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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 자전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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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 자전거길의 화두가 된 P목사
금과면(전북순창)에서 금성면(전남담양)으로 넘어오는 과정,즉 섬진강에서 영산강으로
U턴하는 길의 해프닝은 이영삼이라는 신실한 젊은이를 만나게 하려 함이었던가.
자연이 아무리 좋기로니 사람만 하는가.
윤 고산(孤山尹善道/1587~1671)의 오우가(五友歌)를 나는 가까이 하지 않는다.
독일민요 전나무(O tannenbaum)도, 홀브룩(Florence Holbrook/1897~1932/미국)의
상록수(evergreen trees)도 마찬가지다.
그것들과 친근하고 예찬하는 심정과 정서는 이해하지만 내게는 사람이 우선이다.
우리나라 제일의 대나무고장 답게 대나무 테마공원, 대나무 박물관, 대나무 바이오텍,
대나무 건강랜드 등 전천후 대나무 축제 분위기인 담양(潭陽).
담양의 찜질방 대나무랜드는 호남정맥 종주때 이용한 적이 있어서 어렵잖게 찾아갔다.
대나무 산지답게 대를 이용한 각종 건강법을 개발한 듯 하나 그런 것에는 관심 없다.
어제에 이어 연이틀 샤워를 하고 등을 편히 대는 것을 행복으로 여길 뿐.
전남에서 출발해 전북땅에서 단 한밤을 보냈을 뿐이고 다시 전남땅으로 귀환한 첫밤을
찜질방에서 보내는 것은 행운이다.
내게 천막집은 최악을 면한 차악(次惡)일 뿐 선은 아니니까.
씻은 후 찜질방으로 들어서는 나를 한 점잖남이 반겼다.
배낭을 메고 들어온 때로부터 1시간여를 기다렸다는 그.
낙동정맥의 울산 K, 호남정맥 보성의 가톨릭교도 H, 낙남정맥의 마산 불교도 O 등의
재판에 다름아닌 기독교 목사다.
그는 고집이 덕지덕지해 보였을 늙은이를 왜 그토록 기다렸을까.
목사의 눈에 구제해야 할 늙은이로 보였는가.
조심스럽게 접근한 그는 자기가 이끌고 있는 '인간성회복운동'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회복될 여지가 있는 인간성이 남아있기는 한가.
루마니아의 작가 게오르기우(Constantin Virgil Gheorghiu/1916-1992)의 말을 빌리면
(25시) 예수의 재림이 필요없는 세상이다.
심판받을 사람이 없는데 재림이 무슨 의미 있느냐는 것.
심판의 대상은 차치하고 예수가 내려온다면 머물 곳이 있기는 한가.
2천년 전에는 말구유라도 있었지만 교회가 장사꾼, 강도의 소굴에 다름 아닌 이 시대야
말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나 머리 둘 곳이 없을 것"이다.
확성기를 입체적으로 설치한 트럭을 몰고 전국을 누비며 외치고 있지만 신통한 반응이
없고 허공을 울리는 메아리에 불과한가 보다.
그의 인간성회복운동 프로그램에는 금연도 포함되어 있다.
그의 운동에 금연효과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내 알 리 없지만 담배의 제조와 판매는
물론 수입해서 엄청난 세수를 올리는 정부를 두고 금연운동을 벌이다니.
상탁하부정(上濁下不淨)인데 아랫도랑만 치우려 하는 것 아닌가.
백년하청(百年河淸)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건만.
좌절 또는 포기하지 않고 끈기를 가진 그의 의지에는 경의를 표하나 특정종교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거나 시효가 지난 약병을 들고 환자에게 접근하고 있는 건 아닌지.
삼국지의 말을 인용하면 참초제근(斬草除根)이라는 확실한 처방을 두고도 웃자란 풀만
깎으려 하는 것 같으니까.
최신해(정신과의사)씨의 수필(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도 끝도 없이 묻는 환자 이야기)가
떠오를 정도로 묻고 내 대답을 들으려 한 P목사.
자정이 넘었는데도 그는, 이 시간의 자기가 "유명 목사의 설교를 경청하고 있는 신도"의
위치라고 털어놓았다.
자기를 위해 기도해달라는 그의 부탁에 생기가 약한 것 같아 두고두고 마음이 짠하다.
그의 하는 일을 위해 늘 기도는 하고 있으나 내 기도가 효험이 있을까.
왜 인증을 받으려 하는가
영산강 길이 시작되는 2013년 7월 23일 새벽.
섬진강에서 영산강으로 진입하는 지점이며 어제 밟았던 와룡교로 갔다.
금성면 버스의 하차지점을 몰라 이른 아침부터 알바로 시작하여.
영산강은 전남 담양군 용면과 전북 순창군 구림, 쌍치면에 걸쳐있는 용추봉을 발원지로
하나 영산강 자전거길은 와룡교에서 5km쯤 북쪽인 담양호를 기종점으로 한다.
내가 밟은(호남정맥 종주중) 용추봉은 평범한 헬기장이건만 영산강의 모태라니.
대곡교까지 얼마동안은 어제 석양에 거꾸로(담양발 순창) 걸었던 길이며 메타세쿼이아
길은 다음 다리 금월교에서 시작된다.
메타세쿼이아길을 최초로 걸어보기는 2003년 여름이다.
호남정맥종주중 군계인 순창 금과의 금과동산에서 담양 금성의 영월공원(迎月/달맞이)
으로 건너가 메타세쿼이아길인 24번국도를 한참 걷고 돌아와 호남정맥을 이어갔다.
메타세쿼이아길 초입에도 자전거주자들을 위한 인증센터가 있다.
인증의 의미는 무엇이며 왜 인증을 받으려 하는가.
이베리아반도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의 순례자협회에서는 도보
100km이상과 자전거 200km 이상의 주행을 확인해 순례자증서를 발행한다.
대학인순례자협회에서는 대학관계자로서 순례길 지역 대학들을 방문하면 별도의 순례
증서를 발행한다.
이 증서가 학사학위로 인식되어 학위를 선호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증서 받기 위해
스페인으로 고고-고고(gogo-gogo)하는 어이없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 증서는 단순한 통과가 아니고 통과지역의 지리와 역사를 비롯해 인문 사회적 시청각
교육 과정을 이수했다는 뜻으로 발행한다.
그 증거가 되는 것이 세요(sello/stamp)다.
그러니까, 밤에 걷거나 달린다면 당연히 스탬프를 받을 자격이 없다.
본 것이 없으니까 당연히 느낀 것도 없을 것이니까.
칠흑의 밤에 자전거 패달을 밟는 주자들에게 줄 답이 나왔다.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거리숲부문 대상(大賞)
한국의 아름다운길100선 최우수상 선정
메타세쿼이아길의 수상 이력(내역)이다.
유무형 역사적 기념물 중 유럽과 북미의 것들이 UNESCO의 여러 방에 많이 들어있다.
특출해 보이지 않는데도 그 땅에 있다는 이유로 많이 올라있는 것 같아 기분이 별로다.
이 길도 그랬을 거라는 말이 아니고 상에 별 의미를 둘 필요 없다는 뜻이다.
더구나 속성수에는 한계가 많은데다 인심의 변하는 속도가 하도 빨라져서 지금 상찬이
상한가를 치고 있으나 언제 지천꾸러기가 될 지 모르니까.
슬로시티(slow city/창평면)를 표방하고 아시아에서 최초임을 강조하고 느림의 철학에
득도한 듯 말은 하나 실상은 속성주의 매너리즘(mannerism)을 극복하지 못한 것 같다.
방부목데크를 비롯해 다른 지자체와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나도 송순의 시를 가장 좋아한다
학동교를 건너 영산강길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금성천과 금월천을 받아 세가 불어난 영산강을 따라서.
이조 인조26년(1648 ), 해마다 되풀이되는 홍수를 막으려고 제방을 쌓고 이를 보존하기
위해 나무를 심어 만들었다는 관방제림(官防堤林) 숲길을 두고 자전거길을 택했다.
'자전거길을 따른 답사'라는 의미에 충실하기 위해서?
영산강133km라 함은 담양댐을 기준으로 한 거리를 말하므로 와룡교에서는 128km쯤이
되는데 이정표들은 123km에서 128km까지 자유분방 상태다.
향교리에 들어서면 차로 가까이에 한 흉상과 잘 꾸며진 기념비가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페리항에서 친일 미국인 스티븐스(Durham W. Stevens)를 저격해
죽게 한 전명운(田明雲/1884~1947) 의사의 흉상이다.
서울 태생이지만 담양전씨라는 족연(族緣)으로 여기 담양전씨 선산에 세워지게 된 듯.
명민강맹(明敏剛猛/비문)한 인품으로 의를 행한 결과다.
불의했다면 족연이 작동하겠는가.
의롭게 살아야 하는 당위를 강조하는 기념비라 하겠다.
'페리의거'로 불리는 이 저격사건은 1908년 3월 23일 9시 반경 페리항에서 발생했다.
고종 황제의 외교교문(일본이 심어놓은)인 스티븐스의 철저한 친일 행각에 비분강개한
독립운동 청년(미국이민) 전명운과 장인환(張仁煥/1876~1930)의 의거였다.
담양전(田)씨는 고려의 왕(王)씨 후예다.
이씨조선의 멸족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王' 자의 양쪽에 작대기 하나씩 붙여 만든 성
으로 불사이군(不事二君)을 고집하고 담양으로 내려와서 뿌리를 내렸다는.
향교가 창건되었다 해서 향교리인 마을에 학교가 들어섰다.
전남도립대학교다.
잔뜩 찌푸린 날씨는 강 건너편 추성경기장을 맞보는 지점에서 비를 뿌리기 시작하더니
곧 장대같은 소나기로 바뀌었다.
죽녹원 입구 주차장, 영산강 둔치의 포장마차촌 천막에 대피했다.
빗줄기가 약해지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담양 댓잎호떡으로 요기한 후 판초와 우산으로
중무장하고 일어섰다.
"대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대바람이 일상에 지쳐있는 심신에 청량감을 불어넣어 준다"는
죽녹원(竹綠園)을 즐길 기회를 길손에게는 주지 않겠다는 뜻인 듯 한데 억지를 부린다?
우산 받고 죽녹원 계단을 올라가는 이도 더러 있으나 장거리 나그네의 할 짓은 아닌 듯
하여 미련 털고 돌아섰다.
향교다리를 건너 둑길과 둔치길을 오르내리며 걷는 사이에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양 둔치에 경기장, 주차장 등 시설들이 있으나 상류인데도 오염된 강물이 유감이다.
담양교,양각교 밑 둔치길을 통과해 둑으로 올라온 후 봉산면에 들어섰는데 보의 중앙에
어도를 설치해서 얌채족의 못된 발상이 아예 나오지 않겠다.
건너편에서 용천, 수북천을 흡수해 세를 불린 영산강은 다시 대덕면 만덕산에서 발원한
오례천을 맞는다.
그래서 마항마을 까지 한참 돌아야 한다.
마을 뒷산 제월봉의 형국이 "말이 머리 숙여 오례천의 물을 마시는 모습" 이라하여 말목
(馬項)이라 했다는 마을이다.
오례천 마항교에서는 2시방향(북동쪽)으로 면앙정(俛仰亭)이 보인다.
면앙정 송순(俛仰亭宋純/1493~1583)이 은퇴하여 지은 정자에 자기 호를 붙였다.
가사문학의 백미라는 면앙정가를 지은 곳이란다.
나도 그의 시 중 하나를 가장 좋아한다.
십년을 경영하여 초려 한간 지어내니 반간은 명월이요 반간은 청풍이라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經營兮十年 作草堂兮三間 明月兮淸風 咸收拾兮時完 惟江山兮無處納 散面置兮觀之)
집(home 아닌 house)에 관한 한 내 좌우명이다.
가족의 불만과 달리 현재의 누옥에서 45년째 눌러 살게 하는 힘도 이 시에서 나오니까.
우회한 김에 마을 식당(장어촌)에서 콩국수 점심을 먹었다.
봉산면(鳳山面)소재지 인근이라 영업이 되는가.
문을 열기는 했으나 내가 유일한 손님이다.
식당에서 성황을 이루는 손님이 최고의 맛임은 진리다.
영산강 자전거길은 섬진강과 다른 점이 있다.
자전거길 이전에 조성된 연륜이 쌓인 길인 듯 하며 차량의 통행이 자유로운 길이다.
단 하루로 전체를 말할 수는 없지만 담양권의 경우 영농인의 불만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영농 환경이 섬진강과 조금 다른데다 강둑을 달리는 자전거 주자의 수가 워낙 적어서.
섬진강도 초기의 집중현상이 머잖아 진정될 것이다.
수문을 활짝 열었을 때 고인 물이 일시에 빠져나간 후 처럼.
"정취있는 둑방길을 시멘트 아스팔트 자전거 도로를 만드는데 383억을 썼다. 지난 14일
부터 16일까지 나주, 무안, 목포 구간에서 자전거타는 사람을 총 9명 봤다"고 어느 야당
국회의원이 말했단다.
얼마를 썼는지는 모르지만 3일 동안에 9이명이라는 표현은 막대한 손실을 본 무의미한
투자였음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마을 뒷산의 형태가 '학이 날아가는 모습' 같다는 신학리(新鶴)를 지나고 삼지리(三支)
삼지교 밑을 통과해 증암천의 합류지점 쉼터에서 휴식을 취했다.
잠시 누워있는 동안에 이 지역 두 중년의 대화가 들려왔다.
자전거 바람이 든 사람과 그의 유혹에 주저하고 있는 사람 간의 대화다.
유혹하는 이유도 주저하는 이유도 모두 황당하다.
건강한 삶이라는 주제와는 거리가 먼, 옮겨놓기 거북한 내용이다.
아주 고약한 바람이 미구에 시골을 휩쓸지 않을까 심히 염려된다.
무등산을 발원지로 한 증암천도 삼지리와 와우리(臥牛)사이의 와우교를 건너기 위해서
한참 돌아야 한다.
봉산면 지역의 강둑길에는 가로수로 대나무를 심었다.
제대로 정착하면 이색적인 길이 되겠다.
이 길은 또 '누정길'로 이름지어졌다.
아마, 면앙정에서 시작한 길이 강둑을 떠나 송강정(고서면)을 거쳐서 남면의 한국가사
문학관으로, 누정들이 이어지는 길이라 해서 인 듯.
송강정은 송강정철(松江鄭澈/1536~1593)이 4년쯤 머물면서 아부성 사미인곡을 비롯해
여러 작품을 지은 곳이란다.
그의 관동별곡의 서사(序詞)도 이곳에서 시작되고.
반딧불이 의인이다
'담양하천습지보호지역'의 담양지역을 벗어나면 광주광역시다.
고창담양고속도로를 영산교 밑으로 통과해 북구 용전동을 지났다.
광역시라 다른가 쉼터의 간격이 짧다.
담양 대나무숲 인증센터가 있는 지점의 영산강 강심(대나무숲)은 영산강8경의 하나다.
둔치에는 용산지구생태습지공원과 긴 관찰데크도 있다.
이 지역 젊은 자전거 산책객으로부터 찜질방의 위치를 안내받았다.
무작정 둑길로만 가면 된다는 말에 쉽게 찾아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잠시 후에
만난 이에 의해서 무너졌다.
지리에 백지인 나그네가 좀 더 자상한 설명에 오히려 헷갈렸기 때문이다.
공사중인 용산교 밑을 통과해 지야동, 붉은 아치가 세워진 지야대교로 가는데 강가운데
작은 섬이 있다.
제1하중도라니까 제2, 제3이 계속해서 있다는 것인가.
하중도(河中島)란 하천의 유속이 완만해지면서 퇴적물이 쌓여 강심에 형성된 섬이다.
주로 큰 강의 하류에 많이 생기는데 특이하게도 그리 크지도 않은 강의 상류에?
강가, 썩 좋은 위치에 정자가 있으나 찜질방을 지근에 두고 왜 천막집이겠는가.
하늘에는 여광이 남아있을 뿐인 20시가 임박한 시각이지만 느긋하게 걷고 있었다.
지야대교 밑으로 해서 긴 둑길을 다시 걸어 낮은 다리 용두교 진입점에 도착했을 때다.
"이제 거의 다 오셨습니다. 저 앞에 보이는 다리만 건너시면 됩니다"
한 젊은이의 말이다.
어둑은 하나 아직은 분간이 되는데 말한 그는 대나무숲 인증센터에서 찜질방을 안내한
자전거 청년이다.
지야대교 못미친 지점에서 앞질러 갔는데 이때껏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가.
늙은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을 확인한 후 안심하고 자기 길을 가는 젊은이.
이 시간 이후 이 밤뿐 아니라 영산강길 내내 이 앳되고 순후한 이미지의 청년에게 나는
통째로 사로잡혔다.
P목사가 인간성회복운동에 목청을 높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나라 꼴이 이 모양이지만 이런 심성들이 저변을 형성하고 있으므로 무너지거나 기울어
지지 않는 것이리라.
대통령을 비롯해 과거와 현재의 모든 위정자들이 사기꾼에 다름 아니며 그 분 보기에는
하나같이 악한들일 텐데도 왜 방임 자세일까 안타까운데 답이 나오는 것 같다.
의인 열명만 있어도 멸하지 않으리라....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자가 의인인 것 같으나 그는 불행한 자일 뿐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상대편을 죽여야 한다는 전쟁공식대로 친구도, 동족도, 혈족까지도
적으로 간주하고 죽이다가 불행하게도 내가 죽은 것이므로.
더구나, 살인을 많이 한 자는 의인도 영웅도 될 수 없지만.
총칼 든 전장에 국한된 악이냐.
해방 이전은 접어두고 광복 반세기에 정치권력을 위해서 저지른 살인만 해도 그 죄악이
하늘에 닿고도 넘쳐 일일히 응보가 진행되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억울하게 죽은 자들의 피가 하늘에 까지 튀었는데 하늘이 잠잠할 수 있겠는가.
피가 피를 부르는 단말마적 고통의 세계로 회귀해 가고 있는 현실이기에 눈여겨 보거나
기억되지 않을 사소한 윤리의식이지만 내게 큰 산 만한 희망으로 작용하고 있을까.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절박한 심정이라 그럴까.
하늘이 요구하는 의인이란 사이비 의인이 아니다.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할 의사 열사를 요구하는 독립운동시대도 아니다.
밝은 것 같으나 암흑세계인 우리 현실에서는 반딧불도 빛이다.
반딧불이 모이면 크게 밝은 빛이 된다.
도덕적, 윤리적 반닷불이 늘어나면 정치를 비롯한 다른 세계도 밝아질 것이다.
그래서 이 반딧불이 바로 수렁에 빠진 나라와 민족을 구할 의인이다.
넘쳐나는 듯한 기운으로 첨단대교를 건너 알려준 찜질방에 당도했으나 까닭도 알리지
않고 단 하루의 휴업판만 붙어있다.
단지 하루의 휴업인데 평생 한번 밖에 들를일 없는 길손에게 걸릴 확률은 몇%나 될까.
서남동길 서산 찜질방의 판박이니.
굳이 다르다면 서산의 대안은 나빴는데 광주에서는 대안도 좋았다는 것이라 할까.
식사도 하고 대안도 찾으려고 들어간 식당의 주인은 붙임성 있는 여인이다.
종일 밖으로 돌다가 들어오는 듯한 남자는 험상궂은 깡패 인상에 언행이 거칠며 부인이
애써 버는 돈 뺏어다가 흥청거리는 등 부인을 괴롭히는 듯이 보였다.
식당에서 거든다면 손님 내쫓는 일일 뿐일 테니까 아예 밤 늦게 귀가하는 것이 나을 듯.
내게 도움주겠다고 하는 말이 "택시타고 가거나 싫으면 옆의 장(상급여관)에서 자세요"
말 버릇까지 고약한 사람이다.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하고 나와서 물어물어 찾아간 집은 '굿모닝보석불가마사우나'
식당에서 1km도 못되는 거리를 택시타고 가라던 겉모습은 물론 속마음까지 험한 사람.
1시간 안에 두 극단의 사람을 상대하고 안착했다.
담양에서 광주광역시 북구를 거쳐 광산구 첨단지구 까지 온 것이다.
청년이 준 강렬한 행복감이 일체의 궂은 일들을 말끔히 청소해버린 듯 씻기 전에 벌써
청결한 기분이었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