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너무 어렵다”는 말이 유행한다. 이라크 전쟁 등으로 인한 政治的 不安과 經濟 不況으로 너 나 할 것없이 모두 어려운 때를 살고 있다.“지금이 고비다”는 말들이 많이 나온다. 그렇지만 가장 어려운 때를 지혜롭게 극복하면 또 좋은 때가 올 것이다.
오늘 말씀은 어려운 일로 힘들어 하는 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여호와 라파”곧“치료하시는 하나님”에 말씀을 드리겠다.
1. 마라의 쓴물
*22-23절➮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 서 거기서 사흘 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2-23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을 향해 행군하던중 광야에 들어가게 되었다. 광야 여행에서는 물이 제일 중요한데 물이 떨어졌다. 물이 떨어진지 사흘이 되어서야 샘물을 찾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 샘물은 악취가 나고 너무 써서 먹지를 못했다. 그래서 그 샘물의 이름을“마라”라 하였다.
(1). 광야의 인생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심을 따라 廣野까지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광야의 길에 꼭 있어야 할 물이 떨어졌다. 人生을 살다보면‘광야와 같은 인생’을 겪게 된다. 또한 꼭 있어야 할 물이 떨어지는 것처럼 인생에 있어야 꼭 있어야 할 것이 없어서 고통을 겪기도 한다. 인간은 약하다.
인생길이 광야길을 걸어야만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축복의 땅을 향해 나아가지만 홍해를 만나기도 하고, 척박한 광야길을 걸어야 할 때도 있고, 식량이 떨어지거나 물이 떨어지는 것처럼 생필품마저 떨어지는 극한의 어려움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광야길을 걸어야만 하고 아무리 힘겹다할지라도 살아야만 한다.
아무리 험한 인생길이라도 절망하거나 그 생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2). 마라의 쓴물은 인생의 고통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千辛萬苦 끝에 샘물을 찾았으나 그 샘물에서는 악취가 나고 너무 짜서 먹지 못하였다. 그래서“마라의 쓴물”이라 했다.‘마라’란 말은“쓰다· 괴롭다”는 뜻이다. 人生旅程에는 마라의 쓴물처럼 苦悲와 苦痛의 때가 찾아오기도 한다. 그래서 인생살이를“塞翁之馬”라 했다. 순탄하던 삶이 어느 순간 고통의 삶으로 바뀔 수가 있다. 인간이 아무리 뛰어난 靈物이라해도 문제 앞에서는 약하디 약할 뿐이다. 작은 문제 앞에서도 쓰러져간다.
이스라엘 백성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약속의 땅을 향해 전진하던 중 마라의 쓴물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가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세우고, 꿈을 가지고 한걸음 한걸음 전진할 때에 마라의 쓴물을 만날 수 있다. 인생 여정이 그렇다. 살다보면 우리가 원치않는“인생의 고통”이 찾아온다. 그때는 누구나 고통을 겪는 것이고 아프고 힘든 것이다. 그 쓰디 쓴 마라의 쓴물이 어떤 사람에게는 좌절의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축복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인생의 고통이 꼭 절망을 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앞에 찾아온 고통의 때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그 고통이 “축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연약한 인생 앞에 하나님이 필요하다. 험한 세상을 살아야만 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2. 마라의 쓴물 앞에 나타난 2가지 반응
광야의 여정은 누구에게나 힘겹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마라의 쓴물은 누구에게나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문제 앞에서 반응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 마라의 쓴물 앞에서 2가지 반응은 어떻게 나타났는가?
(1). 마라의 쓴물 때문에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들
*24절➮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4절을 보면, 물이 떨어지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원망하였다.
마실물조차 구하지 못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不評부터 하였다. 그들의 불평은 처음이 아니었다. 그들이 홍해에 직면했을 때에도 모세와 하나님께 불평하였다. 더군다나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어 기적적으로 바다를 건너 생명을 건질 수 있었던 기적을 체험했었으면서도 어려운 일이 발생하자 또다시 불평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문제가 터지면 불평부터 하는 사람이 있다. 작은 역경에 부딪칠지라도 불만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落心하고 挫折부터 한다. 불평부터 하는 사람에게는 믿음이 아무런 역할을 못한다. 불평하는 사람에게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다.
(2). 마라의 쓴물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한 사람
*25절➮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25절을 보면, 다른 사람들이 불평하고 원망할 때에 모세는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평하고 불평할 때에 하나님께 기도했던 사람은 모세였다. 모세도 사람이기 때문에 백성들과 함께 불평하고 백성들에게 분노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모세는 문제 앞에서 불평을 접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고통의 환경을 만날 때 모두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은 아니다. 고통의 환경을 만났다고 모두 야단법석을 떨며 좌절하지 않는다. 남편이 無能力하다고 離婚하는 아내도 있지만 그 무능력한 남편을 위로하며 용기를 주며 가정을 지키는 아내도 있다. 남편이 큰사고로 몸져 누웠을 때 남편을 버리고 떠나는 아내도 있지만 不具者 남편 곁에서 끝까지 병간호해주는 아내도 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서 불평이 앞서는가? 아니면 모세처럼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으로 서 있는가? 不評 대신에 祈禱하라. 고통의 순간에 불평하기보다는 모세처럼 기도하는 믿음을 가지라.
(3). 기도하였을 때 기적이 일어났다.
*25절 중간을 보면, 모세가 문제 해결을 위해 기도를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나무를 물에 던지라”는 말씀을 하셨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였더니 쓴물이 단물로 바뀌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한 사람 모세를 보시고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셨다. 기도는 쓴물을 단물로 바꾸는 기적을 이룬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한 사람에게 감동하신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모세에게 기적을 일으켜 주셨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기적을 행하신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일어나게 한다. 기도는 고통의 환경을 축복의 환경으로 만든다.
한 두달 전에 라디오 ⌜극동방송국⌟을 통해 자동차 화재로 전신화상을 입은 이지선자매의 신앙간증을 들었다. 그러던중 지난 주에 KBS2 ⌜인간극장⌟에서 그녀의 모습을 보았는데 누구나 그녀의 모습을 본다면 아주 놀랄 것이며 안타까움이 클 것이다.
이재근이란 오빠와 여동생인 이화여자대학교(유학교육과) 졸업을 앞둔 미모의 여대생 이지선이 함께 2000년 7월 30일 밤 자동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던중, 한 음주운전자가 모는 자동차가 6중 추돌의 대형 교통사고를 냈다. 이 사고로 그녀의 자동차에 불이 붙었는데 오빠는 빨리 탈출했는데 여동생은 불타는 자동차 안에 갇혔다. 오빠가 손에 화상을 입어가면서까지 여동생을 끌어내어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갔지만 의사들은 사형선고를 내렸다. 부모는 딸의 목숨만이라도 살려내려는 헌신으로 기적적으로 목숨만을 건질 수 있었다.
의사들마저도 포기해버렸던 이지선자매는 일본화상전문병원에서 11차례의 큰 수술과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았지만 그녀의 몸은 전신 55%의 火傷을 입어 얼굴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만큼 흉측한 모습으로 변했고 양손의 손가락까지 절단해야했다.
화상을 입기 전에는 너무 예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지금처럼 처절하게 변한 자신에 대해 원망할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그녀도 처음에는 自殺을 생각했고 절망했었다. 그러나 가족들의 헌신과 기도로 그녀는 지금 웃음을 찾았고,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고 있다. 그리고 의사들이 “어떻게 그 얼굴로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겠느냐?”며 평생을 방에 갇혀 살 것으로 여겼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사람들 앞에 자신의 아주 흉한 얼굴을 당당하게 보여주며 밝게 살다.
욥이 절망적인 고통을 겪으면서 고백하기를,“내가 하나님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더니 이제는 눈으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욥 42:5)라 고백했던 것처럼, 이지선자매는 “이 큰 고통을 겪고나서야 비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습니다.”라 고백하였다. 그녀가 말하기를,“어떤 사람이 제게 ‘기적이 있음을 믿느냐?”고 물었다. 나는 하나님의 기적을 믿는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뜻하시기만 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제 얼굴이 예전처럼 변할 수 있다는 기적을 믿는다. 그렇지만 전 세상 사람이 모르는 기적이 제게 일어나고 있다. 自殺을 생각했던 제가 하나님으로 인해 매일매일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셨고, 감사거리를 주셨으니 기적이다.“
그녀는“또 제게 어떤 시련이 올지 모른다. 그래도 지금 제 모습을 사랑하며 살겠다.”라 말 하였다. <이지선의 주바라기 : www. ezsun. net>
David은 고통의 문제가 생길 때면 항상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 부르짖어 기도하였다. 다윗이 고통의 순간마다 기도하였기 때문에‘용기’와‘희망’이 생겼고‘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았던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절망이 희망으로 바뀐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이 임한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문제 해결의 길을 열어주신다. 성도 여러분, 기도 대신에 기도를 앞세우라.
3.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시험하신다.
*25절 끝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시험하셨다.
‘시험하다’는 말은“test·proof"으로“증명한다· 점검한다·테스트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교육적인 측면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시험하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무사히 건너자 그들은 기뻐하며 춤추며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렸다. 그런데 그들이 기뻐하며 감사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놀라운 축복과 기적을 베풀어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진정으로 고통에 처할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감사하는 믿음이 있는가를 시험하시려고 그들을 ‘마라의 쓴물’로 시험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어렵고 고통의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믿음의 백성이 될 수 있는가 확인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시험하신 것이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지라도 너희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겠는가? 너희들은 어떤 고통이 찾아올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을 확신하는가? 세상의 험한 환경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살수 있는가?를 하나님은 test하신 것이다.
(1). 하나님께서 고통을 허용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고통의 땅 광야에 이끌어 訓練시키신다. 하나님은 그들을 고생시키지 않고도 축복의 땅에 입성시키실 능력이 있으시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연약한 花草가 아닌 비바람을 이긴 강하고 담대한 민족으로 만드시고자 그들을 광야학교로 이끄셨다. 그리고 거기서 철저히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고, 말씀을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이 된 후에야 축복의 땅으로 인도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쓴물을 맛보게 하신 후에야 단물을 경험하게 하신다. 인생의 쓴맛을 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의 달콤함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시험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무조건 형통하게 하지 않으신다. 험난한 人生을 살아가야하는 당신의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서 고통이라는 환경을 통해 시험하신다. 하나님의 시험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복되게 하시려고 주는 시험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2). 고통은 하나님의 또다른 축복이다.
세상에는 고통이 전혀 없는 사람도 없고 늘 고통만 당하는 사람도 없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고통이 축복의 기회로 바뀌는 기적이 반드시 일어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고통이 결코 저주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믿음의 사람에게 있어서 고통은 또다른 하나님의 축복이다. 왜냐하면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과 기적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고통을 반드시 선으로 변화시켜 주신다. *롬 8:28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했다.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고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다. 거기다 보디발의 집에서 주인의 신임을 받고 가정총무로 인정을 받았으나 보디발의 아내의 간계로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감옥에 갇힌 요셉에게 왕의 신하를 만나게 하여 끝내는 애굽 왕을 만나게 함으로써 애굽의 총리로 등극하게 하셨다.
성도가 겪는 고통은 그 고통이 어떠하든지간에 무의미하거나 고통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겪어야 할 고통이라면 그 고통을 축복의 기회로 선용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어떤 고통이라도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선하게 만드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찾아온 고통을 선하게 다르신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고통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고통을 반드시 선으로 변화시켜 주신다. 하나님은 문제의 환경에서 고통당하는 우리를 무조건 건져주시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고통을 연단의 도구로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겪어야 할 고통이라면 겪게 하신다. 그러나 그 고통이 우리에게 유익을 주게 만드신다. 문제의 환경, 고통의 환경조차 하나님의 선한 의지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라!
누구에게나 고통 그 자체는 아품이지만 그 고통이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할 수 있는 축복의 통로가 됨을 믿으라!.
4.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시험하신다.
*26절➮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26절 끝을 보면, 하나님께서“너희가 나희 말을 청종하고 내 계명을 지키면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이라”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질병의 고통도 극복되고 치유하여 주신다는 것이다.
(1). 치료하시는 하나님 = 여호와 라파
하나님은 자신을“여호와 라파”즉“치료하는 하나님(Healing God)”이라 말씀하셨다. 치료하시는 하나님이란 말씀은 肉體的인 疾病만을 고쳐주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고통의 환경, 문제의 환경까지도 치료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병든 가정과 고통당하는 가정도 치유하시고, 병든 심령도 치유하시고, 병든 영혼도 치유하신다.
하나님은 고통 속에 처한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겪는 그 고통의 자리에 찾아오신다. 십자가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고통을 겪으심으로 우리를 치료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무너진 삶을 회복시켜 주시는 치료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겪는 모든 쓴물의 고통을 치유하시는 치료의 하나님이 되신다.
(2). 예비하시는 하나님
*27절➮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샘 열둘과 종려 칠십 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 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27절을 보면, 마라의 쓴물을 겪은 후에 70개의 야자수가 있고 샘물 12개가 있는 엘림의 오아시스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난 엘림의 오아시스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광야훈련을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위로하며 격려하며 안식을 주시려고 예비하시고 섭리하신 은총인 것이다.
엘림의 샘물은 마라의 쓴물이라는 시험을 통과한 백성들을 위해 예비하신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라의 쓴물을 겪게 되면 반드시 “엘림의 단물”을 만나게 하신다. 마라의 고통을 겪을 때는 엘림의 오아시스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이지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풍성한 엘림의 오아시스를 예비하고 계심을 알아야 한다.
(3). 보상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가 겪는 고통을 보상해 주신다. 시험 후에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복이 있다. 시험을 통과하면 반드시 보상이 따른다. 하나님은 우리가 겪는 고통을 보상하시는 선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훈련을 받은 만큼 그들의 미래를 축복하셨다. Jacob이 고통을 겪었으나 그의 미래는 축복의 삶으로 보상받았다. 하나님은 나와 여러분이 겪는 고통을 보상해 주신다. 당장 보상해주시기도 하고, 나중에 보상해 주시기도 하고, 내가 아니면 자녀에게라도 보상해 주신다. 혹 이 땅에서 보상을 받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의 나라에서 반드시 보상해 주신다.
지금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엘림의 오아시스는 존재한다. 고통은 반드시 끝나게 되어 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미래가 열려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지금의 고통을 소망과 비젼으로 견디라. 그러면 지금은 고통의 환경일지라도 연단 후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찾아온다.
고통의 환경은 영원하지 않는다. 역경은 반드시 끝이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온 역경을 축복의 기회로 만드심을 믿으라.
------------- 나오는 말.
우리는 우리가 겪는 고통의 의미를 모를 때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의미가 없는 고통이란 하나도 없다. 다시 말해 모든 고통 뒤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함께 아파하시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총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겪는 고통을 치료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