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산업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하는 보루다. 그러려면 일정 규모 이상의 재배면적과 생산량 유지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급격히 줄어드는 1인당 쌀 소비량 탓에 엄청난 재고 부담이 남는다. 돌파구는 쌀 가공식품으로 새로운 수요를 만드는 것이다. 해마다 30만~40만t씩 들여와야 하는 의무수입쌀 역시 가공산업이 소화해야 한다. 근본적인 걸림돌은 우리쌀은 물론이고 최소시장접근(MMA)으로 들어온 쌀도 국제쌀값 또는 밀가루값보다 비싸 차별화 없이는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는 점이다.
◆밀가루값에 수입쌀 공매=국제곡물값이 크게 오르자 정부는 올해 쌀면류 수입쌀 할인공급 시범사업을 펼쳤다. 쌀 함량이 15% 이상인 쌀면류를 생산하고, 월간 쌀 소비능력이 10t 이상 되는 가공업체에 대해 밀가루와 경쟁이 가능하도록 1㎏당 355원의 싼값에 수입쌀을 공급한 것이다. 이는 정상적인 공급값 655원의 절반 수준이다. 이달 초에는 ‘2008 우수 쌀 가공제품 탑10’을 선정, 코리아 푸드 엑스포 기간에 이를 전시했다. 쌀 가공식품산업 활성화 방안에 대해 심포지엄과 토론회를 연이어 개최했으며, 연리 3%의 쌀가공산업육성지원자금도 지원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에도 쌀 가공식품산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가공식품으로 이용되고 있는 쌀의 양은 해마다 25만~35만t으로, 전체 공급량의 5% 남짓하다. 그나마 절반 이상은 쌀의 원료 특성이 사라지는 주정용으로 쌀 가공산업에 포함하기도 어렵다.
◆500여업체 MMA쌀 공매 받아 떡·면류 등 가공 =순수하게 가공용으로 쓰이는 쌀의 양은 10만t 수준으로, 500여개 업체가 MMA쌀을 공매 받아 쓰고 있다. 이 가운데 떡과 면류가 60% 정도를 차지하며 즉석밥과 막걸리·음료·과자 등이 뒤를 잇고 있다. 시장 규모는 3,000억원대로 추정된다.
〈햇반〉으로 대표되는 즉석밥은 유일하게 국산 쌀을 사용하면서도 차별화에 성공, 정부의 시장 개입 없이 경쟁력을 갖춘 분야로 지목된다. 즉석밥 제품은 CJ제일제당과 농심·오뚜기·동원F&B 등 대기업이 1,200억원대의 시장을 나누고 있다. 떡류는 제품 특성으로 인해 재래시장 등을 중심으로 유통되고 있어정확한 통계가 잡히지 않는다. 흰떡과 떡볶이용 가래떡 등이 주력 제품이며, 품질 향상과 저장성 증대가 주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과자류는 농심과 기린이 450억원대의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최근에는 수입 공매쌀값보다도 훨씬 싼값으로 중국에서 완제품을 만들어오는 경우가 크게 늘어나 안전성 등에 문제가 되고 있다. 멜라민 문제도 이 같은 상황에서 빚어진 사태다. 이들 업체들은 쌀을 이용해 빵과 빙과류를 만드는 기술 개발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음료는 한때 〈아침햇살〉이 큰 인기를 끌었지만 시장이 쇠퇴기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신 여러 중소기업들이 식혜음료를 만들어 팔고 있다.
면 제품은 신제품 개발과 출시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봉지면과 컵라면 형태의 제품들로 밀가루보다 쌀이 건강에 좋다는 사실이 소비자들에게 널리 인식되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몇해 전부터 베트남 쌀국수가 크게 인기를 끌며 프랜차이즈 브랜드만도 10여개, 1,000억원대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지만 모두 태국 등에서 완제품을 수입해 사용하고 있다. 우리쌀로 가공제품을 만드는 경우는 매우 드물어 단 12개 전통식품업체만이 한과 등을 만들고 있다.
◆밥쌀 정책의 부속품 취급=문제는 업체들이 싼값에 안정적으로 원료를 공급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쌀 가공에 대한 제대로 된 정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밥을 지어 먹을 쌀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절에는 쌀로 가공식품을 만드는 행위를 일체 금지했다. 1986년 쌀 재고 여유분이 1,000만섬 이상 발생하면서 단계적으로 규제를 풀었으나 이후로도 밥쌀용 양정의 부속품 정도로 취급됐다. 1990년대 후반 쌀 재고가 줄어 식량위기설이 대두되자 또다시 가공용쌀 방출값을 대폭 올려 업체들이 대거 도태되기도 했다. 지금의 정책도 가공용으로 방출된 쌀이 밥쌀용으로 부정 유통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를 위해 중장립종 쌀에 단립종 쌀을 섞은 합성미로 방출하는 바람에 제품 품질 향상에 애먹고 있다는 불평도 나오고 있다.
◆가공업체 대부분 영세=〈통일벼〉 계통 초다수성 벼 개발과 재배단지 조성 등 원료 생산비를 낮추기 위한 노력도 거의 없다시피 했다. 전체 쌀 가공식품업체의 60% 이상이 종업원 10인 이하의 영세사업장인 점도 걸림돌이다. 이들은 경영상태가 매우 취약하며 연구개발 능력이 떨어지고, 시설도 낙후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쌀 가공제품의 짧은 시장수명과 제분 및 가공 기초기술 개발에 거의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금준석 박사(한국식품연구원 전통식품연구단)는 “청소년과 어린이의 기호에 맞는 쌀 가공제품과 간편한 식사 대용 제품, 커피 및 탄산음료와도 어울리는 제품의 개발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윤덕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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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동카사모 원문보기 글쓴이: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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