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슬람
세계 3대 종교의 하나인 이슬람교(회교)는 중동과 아시아 지역에 약 13억명에 이른다. 특히 인도네시아만 약 5억 5천명이나 된다.
"이슬람(islam)"의 뜻은 "자발적으로 알라의 뜻과 명령에 순종한다"는 뜻이다. 이슬람의 신앙을 갖은 사람을 "모슬렘"(muslim)이라 한다. 모슬렘은 '코란'이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이며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선지자였던 '모하메드'(이슬람의 창시자)에게 주어진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이것은 AD 632년 모하메드가 죽은 후 114장과 절로 나뉘어 기록되어 졌다. 마호메트가 알라의 가르침을 계시받아 이슬람교를 완성하였다.
기독교와 이슬람, 두 종교 다 하나님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지만 이슬람에서는 복종은 종과 노예의 관계에서의 복종인 반면, 기독교에서의 복종은 아버지와 아들관계에서의 순종이다. 이슬람에서의 사랑은 주인이 노예에게 베푸는 사랑이지만, 기독교에서의 사랑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사랑이다.
2. 마호메트와 코란
메마호메트는 쿠라이쉬부족의 일원으로 570년경 메카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6살 때 어머니를 잃은 그는 할아버지의 보호하에 있다가 그의 숙부 아부 앗딸리브에게 위탁되어 성장한다. 그의 청년 시절은 잘 알려져 있지않으나, 메카의 대상활동에 참가하여 성실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 25세엔 약 15세 연상의 거부 미망인 카디자와 결혼한다. 그후 40세 무렵 610년경 그는 처음 알라의 계시를 받아 최초의 3년간은 그에게 찾아오는 특정인을 상대로 전도를, 614년에는 대중전도에 나서게 된다. 그는 예언자로서의 스스로를 자각한 후 13년간을 메카에서 10년을 메디나에서 지냈는데 코란의 2/3가 메카에서, 1/3메디나에서 받은 계시이다.
코란은 예언자 마호메트에게 계시된 알라의 말씀을 기록한 것으로, 그가 처음 계시받은 610년경에서 623년 타계할 때까지 약 23년에 걸쳐 간헐적으로 계시된 장구(章句)를 모은 것이다. 그가 처음 계시를 받은 것은 라마단(9월)말 히라동산에서 명상을 하다 대천사 가브리엘로 부터라고 전승(모하메드의 언행록)은 전한다. 초기계시는 ① 신의 은총과 권능. ② 부활과 최후 심판. ③ 절대자에 대한 감사와 예배. ④ 베품과 너그러움으로 요약된다.
✾ 이슬람교의 5가지 기둥✾ <권형기 / 아세아 신대 교수 >
이슬람교가 이룩한 정치 체제와 문화는 1300여년의 긴 세월이 지나는 동안 다양한 변화를 해왔지만 이슬람교의 신앙, 의무, 도덕 기준등의 체계는 거의 변하지 않은 채 이슬람교 발생 초기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이 체계의 바탕을 요지부동한 것으로 굳히고 있는 것은 믿음, 예배, 희사, 단식, 순례의 다섯가지 의무들이다. 이것을 보통 이슬람의 "다섯가지 기둥" 내지 "이슬람의 5행"이라고 부르며 모든 무슬림들이 실천해야할 종교상의 의무로 되어있다. 7세기에 마호메트가 이슬람교를 창시한 후 이슬람교의 독특성을 형성하고 그 전통을 유지하는 데 있어 힘과 견인차 역할을 해온 것이 다음에 설명하는 다섯가지 기둥이다.
1. 믿음(Faith, Shahada)
제1기둥인 믿음은 이슬람교도가 될 때 행하는 신앙고백을 기초로 한다. 신자가 되고자 하는 자는 '알라 외에는 다른 신은 없다. 무하마드는 알라의 사도다."라고 선서한다. 이것은 종교적인 구호치고는 역사상 별로 예가 없을 만큼 간결하고 기억하기 쉬운 '염불'과 같은 것이다. 그 이유는 이것을 아랍어로 암송하면 "라 일라하 일라 알라"가 되어 두운이 힘찬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무슬림이 되고자 하는 자는 한 신자(어떤 사람이라도 신자이기만 하면 된다.)앞에서 샤하다를 낭송한 다음 거기에다 "나는 맹세합니다."라고 덧붙이는 것으로 간단하게 무슬림이 되는 것이다. 이것으로 신자가 되는 것이다. 이 절차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것으로써 알라는 유일하고 무하마드는 알라의 사도라는 신앙을 선언한 것이 되고 그 밖에도 다음의 3가지 신념을 동시에 받아들인 것이 된다.
첫째는 코란이 신의 말씀이라는 것, 둘째는 천사가 신의 중재자라는 것, 셋째는 모든 인간에게 최후의 심판날이 언젠가는 찾아온다는 것이다. 일단 신앙을 선서했으면 다시는 그것을 철회할 수 없다. 배교에 대한 벌은 죽음이기 때문에 이 3가지 신조를 끝까지 견지해야 하는 것이다.
2. 예배(prayer, Salat)
무슬림에 있어서 예배는 가장 소중한 종교적 의무였다. 예배를 통해서 신을 찬양하고 자기의 존재와 자기가 소유한 모든 것을 신에게 감사하는 것이다. 예배에는 개인적, 내면적 기도 '두아'와 공식예배 '살라트'의 두 종류가 있다. 두아는 의무화 되어 있지는 않으나 가치있는 예배로 간주되었다. 신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되도록 빈번히 두아 기도를 하는 것이 좋고 개인적인 소망의 성취를 빌어도 무방하다. 이에 대해 살라트는 신자 모두에게 요구되는 세밀하게 규정된 예배방식이다. 무슬림들은 이슬람의 초기부터 매일 5회씩 이 귀중한 의무를 수행해왔다. 최초의 예배는 동이 트자 곧 올리는데 이때 신자들은 "예배는 잠보다 좋다"라는 시보계의 목소리를 듣고 깬다. 다른 4회의 예배는 정오가 지났을 때, 오후 늦게, 일몰직후, 취침전에 한다. 예배시간이 되면 시보계는 모스크 탑에 올라가 신자들에게 예배시간이 되었음을 소리쳐 알린다. 무슬림은 하루에 한번은 정해진 방법으로 몸을 깨끗이 해야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예배를 거행하더라도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때의 목욕은 예배가 신자의 마음을 정화하듯이 신체를 정화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신자는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신과 대면하게 된다. 이 의식은 보통 아침 예배전에 한다. 신자는 얼굴, 손끝에서 팔꿈치까지, 발의 복사뼈까지, 그리고 머리를 감지 않으면 안된다. 모스크에서는 물이 사용되지만 물이 없을 때에는 모래나 흙도 무방하다고 되어있다. 하루중 언제든지 잠을 잤다든지 졸도하던지 해서 부정해졌을때에는 다시 목욕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신체나 의복의 일부가 술, 오줌, 피등 '부정한 것'에 닿았을때에는 그 부분을 씻지 않으면 안된다. 또 이성을 접하든지 해서 특별히 더럽혀졌을때는 신체 전부를 샅샅이 머리칼에 이르기까지 깨끗이 씻어야 한다.
신자는 예배하기 전에 신발을 벗고 머리에 씌우개를 쓴다. 그리고는 정해진 기도문을 입속에서 또는 낮은 소리로 외면서 '라크아'라고 불리는 일련의 특별한 동작을 행한다. 예배시간에 따라 이 라크아는 형식이 달라지는데 때로는 신의 가호를 받기 위해 특별한 라크아가 첨가된다. 예배에 앞서 신자는 그 시간에 해야할 살라트를 이제부터 행한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고하고 라크아를 몇번 할 것인가를 미리 정한다. 이 '의사표명'을 해두지 않으면 기도가 무효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예배는 집안, 옥외, 작업장 그밖의 어떤 장소에서 거행해도 동등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예배 그 자체가 매우 중요한 것으로서 코란 전 장에서 예배 방법을 소개하기까지 하고 있을 정도이이다. 이에 의하면 군대를 둘로 나누어 한 쪽이 수비를 하고 있는 동안에 다른 한쪽은 신에게 기도를 드린다는 것이다. 예배는 혼자서도 무방하지만 되도록 다른 신자들과 함께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되어 있다.
다만 1주에 한번 금요일 정오에는 신자가 한자리에 모여 예배를 거행하게 되어 있다. 이 합동예배는 '이맘'의 인도하에 행해지며 평소의 예배외에 설교사(대개는 이맘)가 신과 무하마드를 찬양하는 정해진 문귀를 외기도 하고 세상사나 일반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논하기도 한다. 예배는 메카의 카바신전을 향해 거행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그 방향의 벽에는 '마흐랍'이라고 불리는 장식된 벽감이 마련되어 있어 카바가 있는 방향을 곧 알수 있게 되어있다. 또 한층 높은 곳에서는 금요일의 공식예배때에 사용되는 설교단이 있고 안뜰에는 목욕을 위한 맑은 물을 공급하는 샘이 있다.
3. 희사(almsgiving, Zakat)
무슬림들은 자기가 가진 소유물의 일부를 남에게 나누어 주면 나머지 재산은 정화된다고 믿고 있다. 희사에는 자유의사에 의해 하는 '사다까'와 제도적인 '자카트드'의 두종류가 있다. 자카트는 세금이 아니고 '신에 대한 대여'라고 되어 있었으나 실제에 있어서 국가에 의해 징수되고 이슬람을 위해 갖가지 목적에 사용되는 일종의 세금이다. 이 돈은 빈민이나 과부 또는 고아를 구제하고, 노예가 자유를 사서 해방되는 것을 돕고, 성전을 위한 병사를 양성하는데에 사용되어진다..
자카트의 납부는 그 사람의 재산의 성격에 따라 화폐 또는 곡물, 동물, 귀금속등의 물품도 무방하다고 되어 있다.
4. 단식(fast, Sawn)
코란은 단식에 대하여 "너희들 믿는 자여, 단식도 너희가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규율이다. 너희보다 앞선 시대의 사람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규율을 잘 지키면) 틀림없이 너희들도 정말로 신을 외경하는 마음이 우러 나올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라마단’이란 아랍어로 ‘타는 듯한 더위와 건조함’을 뜻하는 ‘라미다(ramida)’ 또는 ‘아라마드(arramad)’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뜨거운 태양으로 마르다 못해 좍좍 갈라진 땅바닥과 같은 상태를 설명할 때 사용된다고 합니다. 라마단이란 금식으로 인한, 위에서 느껴지는 타는 듯한 갈증과 고통’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단식기간은 이슬람력 9월인 라마단이다. 라마단은 무하마드가 코란의 계시를 최초로 받은 달이며 예언자의 군대가 바드르에서 꾸라이쉬족을 무찔러 메카의 적에 대한 첫승리를 거둔 달이기도 하다. 이슬람력은 음력이기 때문에 태양력을 기준으로 본다면 라마단 달은 일년중 어느 계절이나 될 수 있다. 따라서 불볕이 내리쬐는 한 여름에 굶주림과 목마름에 고생하지 않으면 안되는 가혹한 사태도 일어난다. 어린이, 병자, 오랜 여행을 하고 있는 자를 제외한 모든 무슬림은 이 단식의 의무를 행해야 한다. 단식에는 라마단 30일 동안 낮 시간이 모두 해당된다. 동이 트기 전에 무슬림들은 북이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 뾰족탑에서 들려오는 낭랑한 부름소리 등의 신호에 따라 깨어난다. 침대에서 일어나면 최후의 가벼운 식사를 든다.
그리고 '흰 실과 까만 실'이 분간이 될 정도로 밝았을때부터 해가 질때까지 일체 음식을 금하고 이성접촉되 피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그 단식 기간중에도 손을 쉬게 하지 않고 경건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평소와 조금도 다름없이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숱한 반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무슬림에게 라마단은 오히려 사랑받는 달로 되어있다. 원래 무하마드는 극단적인 금욕주의에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단식이 인간의 욕망에 대한 벌로 간주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배와 마찬가지로 인간을 신에게 접근시키고 음식물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생활보다 더 깊은 곳에 정신적인 생활이 있음을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엄격하게 규제된 낮시간이 끝나고 밤이 되면 사람들은 명랑하게 떠들어 댄다. 시보계의 알림소리, 후세에 와서는 포성이 신호가 되어 낮동안의 가혹한 시련이 끝났음을 알리게 되면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은 완전히 축제 기분이 된다. 단식의 고통이 끝난 맨 처음에 입에 들어가는 것이 대추야자 소량과 정력 회복을 위한 음료이다.
현재 널리 마셔지고 있는 것은 말린 살구로 만든 셔어벱같은 음료로서 '카마르 알 디인'(종교의 달)이라는 멋진 이름이 붙어 있다. 이러한 입맛 돋구는 것을 먹은 다음에 사람들은 안타까지 기다리던 식사를 시작한다. '아프타르'라고 불리는 이 저녁 조반은 몇 사람이 모여 함게 식사를 한다. 식사가 끝나더라도 곧 잠자리에 드는 사람은 없다. 시장이나 크고 작은 거리는 밤새 사람으로 붐빈다. 어린이들은 즐거운 듯이 조그만 초롱불을 들고 어둠속을 달리며, 초롱불의 숫자를 늘리기 위해 어른들에게 돈을 달라고 졸라댄다. 모스크에서는 많은 신자들을 앞에 놓고 거룩한 달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설교가 행해지고 모스크 밖에서도 갖가지 행사가 베풀어진다. 마술사는 요술을 보여주고 곡예사는 공중회전을 하고 시인이나 만담가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든다.
라마단의 단식은 명랑한 축제가 절정을 이룬후 그 막을 내린다. 이 축제는 3일간 계속되며 사람들은 새 옷을 입고 친구들과 서로 끌어안고 축복의 말을 교환하고 축제를 위한 특별한 요리가 만들어진다. 설탕을 바른 얇고 작은 팬케익, 풍미있는 과자, 말린 과일등이 메뉴이다. 요리는 지방과 가정형편에 따라 다르지만 어떤 것이 나오든 그것은 신에게 접근하는 특별한 달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알맞은 것이다.
5. 순례
순례는 아랍인의 전통이었던 매우 중요한 습관으로서, 모든 무슬림은 여유가 있는 한은 모두 일생의 한번은 예언자가 최초로 계시를 받은 메카로 거룩한 여행을 할 의무가 있다. 메카, 그리고 카바신전에의 순례는 '핫지'라고 불리며 12년중 어느 계절에 해도 뜻있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정규적인 순례는 1년에 1회 라마단의 2개월 후인 '둘 힛자'의 달에 행해진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핫지는 이슬람 특유의 힘이 되었다. 전세계의 원근 각지에서 무수한 신자들이 메카로 모여듦으로서 이슬람교에만 모여들 수 있는 동포애가 그들 사이에 싹터갔다. 순례자는 모두가 같은 복장을 하고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신자들에게 신 앞에서는 만민이 평등하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또 순례 때문에 다양한 지역에서 온 갖가지 사람들이 서로 접촉하게 되어 문화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이것이 이슬람 제국을 통일하고 강화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무슬림들에게 있어서 핫지의 여행을 떠날 때와 귀환할 때만큼 감동에 찬 순간은 없다. 순례를 가지 않은 자에 있어서도 그 기분은 마찬가지 이다.
이슬람 전토의 방방곡곡에서 사람들은 이 기념할 만한 시간을 의식으로써 경축하고 깊은 감동에 휩싸인다. 무슬림의 대부분은 거룩한 여행을 위해 일생동안 돈을 절약하여 저금한다. 순례자는 메카 근처에 도착하면 머리 꼭대기에서 발톱 끝까지 전신을 샅샅이 청결케 한다. 그 후의 수일은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안되어 신체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때를 경계로 하여 수염을 깎는 것, 머리를 깎는 것, 손톱을 깎는 것, 이성과의 접촉은 일체 금지된다. 이러한 청결의식이 끝나면 남자 순례자는 평소에 입고 있던 옷을 벗어버리고 바느질을 하지 않은 두장의 길고 흰천을 한 장은 허리둘레에, 한 장은 두 어깨에 감는다. 여자는 보통 흰 무지의 옷을 입는다. 이 특징있는 옷으로 갈아 입을 때에는 특별예배와 신의 명령을 받들어 "이곳에 왔습니다."라는 뜻으로 순례 낭송(탈비야)을 한다.
메카에 들어간 순례자는 곧장 카바신전으로 가서 '검은 돌'에 입을 맞춘다. 그후 신을 찬양하는 각종 기도문을 외우면서 신전주위를 일곱 번 돈다. 다음에 가까이 있는 두 개의 작은 언덕 사이를 일곱 번 달려서 왕복한다. 이것은 이슬람 이전부터 있던 순례의 오랜 관습이다.
믿음, 예배, 희사, 단식, 순례로 이루어지는 이슬람고의 다섯 기둥은 무슬림의 행동을 규제하는 복잡한 이슬람법의 근간이다. 실상 "샤리아'(따라야 할 밝은 길)라고 불리는 이 법체계는 어쩌면 이슬람 사회의 가장 특색있는 면이라고 할 수 있다. 법과 종교가 분리되어 있는 서구문화와는 달리 이슬람사회는 이 두가지를 하나의 규범체게 속에 짜넣고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를 인간과 신과의 관계와 동일한 차원에서 다루고 있는 것이다. 샤리아의 근원은 코란, 유추(과거의 결정을 토대로 내리는 결정), 합의(이슬람 사회 전체를 대표하는 종교학자들의 결정을 다수로 하는 의견), 전승(예언자에게 귀일되는 갖가지 행동과 말)의 4가지 이다. 이 중에서 무슬림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전승(하디스)이다. 모든 신자가 예언자의 본을 따를 것을 일상생활의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교가 발전되어감에 따라 복잡한 문제가 생기고 게다가 코란에서 그 해결책이 발견되지 않았을때에는 전승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하는 것이 그들의 습관이다.
무슬림에게 부과되는 의무와 규율의 몇가지는 설사 독단적이고 가혹한 일면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무슬림의 행동을 지배하고 있는 교리는 모두 이슬람 특유의 신앙체계의 불가결한 일부를 이루고 있다. 그 신앙체계가 시대을 초월하여 정확한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것이 무슬림을 위하여 만들어졌고 또 큰 성과를 올려 왔기 때문이다. 이슬람교는 수많은 무슬림의 한 사람 한사람에게 정신적인 사회 생활을 말할 것도 없고 경제적, 정치적 생활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활의 거점을 부여하고 그들이 그들의 세계와 조화를 이루면서 살고, 또 안락하게 죽음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와 함께 중요한 것은 이 체계가 이슬람 전체에 부여한 심대한 영향이다. 이슬람이 아라비아에 대두하여 급속히 그 판도를 넓히고 아라비아 세계의 대부분을 변화 시킬 수 있게 된 것도 이 체계의 힘 덕분이었던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무슬림의 실천 의무 항목은 대단히 광법위하다. 독선적인 인격의 소유자라면 매일의 기도생활, 금식, 성지순례, 돼지고기 안먹기 그리고 이슬람이 요구하는 모든 의무조항들을 준수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하마드가 아니고 우리 예수님께서는 "거듭나지 않고는 아무도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셨다. 그렇다. 그렇다. 이슬람교의 의무들을 형식적으로 실천하는 외형적인 면보다는 오직 마음이 청결한 자만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이다.
✾ 이슬람의 근본주의 배경 ✾
이슬람근본주의는 이슬람 교리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공동체와 국가의 기반이 돼야 한다며 모든 분야의 이슬람화를 추구한다. 서구의 세속·물질주의를 강하게 거부하고 서구의 제도와 사상을 빌려오지 않아도 이슬람 교리에 따라 이슬람 공동체 건설이 가능하다고 여기는 이들을 서구에서 이슬람근본주의라고 이름 붙였다.
서구 제국주의의 지배에서 벗어나 이슬람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폭력에 기대는 급진파가 생기기도 했지만 이슬람근본주의도 기본적으로 평화와 형제애를 강조하는 교리처럼 무모한 폭력을 배격한다. 1941년 `자마아티 이슬라미'를 창설해 인도와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등에 강한 영향을 끼친 인도의 알 마우두디가 정리한 `지하드'(성전)라는 개념도 이교도에 대한 무력투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는 지하드를 이슬람인의 의무인 신앙행위로 규정하며, 지하드는 연설·교육·자금 제공 등 여러 단계를 거치고 무력투쟁을 마지막 방법으로 말하고 있다.
지하드를 무력투쟁으로 보는 서구의 편견은 상당 부분 근본주의 조직에서 갈라져 나온 알-지하드 등 급진적 무장세력의 테러공격 등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이들까지 이슬람근본주의로 뭉뚱그려 부르기 때문에 둘 사이의 구분이 사라져 이슬람근본주의라면 테러 등을 떠올리게 됐다.
무장세력들은 서구적인 삶과 문화에 등을 돌리고 조직원을 점조직화해 비밀장소에서 훈련시킨다. 이들한테는 이슬람에 대립하는 서구와 이스라엘 등이 존재하는 곳이 전쟁터가 된다. 이슬람법(샤리아)에 기초하지 않는 이슬람 정부도 타도해야 한다. 미국 세계무역센터 동시다발 테러의 용의자로 지목되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은 자신들의 공격이 “한쪽에서는 `테러'가 되고 다른 쪽에서는 `지하드'가 된다”고 정당화한다.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 남쪽에서 154㎞ 정도 떨어진 파키스탄과의 국경지대에 있는 `자와르 킬리 알-바드르' 캠프는 최대의 수니파 이슬람교도 훈련시설로 알려져 있다. 무장요원 훈련시설은 물론 군수품 기지 등을 갖추고 있어 `테러대학'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옛 소련의 공격이나 1998년 미국의 미사일 공격도 버텨냈다.
어떻게 종교의 이름으로 비극적인 일을 자행할 수 있는가?
지난 9월11일 미국의 테러가 발생한 이래 많은 사람들이 이 같은 질문을 갖고 있다. 너무나 흉악하고 잔인한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망연자실할 그 충격을 소화해 내지 못했다. 물론 그리스도인 역시 마찬 가지겠으나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살피면서 지혜를 구해야 한다.
"왜 너는 네 형제의 눈 안에 있는 티끌을 보면서 내 자신의 눈에 있는 통나무는 보지 못하느냐? 위선자들아 먼저 자신의 눈에 있는 통나무를 빼낸 다음에야 맑은 눈으로 네 형제의 눈에 있는 티끌을 뽑아낼 수 있다."
불행하게도 교회의 역사 속에는 기독교의 이름으로 흉악한 일들이 자행되는 것이 너무나도 많이 반복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이 노골적으로 예수님의 가르침과 모본을 따르지 않은 가장 흉악한 경우는 바로 중세의 십자군 전쟁이다. 그리스도인이 "거룩한 전쟁"을 부르짖으며 기독교와 이슬람이 성지라고 부장하는 예루살렘을 빼앗기 위해 수 많은 무슬림을 야만스럽게 고문했으며, 살해했다.
이슬람을 평화를 사랑하는 종교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많은 무슬림은 평화를 사랑하는 무슬림이며, 이슬람은 평화를 사랑하는 종교이다. 이제 무슬림의 테러 신봉자들이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 시키는데 사용하는 이슬람의 유산 안에 담겨져 있는 두 가지 경우를 살펴보자.
첫째, 무하메드는 고향인 메카(Mecca)를 정복하기 위해 종자 말을 타고 손에 칼을 들고 무력을 사용했다. 대조적으로 예수님은 세상의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한 죽음을 위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 가셨다. 여기에 기독교와 이슬람의 다른 점이 있다. 예수님은 도덕적인 확신 위에 시작되었으나, 이슬람은 시작부터 칼을 사용했던 것을 묵과하면서 시작했다. 역사적으로 모든 무슬림이 이를 이용하지는 않았다. 다행히도 많은 현대 무슬림은 무력 사용을 억제하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은 만약 필요한 경우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무력 사용을 인정하는 종교이다.
둘째로 이슬람의 신앙은 악한 싸움을 부추기는 잠재력으로 지니고 있다. 최소한 대중적인 이슬람의 신앙은 선한 일을 통해 구원 받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무슬림은 천국의 보장이 없으나, 만약 무슬림이 지하드(Jihad)에 참여하다가 목숨을 잃을 경우 그에게 천국이 보장된다. 이슬람 사전에 의하면 "지하드(Jihad)는 순수한 헌신적인 행동이며, 천국에 들어가는 문 중의 하나이다. "풍성한 천국의 상은 자신을 지하드에 헌신하는 자에게 보장되며 믿음으로 순교를 당한 자에게 보장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이슬람의 믿음에 미혹된 세계 무역센터와 국방성건물에 충돌했던 테러범들은 자신들은 미국을 대항해 "거룩한 전쟁"에 헌신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들은 자신들이 이교도 및 온건한 무슬림 정부를 대항하는 거룩한 전쟁에 헌신했다고 믿었다. 따라서 이들은 천국을 얻기 위해 자신들의 삶을 희생하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이렇게 비극적인 사건이 세계 전망을 산산 조각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테러범들의 세계를 향한 관점은 근본주의 이슬람으로 제한되었으며, "이슬람"과 "이교도"란 제한된 시각이 이번과 같은 비극을 자아냈다.
질문 : 대부분의 무슬림이 미국을 대항하는 거룩한 전쟁에 동조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이슬람에는 자유주의, 온건주의, 보수주의, 비폭력 근본주의, 이번 테러를 동조하는 근본주의 등 많은 부류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반듯이 대부분의 무슬림과 폭력적인 혁명을 주장하는 소수 무슬림을 구분해야 한다. 이슬람의 급진적인 분파와 주류를 구분해야 한다. 근본주의 테러범들은 이슬람의 암적인 존재와 같다. 따라서 모든 무슬림이 테러범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미국의 모든 백인 그리스도인이 극단적인 백인주의를 고집하는 신나치주의 KKK(Ku Klux Klan)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그러한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세계의 대부분의 무슬림은 미국의 대항하는 거룩한 전쟁에 가담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평화를 사랑하며, 법을 존중하고, 좋은 이웃인 온건주의자들이다. 이들은 테러주의에 가담해 있지 않으며, 많은 무슬림 나라들은 테러를 대항하는 국제연합에 가담해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평화주의자로 응답해야 하며, 우리의 무슬림 이웃과 평화를 유지해야 하는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