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전설 8회

홋카이도에 이는 바람         - 봉대 이야기 2     배움의 길로   홋카이도 아바시리(網走)의 한 허름한 여관 객실. 20대 후반의 젊은이가 무릎을 꿇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다케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었다. 봉대와 다케다가 이곳에 도착한 것은 오쓰를 출발한 지 일주일 만이었다. “이름이 뭔고?” “다케다 무네기요(武田宗淸)입니다.” “누굴 찾고 있다고 했느냐?” “제 부친입니다.” “부친 함자가 어찌되느냐?” “다케다 소카쿠입니다.” 봉대는 젊은이가 말하는 다케다 소카쿠가 스승을 지칭하는 듯싶어 귀를 쫑긋 세웠다. “그래, 무슨 일로 부친을 찾아다니는고?” 다케다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지금 모친이 위독합니다. 부친께서 가끔 이곳에 들른다는 소문을 듣고 혹시라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찾아왔습니다.” “음─.” 다케다는 눈을 잠시 감고 나직한 신음을 흘렸다. “나를 찾아온 이유가 무엔가?” “한 달 전부터 여관 주인에게 부친을 보거나 부친을 아는 사람이 나타나면 알려달라고 부탁해두었습니다.” “주인이 무어라 하던가?” 다케다가 대답을 종용했다. “다케다 선생을 잘 아는 사람이 왔으니 만나 보라 했습니다. 혹시라도 부친이 계신 곳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부친께 할 말이라도 있는 게냐?” 다케다가 젊은이의 말을 가로챘다. “부친은 제가 여덟 살 때 집을 나간 뒤 지금까지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동생과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농사를 짓고 살았습니다. 어린 시절 제게 있어 아버지는 그리움, 그 자체였습니다. 다른 집 아이들이 아버지와 농사를 지으면서 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아버지 없는 제 처지를 비관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한없이 그립던 아버지는 나이가 들면서 점차 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집에 돌아오지 않은 것인가, 아버지는 처자에게 관심조차 없는 것인가. 그리움은 서서히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다짐했습니다. 언젠가는 내 손으로 아버지를 죽이고야 말겠다고, 어머니를 버리고 떠난 아버지에게 복수해야겠다고 말입니다.” 젊은이는 죽음을 각오하고 전장에 나가는 병사처럼 비장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을 섬뜩하게 만들었다. 뒤편에 앉아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봉대는 죽이고야 말겠다는 젊은이의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등줄기에 소름이 오싹 돋았다. 봉대의 시선은 자신도 모르게 다케다의 얼굴에 고정됐다. “그랬구먼.” 다케다는 짐짓 헛기침을 하며 가부좌한 다리를 고쳐 앉고는 태연하게 젊은이를 응시했다. “어머님은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보았으면 여한이 없다 하셨습니다. 저는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를 만나서 무엇을 하겠느냐며 어머니께 항의했습니다. 찾지도 말고 만나지도 말라고 만류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어머니는 한 번도 아버지에 관한 말씀을 하지 않았습니다. ‘전국을 떠도는 일본 최고의 고수’라며 늘어놓던, 입바른 칭찬도 사라졌습니다.” “음—.” 다케다의 입에서 또 한 번 나지막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모두 잊기로 했습니다. 어머니의 눈가에 어린 수심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이 돌이킬 수 없는 과거사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와서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한들 달라질 게 뭐 있겠습니까. 아버지도 이제 예순이 다 됐을 것이고, 제겐 필요 없는 아버지일지라도 어머니에게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쏟아지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눈을 감지 않은 채 허공을 응시하던 젊은이는 마침내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고야 말았다. 다케다는 짐짓 고개를 돌려 외면하면서 담배를 집어 들었다. “후—.” 깊이 한 모금 빨아들인 다케다는 이어 짙은 연기를 내뿜으며 한숨인지 탄식인지 분간되지 않는 소리를 냈다. “최근 어머님의 몸은 극도로 쇠약해졌습니다. 외출도 못하시고 마냥 누워 계십니다. 저는 그것이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깊은 사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제게 말씀은 하지 않으셔도 어머니의 눈에서 아버지를 애타게 그리고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고개 숙인 젊은이의 눈에서 떨어진 눈물이 다다미 바닥을 눅눅하게 적셨다. 하지만 더 이상 젊은이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눈물을 닦지도 않았다. 깊은 숨과 함께 몇 번인가 울먹이며 콧물만 삼켰다. 숙인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음이 봉대의 눈에 들어왔다. 한 동안 눈물을 떨어뜨리고 나서야 젊은이는 말을 계속했다. 물론 다케다는 눈을 감은 채 객쩍게 담배만 빨았다. “어머니는 앞으로 사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넘어갈 듯 합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내색하지 않던 어머니는 종종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가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소원을 이뤄 드리기 위해 나섰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찾아 얼굴이라도 뵙도록 하자고 생각한 겁니다.” 젊은이의 모습을 무표정한 눈길로 응시하던 다케다가 타일렀다.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네 아버지와 나는 오랜 친구다. 얼마 전 규슈(九洲)지방으로 내려간다는 얘기를 들었다. 돌아오면 네 뜻을 전해 주마. 워낙 떠돌이라서 만날 수 있을는지 장담할 순 없다만…….” “제 부친을 만나면 어머니와 아들이 찾는다고 꼭 전해 주십시오.” 젊은이는 몇 번이고 다짐받듯 부탁한 뒤 방을 나갔다. 납득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젊은이가 자신의 부친 이름이 다케다 소카쿠라고 말하는 것을 보아 둘은 분명히 부자지간일 것인데 다케다가 짐짓 모른 척하는 것이다. 찾아온 아들을 모른 척 대하다니, 봉대로서는 어찌된 영문인지 얼른 이해할 수 없었다. 젊은이가 다녀간 그날 밤 봉대는 오랜만에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버지 생각에 흠뻑 젖어들었다. * 아버지와 형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봉대가 열한 살 때였다. 그날 아침 아버지는 소달구지에 장작을 가득 싣고 형과 함께 집을 나섰다. 장작을 팔아 쌀을 사러 장에 가는 중이었다. 그렇게 떠나보낸 게 아버지와 형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닷새에 한 번씩 열리는 김천장에는 봉대도 몇 차례 따라나선 적이 있었다. 장 한쪽에서 싣고 간 장작을 죄다 팔고 나면 아버지는 아들을 장터의 먹자거리 골목으로 데려갔다. 아버지가 안주도 없는 막걸리를 서너 잔 들이키는 동안 봉대는 장터국수를 먹었다. 가끔씩 먹는 장터국수는 봉대가 먹어본 음식 중 가장 맛있었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한 그릇을 비우고 나서 더 먹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아버지의 눈치를 살폈다. 해마다 보릿고개를 넘은 탓에 봉대는 먹는 문제에 관한 눈치만큼은 관록이 묻어 있었다. 그래서 비싼 장터국수를 더 이상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장터국수 한 그릇 값이면 가족이 하루 먹을 보리쌀을 사고도 남았으니까. 기대해 봐야 소용없음을 잘 알면서도 늘 ‘혹시나’하는 심정으로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다. 야속하게도 아버지는 한 그릇 이상 더 사주지 않았다. “한 그릇 더 무글 끼고?” 이런 질문을 받고 한 그릇 더 얻어먹는 경우는 기껏해야 1년에 서너 차례에 불과했다. 그 서너 번의 기회가 있기에 매번 눈치를 살피고 기대해 보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갈 때 떡 골목에 들러 시루떡을 조금 사 먹는 것은 장터국수만큼이나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떡 골목에 들어서면 떡집마다 가득 쌓인 개피떡이며 송편, 시루떡, 절편, 쑥떡, 인절미가 눈을 사로잡았다. 실컷 한번 먹어 보고 죽는 게 꿈이었다. 떡 골목에서 사주는 시루떡은, 그러나 혼자 먹기에도 충분치 못했다. “엉아랑 같이 묵으야 한데이.” 언제나 하는 야속한 말씀이었다. 봉대는 집으로 가는 동안 몇 번이고 시루떡을 꺼내 보았다. 한 번 꺼내 볼 때마다 봉대는 시루떡에 붙어 있는 팥고물을 표시가 나지 않을 만큼 조금씩 뜯어 먹었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 달구지를 타고 집에 들어설 무렵이면 시루떡은 어느새 하얀 속살을 드러낸 채 계면쩍게 웃고 있었다. 아버지와 형이 소달구지를 타고 장에 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날. 봉대는 아버지가 사다 줄 시루떡을 생각하며 밤늦도록 기다렸다. 형은 봉대와는 달리 아버지가 사 준 시루떡을 늘 고스란히 남겨왔다. 형이 갖고 올 팥고물 듬뿍한 시루떡은 상상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그러나 그날 밤 아버지와 형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움은 점점 불안과 초조로 바뀌었다. 시루떡을 사 오지 않아도 좋으니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와 형이 나를 두고 어디론가 달아난 것일까. 나를 다리 아래서 주워 왔다고 하더니 정말인가. 이런저런 상념에 사로잡혀 방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잠이 들었다. 찢어진 문 틈새로 아침 햇살이 빨려 들어올 때까지도 아버지와 형은 돌아오지 않았다.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평소처럼 아버지와 형이 삐걱거리는 소달구지를 타고 돌아오는 동구 밖까지 나가 기다렸다. 해가 중천에 떴어도 아버지와 형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이윽고 오후 늦은 시각 저잣거리에 갔던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중 나이 지긋한 아저씨 한 명이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있는 봉대를 발견하더니 덥석 안아 봉대의 집으로 데려갔다. 이어 집에는 마을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이웃집 털보아저씨가 소달구지를 끌고 마당으로 들어왔다. 소달구지에는 뭔가 실려 있었다. 추석이나 제사가 아니면 이렇게 마을 사람이 모이는 날은 없었다. 봉대는 잔뜩 숨을 죽이고 마당 한쪽에 쪼그리고 있었다. 하루 종일 굶었건만 배도 고프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소달구지에서 길고 두툼한 두 개의 물건을 내렸다. “아이고, 아이고…….” 뻐끔한 눈으로 이 광경을 목격하공 있던 봉대를 옆집 아주머니가 보듬더니 느닷없이 곡(哭)을 해 댔다. 봉대는 따라 울었다. 이런 곡소리가 들리는 집에서는 으레 보이던 사람이 어디론가 사라졌던 기억이 어린 봉대를 자극했던 것이다. 봉대는 아주머니 품에서 한없이 울었다. 아주머니는 봉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불쌍한 새끼, 불쌍한 새끼’하고 엉얼거렸다. 그날 밤 동네 어른들은 봉대의 집에서 밤새도록 수군댔다. 봉대는 소달구지에서 내린 물건이 틀림없이 아버지와 형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밤새도록 모여 앉아 곡을 하던 마을 사람들은 이른 아침, 아마도 틀림없는 아버지와 형을 가마니에 둘둘 말아 지게에 짊어지고는 집을 나섰다. 뒤따르는 사람들의 손에는 삽이 한 자루씩 쥐여져 있었다. ‘봉대야, 니 죽는 게 뭔 줄 아노? 죽으마 차가븐 땅 속에 묻어뿌는 기라. 다시는 엉아도 아부지도 몬 보는 기라’ 봉대가 형에게 몇 번인가 들어서 알고 있는 죽음에 관한 이해의 전부였다. 형의 말처럼 아버지와 형은 죽은 것이었다. 차가운 땅 속에 묻힌 것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봉대는 사흘 뒤 삼우제 때 이웃 어른들을 따라 아버지와 형의 산소에 다녀왔다. 잔디도 심어 놓지 않은 산소는 황량한 봉대의 마음 그대로였다. 산소에 다녀오던 중 봉대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울던 이웃 아주머니에게서 아버지와 형이 열차에 치여 유명을 달리했다는 사실을 들었다. 달구지를 타고 귀가하던 중이었는데 철길을 건너다 그만 철마에 받쳐 소까지 죽은 것이었다. 봉대는 이후 아주머니의 집에서 살다가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가출했다. 아주머니 남편의 주벽 때문이었다. 가끔씩 술을 마시고 들어오면 지게 작대기로 봉대를 마구 후려팼다. 머리며 어깨, 등짝을 가리지 않았다. 자신의 외아들과 싸움을 벌인다는 이유였다. 봉대의 작은 몸이 아저씨가 휘두르는 작대기 아래서 노리개로 전락할 때마다 봉대는 아버지 생각을 했다. 읍내로 나가면 맛있는 장터국수를 말아 주시던 아버지. 시끌시끌한 선술집에 들러 농주를 한 잔 들이키고는 무동 태워 주시던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봉대는 마침내 집을 나섰다. 매를 피해 집을 나온 것이었는데 돌아가면 더 맞을 게 두려워 아예 들어가지 않았다. 봉대는 아버지와 함께 걷던 철로를 걸어 황간으로 향했다. 삼촌에게로 간다면 자신을 돌봐 줄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다. 이렇게 집을 떠나 배회하던 봉대를 아버지는 언제나 보이지 않은 곳에서 지켜 주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위로를 주고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대구에서 거지꼴을 하고 떠돌 때도 일본 거리를 배회할 때도 아버지는 봉대에게 있어 위로자요 수호신이었다. * 다케다는 젊은이가 다녀가고 며칠 동안 줄곧 여관에 머물렀다. 화장실 가는 경우를 제외하곤 외출도 하지 않았다. 방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애먼 담배만 피워 댔다. 사흘 정도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다케다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요시다, 가자.” 다케다는 봉대를 앞장세우고 걸었다. 다케다 일행이 30여 분을 걸어 도착한 곳은 시내 변두리의 목장이었다. 한눈에 들어올 만큼 작은 목장에는 20여 마리의 말이 사육되고 있었다. 나무를 잘라 대충 만들어 놓은 사립문을 열고 들어서자 요란한 무늬의 하오리를 입은 작달막한 60대 노인이 뛰어 나왔다. 노인은 가운데 머리털이 숭숭 빠져 있었다. “잘 지냈는가, 신노스케(眞之介).” “잘 지내구맙쇼. 어서 오십쇼, 어르신.” 신노스케는 땅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굽실 큰절을 올렸다. 웃어른을 모시는 게 몸에 밴 듯 연신 고개를 숙였다. “말을 두 필만 내주게나.” “아무렴입쇼. 그렇지 않아도 오실 때가 됐다고 생각했습죠.” 신노스케는 익숙한 몸놀림으로 마구간으로 뛰어 들어가더니 백마(白馬)와 흑마(黑馬)를 한 필씩 끌고 나왔다. 백마의 털은 눈이 시리도록 고왔다. 신노스케가 백마의 고삐를 건네자 다케다는 손바닥으로 갈기를 쓰다듬었다. 말은 오랜만에 만난 다케다를 반기기라도 하듯 힝힝거리며 도리질쳤다. “신노스케, 내 잠깐 다녀올 곳이 있으니 그동안 요시다에게 말 타는 법을 좀 가르쳐 주게나.” “잘 알겠습니다.” 다케다는 날렵한 몸동작으로 말에 튀어 오르더니 순식간에 울타리를 뛰어넘어 까마득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