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2월 28일, 미국의 윌리스 흄 캐러더스가 나일론을 발명했다네요.
'나이롱'의 시작을 한번 알아볼까요.
1935.2.28. 20세기 획기적인 발명품 나일론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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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볼 때,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날짜를 확실하게 말할 수가 없다. 사실 많은 사건들은 그것이 일어난 날짜를 구체적으로 댈 수가 없다. 처음에는 그저 가능성이 있는 아이디어에 불과했다가 서서히 자라나 확신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윌리엄 흄 캐러더스) | |
20세기 획기적인 발명품 나일론, 또는 '나이롱'
오늘날 ‘나일론’이란 말을 들으면 아마도 맨 먼저 생각나는 것이 ‘나이롱 환자’나 ‘나이롱 신자’는 아닐까. 이 단어가 관용적 표현으로 ‘가짜’나 ‘엉터리’라는 뜻을 내포하게 된 것은 천연 섬유가 아니라 합성 섬유라는 사실 때문이겠지만, 나일론이 20세기 최고의 발명품 가운데 하나였으며, 우리의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친 물건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어딘가 부당한 오명일 수도 있다. 최초의 나일론 제품은 칫솔이었지만, 나일론의 명성을 확립해 준 상품은 바로 여성용 스타킹이었다. 1940년 5월 15일, 최초 시판일에는 백화점 앞에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수십만 개가 금세 동이 나는가 하면, 간신히 스타킹을 구입한 여성들이 기뻐하며 즉석에서 치마를 걷어 올리고 신어 보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 |
나일론 스타킹이 최초로 판매된 날 몰려든 인파 가운데 간신히 스타킹을 구입한 여성들
나일론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던 개발자, 월리스 캐러더스
하지만 나일론의 명성에 비하자면 그 개발자의 이름은 오히려 그늘에 가려져 있는 편이다. 그 비운의 주인공은 월리스 흄 캐러더스라는 화학자다. 1896년 4월 27일, 미국 아이오와 주 디모인에서 태어난 캐러더스는 타키오 대학과 일리노이 대학에서 유기화학을 공부했다.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모교의 강사로 일하던 캐러더스는 1926년 하버드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안경잡이에 흐트러진 머리카락, 그리고 큰 키에 구부정한 걸음걸이로 ‘괴짜 과학자’의 전형적인 외모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뇌 하나만큼은 명석해서 대학 시절에는 친구들 사이에서 ‘교수(Prof)’라는 별명을 얻었고, 대학원 시절에는 학위를 따기 전부터 ‘박사(Doc)’로 통했다. 성격은 점잖고 공손한 편이어서 어느 누구와도 불화를 빚은 적이 없었지만, 천성적인 무대 공포증 때문에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캐러더스의 인생에서 중요한 기회가 찾아온 것은 1927년에 듀폰 사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으면서부터였다. 당시 듀폰 사에서 일하던 유기화학자 찰스 스타인(Charles M. A. Stine)은 유망한 젊은 과학자들을 영입해 기초 과학 연구를 지원함으로써, 기업의 실리 추구와 이미지 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 연합국 측이 사용한 폭약 가운데 절반 가까이를 공급한 결과, 듀폰은 막대한 이익과 함께 ‘죽음의 상인’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도 얻었기 때문이다. 듀폰은 이후 생활용품 사업 쪽에 주력하며 자선사업을 크게 펼치기도 했지만, 당시의 여러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초기에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모습을 남긴 것도 사실이었다. 당시의 미국에서는 화학 회사뿐 아니라 화학자도 크게 인정을 받지 못했다. 약품이나 원료는 국내 개발보다 해외 수입이 더 간단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과 아시아로부터의 약품과 원료 공급이 끊어지기 전만 해도 이런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 |
"실험의 95%는 연필과 종이로 증명할 수 있다."
듀폰사 실험실에서 연구 중인 캐러더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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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러더스가 듀폰의 영입 제안을 단박에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당시에만 해도 과학자들은 연구의 자율성과 순수성이 저해될 것을 우려해 기업에 들어가기를 꺼렸다. 캐러더스 역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오히려 더 마음에 들어 했고, 마지막까지도 자신의 지식으로부터 어떤 금전적 이득을 얻는다는 생각을 탐탁잖아 했다. 듀폰의 집요한 설득에 마침내 그 회사의 연구실로 자리를 옮긴 캐러더스는 당시 화학계에서 큰 관심의 대상이었던 중합체 연구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캐러더스가 비록 유능한 화학자이긴 했지만, 듀폰에서 본인이 직접 실험을 한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는 점이다. 대신 훗날의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폴 플로리(Paul J. Flory)를 비롯한 여러 조수들이 그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실험에 몰두했다.
당시 캐러더스는 실험실보다도 오히려 도서관에서 과학 관련 문헌을 읽고 아이디어를 필기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실험의 95%는 연필과 종이로 증명할 수 있으며, 실제로 해 보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사실 캐러더스는 애초부터 뭔가를 발명할 생각은 없었다. 오로지 순수한 학문적 관심을 추구하다 보니 우연히 여러 가지 획기적인 발견을 하게 된 것이고, 그 발견이 때마침 듀폰이라는 대기업의 사업 추구 방향과 맞아 떨어져서 히트 제품으로 발전했던 것이다. 물론 나일론 이전에도 인공으로 제조된 섬유는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레이온(인조 실크)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천연 셀룰로오스를 원료를 사용했기 때문에, 대량 생산이나 품질 향상에 있어서 여러 가지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 |
'순수 기초 과학 연구'와 '돈 되는 연구'사이에서
1929년에 캐러더스는 알코올과 산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에스테르(ester)라는 화합물을 연결하여 폴리에스테르(polyester)를 최초로 개발했다. 비록 오늘날 실용화된 폴리에스테르와는 약간 다르지만, 최초 개발이라는 점에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1930년 4월, 캐러더스의 연구팀 소속인 아널드 콜린스(Arnold M. Collins)가 최초의 고품질 합성 고무인 네오프렌(Neoprene)을 발명했고, 역시 같은 팀의 줄리언 힐(Julian Hill)이 폴리에스테르로부터 긴 실을 뽑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실험 중에 우연히 발견했다. 하지만 새로운 합성 섬유는 열이나 물에 잘 녹는 성질이어서 실용성이 없었다. 연구를 거듭한 끝에 산과 아민(amine)을 결합한 아미드(amide) 화합물에서, 앞서와 비슷하지만 열이나 물을 더 잘 견디는 합성 섬유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캐러더스는 이 합성 섬유를 더 이상 연구하지 않고 잠시 옆으로 밀어두었다. 이후의 외적 압력이 없었더라면, 실용적 발명보다는 순수 과학 쪽을 더 우선시했던 이 과학자는 어쩌면 한참 더 그런 상태로 버티지 않았을까. 합성 섬유의 개발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인이 된 외적 압력이란 전 세계를 강타한 대공황이었다. 다른 대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수익성 악화로 불안해하던 듀폰은 캐러더스의 연구팀에게 역시 앞으로는 ‘돈 되는 연구’를 하라는 노골적인 요구를 해 왔다. 중압감으로 인해 캐러더스는 우울증이 예전보다도 더 심해졌으며, 종종 듀폰을 떠나 다시 대학으로 갈까 생각하기까지 했다. | |
나일론을 발명하고 개인적인 영광을 얻고서도 우울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다
1934년 5월 24일, 캐러더스의 연구팀 소속인 도널드 코프먼(Donald D. Coffman)이 최초의 폴리아미드(polyamide) 섬유 합성에 성공했다. 마침내 1935년 2월 28일, 석탄(나중에는 석유)의 부산물인 벤젠이라는 값싼 물질을 원료로 한 초중합체가 완성된다. 처음에는 6-6이라는 암호명으로 지칭되던 그 물질(폴리헥사메틸렌아디파미드)로부터 천연 섬유보다도 더 튼튼하고 탄력이 있으며 색깔이 고운 섬유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듀폰에서는 훗날 이 물질을 상품화하면서 ‘나일론’이라는 신조어를 상표명으로 붙였다.
하지만 나일론의 탄생은 캐러더스의 순수 학문 연구에 있어서는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이제는 나일론을 대량 생산하는 것이 관건이 되다 보니, 본래의 연구팀 인력 가운데 여러 명이 개발 부서로 자리를 옮기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36년에 캐러더스는 기업 소속 유기화학자로서는 최초로 미국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선출되는 영예를 얻었다. 하지만 그는 곧이어 발작을 일으켜 정신병원에 입원하는가 하면, 이듬해 초에는 여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1937년 4월 28일, 그는 한 호텔에 투숙한 다음, 늘 갖고 다니던 청산가리 캡슐 속 내용물을 레몬주스에 타서 마셔 버렸다. 41번째 생일을 맞이한 지 겨우 하루가 지난 뒤였다. 그는 평생 우울증으로 고생했으며, 그로 인해 술에 의존하고 늘 자살 충동에 시달리곤 했다. 그의 목숨을 앗아간 청산가리 캡슐조차도 무려 15년 넘게 항상 휴대하고 다니던 것이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캐러더스의 신경은 그가 발명한 합성 섬유만큼 튼튼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 |
여성용 스타킹에서 군용 낙하산까지
캐러더스가 사망한 지 3년 뒤부터 듀폰은 각종 나일론 제품을 시장에 내놓기 시작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여성용 스타킹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실크 스타킹에 비해 얇고 투명한 것이 특징이어서, 바로 이때부터 여성들이 다리털을 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듀폰의 매출이 곧바로 두 배로 늘었고, 이후 중합체 기술의 최강자로 군림했다. 20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미국의 화학자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중합체 관련 일을 하게 되었다. 만약 자살로 일찍 생을 마감하지만 않았더라면, 캐러더스는 십중팔구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지 않았을까.
나일론의 영향력은 단지 의류 시장에만 국한되지는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낙하산과 타이어, 밧줄과 텐트 등의 군수품 제조에도 사용되는 바람에, 스타킹을 비롯한 기타 제품의 생산이 잠시 중단되는 일까지 발생했다. 어떤 여성들은 낙하산 제조에 이용해 달라며 각자의 스타킹을 국가에 헌납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3년부터 나일론이, 1967년부터 폴리에스테르가 생산되기 시작했다. 비록 지금은 ‘가짜’나 ‘엉터리’의 대명사로도 사용되지만, 오늘날까지도 나일론을 비롯한 합성 섬유들은 우리 생활에서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나이롱’이 일종의 관용어로까지 사용된다는 것 역시, 그 합성 섬유의 대중적인 인기와 중요성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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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미국 여성들이 신고 있던 스타킹을 벗어 군인에게 헌납하고 있다. | |
나일론은 그 발명자의 비극적인 최후를 암시한 이름이다?
나일론의 명성을 생각해 보면, 그 발명자인 캐러더스의 이름에 드리워진 그늘은 더더욱 짙게 느껴지기만 한다. 아마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비극적인 사실이 큰 요인이었으리라. 일설에는 듀폰 사가 나일론을 비롯한 여러 핵심 기술의 보안을 철저히 유지하는 과정에서 관련 정보가 상당 부분 유실되었다는 점도 이유로 지적된다. 한 가지 위안이라면 위대한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뒤안길에서 한동안 그늘에 가려져 있었던 천재 과학자가 그 혼자만은 아니라는 역설적인 사실이 아닐까.
지금은 오히려 부정적인 느낌까지도 주는 일상어가 되었지만, 나일론(Nylon)은 사실 그 명칭부터가 수수께끼다. 이에 관해서는 뉴욕(New York)과 런던(London)에서 머리글자를 따서 만들었다는 등의 여러 가지 추측이 나온 바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 이름을 캐러더스의 비극적인 최후와 연관시켜, 그가 허무(Nihil)라는 단어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나일론이란 이름은 캐러더스의 사후 수년 뒤에 지어졌으니, 아무래도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 듀폰 측은 1940년대에 이미 “나일론은 아무 뜻도 없는 신조어”라고 해명한 바 있지만, ‘나일론은 그 발명자의 비극적인 최후를 암시한 이름’이라는 전설은 오늘날까지도 인터넷에 떠돌아다니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이 불운한 천재의 최후에는 딱 어울리는 전설이라고 모두들 생각하는 까닭일까. | |
필자가 추천하는 덧붙여 읽으면 좋은 책
나일론의 발명자 캐러더스는 오랫동안 대중의 주목을 비교적 덜 받아 왔다. 그래서인지 외국에서도 그의 생애를 본격적으로 다룬 책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그에 관한 단행본 전기가 나온 적은 없고, 다만 과학 전문 저술가인 섀런 버트시 맥그레인의 저서 <화학의 프로메테우스>(이충호 옮김, 가람기획, 2002)에서 한 챕터에 걸쳐 소개한 내용이 가장 자세하다. 이 글을 쓰는 데에도 이 책의 내용을 크게 참고했다. 내용은 비교적 짧은 편이지만 찰스 플라워스의 <사이언스 오딧세이>(이충호 옮김, 가람기획, 1998), 이필렬 외 공저의 <과학, 우리 시대의 교양>(세종서적, 2004) 등에도 나일론에 관한 인상적인 글과 화보가 수록되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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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피터 탤랙 편저의 <사이언스북>(김희봉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2)이다. 과학의 역사를 250가지 주요 사건으로 요약한 대형 화보집인데, 사실 이 책에서 나일론에 관한 내용은 겨우 한 페이지에 불과하다. 다만 나일론의 발명이 상대성 이론이며 이중 나선의 발견 같은 대사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점이야말로, 캐러더스의 업적이 과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한 눈에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
- 글 박중서 / 출판번역가, 장서가
- 박중서 씨는 '약소국 그랜드 펜윅'시리즈인 <뉴욕 침공기, <월스트리트 공략기>를 비롯해, <해바라기>, <셰익스피어&컴퍼니>, <끝없는 탐구:칼 포퍼 자서전>등을 번역했다. 집안 가득 책을 쌓고 살며, 새 책을 기획하는 일을 한다.
이미지 TOPIC/cotbis, gettyimages/멀티비츠
첫댓글 지금은 면을 좋아 하지만 70년도 80년 초까지도 나이론 참 많이 들어 봤는데 숨은 공이 있었군요...
참! 영국이 지배한 나라기 참 많았나봐요...홍콩도 영국에 신민지 아니엿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