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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통 늙은이
노르떼 길에서 난이도(dificultad) '상'으로 알려져 있는 데바 ~ 마르키나.
이미 지적한 대로 가이드 책자 마다, 이정표 마다 각각인 21.3km~25km.
새벽같이 서두르고 있는 것은 까미노 엿새 째지만 완벽하게 적응되었다고 할 수 없는 몸에는
무리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늙은이에게 체력면에서는 격세의 세월 4년이 흘렀다 하나 정상적인 컨디션(condition)이라면
문제될 리 없는 거리지만.
데바 역(Euskotren) 철길을 건너(across) 데바 강을 거슬러 가다가 강을 건넌(다리) 노르떼
길은 강과 바다를 등지는 지점까지 잠시 강 따라 내려간다.
바다를 등진다는 것은 바스크 자치지방에서는 바다와 만나는 일이 다시는 없음을 의미하는데
순례자는 이 지점에서 택일의 고민을 해야 한다.
아스띠가리비아(Astigarribia)-아빠인(Apain) 길과 깔바리오(Calbario)-아빠인 길 중에서.
전자는 오래되고 전통적인 길이기는해도 이정표가 부실하고 후자는 거리가 조금 짧고 오르는
길이 완만하며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 현재 선호하는 길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소개장을 읽고 별난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전자를 택하겠는가.
근래의 발자국은 없고 흔적만 희미하게 남아있다는 길 아닌 길을.
아무도 걷지 않는다면 이미 길이 아니다.
자연으로 돌려줘야 하며 자연은 강한 복원력으로 쉬이 치유를 완료할 것이다.
고령 순례자가 워낙 희소해서 까미노 안팎 많은 사람의 회자거리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별나지 않고 보통 늙은이일 뿐인데 이런 내가 갈 길은 뻔하지 않은가.
부스띠냐가(Buztinaga)를 지나 해발250m쯤의 깔바리오 데 마이아(Maia)로 오르는 후자였고
곧바로 오르기를 시작했다.
이른 아침부터 풀을 뜯고 있는 목장의 소떼가 행복해 보였다.
너른 초원에서 아무의 간섭도 받지 않고, 이른 아침부터 싱싱한 꼴로 배를 불리며 태평세월을
구가하는 저놈들은 복받은 짐승들임이 분명하지 않은가.
마이아산(?)을 향해 오르는 길에서는 뒤로는 데바가 보이고,우로는 무뜨리쿠(Mutriku)의 떼로
정박 중인 요트와 어선들이 시야에 잡힌다.
간벌 공사 또는 수종 교체(?) 작업 등 산판(山坂)으로 인해 시야가 확보된 덕?
더 오르면 깔바리오 예배당(Ermita del Calvario)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길이 까미노 임을 입증하는 교회다.
GI-3230도와 교차하는 지점를 가로지르고 데바에서 갈라진 두 길이 합치는 아빠인(해발 338
m)을 넘어 올라쯔로 내려가는 일대도 자연미가 살아있는 아름다운 풍광이다.
길이 다소 복잡하게 얽히고 섥힌 듯 하나 필요한 곳마다 안내를 잘 하고 있어 거리에 민감하지
않으면 실망하는 일은 없겠다(믿지 못할 것은 거리표기니까)
도중에는 간혹 농가가 있을 뿐, 마을은 해발 200m에 있는 작은 마을(농촌) 올라쯔 밖에 없다
했는데 웬 알베르게?
데바에서 6km쯤 지점에 알베르게(refuge) 안내판이 있다.
유스 호스텔(Izarbide aterpetxea)이며 세요(sello/stamp) 서비스도 하고 있다.
계속되는 완만한 내리막 길의 평편한 들에 들어선 주민 50명 미만의 올라쯔(Olatz).
선술집(taberna/bar) 셀라이에따(Zelaieta)가 있고, 그 옆에는 그 길이 까미노 임을 입증하는
교회(Ermita de San Isidro)가 있다.
데바에서 여기 까지 7km 남짓 거리에서 2개의 교회(Calvario와 San Isidro) 위치만 알아도 길
잃을 염려 없겠다.
따베르나 셀라이에따에는 먹거리뿐 아니라 잠자리도 있으며 천막칠 너른 마당도 있는데 왜 겁
주고 있을까.
스탬프 서비스를 하고 뻬레그리노들로 하여금 더위를 피하며 마음 편히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갈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는데도.
올라쯔 뒤에 버티고 있는 해발 500m대의 된비알 산길에 들기 전에 충분히 쉬었다 가도록.
위피(Wi-Fi) 서비스도 하던가(모든 기록이 사라져서 긴가민가하다)
까미노 상의 음식점(Bar, Restaurante) 대부분이 위피 지역(zone)이며, 그 중 대부분이 뻬레
그리노들에게 패스워드(password)를 기꺼이 제공한다.
알베르게도 저렴한 공립은 거의 모두 위피 불통을 비롯해 서비스의 질이 낮은데 반해 사설은
다소 비싸기는 해도 대부분의 알베르게가 위피는 물론 모든 서비스의 질이 높은 편이다.
내 경우 당연히 위피 있는 음식점을 선호하고 위피가 알베르게 선택의 기준이 될 때도 있는데
나만 그러겠는가.
순례자는 무례해도 되는가
셀라이에따 주점을 지나 완만하게 오르는 듯 하던 길이 돌연 급경사다.
짝하여 가던 실개천 아뉴(Anu)와 헤어진 후 해발 628m 아르노 산(Monte Arno)의 턱밑 까지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지그재그 하는 가파른 길, 분기(分岐)가 많아 이정표를 건성으로 살펴 자칫 잘못 들면 목적지
에서 멀어지기 십상인 길이다.
급커브를 돌아 고로스똘라멘디(Gorostolamendi) 농가 못미친 곳, 피크를 조금 남긴 지점의
길 복판에 배낭 맨 체로 주저 앉았다.
왕래 차량이 거의 없으므로 쉬기 편한 곳이면 아무 데나 상관 없는 길.
모처럼 마음 편히 쉬는 것을 훼방놓으려 하는가.
에스빠뇰 치고는 흔치 않은 키다리 뚱보가 대뜸 '하뽀네스?'(japones/일본인)
하필, 내가 온몸으로 가장 민감하게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일본인으로 보다니?
까미노에서 일상화 되다시피 한 상대편의 국적묻는 것 자체를 나는 매너없는 짓으로 단정한다.
순례여정에 보탬이 될 리 없고 알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연령의 고하를 막론하고 마치
경찰관이 불심 검문하듯 묻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다.
더욱 무례하고 몰상식한 짓은 내게 물은 에스빠뇰처럼 자기의 선입견이 옳음을 확인하려는 듯
단정적인 질문이다.
간혹 '꼬레아노(Coreano)'냐고 묻기도 하지만 이것 마저도 나는 혐오한다.
똑같은 유형의 질문이기 때문이다.
굳이 알고 싶으면 정중히 묻는 예의 부터 갖춰야 하거늘.
당신의 국적을 알고 싶다, 국적을 말해 줄 수 없는가 등이 전치되어야 한다.
순례자는 무례해도 되는가.
지각 없고 무례한 점이 한두개가 아니다.
순례 이전에 매너부터 배워야 하지 않을까.
4년 전에 이런 질문에 대해 나는 대꾸(응답) 샘플을 확정하여 사용했는데 조금 수정했다.
무응답이 아니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매너에는 매너로 응수하기로.
예를 들면 에스빠뇰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들이 기피하는 나라를 거명하는 것이다.
"노 꼬레아노, 뚜 치노 오 인디오?"(나는 한국인인데 당신은 중국인 또는 인디언?)
당연히 노노노노.
자기가 한 짓은 반성 못하고.
이런 때, 좋을 리 없는 내 기분을 이딸리아노 고희(古稀) 부부가 전환해 주었다.
그들은 어제 오후 늦게 데바에 도착해 나와 한 집에 묵었는데 내 뒤를 따라온 듯.
71세 영감과 다음 주에 70살이 된다는 할멈이 벅찬 듯 힘겹게 올라오고 있으나 만면에 행복과
평화가 가득해 보인 이 늙은 부부를 부러워하는 사이에 팽배해졌던 부아가 사라져버렸으니까.
이 평화로운 부부와 아르노아떼(Arnoate)농가 까지의 완만한 내리막 길을 잠시 동행하였으나
사코네따(Sakoneta)로 가는 도중에 헤어졌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이상의 차이에도 길 걷는데는 더 늙은 내 몸이 우월한 듯.
지금도 벌목과 초지로의 전환이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이베리아 반도의 땅이 특별한 듯.
산정에서도 수cm만 땅을 파도 물이 나온다.
녹차밭으로 가장 적합하다는 전남 보성의 토질과 흡사하며 막심한 가믐에도 초지가 왕성하여
목축업이 성황을 이어가고 있나 보다.
기뿌스코아 주와 비스카이아 주(Bizkaia)의 바통(baton) 터치 지점을 지나면 라루스카인(Lar
ruskain) 길이 시작되고 잠시 가파른 오르막 길에 또 승마장이다.
까미노에서 소규모 사설 승마장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족구성원인 듯이 보이는 노소남녀가 울창한 소나무 숲 또는 유칼립투스 숲을 헤치며 승마를
즐기는 장면이 이따금 눈에 잡히니까.
가파르게 오른 것 처럼 급경사 내리막 길이 이어지는 목장지대에는 양인지 송아지인지 구분이
어려운 무리가 여유롭다.
군거본능 때문인지 한더위에도 똘똘 뭉쳐 움직이고 있는 저 놈들.
문득 양의 성품을 말한 책이 생각났다.
양순하여 양이라고?
성경에도 양은 좋은 편으로 구분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양의 성정은 고약하단다.
그래서 무더운 여름에는 꼭꼭 붙어지내고 추운 겨울에는 한사코 떨어져서 산단다.
왜냐하면, 여름에는 상대편 시원한 꼴 볼 보지 못하겠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지내는 상대자의
모습 보기 싫기 때문이라나.
못된 사람은 사촌이 논 사면 배가 아프다는데 상호의 이익 보다 자기가 손해볼 지언정 상대편
잘 되는 것만은 막겠다는 심보 아닌가.
헷갈리는 길에서 주의 깊게 살펴 선택한 길의 내리막이 어찌나 심한지 오르는 길 보다 더 많이
힘겹게 내려가야 한다.
노르떼 길을 역 코스로 걷는 이들에게는 마(魔)의 오름이 되겠다.
채석장인지, 광산인지, 집터처럼 보이기도 하는 산 능선.
능선 하나가 작살나고 있는데 이베리아 반도 역시 도처에 채석장이다.
스페인의 돌(石)도 어지간히 소모되어 목하 고갈상태?
식탐도 다스리지 못하는 늙은이가 무슨 순례자?
해가 아직 많이 남은 시각에 도착한 마르키나-헤메인(Markina-Xemein)의 동구 밖.
비스카이아의 성주 돈 떼요(Don Tello)가 1355년에 세웠다는 산촌 마을이다.
돈 떼요는 뻬드로 1세(Pedre I/재위 1350 ~1369)의 이복 형제로 뻬드로 1세로부터 빌바오의
권리를 양도받아 마을을 일으켰단다.
구 시가지로 향하는 길.
중세의 건물이지만 18c중반에 보수했다는 산 미겔 아레찌나가 예배당(Ermita de San Miguel
de Arretxinaga)의 등장으로 까미노 임이 확인되는 길이다.
묻고묻다가 한 볼런티어(volunteer) 청년의 안내로 쉬이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비스까이아 까미노 친구들 협회(Asociaciones de Amigos del C.S.)가 관리한다는 까르멜리
따스 수도원(Convento de los Padres Carmelitas)의 도나띠보(기부제) 알베르게다.
책자에는 여름철에만(5월 15일~9월 30일) 운영한다고 되어 있는데 아리송하게도 3일 앞당긴
5월 12일에 입실했으니 행운인가.
샤아르를 다시 만나 기분이 좋으려 하다가 매너 없는 에스빠뇰을 또 보게 되어 떨떠름해지려
하는데 뒤늦게 도착한 이딸리아노 부부가 아까 처럼 기분 전환의 촉매 역할을 했다.
지긋해 보이는 오스삐딸레로가 늙은이의 심중을 간파했는가.
나와 이 부부를 아직 통째로 비어있는 다른 홀에 배정했으니까.
안정된 잠자리가 확보되었으므로 서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은 업무시간 종료 전의 대학방문.
실은 잠자리 보다 더 긴요한 일이다.
노르떼 길에서 2번째 방문인데 전자는 천막이라는 대안이 있지만 후자는 그게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의 위치를 질문 받은 오스삐딸레로의 어이없는 표정에 무슨 실수라도 저지른 듯
당황한 쪽은 나였다.
인구 5천 미만의 산촌 마을에 무슨 대학이냐는 그.
동구 밖, 급경사 내리막 길에서 본 좁은 분지마을에는 대학 입지의 여지가 없으며 불편하기 짝
없는 교통사정 등으로 미루어 의아해 하며 걸었지 않은가.
한 소규모체육대학의 연습장이 있을 뿐이며 실기훈련이 필요할 때만 문을 열기 때문에 세요가
있을 리 없단다.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은 처음이며 협회 본부는 왜 이같은 터무니없는 실수를 했을까.
나의 대학방문은 해프닝(happening)으로 끝났으나 나는 이 오스삐딸레로에게 부족한 어휘로
대학인순례자협회를 홍보(설명)하느라 애를 먹어야 했다.
응접실 겸 식당으로 사용하는 너른 홀이 한 젊은 팀으로 인해 소란스러웠다.
팀원의 생일축하 파티인 듯 한데 오스삐딸레로의 주의환기가 나올 정도였으니까.
슈퍼마켓 에로스키에서 사온 싱싱한 딸기와 우유, 맥주와 바게트 빵으로 저녁상을 차린 나는
딸기의 반을 오스삐딸레로에게 주었는데 그에게서는 두고 먹을 만큼 더 많은 초콜릿이 왔다.
비노(wine)를 마시던 나이든 솔로(solo)로 부터는 비노가 왔고 젊은 팀은 샴페인을 보내왔다.
졸지에 성찬이 된 내 저녁상.
용신(聳身)하기 힘들 정도로 배가 불러오는데도 마치 걸신들린 사람 처럼 다 먹고 마셨다.
린위당(林語堂/1895~1976/중국.작가평론가)의 말처럼 이 시간 만은 황제도 부럽지 않았는데
곧 닥칠 일을 생각하였다면 어찌 그리 했겠는가.
형광등 불빛에 반짝거리는 붉디붉은 딸기가 식욕을 부채질했는데 그것이 에덴동산의 탐욕의
사과에 다름아니었을 줄이야.
에덴의 탐스런 사과를 따먹은 이브는 하나님을 탓했고 아담도 그랬다.
그녀는 당신이 창조한 뱀의 꼬드김 때문이었다고.
그는 당신이 짝지어준 여인 때문이었다고.
그래서 그들은 책임 전가라는 죄목의 시조가 되었을 뿐 아니라 종국적으로는 예수의 십자가가
필요하게 되었고 야고보의 길, 까미노도 그 연장선상에 있지 않은가.
나는 누구를, 무엇을 탓할까.
딸기? 비노? 샴페인? 비노와 샴페인을 준 사람들?
그러나 그들이, 그 것들이 나를 유혹한 적 없다.
내가 지나쳤을 뿐이며 음식에 대한 내 일상의 습성으로 미루어 불가해의 일이다.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過猶不及:論語先進/Too much is as bad as too little/Demasiado
es tan malo como demasiado poco)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공자의 말이 없었더라도 생활인의 평범한 진리다.
그런데도 내일이 없는 사람의 짓을 했으니 몸이 온전하겠는가.
편안한 잠자리지만 제대로 누워보지도 못했고 벌을 받느라 온밤을 지샜다.
심각한 '설사'(泄瀉/diarrea/diarrhoea)가 분명한데 밝는 날에 어찌 처신해야 할 지.
식탐도 다스리지 못하는 늙은이가 무슨 순례자? <<계 속>
이 구간의 유일한 사진(위/스마트폰에 찍힌 유일한 사진이다)