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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학회 시와 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성전 방극률
세 번째 만남:추억 노래
1.생고생 하며 시 짓기
내가 원하는 집
내가 살고픈 집
한옥 한 채 근사하게 짓고 싶으나
재목이며 연장들 변변치 않았네
기둥감이 될 단단한 둥근 소나무
써까래로 쓸 잡목들
곡선의 미를 갖춘 기와들
잘 뭉쳐져서
비바람 막아 줄 황토까지
이제 죄다 모아 놓아야지
망치며 톱이며 정이며
대패며 먹줄이며 연필이며
설계 할 종잇장까지
내가 살 집이니
생고생을 각오 하며
이제 죄다 모아 놓아야지
스스로 목수가 되어 보며 싸목싸목
한옥 한 채 지어보자는 것이지.
2012/3/22
2.촛불의 눈물
속이 탄다 속이 타니
분통이 터진다 분통이 터지니
급기야 한줄기 눈물이 흐른다
서서히 길게...
고조가 되는지
닭똥같은 눈물은 흐름도 빠르다
깊숙이 박힌 속내가
소리 없이 더 타들어 간다
눈물도 소리 없이 뜨겁다
촛불이 주는 아주 순수한 액체로 흐른다.
2013/09/06
3.111번
111번
따로 따로라면
1이 세 개이니 더 좋다만
붙어 사는 3형제
따따블이니 천운이 아니냐
집으로 배달 된 문학지 가을호가
111호 였으니
한참이나 훗날에
전설적 숫자 111번을
다시 만나니 피식 피식 웃음만 나온다
학업 성적이
100명 중 1등이면 우수생이요
1000명 중 111등도 우수생인데
초등시절,성탄절 전야
고향 마을『락동교회』에서
행운상 1등 당첨 번호가
내 번호 111번 이었으니
우수한 해후상봉 아니더냐
코미디언 못지 않은
집사님은 사회를 보시며
행운상 1등 번호를 뽑아 놓고
번호를 거꾸로 부르겠다 하시더니
코 흘리개 녀석들 귀는 쫑긋
1(일)-1(일)-1(일) 하는 순간
소리 죽인 기다림 그때의 추억에
지금도 피식 피식 웃음만 나온다.
2011/08/20
4.한여름 밤 꿈속에서
열 여덟 살 나이 쯤일 테지
교복을 숨겨 놓고 쏘다니다가
남원 읍내 A술집으로 가
친구들에게 술을 사줬는데
취하지 않고 헤어진 묘한 장면이었지
짜식들,또렷한 얼굴인데
꿈이었으니 발표하기는 그렇구나
떨리며 불안한 영혼들
어깨동무로 동산을 넘어서
언덕을 내려 와
집에 가까이 다가올 쯤
이도령보다 더 착하던
부잣집 아들 놈이
술 한 잔 더 사준다고 잡아 끌기에
끌려가서 또 마셨었지
취하지 않는 술맛 나는 세상이었지
그 시절 촌놈의 세상
채색되지 않은 순백의 추억은
꿈일지라도 다시는
재생되지는 않을 것이야.
2014/07/30
5.죽겠어라는 말
마음에도 정말 없는 말을
입으로만 뱉어 내는 말
백 번.백 열번
천 번,천 열번을 했어도
또 뱉어 낼 해괴한 말
보따리가 무거워 죽겠어
발가락이 아파 죽겠어
더워 죽겠어
추워 죽겠어
미워 죽겠어
예뻐 죽겠어
무수히 떠도는 핑계로
앞 말에 붙여서
생산 해내는 죽겠어라는 말
너도 나도 하면서 살았고
너도 나도 또 하며 살것이고
어쩌면 긍정이라 부정이라 허용 못할
마음에도 정말 없는
죽겠어 - 죽겠어라는 말.
2014/07/31
6.손톱을 깎는다
친구 여식 결혼식 가는 날에
나의 의식(儀式)이 듯
보름 동안 길러 준
제 손톱을 제 손으로
잘라내는 정숙한 이 시간
잘 자라서 뿌리내린
윤기 빛나는 단단한 열 손톱
잘라내도 톡- 톡- 톡 한 마디씩
아파하지 않아 흥겨운 이 시간
이젠 영양 없이 핏기 없이
정처 없이 어디로 갈 것이냐
이 사람, 참 나쁜 사람이라고
별로 관심조차 없다가는
핑계를 찾아서 10분의 여유로
톡- 톡- 톡 잘라버린 손톱깎기
군림(君臨)의 자유마져 잘라버린
아휴,아까워라.
2014/07/21
7.닮고 싶은 인물
만약에 세상 사람 모두가 나더러
살아오면서,살아가면서
닮고 싶은 인물 딱 한 분만
보물 찾기 쪽지에 쓰라 한다면
한 시대를 함께 사는
멀리서나마 뵙게 된
가요무대에 등장하신 인물 1번
<김동건 아나운서>를 쓰련다
외모야 차치 하고라도
공인 된 존함으로 만천하가 아신
대명사요,풍채로는 삼촌뻘 형님뻘이라
덧붙인 오프닝 멘트 목소리
금세기 명언의 말 쏟아내시며
격려하신 말씀, 천하제일 구수하며
극찬하신 말씀,진정 별미이니
그 좋은 노랫말이 흐르는
가요 향연장에서
단연,말씀의 맛은 으뜸이니
남성의 꽃으로 붙일 일이니
꼭 닮고 싶은 인물로 쓰고 싶다는거요.
2013/10/21
8.감꽃 추억
칠십 노객의 시집을
읽는 중에
감꽃 주워 드신
유년의 추억을 노래하신다
오십인 내도
감꽃 때부터
부풀어 커진,향내도 없는
푸르딩딩한 감들로
배고픔을 이겨왔는데
유년에는 칠십 노객 그 분이나
내나 모두가 커보이고 높아서
배가 고픈 허기짐으로
따 먹는 요령보담
주워 먹는 재미로
초가지붕 둥근 우리집 만큼이나
배불리 먹었던 귀한 감꽃 추억이다.
2010/07/25
9.건망증
귀가 얇아
건강 식품 석 달치를
샀건만
석 달 열흘이 지나도록
한 달치도 못먹고
방치를 해 뒀으니
건강 찾기는 고사하고
증상만 더 고질병이다
보약이란 자고이래로
석 달 간격 세 번은 먹어줘야
효험이 있는 거라며
또 찾아 와선 감언이설이니
차라리 그 소리나 들리지 않는
귀머거리 병자가 되어라.
2010/07/25
10.하늘같은 높은 새
무한 허공
그 아래,지상의 으뜸 산 꼭대기
산 꼭대기 아래엔
산 꼭대기 버금가는
예배당 철탑(鐵塔)
철탑 위엔 십자가(十字架)
십자가 위엔
참새 한 마리 앉았네
지상에서 제일 높은 왕조(王朝)
너는 임금이로다 너는 하늘이로다
본디
앉으면 낮다는데
너는 앉아도 높은자리네
무릇 높다하여 군림하는
상감마마인데
그 높은,낮은 곳에서 아래를 보라
민초들 마음을 훑어
만 백성을 다독거리게.
2011/07/30
11.마음 궂은 날
마음 궂은 날은
해님 별님 달님도
숨어 지내는가 봅니다
바라보는 자에게만
빛을 내린다 했으니 기다려 봅니다
빛을 내려도 댓가를 바라지 않으며
숨어서도 빛은 떠 있다는데
영악한 사람들
그 빛 마구 퍼 날라 써 대다가
먹구름이 몰려와
눈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이구동성 불평만을 쏘아 올립니다
곧,삼일천하(三日天下)가 될텐데도
우주의 한 점,지구촌 사람들
그 새를 참아내지 못해
간사함을 표출한겁니다
분명, 해님 별님 달님은
숨어서도 빛을 주었는데
천재지변이야 님들은 죄가 없는데
사람들은 까탈을 부리는 겁니다
오늘,해님 별님 달님은
보이지 않았을뿐,바라보는 자에게
댓가도 없이
빛을 내려주었습니다
마음 궂은 날인데도.
2011/05/10
12..거베라 꽃
꽃을 보고도 꽃이름을 몰라
이름을 불러주지 못한 바보
그냥 꽃으로만 바라보는
꽃으로만 부르는 바보
지구상에 사람만큼이나
많을거라고 세어보려는 바보
많을거라고 믿어보려는 꽃이름
영상(映像)으로 보는 저 꽃은?
모르면 묻는 게 상책
거 봐라, 묻는 답이
<거베라>꽃이라고 하지않니.
2011/07/11
13.눈(雪)이 눈물이로다
무뚝뚝한
콘크리트 담벼락
쓸어 붙인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립니다
사나흘 쌓인 감정, 햇볕 쬐주니
흘러 내린겁니다
하이얀 눈썹 밑으로
복받쳐서 흘러 내립니다
녹은 묵은 감정
걸러내고 걸러져서
강으로 바다로
흘러갈 것입니다.
2011/02/25
14.하나 보다 더 귀함은 없다
하나 보다 더 귀함은 없다
하나를 얻고 둘을 가지려함은 욕심이다
그 하나로 인하여
아름다움이고 보물급이고 국보급이고
존귀함이 따른다
헤프게 쓰여지질 않으려면
단 두 개도 헛물을 켜서는 안된다
꽃이 열 송이 백 송이 있다한들
아름다운 꽃은 단 한 송이라
시집(詩集) 한 권을 공짜로 얻었다면
감지덕지 해야하나
두 권을 요구하면 야만인이다
국보 1호가 하나이고, 태양도 하나이며
내 아내도 하나이다
둘은 셋은
존재해야 할 이유도,가져서도 아니된다
하나만이 있을 때 빛이며,보화판정을 내린다
하나 보다 더 귀함은 없거니와
우주 만물은 죄다 하나 하나이다
그래서 나도 <나> 하나이다.
2011/07/09
15.고질이 된 무좀
또,발가락이 꼼지락 댄다
오전에도 잠깐이더니
점심밥 먹고나니
이 놈도 활력이 발산하는군
더 근질근질 못 참겠다
긁어나 줘야지,살살 달래줘야지
눈에서 멀다고
안 보인다고 앙탈을 또 부린다
남 몰래 구두를 벗고
살짝 긁적긁적
고질이 된 일이니
하찮은 일은 아니니
살살 달래주며 낫게해야 한다.
2014/08/15
16.시간 문제
미국 첩보 영화
러시아 전쟁 영화
미녀 여배우들 금발이 휘날립니다
중국 스파이 영화
홍콩 애정 영화
한국 사랑과 전쟁2, 사극 드라마
미녀 여배우들 흑발이 휘날립니다
어느 날
60년 전 금발의 미녀 여배우가
60년 전 흑발의 미녀 여배우가
백발을 보여주었습니다
원래 우리는 백발의 모습이었습니다
다만,시간이 문제지요.
2014/08/21
17.고귀한 생명
한 생명이 세상에 와서
우주(宇宙)와 결합한다고 할 때는
어마어마 한 시간에 머물게 되지
돌아보면
어마어마 한 고귀한 생명과의 인연
나를 스쳐갔고
나도 스쳐왔지
항간(巷間)에는
그 고귀한 생명을 향한
스치면서 일언지하 던진 말들에
픽픽 웃음 터뜨리며
나름 적어 놓기로 했지
저 사람에서 저 분으로 저 양반으로
저 선비로 저 영감으로 저 대감으로
고귀한 생명들
저 인간으로 대접받지 않기를...
2014/08/21
18.전봇대가 하는 말
볼품은 없다지만
바깥 세상 내려다 보니
미움도 보이고,사랑도 보이네요
더러는 몸서리 나게
천둥,번개,우뢰를 만나
만고풍상 맛을 본 홀몸이지요
더 클 시간도 있었다지만
이 쯤에서
내려다 봄이 내 운명이었지요
밖의 풍경에 향내나 맡으러
문을 열어 내려보면
자꾸자꾸 내 볼따구니에
어느 학생은
문맹인 나더러 읽어나 보란 듯
볼썽사납게 붙여 둔 광고지가 보이고
어느 아주머니는, 총각들은, 아가씨는
죄인의 탈을 씌움도 없이
짠물 흐른 것,쓸모도 없는 것
아랫도리에 의지를 하니
소름끼쳐 어디 내려다 볼 수 있나요?
2014/08/15
19.소량만 담아두기
나의 작은 오장육부 부탁이니
소량만 담아두기를
예행연습 하자꾸나
밥은 다음 끼니가 있으니
자꾸 미뤄보자
반절만 먹어보자
반절에 반절만 먹어보자
과일은 세 조각에
세 알에
커피는 한 잔에,술도 한 잔에 만족하자
촌놈 태생은 먹는 일이
마치 의식이라도 되는 듯
제 배만 채우니
그것이 바보란다
먹는 일 자랑도 바보란다
훗날의 탈도 모르고 먹어 대니
어느 새 쌓인 노폐물은
바보들의 행진이라 노여워 했단다.
2014/08/13
20.땡볕
바람이 없다
땡볕에
바람은 오갈길을 잃었다
지도상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존재감도 차질을 빚는다
서울 광화문 네거리도 땡볕
어머니 계신 남원에도 땡볕
내가 사는 수원에도 땡볕
내가 수원에 성자(聖者)가 된다면
바람 한 번,시원히 쏘겠다
받는 만큼 주는 행위가
엔조이인걸
바람은 없었다
넓은 하늘 넓은 땅
어느 마을에서 일렁이나
바람,부르지 말자
몇 날을 더 견뎌보자.
2014/07/22
21.신뢰에 대해 횡설수설
부부는 신뢰하며 살아야 한다
자식하고도 신뢰하며 살아야 한다
형제자매하고도 신뢰하며 살아야 한다
밖으로 나와서는
동료와 신뢰하며 살아야 한다
친구와도 신뢰하며 살아야 한다
이웃과도 슈퍼 사장과도 신뢰하며 살아야 한다
위정자들도
이해관계는 있을지언정
신뢰하며 살아야 한다
편을 가르지 말고
제발 이대로만 실천한다면
살맛 나는 세상이지만
진짜 신뢰가 없다고 판단이 서면
빨리 되도록 빨리
그들과 헤어져야만 한다
다만,다시 한 번만 생각해 봐서
상대를 측은지심을 갖고서
용서라는 낙인을 찍어줌으로써
신뢰가 쌓이도록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저러나
무엇보다 우선인 것은
내 마음과 내 행동의 일치가
신뢰의 첫발이니 우두머리이니
잘 새겨야 할 일이다.
2014/06/23
22.읽을 수 있는 것들
깨어나면 읽을 수 있는 것들
벽에 걸린 시계 시간을
심야에 도착 된 문자메시지들
아침 신문과
싸게싸게 판다는
추석 명절 전단 광고지들
점심 밥 먹고 오침도 즐기는 일인데
쌓인 월간지는 읽고 싶은 대목만을
후배 신작(新作) 시집을
가을호 계간지를
훑어 읽기만해도
대단한 체력이 필요하더군요
보고서도 몇 번 읽고 수정도 해야 하고
자주가는 카페 글도 읽어줘야 하고
양념이 된 애정소설도 읽어야 하고
퇴근이면 프로야구도 봐야 하고
술도 마시는 일이 생기는데
만남의 거리에 간판은 왜 그리 많은가
읽을거리가 쌓이면 먼지도 쌓이는데
대단한 체력이 필요한 이 가을에
하늘만 높아가더군요.
2006/10/20
23.궁하면 통하더라
때론,앞으로 밀고 가야 하나
뒤로 다시 돌아서야 하나
그냥 멈추어 서냐를 놓고서
궁시렁궁시렁 망설일 때가 있다
아직은 잘못 되리란 일이 아닌데
아직은 잘 되리란 결론도 없는데
웬지 어정쩡한 일이니
미로를 찾아 갈팡질팡이며
집념은 더 채우려 하고
물꼬를 터 줄 이 없으니
울컥하려 하고
둥둥 떠설랑 상상이나 하려하니
결론은 결정이 늦어질 때
3초만 더 생각하든지
맨 먼저 떠오른 친구를 찾아 가든지
동인들 카페를 열어 보든지
그러면 백발백중 실마리를 찾아내지
은인이 지켜보고 있어
이래서 궁하면 통하더란 말이지.
2014/09/01
24.남원 광한루 정경을 그리다
1.
누구 누구인들 퇴색할 일이 없이
마음 속에 기억들 많은 줄 아오만
좀 더 구체적인
선한 기억마저도 악한 기억마저도
호강스럽지 못한 옛 살림 탓에
흔한 잡기장에 미쳐 써 놓지도 못했던지
이제 와서
오직 기억에만 의존이 되며
기억을 빌려올 수 있다는
소사(小事)로 잠재되어 있으니
하찮은 범부(凡夫)의 말로
들릴지라도 돌변할지라도
소설이 동화같은 해학스런 이야기로
회귀할지라도
빛나는 훈장 정도로 기억했음을 인정해야겠지
2.
별처럼 총총히 박힌
어떤 기억의 자리 모두 다가
지워지지 않아 덤으로 살아 꿈틀대는 것들
남원 고을에 광한루 경내가 새삼스럽기는
오작교가 있어 잉어떼는 45년 전에도 보았고
수중(水中) 무대가 있어
음력 사월 초파일에
진선미 춘향이를 뽑았던 기억이고
훗날에 전국노래자랑을 하던 무대였었지
월매집에 사립 울타리는
모이를 쫒는 닭들의 경연장이 벌어졌었고
성춘향이가 애장품인 그네에 올라 시승을 하는 밤
이몽룡이는 신사도(神士道) 발휘로
멋 있는 프러포즈하는 무드상황에
고을 변사또는 담 아래 대숲에 숨어
마른 침만 꼴깍꼴깍 삼키고 있었다는 것이지.
2012/09/25
25.석양(夕陽)
먼동이 트여서
시간을 주어서
그 시간에 일을 주어서
그 일로 하여 열정을 쏟아 부어
월급 받게 해 주어서
난,늘 너를 좋아한다
죽도록 좋아한다
볼모로 잡혀
머슴살이 했던 세월이었음에
늘 너를 만나야 할 시간 쯤은
이유 없는 기다림이지
석양!
너는 일광(日光)과 월광(月光) 사이
또 하나의 빛
보너스 같은 황홀한 존재이기에.
2011/08/29
26.깎고,깎고 연필로 글을 써본다
지인으로 부터 오래 전에 받아 둔
외산(外産) 연필을 집 안에서 발견되었다
연필 쓸 일이 없었고
고급 연필이라고 했고
뼈대가 단단한 연필이라고 했기에
아예 아껴뒀는지도 모를 일이다
흑심(黑心)을 품고 있는 연필을
초등시절 깎던 솜씨 발휘해서
살살 깎아주었다
일순간 기분 좋은 향내가 풍겨온다
아,정말로 좋고 좋은 연필인갑다
긴 글을 써 보는데
한 번도 부러지질 않았다
가난시절엔 흑심이 톡톡톡 부러지며
목질(木質)이 쪼개지는 연필만 만났었다
얄미운 시절,
지금은 웃음이 튀어 나온다.
2014/08/31
27.무밭
무씨를 뿌린 지 사흘만에
무수한 흙 알갱이 떠밀며
일개 분대장도 없이 일렬 횡대 지어
아주 흡족하게 발아가 되었다
맨 먼저 목격자는
점 찍어 놓은
푸른 생명과 흙 알갱이와
사람을 순간 접촉 번갈아 보며
자연은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있을 때
존엄의 가치를 줄거라 믿게 되었다
만약에 무씨 저것들이
흙 알갱이와 어둠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 나왔다면
우리 사람들이 먹어 주기가
아주 곤란하지 않았을까를 생각 중이다.
2014.9.28
28.파리와 파리채와 나
빵부스러기 옆에 자유를 찾아 온
파리떼를 파리채로 쫓아 보았네
소일거리도 안돼
장난을 쳐 본 것이네
파리채로 발바닥을
때려 보다가 긁어 주다가
등때기도 긁어 주다가
눈을 돌리면 다시 득달같이
달려드는 가벼운 생명을
값도 없는 속물들을 때려잡기로 했네
뒷조사를 해 보았더니
대략 0.2그램도 안된 가벼운 무게와
엎드려서 살살 기어 다니다가
기다가 살살 달콤한 커피잔만
핥아먹다가 날뛰는
날파리임을 알았다네
파리와 파리채가
앙숙이도록
나는 3자 역할을 하는 중이네
빵부스러기나 줘보며
커피향내나 풍겨보며
때론,때리지 않고 자유도 살살 줘보겠네.
2012/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