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라 성(Agra Fort, आगरा का किला)은 무굴 제국 시대에 지어진 대표적인 요새형 궁성 건축물 중 하나이다.
우타르 프라데시 주 아그라에 있으며, 타지마할에서 북서쪽으로 2.5km 떨어져있다. 붉은 사암의 성채와
내부의 하얀 대리석 건물이 어우러져 웅장함과 정교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붉은 요새’의 건축물이다.
1983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1565년 무굴 제국 3대 황제 악바르 대제 때 시공을 시작하여 일간 4000여명의 노동자가 지속투입, 8년간
공사 끝에 1573년에 완공되었다. 전체 380,000 m2(114,950평)넓이의 부지는 총 2.5km가 넘는 최대 높이
16~33m의 견고한 붉은 성벽으로 둘려쌓여 있다. 본래 방어 시설로서 출발했던 만큼 견고한 성벽과 해자,
누벽 등 당대 최고 수준의 방어 시설들이 여전히 건재하다. 아그라는 뉴델리, 자이푸르와 함께 북인도
여행의 골든트라이앵글(3대축)을 이루는 대표적인 관광지이다.(코인위키 참조)
아그라성(AGRA FORT). 서남쪽 문(Amar Singh Gate)으로 들어가서, 자한기르 궁전, 무삼만 부르즈, 디완 이
카스, 디완 이 암 순으로 보았다.
아그라성은 타지마할을 축조하면서 너무 많은 재정을 낭비한 샤 자한이 말년에 그의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유폐되었던 곳인데, 샤 자한은 야무나 강 너머의 타비마할이 가장 잘 보이는 무삼만 부르즈(Musamman Burj)
에 같혀 있다가 끝내 거기서 숨을 거둔 곳이다.
10:20 서쪽문 아마르 싱 게이트(Amar Singh Gate), 일명 악바르 문(Akbar Darwaza)에서 바라본 아그라 성(Agra Fort).
아그라는 '아리아인의 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성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해자를 지나야 한다.
첫번째 문을 지나면 두번째 문인 하티 폴(Hati Pol)이 나온다. 하티 폴은 코끼리 게이트로 두개의 높은 기둥이
문양쪽을 받치고 있어서 웅장하다. 너무나 웅장하여 카메라가 다 잡히지 않고 검색중이라 사진도 찍지 못하고 들어갔다.
이 문을 지나면 위에서 보는 아그라성으로 올라가는 완만한 경사로 이루어진 통로로 이어진다.
축조된 과정을 설명하는 안내자. 왼쪽 입구로는 소리의 울림으로 신호를 보내고, 적의 침입시 기름을 부어서 미끄럽게 하여 막았다고 한다.
냉방시설이나 천측, 건축물 하나하나가 그 시대에 어떻게 이렇게 건축하였는지 정말 지혜롭다.
이 문을 통하여 들어서니 자한기르 궁전 앞 뜰이 훤하게 보인다.
자한기르 마할 궁전(Jehangiri Mahal Palace)
자한기르 욕조(Hauz-i-Jahangiri), 욕조 가장자리에 페르시아어로 새져졌다.
자한기르 궁전 앞의 정원 한가운데 돌을 깎아 만든 반구형 석조가 있다. 높이가 1.5m, 지름이 2.4m인 이동용
목욕탕으로 황태자였던 자한기르가 이곳에서 장미수(Rose Water)로 목욕을 했다고 한다.
자한기르 궁전 입구. 여기 문 위에 유대인과 유대교를 상징하는 표식인 다윗의 별(다윗 왕의 방패) 문양은 왜 있는지 정말 모르겠다.
악바르 대제가 융합종교로 자한기르를 나은 이슬람교 부인과 기타 기독교 부인 등을 위해서 표시한 것 인지.
자한기르 궁전은 인도양식(힌두)과 중앙아시아(아프칸)양식이 결합되었다고 한다.
대칭, 개방, 기하학적 문양, 건물위의 차트리 등이 특징이라고 한다.
모든 건축이 대칭적이고 직각이다. 그리고 그 벽에는 정교한 문양의 조각이 가득하다.
관광을 나온 인도인과 어울려 그 시대의 사람들로 돌아가 본다.
이곳의 벽은 온통 금으로 덮혀 있었으나 영국군이 다 벗겨 갔다고 한다. 온통 검게 그을렸는데 불을 지펴 금을 녹여서 가져 갔단다.
그래도 인도인들은 파키스탄인 보다 영국인은 미워하지 않는다니 .....
아름다운 문양과 조각은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어떤 건축가들은 이 궁전의 특징을 단순, 명료, 완전성이라는 표현을 한다는데
작은 실내 경관이지만 너무나 아기자기하게 잘 표현한 건축물이다.
여름에 물을 흘려 보내 냉방을 하였던 시설로 물을 과학적으로 이용한 지혜가 경이롭다. 자이푸르 암베르성
에서도 비슷한 냉방 시설을 보았다.
이제 자한기르 궁전을 떠나서 1627년 자한기르의 뒤를 이어 샤 자한이 등극하게 되는데 샤자한은 북쪽에
흰 대리석 궁전을 짓게 된다. 카스 마할, 디완 이 카스, 디완 이 암이 주요 건축물인데 이제 그곳으로 이동한다.
자항기르 궁전에서 무삼만 부루즈 건물로 이어지는 곳에는 경계벽이 나온다. 더운 날씨에 그늘이 져서
쉬기에 참 좋아 관광객들이 그늘로 피하며 구경을 한다.
야무르 강 아래 2.5km 정도 떨어진 곳에 타지마할이 자리잡고 있다.
자한기르 궁전과 아그라성 전체는 붉은 사암이었지만 이곳은 흰 대리석이다.
무삼만 부루즈 옆 건물 앙구리 박,Anguri Bagh)로 무삼만 부르즈 건물 보다는 화려하지는 않다.
앙구리 박(Anguri Bagh)과 카스 마할(Khas Mahal).
왼쪽 샤 자한이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유폐되어 8년간 보낸 포로의 탑이 보인다. '포로의 탑'은 8각형의 커다란 탑으로,
탑아래 타지마할을 바라보고 있는 무삼만 버즈(Musamman Burj)는 샤 자한이 왕권에서 축출된 후 살았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정원이 너무나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정면에서 또 한장
이곳은 무슨 감옥이었다나?
분수대
무삼만 부르즈(Musamman Burj)내부
샤 자한이 말년에 같혀 지낸 아그라 성 안쪽 별궁의 무삼만 부르즈(Musamman Burj)
샤 자한(1592년1월5일~1666년1월22일)은 1627년에서 1658년까지 무굴제국의 5번째 황제였다. 무굴제국
의 라흐르(오늘날 파키스탄)에서 탄생하여 황제가 된 후 지구상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사람으로 300만km²
의 영토를 재패하고 타지마할 등 수 많은 아름다운 건축물을 남겼다.
1658년 샤 자한이 병에 걸리자 그의 아들 아우랑제브는 샤 자한을 아그라 성 무삼만 브루즈(Musamman Bruj)
에 감금하고 8년간 죽을 때까지 두었다. 2.5km 떨어진 그의 사랑하는 아내 몸타즈 마할을 위하여 건축한 타지
마할을 바라보며 그녀를 그리워 하다가 1666년1월22일 사망하여 그녀가 잠든 타지마할 영묘로 돌아갔다.
사실 그의 사랑하는 아내 몸타즈 마할(1593년4월27일~1631년6월17일)은 19년동안 14명의 아들을 낳았다는
데 그녀가 죽고 나서도 36년동안 그토록 사랑한 샤 자한이 더욱 돋보인다. 고려 공민왕의 왕후 노국공주가 이와
비슷한데 그는 아이를 낳다가 아이와 같이 죽은 기록과 비유된다.
한 시대의 부귀영화도 한날 물거품과 같으나 그의 치세와 사랑은 오래도록 남아 보고가는 우리를 숙연케 한다.
건물에서 내다본 정원쪽
내외부 조각하나하나가 너무나 화려하다.
샤 자한이 갇혀서 살았던 곳에서 바라본 사랑하는 아내가 묻힌 타지마할을 바라보니 그의 생각을 이해 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아마도 맑은 정신이었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정말 병이 들고 노쇠하였다면 어쩌면 무덤덤 했을지도 모르겠다.
샤 자한은 죽은 후 그의 유언대로 관에 안치되어 강을 통해 타지마할까지 운구된 뒤 뭄타즈 마할 옆에 안치되었다고 한다.
정말 화려하다. 인도사람들은 많은 사람(친족)들이 다닥다닥 붙은 방에서 살아갔나보다. 어느 성을 가도 작은 방들이 붙어 있다.
샤 자한과 뭄타즈 마할이 처음 만났던 나기나 모스지드(Nagina Masjid)의 정원. 나기나 모스지드는 여성 전용 시장 바자르라고 한다.
영국 침략시 영국군함으로 부터 쏜 포탄이 왕이 앉던 평상에 맞은 후 건물로 튕긴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디완 이 카스에서 바라본 마치 바완(Machchi Bhawan)
정말 아름답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조각이나 건축에 조예가 깊다면 볼 것이 더욱 많을 것 같다.
회랑위의 조각.
궁녀들의 거주지 나기나 모스지드의 아름다운 회랑. 백색 대리석으로 건축된 모티 마스지드는 진주 모스크라는 이름처럼 주옥같은 진주와 같다.
이 곳은 무굴 건축양식의 특성을 잘 나타낸 곳이라 한다.
왕의 공식 접견장 디완 이 암(황제의 외부 접견실). 디완 이 암은 왕이 머무는 동안 일반인이 참가하는 공식인 행사장으로 왕은 위에
이곳 위에 앉고 사신이나 신하들은 아래에서 무릎을 꿇고 접견을 받았다고 한다. 뒷쪽의 조각은 대리석을 파낸후 돌가루와 보석가루를
사용한 상감기법을 활용하여 오랜 세월이 흘러도 색상의 변화가 없이 정교하며 세밀하여 정말 아름답다.
디완 이 암 회랑은 즐비한 즈아치기둥 안으로 공간이 개방적으로 건축되었다. 내부 장식은 디완 이 카스나 타지마할처럼 화려하지 않고
단순하지만 시원스럽고 안온한 분위기가 난다. 무굴제국 당시에는 보석으로 화려하게 치장하였으나 인도 독립전쟁중 많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디완 이 암 앞의 무덤. 인도 북서부 지방을 다스리던 부총독 존 러셀 콜빈의 무덤(John Russell Colvin's Grave)
1857녕 인도 제1차 독립전쟁시 아그라성에 죽었다고 한다.
다시 외부 뜰로 나와서 우리가 입장했던 곳으로 향한다.
12:00 이제 아그라성 관람을 마치고 호텔로 가서 점심을 가진후 계속 뉴델리로 이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