이 순종을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면 분명히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다. 하지만 보이지 아니하신다고 순종하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내려놓게 되면 그 승리는 지속되지 못하고 실패의 연속이 될 뿐이다. 이것이 사사기에서 배우는 바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계속하여 보호하고 계시지만, 그 백성은 현실에 안주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다른 신을 의지하여 떠났기 때문에 그들에게 계속되는 실패와 아픔과 슬픔과 고통만이 있게 되었다는 것이 사사기의 증언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이것을 배워야 한다. 정복은 순종할 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순종의 삶을 통해 주어지는 것이요, 아직 정복해야 할 땅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은 계속되는 순종이 필요하며, 이때 세상의 방식을 따라가지 않는 것이 중요함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정복한 땅에서 살아가면서 정복해야 할 땅을 취하러 갈 때 이 순종함을 계속 유지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언제나 순종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의 순종은 굉장히 가볍고 얇아서 아주 작은 미풍만으로도 흔들리며,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태일 뿐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위해 싸우신다고 그렇게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것을 삶에 적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현실의 승리를 당장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 바로 기다림이다. 그리고 계속되는 순종이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일하심을 인정해야만 나오는 것인데, 우리에게 바로 이것이 부족하다. 그래서 매우 조급할 뿐이다. 왜 해결해 주시지 않느냐고, 왜 들어주시지 않느냐고 불평할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외치며 기도하는 것을 우리는 순종이라고,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믿음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분명히 불경이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지 못하는 우리의 우둔함일 뿐이다.
우리의 믿음은 분명히 장기적이어야 한다. 오랫 동안 지속되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여호수아가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권면해던 것이다.
수 23:6-11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 중에 들어 가지 말라 그들의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 그것들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라 또 그것을 섬겨서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하기를 오늘까지 행한 것 같이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강대한 나라들을 너희의 앞에서 쫓아내셨으므로 오늘까지 너희에게 맞선 자가 하나도 없었느니라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쟁 초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적을 베푸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이 전쟁이 여호와께 속한 것임을 보여주고자 하심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여러 이적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의지함은 현실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우리는 분명히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친히 싸우신다는 믿음을 계속해서 고백해야 한다. 이 고백의 결과는 무엇인가? 남아 있는 이방 민족에게 들어 가지 않는 것이다. 그들의 풍습을 따르지 않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분명한 믿음의 고백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세상의 태도를 온전히 버리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승리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순간의 승리가 아니라 지속되는 승리, 영원한 승리를 말이다. 그래서 이 승리를 누리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을 취하는 자로서의 태도를 분명히 해야만 한다. 이런 귀한 믿음과 순종의 태도를 보이는 성도들이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