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문화원 향토역사
매호동 우산(牛山) 모롱이 ‘영동 할매당’ 이야기
송은석(수성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 위원)
e-mail: 3169179@hanmail.net
프롤로그
2022년 12월 수성구 매호동 우산 북동쪽 끝자락, 매호천변에 ‘생각을 담는 정원’이 개관했다. 200평 규모 실내 온실에는 열대식물원이, 1,500평 규모 야외에는 화훼단지를 조성해 지역민으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필자는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한 생각’에 빠지곤 한다. 과거 이 자리에 있었다고 알려진 ‘영동 할매당(새매당)’ 때문이다.
‘영동·영등·이월·풍신·제석’ 할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음력 2월을 ‘바람달’이라고 했다. 바람이 잦아서 붙은 이름이다. 바람은 농업·어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어업을 생계로 하는 바닷가 어촌에서는 바람을 다스리는 풍신(風神)이 풍요의 신이자 두려움의 신이었다. 그래서 제주도를 비롯한 섬이나 바닷가에서는 풍신을 각별히 섬겼다. ‘제주도 영등 할망’ 전설로 유명한 ‘영동·영등’ 할매가 대표적인 풍신이다. 영동 할매 전설은 전국에 걸쳐 전해지는데 대체로 다음과 같다.
영동 할매는 매년 음력 2월 1일 세상에 내려와 20일간 머물고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할매는 세상에 내려올 때 딸 혹은 며느리와 함께 온다. 딸과 함께 올 때는 바람이 불어 흉년이 들고, 며느리와 올 때는 비가 내려 풍년이 든다.
영동 할매는 딸하고 올 때는 딸이 입은 치마를 이쁘게 보이게 하려고 바람을 일으키고, 며느리하고 올 때는 며느리의 치마가 비에 젖어 볼품없게 하려고 비를 내린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영동 할매와는 정반대였다. 할매가 딸이 아닌 며느리와 함께 오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딸은 출가외인이요, 며느리는 내 식구라는 전통적 사고가 반영된 탓이다.
매호동 영동 할매당
한국지명총람5 경북편2에 매호동 영동 할매당에 대한 내용이 보인다. ‘새매당(터)’에 대한 것인데 요약하면 이렇다.
○새매당[모롱이] : 소산 위에서 가천동으로 가는 모롱이. 당집 새매당이 있었음.
○새매당터[해매당터, 영동할매당터] : 새매당에 있는 당집 터. 해마다 음력 2월 초하룻날에 ‘영동할매’라는 할머니 신이 그의 딸이나 며느리 중에···(중략)···큰바람을 일으켜 배를 부수고 농사에 큰 피해를 주므로 이곳에 사당을 지어놓고 무사하기를 빌었다 함.
내용 중에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하나는 딸과 며느리의 역할이 바뀌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배를 부수고’라는 부분이다. 매호동에 왜 영동 할매를 모신 마을 제당과 배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일까? 이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생각을 담는 정원’에서 매호천을 따라 북쪽으로 약 500m 거리에 금호강, 남천, 매호천이 만나는 세물머리가 있다. 지금은 제방이 잘 쌓여 물난리 걱정은 없다. 하지만 과거 이 지역은 이웃 마을 연호동처럼 큰비만 내리면 강물이 넘쳐 물바다가 됐다. 그래서 바닷가 마을처럼 영동 할매를 마을 신으로 모셨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우산 북쪽 금호강변의 ‘큰 개’, ‘갯벌’, ‘선창바우’, ‘모래듬’ 같은 지명도 영동 할매와 관련성이 있다.
경산지역 전영동 ‘영동당(永東堂)’ 전설
흥미롭게도 매호동과 그리 멀지 않은 경산시 남천면 송백리에 영동당이란 마을 제당이 있다. 영동당이란 이름은 마을 신으로 모신 ‘전영동(全永東)’이란 인물에서 유래됐다. ‘영동당’ 전설은 경산에서는 널리 알려진 전설로 경산읍지(1749년) ‘사묘(祠廟)’ 조에도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영동사(永東祠) : 전영동은 고려 때 사람으로 고을의 아전이 되었다. 집은 송천에서 살았다. 저물녘 나갔다가 새벽에 돌아왔는데, 길을 다니는 것이 매우 빨랐다. 사람들이 의아하게 여겨 살펴보니, 오갈 때마다 호랑이를 타고 다녔다. 음식은 구운 무 뿌리만 먹었다. 그가 죽은 뒤에 고을 사람들이 사당을 세우고 매년 2월 상일에 무 뿌리를 올려 제사를 지냈다. 집집마다 제사를 지냈는데, 경상도 일대로 두루 퍼지니 이를 영동제(永東祭)라 하였다. (이하 생략)
에필로그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마을마다 마을 제당이 있었다. 마을에서 제일 높은 산 정상에는 하늘 신을 모시는 상당(국사당), 산 중턱에는 산신을 모시는 중당(산신당), 마을 어귀에는 마을 신을 모시는 하당(서낭당)이 있었다. 하지만 도시화·현대화 바람을 타고 그 많던 마을 제당과 당산나무는 사라졌다. ‘생각을 담는 정원’ 한쪽에 영동 할매당, 돌무더기, 장승을 복원하면 어떨까? 마을 제당과 당산나무는 미신이 아니다.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오랜 세월 이어온 우리 미풍양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