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7시, 일찍 나서기도 했지만 지나다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그래서 이 길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지도 몰라요.
천천히, 이쪽 저쪽을 바라보며 걷는 길....
도시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요.
머리가 허연 남자분이 30여 분동안 이곳에서 카메라를 설치하고 끙끙대고 계시더니
'저기 보이는 문이 너무 아름답다'며 모델이 되어달라고 하시네요.
우리는 흔쾌히 모델이 되어 드리고, 그 김에 우리 카메라도 내밀며 찍어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어디 여기만 아름답겠습니까?
잠깐 앉아 사진을 찍으며 수많은 생각을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할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를 낮추라는 겁니다.
자연 속에 오면, 나라는 존재가 너무나 작게 느껴지지요.
그걸 깨달았음에도, 도시로 가면 문득 다 잊어버리고는
복닥복닥 싸우며, 인상쓰고 화 내며, 조급해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느 곳을 가나, 다 예술입니다.
선운사는 대웅전을 비롯한 수십 점의 문화재가 있어요.
아늑하고 단아한 주변 풍광과 어우러져 더욱 빛을 발하고 있는 선운사.
절 바로 뒤쪽에는 수령 500년 이상의 동백나무 3000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요.
지금은 꽃이 졌지만, 어느 날 온 몸에 빨간 등을 드리우고 사람들을 맞았을 동백나무를 생각하니
온 몸에 전율이 입니다.
동백꽃도 못 보고, 꽃무릇(상사화)도 보지 못했지만....
그냥 이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상사화는 봄에 잎이 나고, 여름에는 그 잎이 다 져 버리면
가을에서야 비로소 꽃이 올라온답니다.
잎과 꽃이 영원히 만나지 못한다하여 상사화라고 이름을 붙였다는군요.
수백 년 나이를 자랑하는 목백일홍 나무...
이곳에 있는 나무들이 잘 보존되어 먼 훗날 우리 자손들이 계속 보았음 좋겠어요.
선운사 경내에 있는 차 마시는 곳이에요.
자리에 앉으니 몸도 마음도 시원해지네요.
차를 마시며 마음을 다스렸습니다.
이제 이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내 주위 사람들에게 더 잘 해주고, 내 일에 더 충실해야지.
욕심 부리지 말고, 화 내지 말고, 남에게 피해 입히지 말고 등등....
이곳 선운사에서는 다도에 대해서 가르쳐 주기도 하고
템플스테이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었어요.
언젠가 꼭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불교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선운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대웅전이에요.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 아름다운 곳....
선운사의 뒷모습까지도 가슴 속에 새겨놓고, 우리는 아침을 먹기 위해 길을 떠났습니다.
고창의 유명한 음식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그건 바로 풍천장어...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이어서 장어가 많이 잡힌다네요.
장어는 다음에 먹기로 하고, 맛있는 한식집을 찾아 나서기로 했지요.
선운사에는 생태공원도 있어요.
지금 한창 조성을 하고 있는데 거의 90% 완성된 것 같았어요.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작은 의자에도 앉아 보고.
연못도 구경하고, 배에서는 연신 꼬르륵 소리가 났지만 구경거리가 너무 많아서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어요.
뜨거운 햇빛 아래 복분자를 따시는 아주머니들....
까맣게 익은 것을 따야 합니다.
아침을 먹으려고 길을 가는데, '인촌 김성수 생가'라는 팻말이 보였어요.
밥이 문제가 아냐, 저기를 봐야지...
다시 인촌 생가를 향해 출발~
고창 복분자를 넣어 만든 과자를 먹으며 주린 배를 달랬어요.
길가에 핀 이름모를 꽃에게도 눈을 맞추고....
너무 이뻐서 씨를 받아오고 싶었지만, 아직 씨를 맺을 때가 아니네요.
인촌 김성수 하면 '고려대학교'를 떠올리게 되요.
그런데 우리 나라 부통령 자리에도 있었다네요.
집안을 밝혔을 낡은 등...
어둠을 이겨내라고 제 몸을 불살라 빛을 던져주는 것들에 대해
경의를 표합니다.
인촌 김성수 생가 부엌에 있는 등....
굴뚝도 재밌어요.
귀엽기도 하구요.
그저 밋밋했을 굴뚝에 저렇게 표정을 넣어준 분은 과연 누구일까요?
그렇게 구경을 하고 있는데 한 무리의 관광객이 두 대의 버스를 몰고 나타났습니다.
고려대 동문 모임이었어요.
산지기는 고대 71학번....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대학시절의 추억이 생각나는 듯....
얼굴에 미소가 어립니다.
뜻하지 않게 인촌 김성수 생가를 구경하고, 늦은 아침을 먹었습니다.
물론 고창을 샅샅이 다 보지는 못했어요.
무장읍성과 보리밭, 판소리박물관, 김소희 생가 등 빠진 곳이 많았지요.
하지만, 그냥 지나치기로 했습니다.
그래야, 어느 날 문득 또 길을 떠날 것 같습니다.
이곳 풍요로운 고장 고창을 향하여....
맛과 멋과 역사와 문화가 골고루 어우러져 있는 고창...
고창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끝)
첫댓글 문학기행 고창편, 쓰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을지 생각하며 두루두루 함께 걸어나온 듯해요. 이제 보니 선생님의 셔츠에 적힌 문구 I LOVE SUMMER도 아주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자세히도 보셨네요. 역시 범상치 않는 눈을 가지셨어요. 우리들, 문학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깊이, 더 많이 보아야겠지요? 하늬바람님도 아자아자~ 우리 열심히 써요...
구경 잘 했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꼭 고창 선운사에 가보렵니다.
가을에 갔는데 선운사 들어가는 입구의 단풍이 정말 멋졌어요...송창식의 노래가 생각나네요.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참 좋은 곳에 다녀오셨네요. 선운사는 생각할 것이 많은 것 같아요. 함께 다니시는 두 분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최샘과 부피에님도 그렇게 다니시잖아요. 우리 언제 뭉치면 어떨까요? 왠지 부피에님과 산지기님이 많이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저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저도 두 분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은 바쁘니 가을쯤 도보여행 함께 가는 것은 어떨까요?
예, 좋습니다...도보여행은 한 번도 간 적이 없지만, 늘 꿈꿔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