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저는 6파 박상균이라고 합니다..
세는 잘 모르겠고 가운데에 "재"자 돌림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올리신 분을 보면 제가 29세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방림리 소개에 대한 글을 읽고 너무나 기뻤습니다.. 아버지 고향이기도 하지만
저도 학창시절 방학때 시골에서의 좋은 추억들이 너무나 많았던 곳이기에 너무나 반갑고도
또한 뱅골이 그런 뿌리가 있었는지도 나름 처음 알게되면서 자랑스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글을 올려주신 종친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몇가지 약간 사실과 다른 부분들이 있어서 말씀을 드리고자 글을 올렸습니다..
"해방 전 후 방림리의 교육" 단락에서 보면 "중학교는 평택중학교가 유일하였고 마을 사람들 중에
중학교 졸업자는 박원환씨가 유일하였다" 라고 쓰여있습니다...
다른 문맥적인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나 얼핏 읽다보면 그 당시 마을에 중학교 졸업자가 한 명 뿐이라는
오해를 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그 당시에는 지금의 평택시보다 조금 더 가까운 안중에 중학교가 있었습니다.. 1953년에 개교한
안중중학교는 당시 포승면, 현덕면, 오성면, 청북면 등 4개면의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였습니다...
당시에는 사실 집안에 형제들이 많았기때문에 경제적인 문제를 고려하여 바로바로 상급학교로 진학하지
못하였기에 박원환 당숙(저희 아버지와 8촌관계) 나이를 고려해도 53년에 개교한 이 학교에 다니실 수 있는
나이였습니다..
둘째 박원환 당숙보다도 연배가 높으신 저희 백부께서는 서울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셨고
박원환 당숙보다 1세 어리신 저희 아버지는 위에 말씀드린 안중중학교를 졸업하셨습니다. 또한
저의 아버지 6촌동생이자 친구이신 박병헌이란 분도 평택중학교를 졸업하시고 마을에서 이장등의 활동들을
하셨습니다.. 물론 지병으로 일찍 돌아가셨긴 했지만..
저희 집안만 보아도 그 연배에 계셨던 분들이 학업에 정진하셨으며 저희 아버지의 기억으로도 적지 않은
다른 분들이 안중중학교/평택중학교 그리고 수원이나 서울등으로 일찍이 유학을 가셨던 분들도 상당하시다고
하십니다..
물론 서두에 말씀드렸다시피 너무 감사드리는 마음이 더욱 크오나 뱅골 마을에 당시 연배에 계신분들중
중학교 졸업자가 유일하셨다는 문구가 자칫 다른 종친들께 오해를 살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이렇게 짤막한
글을 올립니다...
혹시 제가 드리는 말씀에 다른 오해가 없으시길 바라며 한 번 더 머리숙여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안녕히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