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현장 교육 실시아무리 까다로운 손님도당황하지 않고 문제 해결
가지고 있던 휴대폰이 고장 났다면 이런 생각이 먼저 든다. '얼마나 썼다고 벌써 말썽이람. AS(애프터서비스) 맡기면 얼마나 걸릴까? 기다리는 것도 짜증스러운데….'
이런 고객을 맞이해야 하는 기업들은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어지간해선 화난 고객을 다독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 동안 기업 AS 활동의 초점은 고객 불만의 목소리가 외부로 터져 나오지 않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소비자들의 제품 구매 기준이 품질에 머물지 않고, 서비스로 옮아가고 있다. 기업들이 고객 감동의 창구로 AS를 주목하면서 AS가 기업의 새로운 경쟁력으로 부각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3월 AS센터를 대대적으로 재단장하자 LG전자도 이에 질세라 AS센터 리뉴얼에 들어가는 등 경쟁도 치열하다. AS 담당자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이나 인센티브제도에 대한 혁신도 진행 중이다.
국내 가전이나 통신회사들은 이제 고객에게 만족을 넘어 감동을 준다고 평가받는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삼성전자 서비스센터에서 해답을 찾아봤다. 이 회사는 교육센터에서 엔지니어들에게 까다로운 손님에 대응하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교육시킨다. 또한 예전에 100% 아웃소싱하던 AS조직을 부분적으로 인소싱으로 전환해 교육과 관리 감독에 대한 책임을 본사가 직접 담당하도록 했다. 또 평가와 보상을 팀 단위로 해서 팀간 경쟁과 팀내 교육을 유도한다. 물론 이런 활동의 모든 초점은 고객 감동에 맞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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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청담동 삼성전자서비스 강남센터에서 엔지니어들이 고객과 상담하는 모습. 이곳의 엔지니어들은 직접 고객의 이름을 부르면서 자리를 안내하는 등 고객과의 정서적 교감에까지 섬세하게 신경을 쓴다. /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지난 27일 서울 청담동 삼성전자서비스 강남센터. 휴대폰 전원이 갑자기 꺼지는 고장 때문에 이곳을 찾은 고객 이철승(35)씨는 수리(修理)를 기다리는 동안 한 편에 놓인 전신 안마기에 편안히 누워 TV를 보고 있었다. 5분 정도 안마를 받은 이씨는 바로 옆 PC로 옮겨가 이메일을 확인했다. 이씨는 "가끔은 그냥 쉬려고 이곳에 올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가 머물고 있는 휴식 공간에는 전신 안마기 2대와 발 안마기 5대, 휴대폰 살균기와 충전기, 커피 무료 자판기, PC 8대가 설치돼 있었다. 잘 갖춰진 백화점이나 호텔 휴게실 같은 분위기다.
그러나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시설보다는 서비스이다. 안내 데스크에서 접수를 마치면 엔지니어가 직접 고객의 이름을 부르며 나와 자리로 안내한다. 고장 증상에 대한 문답이 끝나면, 엔지니어는 예상 수리 시간과 비용에 대해 설명한다. 간단한 부품 정도는 "마침 제가 중고 부품을 갖고 있는데 괜찮으시다면 그냥 넣어 드릴게요"라고 한다. 고객은 마치 가족 같은 편안함을 느낀다. 수리 후에도 엔지니어가 직접 고객의 이름을 불러 자리로 안내한다. 고객이 돌아간 후에는 담당 엔지니어가 문자 혹은 전화를 통해 AS 받은 제품의 상황을 다시 확인한다. 물론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서비스의 질이다. 수리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수리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는 안 된다.
요즘 가전회사나 통신회사의 서비스센터를 다녀온 고객 중에는 만족을 넘어 감동했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경영인들은 "어떻게 하면 우리 직원들도 저렇게 친절해질 수 있을까", "회사가 직원들을 어떻게 교육시키고 관리하면 저렇게 될 수 있을까" 궁금해한다. 삼성전자 서비스센터에서 그 비결을 찾아봤다.
■ 현장 교육의 힘
수원에 있는 삼성전자 서비스아카데미. 애니콜 엔지니어 양성코스에 약 20명 정도의 교육생이 손님과 엔지니어 두 그룹으로 나뉘어 역할 교육을 하고 있었다. 까다로운 손님이라는 상황만 줬을 뿐, 구체적인 시나리오는 정해져 있지 않다.
손님 역할을 맡은 한 교육생이 "구입한 지 2주일밖에 안 된 휴대폰이 고장 났으니, 수리는 필요 없고 무조건 무상 교환을 해달라"고 졸랐다. 상대 엔지니어는 "진정하시라"는 말만 반복할 뿐 뾰족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상황 종료 후 친절·예절 교육 등을 담당하는 김영렬 차장은 "이럴 땐 우선 손님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후, 필요에 따라 먼저 사과를 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이곳에 입소한 교육생들은 입소 전에도 이미 한 달가량 현장 교육을 받았다. 각 서비스센터에 배치돼 엔지니어를 따라다니며 다양한 상황을 이미 경험한다. 그때 자신이 발견한 문제점에 대한 해답을 별도의 교육 과정에서 찾아내는 것이다.
이런 식의 실전 교육을 '비구조적 경험 교육(unstructured experiential learning)' 프로그램이라고 부르는데, 최근 여러 기업에서 도입하고 있다. 특정 상황을 가정하고 이에 대한 해법을 반복적으로 익히는 것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 매번 새로운 해답을 찾아내는 것이다. 한양대 송영수 교육공학과 교수는 "예전에는 지식과 정보를 교육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이를 어떻게 현장에 적용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며 "지속적으로 새로운 상황에 대응하면서 응용력과 창의력이 생겨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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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전자 AS센터를 찾은 고객이 휴게 공간에 설치된 전신 안마기를 이용하고 있다. / 허영한 기자
삼성전자 AS센터는 인소싱(insourcing)과 아웃소싱(outsourcing)이 결합한 독특한 형태이다. 엔지니어의 90% 이상이 삼성전자서비스가 아닌 협력업체 소속이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관리와 교육, 평가는 모두 삼성전자서비스가 담당한다. 이는 엔지니어 관리를 포함한 AS 업무 전체를 아웃소싱으로 해결하는 기업과는 차별화되는 점이다. 이 때문에 대기업이 가진 경영 노하우가 서비스 현장에 반영될 수 있다. 또 이로 인해 현장 엔지니어들이 삼성전자서비스에 대한 소속감을 가지게 되는 측면도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강남센터 김덕식(30) 엔지니어는 "고객들을 응대할 때도 삼성 브랜드를 생각해 더욱 몸가짐을 바르게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조직 운영 형태는 삼성전자 제품 경쟁력에도 큰 도움이 된다. 제품의 불량률이나 오작동 등 AS 과정에서 축적된 정보가 가공되지 않고 곧장 본사로 보고된다. 서비스아카데미를 책임지는 손상석 상무는 "엔지니어들이 제품의 문제점을 얼마나 잘 파악하는 지도 중요한 평가 항목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셀(cell) 조직의 힘
삼성전자 휴대폰 AS센터에는 10~20명 정도의 엔지니어가 있다. 고객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들은 보통 2~3개의 팀, 이른바 '셀(cell)'로 나뉘어 있다. 셀은 통상 5~10명 정도 규모인데, 보통 경력 5년 이상 고참부터 신입까지 다양하게 구성된다. 이 셀은 회사 내에서 실질적으로 경쟁과 교육의 단위다. 회사는 개인뿐 아니라 셀 단위로도 성과를 측정한다. 주 단위 또는 월 단위로 최우수 셀을 선정해 인센티브를 지급한다. 보통 최고 고참이 맡는 셀 리더에게는 별도의 인센티브가 지급된다. 또 셀 단위의 기술 경진 대회도 주기적으로 열린다. 여기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각종 시상품과 함께 별도 인센티브를 받는다. 인센티브는 삼성전자서비스와 각 협력업체가 절반 정도씩 분담한다.
셀의 성과가 중요하다 보니, 셀 내부 교육이 철저하다. 셀은 리더의 주관 하에 보통 아침저녁 두 차례 회의를 연다. 오전 회의는 각 제품 모델의 성능이나 수리법에 대해 서로 현장에서 익힌 정보를 공유하는 시간이다. 특히 오래된 구형 모델의 경우 회사 자체 교육에서는 배우지 못할 때가 많다. 이런 경우 선배의 노하우는 훌륭한 학습 교재가 된다. 오후 회의에서는 주로 하루 중 있었던 성과를 결산하는 자리다. 후배의 실수를 지적하고, 그날 만났던 고객의 불편사항 중 특이한 것들을 서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자리 배치 역시 보통 셀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후배는 선배 엔지니어들이 어떻게 고객을 응대하는지 직접 보고 들으면서 행동을 익힌다.
이런 셀 단위 활동은 서비스의 품질을 균등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만약 개인별 활동이 강조되다 보면, 잘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의 차이가 극심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팀별로 움직이면, 이런 편차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김덕식 엔지니어는 "개인별 평가만 이루어진다면 대충 일을 처리하고 자신만 책임지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셀 단위 활동은 팀 성과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셀 내부 교육은 팀별 인센티브와 결합돼야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송 교수는 "만약 팀별 평가가 이루어 지지 않는다면, 선배가 후배에게 기술을 전수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셀 또는 팀 중심의 활동을 강화하는 것은 최근 기업들의 조직 관리 트렌드 중 하나다. 현장 팀장급에게 구성원들에 대한 통솔권을 부여함으로써 현장 리더십을 강화해 성과를 내는 것이다. 이를 경영학에서는 '공유 리더십(shared leadership)'이라고 부른다. 이는 책임을 팀에게 주고, 팀 내에서도 역할을 맡겨 책임감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개인별로 평가하고 움직이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일 수 있다. 정동일 연세대 경영대 교수는 "구글이나 홀푸드마켓 같은 혁신 기업들이 대표적 사례인데, 특히 조직에 자율성과 창의력을 불어 넣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셀 운영을 본격화한 것은 3년 전이다. 이전에도 분임조 활동이 있었지만, 유명무실했다. 하지만 지난 2006년 무렵부터 셀 활동에 대한 활동비를 지원하고, 셀별 인센티브 지급을 강화했다. 삼성전자 인사팀 박용구 차장은 "내부적으로 평가를 해보면, 셀 활동이 활성화된 전후로 직원들의 서비스 질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