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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하루
논산에서 익산 방면으로 가다 보면 강경 상강경교가 있다. 다리를 건너기전(뚝방길) 좌회전을 하면 철도길이 보인다. 철도길 밑으로 지나 차로 3분 거리에 미내교가 보인다. 미내교의 주변의 넓은 주차장에서 사진 찍고 간식을 하며 강경천을 바라다 보면 옛철도 기둥이 서너개 보인다. 6.25전쟁때 파괴된 철로의 일부다. 근처 원목교가 20분거리에 있지만 다시 상강경교로 오면 강경수문방조제가 보인다. 교각의6각형이 강물과 조화를 이루어 아름답다. 다리를 건너면 남교리 강경 상업학교가 있다. 정문쪽 왼편에 관사가 옛모습으로 복원이 되어있다. 상업학교 교정을 둘러 보면 언덕의 벤취가 있다. 내려다 보면 강경고(강경여고)가 있고 주변의 오래된 건물의 지붕들도 보인다. 학교를 나와 강경고를 들어가면 스승의 날을 처음으로 시작한 학교다. 학교 뒤편에 스러질 듯 각이진 미루나무들이 줄지어 있는데 새로운 풍경이다. 강경고 마주편에 강경 중앙초 가 있고 빨간 벽도의 강당이 현대식 건물처럼 세련미를 지니고 있다. 강당 안에 들어서면 태극기가 보이는데 건물 나무 바닥 보다 높게 사열대가 흥미로울 것이다. 한일 합방시대에 교사들이 칼을 차고 학생들에게 위압감을 주며 일제 식민지 교육을 했던 무서운 곳을 상상해 보라 . 학교를 사이에 두 길이 있다. 오른쪽 중앙리 길로 가보자 강경의 옛 하시장 주변이라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보인다. 옛 전원 예식장(사진관 )골목길에는 일제 경찰서장 관사가 있던 장소다 계속가면 침례교회가 새롭게 단장한 모습이 보인다. 노인대학 네거리중 오른쪽 길로 200보정도 걸으면 우체국 가는길이 보인다. 호남병원 자리는 중앙젓갈로 변해있지만 건너편 구한일은행 건물이 보인다. 건물안에는 햇살이 창살로 비취면 아득한 분위기가 든다. 중앙리로 가보자 남일 한약방과 김대건신분님 유숙한집이 있다. 예전에는 3대시장의 하시장인 곳으로 북세통이였다 근처 성결교회의 상징석을 보자 신사참배 거부교회라는 글이 보일 것이다. 강인한 강경주민들의 그때의 숨소리를 들어보자 총, 칼을 든 순사와 일제 앞잡이에 몸부림치며 항쟁했던 그때를 ... 강뚝이 있는곳을 보고 가다보면 덕유정이 보인다 전국 국군장중에서도 오래동안 유지할수 있었던 것은 계속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북옥리로 가자 왼쪽길이다. 중화원 중국집이 보인다 어려서 먹던 그시절 짬봉맛이 있는 음식점이다. 주인이 화교로 대대로 음식점을 하고 있다. 북옥리에서 옥녀봉을 오르는길이 여러개 있지만 강경포구길(강길)로 가보자 바랜 사진속에서 보던 옛것과는 사뭇 달라졌지만 시원한 바람이 강바람이다. 동흥리 배수펌프장이 보이며 개구리 엄마 묘처럼 강기슭에 묘석이 보인다 자세히 보기 위해서는 성동교를 넘어가야하지만 멀리서보는 것도 많은 상상을 주는 청개구리 이야기가 생각나지만 이것과는 아무런관련이 없다.
북옥리 창고가 잠겨있지 않으면 들어가 보라 예전에는 쌀이 쌓여있던 곳 이였다. 걷자 그러면 전북쪽 농지에 물을 보내는 시설과 관사가 보이고 수산물을 싣고온 배에 얼음과 소금을 싣던 시설이 보인다. 이길은 강경 소도읍 육성 사업으로 깔린 길이다. 전에는 옥녀봉을 중앙에 놓고 집들이 빼곡이 있었다. 조금만 걷자 백보정도 가면 옥녀봉 계단길이 보인다 그리고 갑문이 보인다. 새로 바뀐 갑문은 넓어지고 높아졌다. 하지만 돌로 쌓아놓은 집터가 보인다. 한일 합방시대 때 갑문 관리자가 살던 곳이다. 계단을 오르면 대가라는 음식점이 있다. 그 터는 일본 큰 상인이 살던 곳이다. 봉화대로 보고 걸으면 지병선씨가 침례교회 처음예배 드렸던 집이 풍파와 세월의 긴 ~장고에 허물어지고 뒤틀어진 모습으로 어렵게 버티고 있다. 서러움을 갖고 새로 놓인 분수대를 돌면 신사관리 했던 집이 보인다. 흙 한번 잡아 보자 그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집안이 가계다. 막걸리 한사발 마시고 흙의 노래를 들어 보면 100세 넘은 옥녀 할머니를 만날수도 있다. 며느리로 와서 세월을 보낸 시간을 들어 볼수 없어도 알 수 있다(그분의 얼굴속에서). 봉화대가 있다. 어설퍼 보인다. 고증을 제데로 해서 세운것인지 의구심마져 든다. 그래도 좋다. 강변으로 보이는 금강의 물결이 있기에 저 강이 변화를 한다. 그때에 한번더 번영이 오기를 바라며 내려가다 보면 옛저택을 볼 수 있다.사방의 길을 뱅그루 돌아 보자 해조문글 바위도 보고 옛절터도 보고 우물도 있다. 어려서 마셨던 향을 느껴보려 해도 어렵다. 정경이 없다. 차라리 팔각정 뒤 샘물이 더 정경이 있다.
중앙감리교회에서 오른쪽으로 가자 이정표 있는 다리에서 한산식당 ,한국타이어 카투맨이 보인다. 식당은 양조장 자리고 카투맨은 해신상회 라는 수산물 .젓갈 원조 가계자리다. 땅속에는 아직도 저장탱크가 있다. 옆집은 이발소, 여관 ,선술집, 떡집 등 상업지역 이였다고 믿기 어렵게 달라져 있다. 노동조합 있던 곳에 가기 전 공원이 있다. 실패 작 이다. 2층을 단층으로 만들어 놓은 기술이 놀랍다. 문화재가 문화재답게 되어야 되지 않을까 눈만 버렸다. 대흥리로 가자 동광상회가 보인다. 하천이 역겹게 더럽다. 오래전 여기도 배가 들어온 곳이다. 그리고 화력발전소가 전기를 만들어 강경을 밝혀주던 곳인데 말이다. 강경역을 찾자 바로 저기 보인다. 그런데 허름한 공포에 영화에 나오는 창고가 보인다.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있다. 황산리로 가자 기운 차리자 아직 가볼 곳이 많다. 충남타운이라는 간판뒤 화교 자리가 옛 모습 되로 있을까 생각 하며 상상하자 역시 아니다 그러나 미끄럼틀 책상을 보면 아직도 과거를 품고 있듯 내게 내품어 준다. 먼지를 피하기 싫다. 그 속에 자신의 기억이 있기때문 일줄 누가 알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돌산이라는 공원 팔괘정을 가자 그쪽에는 임이정도 내려 볼 수 있다. 주차공간도 있고 박범신씨의 글이 분수대 옆에 있다. 한때 그분도 채산리에 살았다. 그러나 출생지는 연무다. 오르는 계단을 오르면 전망대가 있어 오른다 오른 보람이 없다 전망경도 목을 축일 물도 뿌옇게 먼지 창틀만 짜증을 내게 한다.
팔괘정을 본다. 경치가 좋다. 여기서 공부를 하게 된다면 모두가 장원급제 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든다. 사진을 찍어 보자. 기(氣) 받고 임이정. 가자 주변의 집이 눈에 거슬린다. 경주는 문화제 주변이 잘 정리 되어 유네스코에 가입되어 보전이 후세도 이어지는데 여기는 무어라 급조한 뭐 말하지 말고 보자(아시움이 있어도). 죽림서원으로 오르는 대나무는 새로 심어 좋다. 올라서 건너편 팔괘정도 보자 후학을 가르친 기운과 그분들의 나라 사랑을 되세겨 본다. 채산리 산양리도 가고 싶은데 늦어졌으니 찜질방에서 쉬어 볼까 하지만 그전에 벚꽃가루 날리는 야간에 황산대교를 건너보자 다리가 놓이기전 부여와 강경은 배로 왕래를 하였다. 저 건너가 부여군 세도면이다. 토마토로 (부여 브랜드) 과일 무기농 ,유기농 좋다. 시장에 들려 사서 먹자. 맛난다. 딸기도 좋다. (논산 브랜드) 딸기 맛난다. 강경은 숙박시설이 그렇게 많지 않다. 불편해도 잠을 청하자. 미래는 이곳에 금강을 바라다보는 펜션 촌이라도 있으면 관광 자원으로 좋겠다 .
저녁에 한적한 벤취에 앉아 연인과 가족과 마주앉아 석양을 즐길 수 있게 말이다.
텐트를 옥녀봉 중턱에 쳐보자 근처 화장실이 있어 편하다. 저녁에 보는 봉화대의 불빛이 낮보다 운치가 있다. 새벽에 뜨는 해를 보자 사방에 아침이 오는 강경읍 시각이 고즉한 전형적인 시골의 정취를 내품는다. 간혹 커다란 간판의 젓갈 상호는 어지럽게 놓고간 아이들의 장남감의 뒤쳐리처럼 꼴사납다. 그러나 이것도 이들의 삶의 일부다. 산양리로 길을 재촉한다. 경찰서 앞 로타리 비석은 치열한 6.25의 시간을 짧게 정리 되어있다. 철길 고가를 지나면 태창이라는 글이 낡은 공장건물에 써있다. 한때 강경의 인구가 3만명이 넘을때가 있었다. 공장, 상가, 주택단지, 학교, 관공서 ,인력이 아침에 이렇게 시작 했을 것이다. 폴리텍을 가기전 채산리 로 방향을 틀어 채운산을 오르자 가파른 시골길 띄엄, 띄엄 폐가가 보인다. 노인정을 지나 오르니 용암사가 보인다. 아침의 기온 탓인지 춥다. 요사이 계속 쌀쌀하다.
기념탑에 오르기전 예비군 훈련하던 방공호도 보인다. 반공, 반공하던 때도 생각이 난다. 청솔모가 두리번 거리며 나무와 나무사이로 뛰어 다닌다. 가볍게 눈인사를 던지고 정상에 오르니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다. 발밑에 전 식수 공급하던 시설이 잠금장치에 잠겨 철조망 새로 보이는 것 말고는 그저 동산에 불과 하게 보인다. 하지만 여기도 숨은 옛이야기가 많다. 동학군이 황화산성 전투지에 가기 전에 잠시 그들의 휴식을 취하기도 했었으며, 인근 학교학생들의 소풍장소였으며 , 겨울철 땔감을 얻게 했던 ,각자의 추억이 녹아 있다.
대나무를 헤치고 마을로 내려 가보자 흙벽돌집이 휑하니 튀어 나오는 듯 인기척 없는 집들이 여기 저기 보인다. 오래전에 이사간 듯 마당은 온통 풀이 자란다. 조금 내려가니 커다란 기와집이 당시의 지주였음을 알리는 듯 꼿꼿하게 서있다. 하지만 안에 들어갈수 없게 멀찍감치 철조망 답이 잠겨 있다. 주변에는 고목이 된 감나무들이 장승같이 있다. 전북 망성면 쪽과 만나는 채산리 길을 걷는다. 멍멍이가 지키는 기와집 앞에 담장이 돌로 같으려니 있다. 폴짝 뛰어 마당을 보니 전형적인 기와집이다. 정원의 나무도 운치있다. 조금더 걸어보니 양조장 집이 커다란 창고와 건물이 그래도 잘 유지 하고 있다. 황산대교(황산리)쪽 복집을 들렸다. 이곳 식당은 복을 요리를 잘한다. 우어회를 먹는 것 보다 보양식을 먹으니 기운이 더 생긴다.
첫댓글 아하 그렇군요
복 요리가 먹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