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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관하여 3-5절
엡 2:8-9 하나님의 이중예정을 고백함 찬송: 251, 298(1, 4절)장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647) (본문 인용: 믿음의 고백: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입문, 성약출판사)
3장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관하여
3절.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작정으로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어떤 사람과 천사들은(딤전 5:21; 유 6; 마 25:31, 41)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하시고 다른 이들은 영원한 사망에 이르도록 미리 정하십니다(엡 1:5-6; 롬 9:22-23; 잠 16:4).
4절. 이렇게 예정되고 미리 정해진 천사와 인간은 개별적으로 또한 변함이 없게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수는 분명히 확정되어 있어서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 없습니다(요 10:14-16, 27-28; 13:18; 17:2, 6, 9-12; 딤후 2:19; 계 17:8; 21:27).
5절.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자기의 영원하고 변함없는 목적과 자기의 뜻의 비밀한 경영과 선하신 기쁨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영광으로 택하셨습니다(엡 1:4, 9, 11; 롬 8:28-30; 딤후 1:9; 살전 5:9). 이것은 순전히 값없이 주시는 그분의 은혜와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신 것이며, 믿음이나 선행을 미리 보시거나 그 믿음이나 선행이 끝까지 유지될 것을 미리 보셔서 한 것도 아니고, 피조물 안의 다른 무엇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여야 할 조건이나 원인으로 예견하셔서 그렇게 하신 것도 아닙니다(롬 9:11, 13, 15-16; 엡 1:4-5, 9, 11; 2:8-9). 곧, 이 모든 것은 그분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송하게 하려 하심입니다(엡 1:6, 12, 14).
하나님의 작정과 관련된 신앙고백이 계속되고 있다. 이 작정은 창세전에 이미 완성된 것으로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 창조와 구속은 성경의 계시를 따라 주어진 것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함을 받은 성도에게만 알려진 바 되었으며, 성도들만 이 받은 계시의 내용을 믿음으로 고백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인간의 구원과 관련한 작정을 예정이라 하는데, 이 예정에 대한 부분이 우리가 오늘 받은 3.3-5절에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신앙고백서를 배우면서 항상 주의해야 하는 것은 삼위 하나님의 작정은 언제나 선하며,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세우신 계획과 경영이기 때문에 언제나 완벽하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작성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놓치게 되면 우리는 성경 자체에 대한 의심까지도 갖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계시 자체를 부인하는 자리까지 갈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왜 이를 말하느냐 하면, 우리가 오늘 배워야 할 부분이 바로 우리가 의문을 갖는 이중예정에 대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중예정이란 무엇인가? 3절에서 고백하는 대로 어떤 이는 영생에, 어떤 이는 영벌에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앞의 것을 ‘선택(選擇)’이라 말하며, 뒤의 것을 ‘유기(遺棄남길 유, 버릴 기)’라 말한다. ‘선택’ 이란 하나님께서 구속의 은총을 베풀기로 결정하셨다는 것이요, ‘유기’란 버리기로 결정하셨다는 것이다. 이 고백이 3절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4절에서는 이 숫자가 확정되었다고 고백한다.
여기에서 우리의 의문이 일어난다. 많은 신학자들과 성도들도 이 유기와 관련하여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여러 이론들을 내놓았지만, 결국 그런 이론들은 성경에 위배되는 것일 뿐이었다. 즉, 하나님의 작정은 영원토록 결정이 되었는데, 그 결정은 예지예정이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예지예정이란 어떤 사람이 믿을 것을 하나님께서 아셔서 그를 선택하신다는 이론인데, 하나님의 작정, 즉 하나님의 비밀한 경영은 이미 창세전에 결정이 되었지만, 그 사람의 구원에 대한 부분은 그 사람이 믿을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의 고백에 따라 예정하시며, 고백하지 않는 자는 영원한 버려둠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예지예정이 가진 주장의 내용이다.
하지만 이 주장에서의 핵심은 하나님의 선택하심에 대하여 의문을 갖는 자들, 즉 예지예정을 주장하는 자들이 가진 특징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인간의 죄 된 본성에 대해서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은총을 더하셔야만 하며, 그 결정은 인간에게 맡겨 놓아야 한다는 주장만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는 사라지고 인간의 결정에 따라 하나님의 작정과 계획이 달라지게 될 것이며,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그저 인간의 선택이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주요 결정의 이유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전능하시며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결정에 휘둘리는 분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우리의 공로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인간의 교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본문 엡 2:8-9을 보라. 8절에서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하며, 9절에서는 하나님의 예정이 인간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못 박고 있다. 그리고 이 선택과 유기에 관한 분명한 가르침은 마 25장에 나와 있다.
마 25:31-34, 4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는 심판주로 오신다. 오셔서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데, 양은 영생으로, 염소는 영벌로 들어가게 된다. 이 가르침은 선택과 유기를 분명하게 가르친다. 여기에는 택함을 받은 성도와 천사들이 포함되며, 또한 버림받은 사람들과 마귀와 그 사자들이 포함된다. 이 분명한 가르침에 의문을 가진 자들이 많다는 것을 앞에서도 말했는데, 그 이유는 사랑의 하나님께서 사랑을 포기하실 리가 없다는 생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이와 관련하여 그 이유에 대해서는 가르침을 주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선택하심과 버려두심을 결정하셨는지에 대해 비밀에 붙여 두었다는 것이다. WCF 3.5절에서 “자기의 영원하고 변함없는 목적과 자기의 뜻의 비밀한 경영과 선하신 기쁨을 따라” 이렇게 하실 뿐, 그 이유는 감추어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시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와 관련하여 나타나는 질문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분명히 해결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버리기로 작정하셨다면, 우리가 전도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굳이 복음을 전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모든 것이 결정이 되어 있는데, 우리가 굳이 기도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가?
첫 번째로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의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요, 선하신 분이요, 전지전능하시며 성실하시며 신실하신 분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 고백을 WCF 2장에서 배웠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언제나 공의로우며, 자비로우며, 선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결정된 대로 시행하신다. 그리고 그 시행하심은 언제나 옳다. 롬 9:14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인간이 그 어떤 의문을 갖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은 비밀한 경영에 속하였기 때문에 인간이 알 수 없을 뿐이지, 하나님은 절대 선이시다.
두 번째로 생각할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서 누구를 선택하셨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에 더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할 것을 요구하신다는 사실이다. 골 3:2을 보면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고 바울이 요청하고 있다. 이 요청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을 받아 믿음을 고백하는 자는 그의 삶을 하나님의 영광에 맞추어야 하는데, 그 영광은 바로 하나님의 구속하심을 선포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 선포가 된다. 이 복음 선포는 설득이 아니라, 삶을 통하여 직접 보여주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의 구속이 바로 은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선택하시고 어떤 사람은 유기하신다고 결정하셨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에 속한 비밀이요, 우리는 어떤 사람이 어떤 결과에 속하게 될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하는 삶이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받았다고 생각하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로, 하나님의 은총을 보여주는 자로 살아야 하며, 이를 통해 하나님은 당신께서 선택하신 자를 끝까지 이끄시고 붙드신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다. 이 모든 결과는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며, 우리는 그 결과에 대하여 미리 예측할 필요가 없으며, 다만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기를 간구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은 것은 우리 모든 인생은 원래 멸망 받아 마땅한 존재이지만, 여기에서 하나님의 은총과 자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몇몇 사람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일 뿐임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하여 구속함을 받은 성도는 언제나 이 말씀을 기억함이 중요하다.
살전 5: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선택하심을 받은 성도의 삶이 얼마나 귀한가를 바울이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성도를 위하여 자신이 선택하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로 된 것으로, 이미 창세전에 결정이 되었으며, 그 결정은 WCF 3.5절 중후반에서 말하는 대로 “믿음이나 선행을 미리 보시거나 그 믿음이나 선행이 끝까지 유지될 것을 미리 보셔서 한 것도 아니고, 피조물 안의 다른 무엇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여야 할 조건이나 원인으로 예견하셔서 그렇게 하신 것도 아”님을 알 수 있다. 다만 “순전히 값없이 주시는 그분의 은혜와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진정한 믿음의 고백이요, 하나님의 예정에 우리가 속한 은혜를 고백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실 만한 이유가 하나도 없다. 모든 인생은 하나님에 대해 아무 소망도 없고, 죄와 허물로 죽었고, 타락하고 부패하여 하나님께 적대적이었다. 이런 인생들이 과연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할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바, 우리의 구원에 대한 결정은 우리가 스스로 내리겠다고 말하는데, 인생이 과연 이러한 결정을 내릴 만한 능력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럴 수 없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저 육신에 갇힌 삶을 살아갈 뿐인데, 여기에 그 어떤 소망이나 희망이 있을 수 있겠는가! 전혀 없는 것이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비로 몇몇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다면, 그래서 우리가 이 작정 안에서 예정을 입어 선택하심을 받았다면, 그것만큼 감사하고 찬송할 만한 일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소원은 우리를 구속하신 것처럼 다른 이들도 구속하여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모든 구원의 은총은 나의 능력으로, 선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자비하신 선택하심으로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따라 예정되었으며, 선택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게 되었을 뿐이다. 이것이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믿음의 고백이며, 다른 사람들이 의문을 갖는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답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 고백이 있어야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감사하며, 찬송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 작정과 예정에 대한 고백에서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따라 모든 것을 행하시며, 우리의 뜻을 따라 당신의 뜻을 바꾸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R. C. Sproul 신학자가 말한 것처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을 할 것이라고 신뢰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셔서 자신의 백성 삼으신 것은 하나님 자신의 영원한 비밀한 경영과 선하신 기쁨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시작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렇다. 우리는 가장 먼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해야 한다. 이것을 “오직 은혜”라고 부른다. 이렇게 “오직 은혜”를 고백하는 성도는 다음으로 “오직 믿음”을 고백하게 되며, 더 나아가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외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은혜로운 작정으로 하나님의 예정 안에서 선택하심을 입은 성도로 부름을 받아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가르쳐준 하나님의 작정에 대해 배운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총인가를 생각해 보라. 그리고 WCF 3.5절 마지막에서 고백하는 이 부분을 꼭 기억하기 바란다.
“이 모든 것은 그분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송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성도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 안에서 예정을 입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하심을 입었음에 늘 감사하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늘 찬송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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